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강한 교회의9가지 특성/바른 성경적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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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성경본문의 내용을 바르게 해석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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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가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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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성경신학이라 함은 성경의 교리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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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를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스스로 다음의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성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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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이해는 어떠한가? 지금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알고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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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가?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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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알고 믿으라고 하면서, 바른 성경 신학의 이해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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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바르고 건전한(sound) 성경의 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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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것이다. 건전하고 바른 교리란 무엇을 뜻하는가?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바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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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에 보면, ‘건전한’ 이라는 말은 믿을만하고 정확하고, 신실한 것을 의미한다.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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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온전하거나 몸이 성한 건강하다는 의미의 의학적인 용어이다(시 38). 디모데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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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에 보면, 바른 교리는 복음을 좇는 것이며, 경건치 않은 것과 죄와 반대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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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 장 3 절에서 “거짓(다른) 교훈”을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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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않는 것으로 설명한다. 디모데후서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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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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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후 1:13) 라고 권면하며,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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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3) 라고 훈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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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젊은 사도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거짓 교훈을 염려하고 바른 신앙을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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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 의하면 디도가 임명한 장로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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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9)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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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나 속으로는 이기적인 욕심이 있는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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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을 비난하며(딛 1:13),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며”(딛 2:1)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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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목회자가 성도를 양육함에 있어 말로만 가르치지 말고 실제로 모범을 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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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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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른 교리를 논할 때 유념할 것은 성경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성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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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갖고서 하나님의 진리를 논한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에는 논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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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가 있는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의견에 차이가 있을 수 없는 성경의 본질적인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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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부분적으로 이견이 있는 문제도 있고, 또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소한 문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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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구원 교리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는 논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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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얻기를 바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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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본적인 교리로 논쟁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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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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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인 태도이다. 또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지금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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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따르는 신앙의 순수성이 필요한 시대라는 점이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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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감하는 행위는 진리가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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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신 12:32). 우리는 교회 문제를 접하면서 어느 정도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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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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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수 있으며, 다른 한편 이 보다 좀 더 사소한 문제들 즉, 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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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나, 부정한 정치에 대한 무력 저항과 히브리서의 저자권과 같은 본질적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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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치 않는 문제에 대해서 각자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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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를 접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의 경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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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이를수록, 우리는 믿음과 관계된 문제에 일치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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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이르게 하는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에 우리가 다른 이견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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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적 성장에 위험한 일이다. 초대 교회가 그러하였는데 이들은 본질적인 문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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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는 이견을 가졌으나, 결국 이 모든 문제를 사랑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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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치는 진리가 아닌 문제들에 대해서는 교인 상호간의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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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이러한 성경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아주 사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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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들로부터 파생되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반성이 아니라 회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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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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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리면 경건하게 살기는커녕, 사람들간의 분쟁만 야기한다는 바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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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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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의 바른 교훈을 배우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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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으로 필요한 성경의 교리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예정의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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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여 우리가 무관심하였지만, 이 교리가 성경적이며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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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으로부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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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함은 성경의 본질적인 중요한 가르침이다. 성경에서 분명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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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종종 무시되어온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선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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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악하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돌아가시며 하신 일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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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나타나는 일은 무엇이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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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돌보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만약 그러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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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돌보심은 우리의 신앙 때문이냐, 아니면 그의 뜻에 의한 것이냐?”등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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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문제는 물론 모든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이지만,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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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교회 지도자라면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 바른 대답을 못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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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양떼를 얼마나 잘못 인도하는지를 알게된다. 우리는 성경에 기초하여 이 문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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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매우 분명한 권위를 갖고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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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중요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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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으신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소유자시며 지배자인 주님이시다. 그러나 때때로 그의 권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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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에서 부인되었다. 신앙인 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창조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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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을 부인하는 것은 경건한척하는 이교도들과 같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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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완강하게 부인하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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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베푸는 것은, 어떤 면에서 불신자에게 세례를 행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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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교인으로 받아들인 것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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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될 수 있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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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하지 못하며, 특히 교회의 지도자에게 이 일은 더욱 위험하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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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거나, 이 문제들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을 교회 지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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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마지못해 신뢰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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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교회에 유익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에 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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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그의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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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지도자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영화롭게 하는 성경적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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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를 갖고있는 지도자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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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가르치고 깨달아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일”과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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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바치는 헌신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우리는 16 세기의 카톨릭 교회가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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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고 복음으로 멀어져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자고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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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의 정신을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교회 개혁 대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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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 자신인 프로테스탄트의 교회와 신앙인 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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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좀 더 능동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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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으로 우리의 교회와 이 세상을 개혁해야 할 때이다. 교회 개혁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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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의 영성 회복에서 시작해야겠지만, 이를 위해 교회에서 성경적인 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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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한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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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이 있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이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바른 성경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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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를 가르치는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2011년 6월 6일 (월) 16:10 현재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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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성경본문의 내용을 바르게 해석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강해설교가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성경신학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성경신학이라 함은 성경의 교리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스스로 다음의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이해는 어떠한가? 지금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알고 믿고 있는가?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으라고 하면서, 바른 성경 신학의 이해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바르고 건전한(sound) 성경의 교리를 배우는 것이다. 건전하고 바른 교리란 무엇을 뜻하는가?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바울의 목회서신에 보면, ‘건전한’ 이라는 말은 믿을만하고 정확하고, 신실한 것을 의미한다. 원래 이 말은 온전하거나 몸이 성한 건강하다는 의미의 의학적인 용어이다(시 38). 디모데전서 1 장에 보면, 바른 교리는 복음을 좇는 것이며, 경건치 않은 것과 죄와 반대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 장 3 절에서 “거짓(다른) 교훈”을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않는 것으로 설명한다. 디모데후서에서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후 1:13) 라고 권면하며,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3) 라고 훈계한다. 바울은 젊은 사도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거짓 교훈을 염려하고 바른 신앙을 권면한다. 바울에 의하면 디도가 임명한 장로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9)라고 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나 속으로는 이기적인 욕심이 있는 거짓 교사들을 비난하며(딛 1:13),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며”(딛 2:1)라고 하면서, 아울러 목회자가 성도를 양육함에 있어 말로만 가르치지 말고 실제로 모범을 보이라고 권면하였다.

우리가 바른 교리를 논할 때 유념할 것은 성경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성경의 부분을 갖고서 하나님의 진리를 논한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의견에 차이가 있을 수 없는 성경의 본질적인 문제가 있고, 부분적으로 이견이 있는 문제도 있고, 또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소한 문제들이 있다. 구원 교리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는 논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얻기를 바라는 것은 성경의 기본적인 교리로 논쟁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바를 인간들이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비 신앙적인 태도이다. 또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지금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신앙의 순수성이 필요한 시대라는 점이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는 행위는 진리가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신 12:32). 우리는 교회 문제를 접하면서 어느 정도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수 있으며, 다른 한편 이 보다 좀 더 사소한 문제들 즉, 음주 문제나, 부정한 정치에 대한 무력 저항과 히브리서의 저자권과 같은 본질적이지 않고 확실치 않는 문제에 대해서 각자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접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의 경지에 이르면 이를수록, 우리는 믿음과 관계된 문제에 일치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진리에 이르게 하는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에 우리가 다른 이견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위험한 일이다. 초대 교회가 그러하였는데 이들은 본질적인 문제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는 이견을 가졌으나, 결국 이 모든 문제를 사랑으로 보았다.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치는 진리가 아닌 문제들에 대해서는 교인 상호간의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이러한 성경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아주 사소한 문제들로부터 파생되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반성이 아니라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리면 경건하게 살기는커녕, 사람들간의 분쟁만 야기한다는 바울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바른 교훈을 배우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경의 교리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예정의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여 우리가 무관심하였지만, 이 교리가 성경적이며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함은 성경의 본질적인 중요한 가르침이다. 성경에서 분명 말하고 있지만 종종 무시되어온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선하냐 혹은 악하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돌아가시며 하신 일이 무엇이냐?”,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나타나는 일은 무엇이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돌보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만약 그러하다면 하나님의 돌보심은 우리의 신앙 때문이냐, 아니면 그의 뜻에 의한 것이냐?”등의 문제이다. 이 모든 문제는 물론 모든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이지만,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교회 지도자라면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 바른 대답을 못할 경우, 우리의 양떼를 얼마나 잘못 인도하는지를 알게된다. 우리는 성경에 기초하여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분명한 권위를 갖고 답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중요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소유자시며 지배자인 주님이시다. 그러나 때때로 그의 권위가 교회 내에서 부인되었다. 신앙인 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창조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은 경건한척하는 이교도들과 같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완강하게 부인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어떤 면에서 불신자에게 세례를 행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교인으로 받아들인 것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될 수 있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특히 교회의 지도자에게 이 일은 더욱 위험하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거나, 이 문제들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을 교회 지도자로 임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마지못해 신뢰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교회에 유익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에 해가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그의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지도자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영화롭게 하는 성경적인 바른 교리를 갖고있는 지도자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고 깨달아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일”과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일”에 우리의 삶을 바치는 헌신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우리는 16 세기의 카톨릭 교회가 바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고 복음으로 멀어져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자고 일어난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의 정신을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교회 개혁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 자신인 프로테스탄트의 교회와 신앙인 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좀 더 능동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으로 우리의 교회와 이 세상을 개혁해야 할 때이다. 교회 개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성 회복에서 시작해야겠지만, 이를 위해 교회에서 성경적인 교리에 기초한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성경신학이 있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이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바른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