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함은 모든것을 바꾼다
성경 책 � 설�
(새 문서: {{info|Kindness Changes Everything}}인자함은 과소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인자함을 주로 웃어줌, 사이좋게 지냄, 또는 거스리지 않음 정도의 착함 또...)
2017년 1월 19일 (목) 16:32 현재 판
By Stephen Witmer About 거룩케 하심
Translation by Sung Eun Kim
You can help us improve by reviewing this translation for accuracy. Learn more (English).
인자함은 과소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인자함을 주로 웃어줌, 사이좋게 지냄, 또는 거스리지 않음 정도의 착함 또는 유쾌함으로 생각한다. 다소 일상적인 미덕같아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인자함을 굉장히 다르게, 주목 받는 묘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인자함은 초자연적이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서 자신이 진정한 사도임을 주장할때, 그는 복음을 위해 격었던 시험들과, 그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내적인 영적 삶과 하나님이 그의 삶속에 일궈내신 영적 열매를 열거하였다(고린도 후서 6:1-13). 놀랍게도 인자함은 그의 영적 열매의 목록에 속해 있다. “내가 진정한 사도라는 증거가 필요합니까?” 사실상 그의 말합니다. “좋습니다. 증거는 이것이요: 나는 인자합니다.”
진정한 인자함은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골로새서 5:22). 사람들이 받을 자격이 없고 또 받고 그것을 되돌려 배풀이 않더라고 (인자함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 마음의 초자연적으로 인자한 경향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인자하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사람들을 통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로마서2:4). 이말은 (하나님이 인자함을 베푸실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그의 적이 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원수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본받아야 한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다“ (누가복음 6:35). 우리의 인자함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반영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서로에게 인자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2)
인자함은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머리를 한대 맞는 기분과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걸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시편 141:5) 예수님의 바리세인 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 불렀다.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인자함이다.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인자한 의사는 깊이 있는 암을 고치기 위해 절개 하는 것이다.
인자함은 막강하다.
로자리아 버터필드(Rosaria Butterfield) 는 열성적인 동성연애자에서 열성적인 기독교인으로 변화받은 여정을 담은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기독교 인으로 볼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생각이 짧고 비판적이며, 멸시하고, 포괄성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로 보여졌다. 지방 신문에 복음주의 기독교 그룹에 대한 평론을 게재하고 나서 엄청난 양의 상반되는 반응을 받았다. 책상의 한쪽 빈 상자에는 중상 메일을 그리고 한쪽 구석에 빈 상자에는 팬 메일로 나주었다. 그런데 지방 목사님으로 부터 두장의 편지를 받았다. “친절하고 이것저것 묻는 편지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진실을 캐기위한 질문들에 따뜻함과 공손함이 있었다. 어느 상자에 넣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냥 책상위에 칠일 동안 올려 놓았다. “내가 받아 본 가장 친절한 반대의 편지였다.” 그 저자의 어조는 분명이 그녀에게 반대하는 투가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그 목사에게 연락을 했으면 그와 그의 아내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내가 잊혀졌다고 느끼지 않도록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들의 우정이 그녀의 신앙 여정에 중요한 역할의 했다.
당신은 인자한가?
성경의 증언이나 버터필드의 간증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혹은 그들에 대하여 거칠게 말하고 있느가? 우리 중 몇명은 운동 경기를 보거나 탈랜트 쇼(The Voice 같은 쇼)를 보면서 외모나 기량 부족, 또는 재능 부족들에 대해 거친 견해를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말로 퍼붙는 것이 너무 쉽게 엔터테인먼트 자체의 일부가 되버린다.
어떤이에게는 매일 통근하는 시간이 인자함의 호된 시련이 장이기도 하다. 나는 끼어들이 하는 운전자 그리고 나를 바짝 쫗아 운전하는 운전자를 포함한 모든 운전자들에게 관대한 경향이 있는가? 우리 몇몇은 너무 자주 잔혹한 빈정됨을 꼬아 말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가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것을 더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뜻하지 않는 말을 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인자함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주변 사람들의 삶에 어마어마한 결실을 이뤄낸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잠언 21:21)
우리가 성령님께 우리안에 인자한 입술을 통해 흘러 넘치는 인자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할때 우리는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우리 자신을 내 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