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강한 교회의9가지 특성/강해설교를 하는 교회
성경 책 � 설�
JoyaTeemer (토론 | 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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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으나, 무엇보다 목사의 | ||
+ | 설교가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정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 ||
+ | 고려하는 것이 목사의 설교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교회를 선택하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 ||
+ | 그러나 16 세기 종교개혁의 영적 유산을 받은 우리 개신교 신앙인들에게 바른 말씀의 | ||
+ | 선포는 분명히 교회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실제로 개혁 신학에 기초하여 볼 때, 교회가 | ||
+ |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3 대 표지인 말씀의 참된 전파와 성례의 | ||
+ | 정당한 집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 필요하다. 교회는 최근 이단 문제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 ||
+ |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시 한번 위에서 제기한 교회의 바른 3 가지 표지 위에 자신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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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23), 성례와 말씀을 분리시키거나, 성례를 오용하여 인간의 구원 문제를 왜곡하거나(마 | ||
+ | 28:19; 막 16:16; 행 2:42; 고전 11:23-30), 교회의 치리를 경시하여 교회가 무질서해지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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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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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장에서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설교 문제를 다룰 것이다. 이에 | ||
+ | 대해 데버 박사는 강해설교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데버 박사에게 강해설교는 | ||
+ | 건강한 교회가 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기본적으로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 ||
+ | 설교란 설교자의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이라는 점이다. | ||
+ |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성령의 도움에 힘입어 하나님의 | ||
+ | 말씀을 대언하는 자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설교는 우리의 신앙과 교회가 | ||
+ | 영적으로 성숙해지며 건강해지는데 중요하다. 설교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 ||
+ | 강해설교는 가장 전형적인 설교이다. 강해설교란 성경의 어떤 한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 ||
+ | 것을 드러내며, 그 의미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강해설교 외에 다른 | ||
+ | 설교의 형태도 있다. 예를 들면 ‘기도’나 ‘사랑’과 같은 주제에 성경의 교훈을 설교하는 | ||
+ | 주제설교가 있고, 또한 성경의 한 인물을 택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거나, 믿음과 | ||
+ | 소망의 대표적인 사람을 소개하는 인물설교가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강해설교는 하나님 | ||
+ | 말씀의 해석과 삶의 적용을 강조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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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해설교는 성경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 ||
+ | 신약의 사도와 같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아니더라도, 현대 교회의 설교자들은 | ||
+ | 말씀을 전하는 동안만큼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의 사역자로서의 권위를 갖는다. 일부 | ||
+ | 사람들은 강해 설교를 어떤 유명한 강해설교자의 설교 스타일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 ||
+ | 있는데, 강해 설교는 근본적으로 설교 형태의 문제가 아니다. 저명한 강해설교가이며 | ||
+ | 캠브리지 에덴 침례교회의 로이 클레멘트 목사에 의하면, “강해설교는 우리가 전할 것을 | ||
+ | 어떻게 전하느냐에 대한 것(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전하느냐(성경적 내용)에 대한 | ||
+ | 것이다”라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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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다고 | ||
+ | 고백하면서도 강해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그 설교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을 | ||
+ | 설교하지 못할 것이다. 강해설교를 하지 않는 설교자는 성경의 한 본문을 택해서 설교할 때, | ||
+ | 본문의 핵심을 교인들에게 잘 설교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 설교자나 교인 모두는 이미 | ||
+ |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성경에서 단지 듣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성경의 | ||
+ | 본문을 강해식으로 문맥 속에서 본문의 내용을 설교의 핵심으로 택할 때는, 자신이 | ||
+ |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게된다. 설교를 통해 우리는 이미 받은 | ||
+ |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깨닫기도 하지만, 우리의 남은 생애동안 성취해야 할 사명인 | ||
+ | 구원의 완성에 이르는 지혜를 깨닫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처음 하나님의 | ||
+ | 부르심을 입은 이후 지금의 삶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구원(성화)을 이루기 위해 바른 | ||
+ |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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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의 바른 선포는 오늘날 현대 교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 ||
+ | 과제이다. 21 세기를 준비하면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바른 말씀의 선포를 통해 “복음을 | ||
+ | 복음되게” 하는 일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말씀의 바른 선포를 위해 | ||
+ | 설교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헌신과 순종이다. 그리고 설교를 | ||
+ |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자 자신의 실제적인 순종이 목회에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 | ||
+ | (마태복음 18 장과 디모데후서 4 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주목하라). 교회에 하나님의 | ||
+ | 말씀을 잘 가르치지 못하는 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지도자는 | ||
+ | 교인들을 영적으로 잘 인도하지 못할 뿐 만 아니라, 분명 교회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 ||
+ | 않는다. 이런 교회는 실제로 목사의 수준만큼만 성장할 것이며, 이 교회는 점진적으로 | ||
+ | 하나님의 뜻보다는 목사의 의도대로 될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현대 지상의 교회는 복음을 | ||
+ | 바로 전하는 영적 강단의 회복을 위해 교회 지도자와 모든 교인들이 책임감을 갖고 | ||
+ | 노력해야 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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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강해설교는 교회 성장의 근원이 될 | ||
+ | 수 있다고 본다. 마틴 루터의 경험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주의깊은 관심이 결국 | ||
+ | 종교개혁을 가능케 한 것이다. 데버박사가 런던에 있는 한 교회의 세미나에서 청교도주의에 | ||
+ | 대해 논하면서, 이전 청교도들의 설교는 때때로 2 시간이었다고 얘기했다. 이 세미나 | ||
+ | 참석한 한 사람이 심각하게 묻기를, “그러면 도대체 예배에서 설교 이외에 다른 예배순서는 | ||
+ | 없느냐?” 고 했다. 이 질문자의 의도는 말씀을 듣는 것이 예배의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 ||
+ | 이에 데버 박사는 많은 영국의 개신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르는 삶을 | ||
+ | 본질적인 예배라고 생각해 왔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예배의 요소 중 여러 가지가 | ||
+ | 중요하겠으나, 무엇보다도 말씀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부인할 수는 없을 | ||
+ | 것이다. 요컨대 현대 교회는 말씀 중심의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 ||
+ | 적용하는 것에 여러 가지 요소, 즉 찬양과 감사, 신앙고백, 선포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 ||
+ | 요소 중 일부는 찬양으로 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찬양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 ||
+ | 간에, 말씀보다 음악에 의존하는 교회는 흐르는 모래에 세워진 교회와 같다. 그러므로 | ||
+ | 말씀의 바른 선포를 위해 교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즉, 평신도들은 자신이 | ||
+ | 섬기는 교회의 목사가 성경을 정확하게 주의깊게 그리고 진지하게 연구하도록 기도하며, 그 | ||
+ |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을 자신의 삶과 교회에 적용하는데 하나님이 직접 | ||
+ | 인도하시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목사들은 이 모든 것을 위해 스스로 기도하며, 말씀을 | ||
+ | 전하고 가르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또한 바른 복음의 전파를 위해 우리의 | ||
+ | 교회가 강해설교를 하도록 기도하라. 그러면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성경에서 | ||
+ | 말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강해설교를 한다는 것은 건강한 교회를 | ||
+ | 의미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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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교회의 설교를 보면서 일부 설교자들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복음을 복음되게” | ||
+ | 그리고 “강단의 영적 회복”을 위해 몇 가지 문제를 자성해 보고자 한다. 먼저 설교자들은 | ||
+ | 준비되지 않은 설교로 강단에 서지 말아야 할 것이며, 설교 중에 설교 본문과 관련 없는 | ||
+ | 지나친 개인의 사생활과 간증을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을 의식해 그들에게 | ||
+ |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거나 혹은 심지어 그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하거나, 다른 한편 | ||
+ |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도덕적인 면에 치우친 설교를 한다면, 이는 | ||
+ | 복음으로부터 이탈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바람직하지 못한 설교가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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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현대 교회의 강단의 영적 회복과,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바른 | ||
+ | 말씀의 선포를 위해 강해 설교는 필요할 것이다. 더욱이 강해 설교가 본문의 해석과 | ||
+ | 주석으로 그치지 않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고 | ||
+ |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성화의 삶을 원하는 현대 신앙인들에게 아주 유익한 것이 될 | ||
+ | 것이다. 16 세기 종교개혁가 존 칼빈도 설교에서 본문의 의미를 항상 신자들의 삶에 | ||
+ | 적용하는데 에 주안점을 두면서, 설교를 통해 신자들과 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하는 구체적인 | ||
+ | 삶의 실천과 그에 따른 변화를 강조했다. 원하기는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강해 설교를 | ||
+ | 통해 복음의 본질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를 잘 드러내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 ||
+ | 중심이며 머리가 되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드러나기를 소망한다. |
2009년 10월 8일 (목) 14:47 판
By Mark Dever
About The Nature of the Church
Chapter 2 of the book 간강한 교회의9가지 특성
Translation by 9Marks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으나, 무엇보다 목사의 설교가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정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목사의 설교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교회를 선택하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16 세기 종교개혁의 영적 유산을 받은 우리 개신교 신앙인들에게 바른 말씀의 선포는 분명히 교회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실제로 개혁 신학에 기초하여 볼 때,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3 대 표지인 말씀의 참된 전파와 성례의 정당한 집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 필요하다. 교회는 최근 이단 문제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시 한번 위에서 제기한 교회의 바른 3 가지 표지 위에 자신의 교회가 서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즉 말씀을 바로 전하지 않거나(요 8:31, 32, 47; 14:23), 성례와 말씀을 분리시키거나, 성례를 오용하여 인간의 구원 문제를 왜곡하거나(마 28:19; 막 16:16; 행 2:42; 고전 11:23-30), 교회의 치리를 경시하여 교회가 무질서해지고 거룩함을 상실한다면(마 18:18; 고전 5:1-5, 13; 14:33, 40) 이는 바른 교회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설교 문제를 다룰 것이다. 이에 대해 데버 박사는 강해설교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데버 박사에게 강해설교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기본적으로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설교란 설교자의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성령의 도움에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설교는 우리의 신앙과 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해지며 건강해지는데 중요하다. 설교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강해설교는 가장 전형적인 설교이다. 강해설교란 성경의 어떤 한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드러내며, 그 의미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강해설교 외에 다른 설교의 형태도 있다. 예를 들면 ‘기도’나 ‘사랑’과 같은 주제에 성경의 교훈을 설교하는 주제설교가 있고, 또한 성경의 한 인물을 택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거나, 믿음과 소망의 대표적인 사람을 소개하는 인물설교가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강해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해석과 삶의 적용을 강조한다.
강해설교는 성경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와 같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아니더라도, 현대 교회의 설교자들은 말씀을 전하는 동안만큼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의 사역자로서의 권위를 갖는다. 일부 사람들은 강해 설교를 어떤 유명한 강해설교자의 설교 스타일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강해 설교는 근본적으로 설교 형태의 문제가 아니다. 저명한 강해설교가이며 캠브리지 에덴 침례교회의 로이 클레멘트 목사에 의하면, “강해설교는 우리가 전할 것을 어떻게 전하느냐에 대한 것(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전하느냐(성경적 내용)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강해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그 설교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설교하지 못할 것이다. 강해설교를 하지 않는 설교자는 성경의 한 본문을 택해서 설교할 때, 본문의 핵심을 교인들에게 잘 설교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 설교자나 교인 모두는 이미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성경에서 단지 듣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성경의 본문을 강해식으로 문맥 속에서 본문의 내용을 설교의 핵심으로 택할 때는, 자신이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게된다. 설교를 통해 우리는 이미 받은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깨닫기도 하지만, 우리의 남은 생애동안 성취해야 할 사명인 구원의 완성에 이르는 지혜를 깨닫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이후 지금의 삶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구원(성화)을 이루기 위해 바른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의 바른 선포는 오늘날 현대 교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21 세기를 준비하면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바른 말씀의 선포를 통해 “복음을 복음되게” 하는 일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말씀의 바른 선포를 위해 설교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헌신과 순종이다. 그리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자 자신의 실제적인 순종이 목회에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 (마태복음 18 장과 디모데후서 4 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주목하라).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지 못하는 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지도자는 교인들을 영적으로 잘 인도하지 못할 뿐 만 아니라, 분명 교회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교회는 실제로 목사의 수준만큼만 성장할 것이며, 이 교회는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뜻보다는 목사의 의도대로 될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현대 지상의 교회는 복음을 바로 전하는 영적 강단의 회복을 위해 교회 지도자와 모든 교인들이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강해설교는 교회 성장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마틴 루터의 경험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주의깊은 관심이 결국 종교개혁을 가능케 한 것이다. 데버박사가 런던에 있는 한 교회의 세미나에서 청교도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이전 청교도들의 설교는 때때로 2 시간이었다고 얘기했다. 이 세미나 참석한 한 사람이 심각하게 묻기를, “그러면 도대체 예배에서 설교 이외에 다른 예배순서는 없느냐?” 고 했다. 이 질문자의 의도는 말씀을 듣는 것이 예배의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에 데버 박사는 많은 영국의 개신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르는 삶을 본질적인 예배라고 생각해 왔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예배의 요소 중 여러 가지가 중요하겠으나, 무엇보다도 말씀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컨대 현대 교회는 말씀 중심의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적용하는 것에 여러 가지 요소, 즉 찬양과 감사, 신앙고백, 선포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소 중 일부는 찬양으로 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찬양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말씀보다 음악에 의존하는 교회는 흐르는 모래에 세워진 교회와 같다. 그러므로 말씀의 바른 선포를 위해 교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즉, 평신도들은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가 성경을 정확하게 주의깊게 그리고 진지하게 연구하도록 기도하며, 그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을 자신의 삶과 교회에 적용하는데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시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목사들은 이 모든 것을 위해 스스로 기도하며,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또한 바른 복음의 전파를 위해 우리의 교회가 강해설교를 하도록 기도하라. 그러면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강해설교를 한다는 것은 건강한 교회를 의미한다.
현대 교회의 설교를 보면서 일부 설교자들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복음을 복음되게” 그리고 “강단의 영적 회복”을 위해 몇 가지 문제를 자성해 보고자 한다. 먼저 설교자들은 준비되지 않은 설교로 강단에 서지 말아야 할 것이며, 설교 중에 설교 본문과 관련 없는 지나친 개인의 사생활과 간증을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을 의식해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거나 혹은 심지어 그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하거나, 다른 한편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도덕적인 면에 치우친 설교를 한다면, 이는 복음으로부터 이탈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바람직하지 못한 설교가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현대 교회의 강단의 영적 회복과,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바른 말씀의 선포를 위해 강해 설교는 필요할 것이다. 더욱이 강해 설교가 본문의 해석과 주석으로 그치지 않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성화의 삶을 원하는 현대 신앙인들에게 아주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16 세기 종교개혁가 존 칼빈도 설교에서 본문의 의미를 항상 신자들의 삶에 적용하는데 에 주안점을 두면서, 설교를 통해 신자들과 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하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과 그에 따른 변화를 강조했다. 원하기는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강해 설교를 통해 복음의 본질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를 잘 드러내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중심이며 머리가 되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드러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