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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아 존중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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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cain: ‘자아 존중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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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a href=&quot;/wiki/%EC%9E%90%EC%95%84_%EC%A1%B4%EC%A4%91%EC%9D%B4%EB%9D%BC%EB%8A%94_%EA%B0%9C%EB%85%90%EC%97%90_%EB%8C%80%ED%95%98%EC%97%AC&quot; title=&quot;자아 존중이라는 개념에 대하여&quot;&gt;자아 존중이라는 개념에 대하여&lt;/a&gt;’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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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Pcai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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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cain: 새 문서: {{info|Reflections on the Concept of Self-Worth}}&lt;br&gt;   ==== &quot;자아 존중&quot;이라는 용어 ====  이 용어는 먼저 자신의 참된 모습 중 어떤 모습에 의해서도 기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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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새 문서: {{info|Reflections on the Concept of Self-Worth}}&amp;lt;br&amp;gt;   ==== &amp;quot;자아 존중&amp;quot;이라는 용어 ====  이 용어는 먼저 자신의 참된 모습 중 어떤 모습에 의해서도 기분 ...&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fo|Reflections on the Concept of Self-Worth}}&amp;lt;br&amp;gt; &lt;br /&gt;
&lt;br /&gt;
==== &amp;quot;자아 존중&amp;quot;이라는 용어 ====&lt;br /&gt;
&lt;br /&gt;
이 용어는 먼저 자신의 참된 모습 중 어떤 모습에 의해서도 기분 상하지 않도록 무조건적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수용함으로써 자신과의 평화를 추구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를 통 해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태도이며 이는 일종의 인본주의적 노력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 안에는 이 용어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용어를 쓰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 각하며 그와 같은 인본주의적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그러한 인본주의적 자세를 취하게 되면, 전적으 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설 자리가 없어지며, 하나님의 자비에 합당한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이를 반대합니다. &lt;br /&gt;
&lt;br /&gt;
물론 성경에는 &amp;quot;너희는 새들보다 귀하다&amp;quot;(마태복음 6:26, 누가복음 12:24) 등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가치나 중요성 등의 단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의 자비만을 의지함으로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독특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인간의 타락을 어떻게 보십니까? ====&lt;br /&gt;
&lt;br /&gt;
중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부터 떨어져 있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있습니다. 즉, 인간은 어떠한 거룩한 행동이나 생각도 할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로마서 14:23: &amp;quot;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amp;quot;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자기 몸을 불사르 게 내줄지라도 불신자는 단지 죄를 지을 뿐입니다(고린도전서 13:3). 이유는 이렇습니다: 선함, 중요성, 가치 등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여부에 의하여 정의됩니다. 하나님과 관계 없이 그의 자비하심에 의지하지 않고 이루어진 일들은 선하지 않습니다. &amp;quot;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amp;quot; (로마서 3:12). &lt;br /&gt;
&lt;br /&gt;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또한 인간이 감사함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에 의식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 는 잠재적 능력을 말합니다. 불신자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언급되기는 창세기 9:6 (사형 을 정당화하는 구절)과 야고보서 3:9(사람을 저주하는 것을 금하는 구절)에서만 언급됩니다. 불신 자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성경 저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 은 인간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오늘 우리 시대만큼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 은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인간이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순 종하며, 누구를 위해 사는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그 자신에게 고유한 어떤 것을 성취하거 나 확장시킬 때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주장들을 중단하고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을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lt;br /&gt;
&lt;br /&gt;
==== 그리스도인에게 자아 긍정 내지 자아 수용(self-acceptance)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lt;br /&gt;
&lt;br /&gt;
제 생각에 &amp;quot;자아 수용&amp;quot;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성경적 관념은 모든 형편에서 자족할 수 있다고 한 바울의 진술입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해야 한다고 하는 바울의 진술입니다. 외모, 건강 , 명성 등의 비도덕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족하여야 합니다(히브리서 13:5-6). 이 렇게 자족할 수 있게 하는 구체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amp;quot;하나님이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으며 버 리지 않으시리니 . .사람이 너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amp;quot; 라는 약속입니다. 성품에 관한 도덕적인 영역에서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얼마나 참을성이 있는지, 겸손한지, 친절한지, 관대한지, 온유 한지, 부지런한지 등의 영역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할 때까지는 자아 수용을 운운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이런 도덕적 영역에서는, 우리의 기쁨은 무분별한 자아 수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 히려, 우리를 불러 자신과 교제할 수 있도록 우리를 수용해 주신 하나님의 자비를 강렬하게 느끼는 데서부터 기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받아들이신다면 즉 나를 수용하신다면, 나도 내 자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가운데서 우리를 대적하시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를 위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많은 자신을 미워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여 주 시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갖게 해 주신 그리스도의 자비를 확대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존 머레이는, 그의 뛰어난 책,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성취되고 적용된 구속)에서 이런 날카로운 진술을 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사실 사람이 더 성화될수록, 그는 자신의 구세주의 형 상을 더 닮게 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거룩하지 못한 자신의 모든 결핍에 대해 더 소스라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 강해지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얻으려는 갈망이 더 집요해지며, 남아 있는 죄의 무게를 더 의식하며,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더 강력해집니다.(145쪽)&lt;br /&gt;
&lt;br /&gt;
==== 당신의 인간관은 무엇입니까? ====&lt;br /&gt;
&lt;br /&gt;
인간은 천사와 달리 육체를 가지고 있는 피조물로서,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 에게 맞는 방식으로 생각하며, 느끼며, 행동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형상적으로 주변에 나타내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인간은 믿음으로 행하지 않을 때, 즉,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않을 때, 그는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제가 인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인 태도입니다. 세상에서 생각하는 인본주의는 전혀 인본적인 것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 당신의 인간관은 하나님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습니까? ====&lt;br /&gt;
&lt;br /&gt;
하나님은 모든 존재 가운데 첫째이며, 가장 위대하시며, 영원하시며, 정의, 능력, 지혜, 사 랑이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완벽하고 형언할 수 없는 교제 안에서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들보다 더 기쁨이 충만하십니다. 세상의 창조와 구속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무한한 충만입니다. 그는 무엇을 더 보태드릴 수 없는 분이며 자체로서 오직 충만하여 넘쳐나시며 따라서 그의 모든 길 은 의로우시며 은혜로우십니다(시편 145:17). 반면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의 열매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참된 사랑 가운데 즐겁게 만족하는 가운데 자아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 이런 관점을 생각할 때, 당신은 자아 존중이 심히 부족한 학생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겠습니 까? 신체 일부에 실제로 추한 모습을 갖고 있거나 혹은 실제로는 전혀 추하지 않지만 단지 자격지 심에서 자신의 모습이 추하다고 생각하면서 열등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시 겠습니까? 예를 들어, 발가락이 추하게 기형적으로 휘어진 &amp;quot;휜 발&amp;quot;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lt;br /&gt;
&lt;br /&gt;
단지 상상 속의 &amp;quot;휜 발&amp;quot;이라면, 그 사람이 진정한 자기 평가를 하도록 그 상상을 깨뜨려 주 십시오. 예를 들어, 수학을 곧잘 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는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 다면, 당신은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재능의 증거를 보여주고, 자신의 재능을 부인하고 모독하는 잘 못을 그만 두게 하십시오. 이를 통해 당신은 그의 잘못을 고칠 수 있으며, 그로 하여금 자신의 부 족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의 재능을 감사함으로 사용할 의무에 주의를 기울이게 도울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만약 그것이 실제로 보기 흉한 “휜발”이라면, 당신은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을 구분하여 대처하여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비도덕적인 결핍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일러 주십시오. 우리에게 좋은 미래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시편 23:6; 예레미야 32:40-42; 로마서 8:28)을 그들에게 일러 주고, 그 약 속으로 만족하라고 하십시오. &lt;br /&gt;
&lt;br /&gt;
한편, 도덕적인 &amp;quot;휜 발&amp;quot; (다시 말하면, 죄)에 대해서는, 당신은 그들이 그러한 죄악된 상태 에서 그냥 만족해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 당신은 그들의 죄책감을 섣 불리 무마시키려 해서는 안됩니다. 보다 근본적 해결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에 대 해 일러주면서(요한 1서 1:9).,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변화하도록 강하게 권고하십시오. &lt;br /&gt;
&lt;br /&gt;
==== 어떻게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요? ====&lt;br /&gt;
&lt;br /&gt;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됩니다. 따라서 학생들더러 그냥 자기 자신을 한 번 성찰해 보라 고 하면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을 아는 참된 지식은 궁극적으로 신적인 계시를 통해서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자신을 아는 참된 지식은 긴밀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하 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을 때 비로소 자신을 아는 참된 지식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오직 신적인 계시에 의해서 얻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을 바로 알게 도와주려면 하나님 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이 좋습니다. 즉, 신학과 성경 주해를 가르쳐서, 하나님의 실제가 학생들의 심령과 마음에 영향을 주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생각과 성품들이 그들에게 계시되는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lt;br /&gt;
&lt;br /&gt;
==== 어떻게 학생들이 자족하게 되어,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남을 돕는 자유를 얻게 될 수 있을까요? ====&lt;br /&gt;
&lt;br /&gt;
하나님이 자신에게 심어두신 자신의 여러 한계들에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요? 하늘 아버지께 서 그분의 지혜와 자비를 따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셨다고 신뢰하여야 합니다. 명예, 미 모, 힘, 부, 지능 등 수많은 것들을 갖추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라디오나 T.V.의 말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이 부족하여 마음이 슬프다면 이는 불신의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기쁨과 평강은 하나님이 이 세상 그 무엇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만족의 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amp;quot;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 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amp;quot; (로마서 15:13). 우리가 &amp;quot;우리의 유익을 구할&amp;quot; (고린도전 서 13:5) 필요가 없는 위치에 서 있을 때, 말하자면 사랑하는 위치에 서 있을 때, 우리는 평강 가운데 있게 됩니다. (골로새서 1:4-5에서 소망과 사랑의 관계를 보십시오.)&lt;/div&gt;</summary>
		<author><name>Pcai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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