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추구할 의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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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7일 (월) 19:23 판
By John Piper
About Christian Hedonism
Part of the series Taste & See
Translation by Desiring God
기독교 희락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만약 기독교 희락주의가 오래된 전통적인 신앙의 길이라면, 왜 그렇게 이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일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 희락주의에서 그 의미에 있어서 대단히 심각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기쁨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서 파생되는 파생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순종 자체를 구성하는 순종의 일부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쁨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파생물 혹은 부산물로는 기꺼이 인정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본질적인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쁨을 추구할 의무를 강조하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불편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합니다. "기쁨을 추구하지 말고 순종을 추구하라." 그러나 이에 대해 기독교 희락주의는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사과를 먹지 말고, 과일을 먹으시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기쁨은 순종의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것이 순종이라면, 기쁨은 순종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파생물 혹은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순종 그 자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기쁨을 추구하라고 말씀합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시편 32:11).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시편 6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편 37:4).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20).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
성경은 기쁨을 의무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C.S. 루이스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할 수 있는 한 가장 행복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네." 네, 이런 주장은 위험하고 논란을 불러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는 엄밀한 사실입니다. 질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을 추구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떤 현명한 그리스도인은 의무와 기쁨 사이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묘사했습니다.
한 남편이 아내에게 잠들기 전에 굿나잇 키스를 해야만 하냐고 물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해야만 해요. 의무감만으로 해서는 안되요." 아내의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나를 향한 자발적인 애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키스는 모든 도덕적 가치를 손상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만약 이 키스에서 기쁨이 없다면, 키스의 의무는 다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키스는 아내의 인격을 기뻐한다는 표현이어야만 하며, 이러한 기쁨이 없다면 의무는 다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남편의 기쁨은 의무의 일부분을 구성합니다. 의무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이라면 –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며 하는 것이 실제로 선한 행동의 일부라면 – 희락의 추구는 다름 아닌 미덕의 추구를 구성하는 일부분이 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것이 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이 갖는 깊은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는 대단히 심각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희락주의라는 말은 단지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한 속임수 단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군요. 진정한 것이 담겨 있군요. 자, 그렇다면 이는 너무나 심각하고 충격적인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너무나 충격적인 무언가를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락의 추구는 선한 사람이 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제가 말하는 바를 바로 파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건 단지 저의 말이 아닙니다. 성경도 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명확하게 정리해 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대해 항상 얘기합니다. 심지어 선을 행하면서 기뻐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궁극적 선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가진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퍼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모든 기쁨들은 우리 영혼의 깊은 갈망에 비하여 질적으로 부족하고 양적으로도 우리의 영원한 필요에 비해 너무 부족합니다. 하나님 안에만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