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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과: 교회 권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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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9-26T20:48: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Class IX: Church Discipline}}이 과정 전반에 걸쳐 흐르는 중심 테마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큰 목적과 우리 자신의 죄 사이의 긴장입니다. 하...&lt;/p&gt;
&lt;hr /&gt;
&lt;div&gt;{{info|Class IX: Church Discipline}}이 과정 전반에 걸쳐 흐르는 중심 테마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큰 목적과 우리 자신의 죄 사이의 긴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이 땅에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시지만, 우리는 죄 많고 이기적인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토론한 많은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랑과 연합 속에 함께 살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교회 구성원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기를 거절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교회의 연합은 큰 위험에 직면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순결을 위협하는 죄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 의에서 나온 분노로 가혹하게 행동하여, 우리가 부름받은 연합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경건한 반응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회개하지 않은 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lt;br /&gt;
&lt;br /&gt;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한 지혜를 주고 있는데, 이는 &amp;quot;교회 권징&amp;quot;이라는 주제로서, 회개하지 않은 죄에 대한 성경적인 응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권징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명하여진 권징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교회 권징의 핵심''''' &lt;br /&gt;
&lt;br /&gt;
교회의 권징을 위한 모델은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행하시는 권징입니다. 히브리서는 &amp;quot;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권징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amp;quot;(히 12:6)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권징의 목적은 의로움입니다. &amp;quot;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amp;quot;(히 12:11) &lt;br /&gt;
&lt;br /&gt;
권징의 중심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서로를 돌보는 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사랑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심각하고 회개하지 않은 죄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lt;br /&gt;
&lt;br /&gt;
'''I. 두 종류의 권징''' &lt;br /&gt;
&lt;br /&gt;
교회 안에서 두 가지 종류의 권징이 있습니다. 형성적(formative) 권징과 견책적(corrective) 권징입니다. &lt;br /&gt;
&lt;br /&gt;
'''''형성적 권징''''' &lt;br /&gt;
&lt;br /&gt;
&amp;quot;형성적 권징&amp;quot;이 훨씬 더 자주 시행됩니다. 사실 형성적 권징은 모든 교인에게 항상 행해집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지도와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형성(formaiton)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성숙하게 양육해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설교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게 될 때, 또는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격려할 때, 이것이 형성적인 권징입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4:11~12, 히브리서 10:24~25, 골로새서 3:16 참조) 이러한 권징은 하나님께서 견책적 권징이 필요한 죄를 막기 위해 사용하시므로 중요합니다. 교회가 형성적 훈련에 의해 더욱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수록, 견책적 권징이 덜 필요합니다. &lt;br /&gt;
&lt;br /&gt;
'''''견책적 권징''''' &lt;br /&gt;
&lt;br /&gt;
&amp;quot;견책적 권징&amp;quot;은 특정 교인의 죄에 대한 구체적인 훈계 또는 견책입니다. &lt;br /&gt;
&lt;br /&gt;
때로는 견책적 권징은 비공식적입니다. 한 교인이 다른 교인에게 &amp;quot;이봐, 톰, 그건 잘못된 거 같아.&amp;quot;라고 하는 식입니다. 때로는 공식적입니다. 전체 성도들이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메리, 우리는 당신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므로 당신을 비기독교인처럼 대해야 합니다 &amp;quot; &lt;br /&gt;
&lt;br /&gt;
&amp;quot;신중한 교회(Deliberate Church)&amp;quot;에서 마크 디버(Mark Dever)와 폴 알렉산더(Paul Alexander)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유형의 권징 사이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amp;quot;우리가 육체의 훈련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에서 권징을 비교한다면 형성적 권징은 제대로 먹고 운동을 하는 것이라면, 견책적 권징은 마치 수술과 같은 것입니다.&amp;quot; &lt;br /&gt;
&lt;br /&gt;
'''II. 견책적 권징의 이점''' &lt;br /&gt;
&lt;br /&gt;
오늘 우리는 이 두 종류의 권징 중 견책적 권징에 집중할 것입니다. 견책적 권징의 이점은 무엇입니까? 몇 가지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첫째, 견책적 권징은 권징받는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권징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사실 권징은 죄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회개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lt;br /&gt;
*둘째, 견책적 권징은 다른 크리스천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교회가 죄에 대항하여 말하고 행동할 때 전체 회중은 죄의 심각한 성격과 그 결과를 알게 됩니다. &lt;br /&gt;
*셋째, 견책적 권징은 교회 전체에 도움이 됩니다. 교회 권징은 도덕적 붕괴로부터 개교회를 보호함으로써 순결을 유지해 줍니다. 또한 교회에 다툼과 갈등을 가져오는 죄를 해결합니다. &lt;br /&gt;
*넷째, 견책적 권징은 교회의 공동체적 증거(corporate witness)에 유익하며, 따라서 비 기독교인들에게도 유익합니다 .견책적 권징은 전도 시 공동체적 증거를 강력하게 보호합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신자들의 온전한 공동체가 있을 때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사람들의 공동체, 즉 비 기독인들에게 사람들이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lt;br /&gt;
*마지막으로,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유익은 견책적 권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높아지시게 하려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눈에서 볼 때 빛나시기를 원합니다. 그중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그분의 위대한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될 죄를 교회에서 다루어야 할 책임입니다.&lt;br /&gt;
&lt;br /&gt;
교회 권징이 필요할 때, 어떻게 실행해야 합니까? 또한 어떻게 그리스도를 높이면서 동시에 연합을 증진하는 방법으로 권징을 할 수 있습니까? 성서는 여러 상황에서 권징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지침을 줍니다. &lt;br /&gt;
&lt;br /&gt;
'''III.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lt;br /&gt;
&lt;br /&gt;
첫째, 누군가가 당신에게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거리낌 없이 상대에게 말한 다음, 더 이상 상대와 말하지 않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원한을 품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방식은 성경에서 주어진 옵션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서 이 질문에 답하고 계십니다. &lt;br /&gt;
&lt;br /&gt;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lt;br /&gt;
&lt;br /&gt;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최소한의 세 단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첫째, 가서 죄를 범한 형제와 이야기하십시오. 둘째, 형제가 듣지 않을 경우, 한 두 명의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다시 이야기하십시오. 셋째, 그가 여전히 듣기를 거부한다면 교회에 말하십시오. 그가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교회는 결국 그를 내쫓을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1단계: 가서 형제에게 잘못을 보여주십시오.''' &lt;br /&gt;
&lt;br /&gt;
첫 단계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의 경우, 죄를 범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분쟁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형제를 얻기 위해 우리가 희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상대와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준비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마음 준비하기 &lt;br /&gt;
&lt;br /&gt;
켄 산드(Ken Sande)는 자신의 저서 '피스메이커(The Peacemaker')에 이렇게 하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lt;br /&gt;
&lt;br /&gt;
*먼저 대면할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적으로 성장시키시도록, 그가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도록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이야기를 준비할 때 그 사람을 향한 당신의 마음이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lt;br /&gt;
*둘째, 죄를 범한 사람에게 가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은 매우 기만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형제나 자매에게 갈 성경적 근거가 있는지를 신중하게 기도하고 생각하십시오.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분쟁에서 당신이 이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잘못이 있는지 생각하십시오. 마태복음 7장 5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amp;quot;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amp;quot; &lt;br /&gt;
*셋째,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보십시오. 당신의 동기가 적절한지, 그리고 분노, 복수, 교만 또는 다른 죄가 되는 태도에서 죄를 범한 사람에게 가려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십시오(로마서 12:19). 대신, 당신의 목표가 그 형제와 자신 모두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화해인지 확인하십시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불편함을 없애고 싶은 것입니까, 아니면 형제가 죄에서 벗어나도록 섬기고 돕기 위한 것입니까? &lt;br /&gt;
*넷째, 단순히 자기 기분이 좋아지려고, 또는 공감하고 들어줄 사람을 만들려고 형제의 죄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죄를 범한 형제에게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거나 실제로 죄를 저지른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분출하려고 대화를 사용하는 것은 수군거림입니다. 그것은 화합을 약화시키고 마태복음 18장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구할 때조차도, 죄를 범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lt;br /&gt;
*다섯째, 가해자와 대면할 때 온유와 겸손, 사랑의 정신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amp;quot;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amp;quot; (잠 15:1).&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8장에 설명된 과정의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두 가지만 더 짚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모든 허물을 다루어야 합니까?'' &lt;br /&gt;
&lt;br /&gt;
먼저, 자신에게 이렇게 자문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amp;quot;모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형제에게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아닙니다. 잠언은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인내와 참을성을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잠 19:11). 베드로는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알려줍니다(벧전 4:8). &lt;br /&gt;
&lt;br /&gt;
허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불화의 상태가 생긴 경우 또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위험이 될 때만 형제 또는 자매에게 가야 합니다. 날마다 그 허물이 생각납니까? 그 사람을 용서하기가 어렵습니까? 그 죄가 얼마나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 삶이 그리스도를 주변 세계에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릅니까? 그 죄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는 사인이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amp;quot;예&amp;quot;라면 형제나 자매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화해는 당신이 죄를 지은 것이든 아니든 간에 당신의 책임입니다.'' &lt;br /&gt;
&lt;br /&gt;
둘째로, 마태복음 18장은 잘못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죄를 지은 사람과 화해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마태복음 5장 23~24절은 죄지은 사람이 화해를 구하도록 요구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그리스도인 사이의 좋은 관계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를 범한 사람에게 예배의 행위를 중단하고라도 화해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구절이 함께 제시하는 그림은 얼마나 놀라운가요! 두 명의 기독교 형제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둘 다 화해를 시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화해를 위해 서로 달려 가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2단계: 한두 명을 증참케 하라''''' &lt;br /&gt;
&lt;br /&gt;
죄를 범한 사람이 듣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두 명의 다른 사람을 데려가서 그와 이야기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 죄를 범한 사람은 자신이 죄를 범한 대상보다 제삼자의 말을 들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둘째, 권징 과정이 다음 단계로 진행될 경우 추가적인 인원이 회중의 증인 역할을 합니다. &lt;br /&gt;
&lt;br /&gt;
이 단계에서 자신이 잘못을 당한 사람인 경우, 두 가지를 명심하십시오. &lt;br /&gt;
&lt;br /&gt;
*첫째, 죄가 얼마나 객관적인지를 고려하십시오. 결국 의견이나 관점의 문제인 것으로 형제와 마주하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그 형제가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너무 교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마주하고 있습니까? 그것들은 정당한 우려일 수도 있지만, 교회 앞에서 입증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우려에 대해 당신이 그 사람과 이야기했고 그들과 당신이 의견이 맞지 않았다면, 그 문제를 내려놓고 성령의 깨닫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역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교회 권징의 과정은 구체적이고 쉽게 입증되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lt;br /&gt;
*둘째, 당신이 데려가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고, 신중하고, 공평하며, 훌륭한 판단력을 가졌는지 확인하십시오. 죄를 범한 사람은 그런 이들의 말을 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lt;br /&gt;
*셋째, 죄를 범한 사람에게 하기 전에 당신이 하려고 하는 바를 알리십시오. 교회 권징에 대한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는 바로 그 인식 때문에 그 사람이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바꾸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마지막으로, 증인이 자신의 편을 들도록 로비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수군거림 또는 중상모략일 수 있습니다.&lt;br /&gt;
&lt;br /&gt;
'''3단계: 교회에 알리기''' &lt;br /&gt;
&lt;br /&gt;
죄를 범한 사람이 여전히 듣기를 거부한다면, 이 문제는 교회로 가져가고, 그가 회개를 거부하면 교인 자격이 취소됩니다. &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8장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최대치의 표준이 아니라 최소치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지 덜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전체 교회에 문제를 맡기기 전에 장로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형적으로 취하는 적절한 단계입니다. &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8장의 패턴을 아셨습니까? 단계마다 더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기 위해 참여합니다. 최종 단계에 이르러 그 사람이 교회에서 나가 세상에 던져진다고 하더라도, 말하자면, 세상조차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회개케 하기 위해 섭리적으로 사용됩니다. &lt;br /&gt;
&lt;br /&gt;
'''IV. 만약 당신이 한 교인이 다른 교인에게 죄를 짓는 것을 보게 된다면?''' &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8장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죄를 짓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나 형제나 자매가 죄를 지은 것을 알았지만, 그 죄가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다른 기독교인을 상대로 죄를 지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죄가 전혀 어떤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과 그 죄에 대해 이야기 할 성경적 의무가 있습니까? &lt;br /&gt;
&lt;br /&gt;
대답은 '예'이지만, 자격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lt;br /&gt;
&lt;br /&gt;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amp;quot;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amp;quot; 그리고 누가복음 17장 3절에는 &amp;quot;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amp;quot;고 말합니다. &lt;br /&gt;
&lt;br /&gt;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할 기회를 찾는 일만 만드는 자(busybodies)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1에 '일만 만드는 자들'이 되는 것에 대한 경고와 베드로전서 4:15에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meddlers)'에 대한 경고 참조)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격한 모든 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비생산적입니다. 우리가 형제나 자매에게 죄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적절한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lt;br /&gt;
&lt;br /&gt;
여기에는 어떤 엄격하고 확고한 규칙이 없으며, 하나님이 각 상황에서 주시는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첫째, 이 죄가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것입니까? 외인들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죄가 하나님에 관한 거짓을 말해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외인들의 인식에 영향을 줍니까? &lt;br /&gt;
*둘째, 다른 사람을 해치는 죄입니까?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을 받게 하거나 나쁜 예를 만들고 있습니까? &lt;br /&gt;
*셋째, 죄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불화와 분열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lt;br /&gt;
*또는 마지막으로 죄가 심각하게 죄를 지은 사람을 해치고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해를 끼치고 있습니까?&lt;br /&gt;
&lt;br /&gt;
그러한 질문에 &amp;quot;예&amp;quot;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 죄에 대해 죄를 범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V. 누군가가 교회 전체에 대해 공개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lt;br /&gt;
&lt;br /&gt;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적인 죄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단지 극소수의 사람들만 죄에 대해 알고 있거나 죄의 영향을 받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교인의 죄가 공개적이고 중대한 경우, 교회 회중 내에서 또는 심지어 공동체 밖에서조차 공개적으로 알게 된 문제일 경우 어떻게 됩니까? &lt;br /&gt;
&lt;br /&gt;
우리는 고린도전서 5장 1~11절에서 바울이 아버지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심각한 범죄에 대해 해당하는 사람을 추방하라고 회중에게 권고하는 상황을 봅니다. &lt;br /&gt;
&lt;br /&gt;
그런 공개적인 죄로 인해 바울은 마태복음 18장의 처음 두 단계를 따르도록 교회에 권고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죄를 범한 사람을 추방하라고 권고합니다. (고린도전서 5:4~5, 11, 23, 데살로니가후서 3:6, 로마서 16:17 참조) 사실 교회가 이러한 상황에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교회는 직무 태만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교회가 이 사람을 파문시키기를 바랐습니다. &lt;br /&gt;
&lt;br /&gt;
*첫째, 그것은 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를 교회에서 추방하는 것은 그의 신앙 고백이 거룩하지 못한 삶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것을 그에게 분명하게 해줍니다. &lt;br /&gt;
*둘째, 교회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심각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죄에 대해 대중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되며, 그리스도께서 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명성이 보존될 수 있도록 행동할 것을 교회에 권고합니다.&lt;br /&gt;
&lt;br /&gt;
'''VI. 교회 지도자가 죄를 짓는다면?'''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의 죄에 대해 성경이 말한 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위한 지도 구절은 디모데전서 5:19~20절입니다. &lt;br /&gt;
&lt;br /&gt;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lt;br /&gt;
&lt;br /&gt;
여기서 바울의 목표는 거짓 공격과 비난으로부터 장로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장로를 상대로 어떤 권징 조치가 취해지기 전에는 그 죄에 대한 두세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구절이 지혜롭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근거 없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자주 연관되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구절을 염두에 두고 두 가지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이 장로를 비난하는 소문이 듣게 된다면? 그리고 당신이 개인적으로 죄 가운데 있는 장로를 만나게 된다면? &lt;br /&gt;
&lt;br /&gt;
''당신이 장로의 죄에 대한 소문을 들을 경우'' &lt;br /&gt;
&lt;br /&gt;
어떤 사람이 장로에게 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은 간단한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수군거림 및 중상모략의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소문을 얘기한 사람에게 그 장로와 이야기하고, 당신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적극적으로 그 장로에 대한 비방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하고, 대신 상황을 성경적인 방식으로 다루십시오. &lt;br /&gt;
&lt;br /&gt;
''당신이 죄를 짓는 장로를 목격하는 경우'' &lt;br /&gt;
&lt;br /&gt;
장로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짓거나 아니면 장로가 죄를 짓는 것을 목격한다면 어떨까요? 그다음은 어떻게 하나요? 다음은 몇 가지 지침입니다. &lt;br /&gt;
&lt;br /&gt;
먼저 그분에게 이야기하십시오. 물론, 실제 상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겸손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분이 교회에서 책망할 것이 없다고 인정받아서 장로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장로에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십시오. &lt;br /&gt;
&lt;br /&gt;
둘째, 혼자 상황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다른 개인(또 더 좋은 방법은 다른 장로)에게 당신의 우려에 대해 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이 문제를 조용하고 신중하게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디모데후서 5:19의 의도를 위반하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본문의 특정 단어가 여기서 유익합니다. &amp;quot;장로에 대한 송사를 받지 않는다&amp;quot;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거나 당신의 말은 듣지 못하도록 금지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송사를 받는다(그리스어 paradechomai)'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을 듣거나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amp;quot;사실로 받아들이는 것&amp;quot;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amp;quot;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 것이요.&amp;quot;라고 이 구절을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장로가 당신에게 죄를 지었고 그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른 교인이나 장로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거나 또는 그들이 도움 주는 것이 금지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이 당신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조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고발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판단되면, 그는 디모데후서 5:19에서 요구되는 '증인' 중 하나가 됩니다. &lt;br /&gt;
&lt;br /&gt;
셋째, 교회 지도자가 당신과 만났을 때 회개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문제를 계속할지를 신중히 결정하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해당 사안이 객관적인 문제인지 또는 의견이나 관점의 문제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후자의 경우 사안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문제, 예를 들어 횡령이나 간통 같은 경우,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딤전 5:19을 수행하는 것이 당신의 책임입니다. 죄를 목격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당신과 함께 장로와 대면하도록 요청하십시오. 필요한 경우 다른 장로들에게 이 일을 말하십시오. 디모데후서 5장 19절에 언급된 증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넷째, 권징 절차가 시작되면, 잘못을 당한 사람은 그와 함께 공동 기소자가 될 한 명 이상의 개인을 데려 와야 합니다.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문제를 신중하게 조사했다면 디모데전서 5:19의 증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장로가 범한 죄는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에 죄를 지은 장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하도록 명령합니다. 즉, 죄악의 성격에 관한 어떤 진술이 교회에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신뢰를 깨뜨린 지도자는 적절한 공개적 대응이 있을 때만 복귀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리더십은 더 큰 짐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로의 죄가 교회에 더 큰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VII. 결론''' &lt;br /&gt;
&lt;br /&gt;
교회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순결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성을 지키도록 힘써야 하며,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 권징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의 죄로 인해 교회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어떤 권징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이런 종류의 열정의 살아있는 예를 19세기 버지니아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교회의 원로이며 탁월한 교인이 알코올 중독이 되었습니다. . . . 그는 자신을 교회에 신고하고 자신의 죄를 후회하며 홍수 같은 눈물로 회개를 표시했지만, 교회가 그 의무를 이행하여 자신의 비행으로 인해 교회가 받을 비난으로부터 보호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 남자의 깊은 고통은 모든 이의 가슴 속에서 동정을 일으켰고, 교회 전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인들의 마음이 모여서 그 죄를 사하고 해당 사건을 마무리하자는 제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 의견에 즉시 동조했습니다. 단 하나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바로 죄를 지은 사람 자신의 목소리였습니다. 드디어 지식과 인정받은 경건함을 갖춘 목사님이 일어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매우 걱정된 눈으로 목사님을 응시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형제의 불행에 대한 자신의 유감을 표했으며,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 . 그러나 목사님은 죄를 지은 형제가 교회의 명예를 위해서 교회는 가장 단호한 방식으로 그가 지은 죄의 행동에 대해 허가하지 않음을 표현해야 하고 죄를 지은 사람을 출교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 . 교회는. 마지 못해서 목사와 죄를 지은 사람의 일치한 견해에 순종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출교되었지만, 1~ 2개월 후 복귀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아는 한 그 이후로는 구주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Joseph S. Baker, &amp;quot;교회 권징&amp;quot;, Polity , Mark Dever 편, 266쪽)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우리 모두는 개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이런 열정을 갖기를 바랍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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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다림 끝에 주님이 주신 귀한 친구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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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The Friends You Need Are Worth the Wait}}지금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도시, 새로운 교회로 보내시려는 주님의 계획을 감지 하면서 이 일은 시작 ...&lt;/p&gt;
&lt;hr /&gt;
&lt;div&gt;{{info|The Friends You Need Are Worth the Wait}}지금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도시, 새로운 교회로 보내시려는 주님의 계획을 감지 하면서 이 일은 시작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흥분의 매력이 잘 모르는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우게 했고 우리는 우리 가정에 주님이 준비하신 앞날을 들뜬 맘으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간혹 확신이 없는것 같을때는 마가복음 10:29-30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29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을 생각나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친구들은?''' &lt;br /&gt;
&lt;br /&gt;
어느날, 집을 팔고 짐을 싸고, 새 집을 구하고 하며 들뜬 가운데 나의 친구들은? 이삿짐 상자에 넣어 가져갈수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이때 다른 생각이 스쳐간것은 사실입니다. 이 자매 들은 나의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했고, 공원서 몇시간동안 함께앉아 아이들이 뛰노는것을 즐겨 보기도 했고, 커피를 마시며 스크래블 게임도 한 친구들 입니다. 나의 친구 자매들! 마가복음10장의 말씀은 친구들에게도 해당이 될까요? 무엇보다도 나역시 자매의 하나로 좋은 자매들과의 교제와 친구 관계를 늘 원합니다. 하나님은 자매들과 좋은 우정을 나누고자 하는 나의 맘을 아실까요? &lt;br /&gt;
&lt;br /&gt;
지금 나는 진정으로 그렇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또한 자매들간의 교제가 얼마나 내게 필요한지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들을 바로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사를 하고 오랫동안 외로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출장이 잦았고 새 교회의 자매들은 모두 바빠 보였습니다. 친한 친구들을 다시 만들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단 한명이라도 가끔 같이 커피를 마실수 있는 자매를 주십사 기도한 기억이 납니다. 그 응답은 “아직 아니다” 였습니다. &lt;br /&gt;
&lt;br /&gt;
기다림은 참 어려웠습니다-- 허나 가치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전화 온 날''' &lt;br /&gt;
&lt;br /&gt;
아마 평생을 기다린듯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사전 동네의 한친구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나를 찿았습니다. 친구가 같이 같은 장소에만 있을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을 상기시켜준 생명줄 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도로 소통하며, 같이 기뻐하기도하고 슬퍼 하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스크래블 게임도 합니다. 내게 많은 도움이 됐지만 앞날을 생각할때 기도의 확실한 답은 아니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생일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는데 함께 하실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생일때 만나 서로를 축하하는 모임입니다 혹 오실수 있는지 전화했습니다.” &lt;br /&gt;
&lt;br /&gt;
함께 할수 있을까요? 나는 전화를 하며 눈물이 나의 뺨위로 흐르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 통화로 지금 까지 한달에 두번 커피모임을 갖는 자매들의 모임이 될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달콤한 준비! &lt;br /&gt;
&lt;br /&gt;
이 모든것을 겪으며 내가 친구와 교제에 대해 무었을 배웠을 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나에게 힘을 주셨을 까요? 내가 좋은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얻은 누구나 적용할수 있는 다섯가지의 평범한 지혜를 나누겠습니다. &lt;br /&gt;
&lt;br /&gt;
'''1. 모험을 시도 하십시요.''' &lt;br /&gt;
&lt;br /&gt;
내가 커피숍 앞에서 들어 가야할까 말까를 생각한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나올때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람을 가장 잘 맞는 시간에 우리의 삶속에 보내주십니다. 새로운 깊이를 발견할수 있는 인생의 친구일수도 있고 그냥 한번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든 하나님은 삶에 자매친구들로 인히여 풍요하게도 하시고 도전도 주시고 새힘도 주십니다. 시도하지 않고는 좋은 교제를 놓칠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2. 나이를 상관치 마십시요.''' &lt;br /&gt;
&lt;br /&gt;
여러 세대에 다른 나이 친구들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나는 나이가 많으나 어리나 이런 여러 자매친구들로 인해 늘 감사합니다. 많은 경험이 있는 나이가 지극한 자매들뿐 아니라 젊은 자매들로 부터도 삶을 깊이를 나눌 필요가 있다 생각하기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3. 틀에 벗어난 생각을 하십시요.''' &lt;br /&gt;
&lt;br /&gt;
우리모두는 어디에서만 새로운 친구를 만날수 있다는 통상적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음과 눈을 크게 열고 보기를 권합니다.. 도서관, 학교, 교회, 가정 학교 그룹 야채 가게나 동네 공원은 어떠신가요?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나의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하신 몇가지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도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하시기위해 어떤 장소를 준비하셨을 까요? &lt;br /&gt;
&lt;br /&gt;
'''4. 먼저 친구가 되십시요.''' &lt;br /&gt;
&lt;br /&gt;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친구들이 있는것은 참 힘들어요” 라고 했습니다. 맞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 가치있는 것입니다. 나이든 한 상담자는 친구를 찾으려면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종종 우리는 다른사람이 친구처럼 해주기 전에 먼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오는 기쁨은 값으로 따질수 없이 큽니다. &lt;br /&gt;
&lt;br /&gt;
'''5.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요.'''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친구관계를 위해서도 좋고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는 것이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서로 교제하며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좋은 자매들과 교제하며 친구되는 우리의 바람을 만족시키도록 준비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나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방법과는 다르더라도 말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원하는 그 친구도 좋은 친구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수 있습니다. 실망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맞는 사람, 친구들을 완벽한 시간에 주시기 위하여 나의 삶속에서 일하고계심을 믿으십시요.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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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녀를 위한 가장 두려운 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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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8-02T03:02: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lt;/p&gt;
&lt;hr /&gt;
&lt;div&gt;{{info|The Most Frightening Prayer I Could Pray for My Children}}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꼭 해야할 기도 하나는 아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어려운 기도 일것 입니다. &lt;br /&gt;
&lt;br /&gt;
늘 우리는 자녀들의 좋은 모습을 위해, 건강, 학교 성적과 친구 관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또 자녀들의 앞날과 진로 직장을 위해 기도 합니다. 나는 또한 나의 아들들이 좋은 믿음의 자매와 만나 결혼하기를 기도합니다. 솔직히 우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할때 순조롭고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자녀들이 평안하고 쉽고 고통과 고난이 없는 삶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lt;br /&gt;
&lt;br /&gt;
'''기도가 어려워질 때''' &lt;br /&gt;
&lt;br /&gt;
헌데 나의삶과 믿음의 항로를 돌아보면 모든 고난과 시험의 도전속에서 나와 함께 하신 주님을 볼수 있습니다. 내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마음의 고통이 나로 하여금 주님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또 내가 고민하고 싸워야했던 죄와 우상들을 나의 손에서 은혜로 다 벗겨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의 험산준령들과 고통스러웠던 환경들을 통하여 내가 주께 더 가까이 갈수 있게 하셨고 나를 새로이 다듬으시며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들은 나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들이지만 이런일들이 나의 자녀들에게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들어내어주셔서 구세주 주님이 필요함을 알게되고 자신들의 타락한 모습에서 깨어나와 복음에만 온전히 매어 사는것을 배우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기도는 참어렵습니다 . &lt;br /&gt;
&lt;br /&gt;
'''주께로 더 가까이 가는 길''' &lt;br /&gt;
&lt;br /&gt;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자녀들도 우리가 겪었던것 같은 험산길을 파해쳐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죄에서 돌아서 회계하고 빈손으로 주님께 나아오는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되고 그들만의 간증을 만들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엄마로서 정말 두려운 것은 만약 그들이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 무었인지를 깊이 깨닳지 못한다면 나의 자녀들이 순탄하지도, 안정되지도 안전 하지도 않은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나의 자녀들은 고난도 견뎌봐야하고 어둠의 계곡도 걸어봐야하고 심한 슬픔도 겪어봐야 할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로 주께 가까이 오게하는 길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나는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을 자판기나 화제 보험처럼 생각하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길 원합니다. 그 열정은 살아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위대하심 앞에 머리 숙이며 복음에 기쁘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도 말씀을 꼭 붙잡는 사람들이길 원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려주길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가장 중요한 것''' &lt;br /&gt;
&lt;br /&gt;
이것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십자가 희생의 은혜로만 죄를 용서 받을수 있음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2)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깊은 죄성에 대해 바로 알아야하고 주님이 없이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만이 소망이시고 의로운 구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그 용서가 얼마나 필요함을 자녀들이 깨닫게 될때 내가 가장 바라던 주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이 자라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것은 정말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없습니다. 아버지, 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더 알게 하옵소서.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E%90%EB%85%80%EB%A5%BC_%EC%9C%84%ED%95%9C_%EA%B0%80%EC%9E%A5_%EB%91%90%EB%A0%A4%EC%9A%B4_%EA%B8%B0%EB%8F%84</id>
		<title>자녀를 위한 가장 두려운 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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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The Most Frightening Prayer I Could Pray for My Children}}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꼭 해야할 기도 하나는 아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어려운 기도 ...&lt;/p&gt;
&lt;hr /&gt;
&lt;div&gt;{{info|The Most Frightening Prayer I Could Pray for My Children}}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꼭 해야할 기도 하나는 아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어려운 기도 일것 입니다. &lt;br /&gt;
&lt;br /&gt;
늘 우리는 자녀들의 좋은 모습을 위해, 건강, 학교 성적과 친구 관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또 자녀들의 앞날과 진로 직장을 위해 기도 합니다. 나는 또한 나의 아들들이 좋은 믿음의 자매와 만나 결혼하기를 기도합니다. 솔직히 우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할때 순조롭고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자녀들이 평안하고 쉽고 고통과 고난이 없는 삶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lt;br /&gt;
&lt;br /&gt;
'''기도가 어려워질 때''' &lt;br /&gt;
&lt;br /&gt;
헌데 나의삶과 믿음의 항로를 돌아보면 모든 고난과 시험의 도전속에서 나와 함께 하신 주님을 볼수 있습니다. 내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마음의 고통이 나로 하여금 주님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또 내가 고민하고 싸워야했던 죄와 우상들을 나의 손에서 은혜로 다 벗겨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의 험산준령들과 고통스러웠던 환경들을 통하여 내가 주께 더 가까이 갈수 있게 하셨고 나를 새로이 다듬으시며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들은 나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들이지만 이런일들이 나의 자녀들에게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들어내어주셔서 구세주 주님이 필요함을 알게되고 자신들의 타락한 모습에서 깨어나와 복음에만 온전히 매어 사는것을 배우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기도는 참어렵습니다 . &lt;br /&gt;
&lt;br /&gt;
'''주께로 더 가까이 가는 길''' &lt;br /&gt;
&lt;br /&gt;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자녀들도 우리가 겪었던것 같은 험산길을 파해쳐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죄에서 돌아서 회계하고 빈손으로 주님께 나아오는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되고 그들만의 간증을 만들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엄마로서 정말 두려운 것은 만약 그들이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 무었인지를 깊이 깨닳지 못한다면 나의 자녀들이 순탄하지도, 안정되지도 안전 하지도 않은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나의 자녀들은 고난도 견뎌봐야하고 어둠의 계곡도 걸어봐야하고 심한 슬픔도 겪어봐야 할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로 주께 가까이 오게하는 길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나는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을 자판기나 화제 보험처럼 생각하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길 원합니다. 그 열정은 살아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위대하심 앞에 머리 숙이며 복음에 기쁘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도 말씀을 꼭 붙잡는 사람들이길 원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려주길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가장 중요한 것''' &lt;br /&gt;
&lt;br /&gt;
이것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십자가 희생의 은혜로만 죄를 용서 받을수 있음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2)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깊은 죄성에 대해 바로 알아야하고 주님이 없이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만이 소망이시고 의로운 구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그 용서가 얼마나 필요함을 자녀들이 깨닫게 될때 내가 가장 바라던 주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이 자라날 것입니다. 그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것은 정말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없습니다. 아버지, 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더 알게 하옵소서.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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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상에 의해 교회가 무기력해진것은 아닌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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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6-27T00:39: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Has the Church Been Disarmed by the World?}}오늘 아침 사무엘상 13장 19-23 읽으며 세상에의해 교회가 무기력해진것은 아닌가 교회가 세상에 너무 ...&lt;/p&gt;
&lt;hr /&gt;
&lt;div&gt;{{info|Has the Church Been Disarmed by the World?}}오늘 아침 사무엘상 13장 19-23 읽으며 세상에의해 교회가 무기력해진것은 아닌가 교회가 세상에 너무 의존되어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9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23 블레셋 사람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말씀에서 보다시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철공을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잃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연장의 날을 갈려하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의존하는것에 익숙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평화의 시기에 이것은 그리 문제되지가 않는듯 해보입니다. 모든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전쟁시에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기의 날을 세우려면 블레셋을 의지하게 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수 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세상의 여러면을 의존하고 사는 현대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어떤 부분은 세상에 의존하는것이 당여한 일입니다-- 하수도 상수도나 전기등은 세상과 공유 하지 않으면 안되는 서비스 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와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우리의 마음과 영적 날을 세우는데 많이 세상에 의존적이 된것은 아닐까요? 사실 그것도 우리 삶을 평화시라 볼때, 아무일이 없을 때에만 날을 세울수 있게 되어있는것이라 볼수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허나 우리의 삶을 인간의 마음과 혼의 영적 전쟁시기라 볼때 사실 날은 무뎌있고 무기력해진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교육, 취미, 연예, 등을 대부분 세상에 의존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뉴스나 세상사에 관한 해석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기가 남아 있는지 의심됩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에 대해서도 제게 의문을 자아냅니다. &amp;amp;nbsp;수많은 다방면의 정보와 견해, 예능과 광고들이 우리의 생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철공을 다 가져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의지하지 않고는 무기의 날을 세울수 없게금 하였을때 우리는 어떻게 우리자신를 잘 무장하여 싸음을 이길수 있을 까요?&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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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님의 소리가 나의 음성을 통하여 전하여지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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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6-27T00:19: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lt;/p&gt;
&lt;hr /&gt;
&lt;div&gt;{{info|Let Christ’s Voice Be Heard in Yours}}성경을 보면 주님의 지상 대 명령을 완성 하고자 한 헌신의 맘에 자신감과 확신을 더하기 위한 복음의 깊은 뜻이 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양 우리안의 그들은 나를 따르고 믿는다고 말씀 하신 말씀을 기억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나를 믿지 않는것은 나의 양 무리가 아니기 떄문이다” 라는 말씀도 믿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말씀하시기를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떼들도 있는데 내가 꼭---”, &lt;br /&gt;
&lt;br /&gt;
이말은 천지 만물의 왕으로서 정말 큰 감격적 말입니다--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여기서 요 10:16의 영어 원문을 보면 신학적으로 중요한 단어 두가지가 있습니다. Must 와 Will 인데 “내가 꼭 데려오고 그들은 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나는 결코 포기 하지 않는다” 라는 결코 라는 의지의 의미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제데로 배운 사람이라 생각듭니다. 그렇지요? 고린도에서 그는 좀 두렵고 위험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사실 요즘도 그런 상황이 선교를 바로 할수 있는 경우이긴 합니다. 꿈에 주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고 계속 하라고 하셨습니다. 멈추지 말아라 .계속 복음을 선포하라고.. 왜그러셨을 까요? 사도행전 18장 10절 에서 주님은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들은 나의 백성이다, 내가 데려왔고, 내가 선택하였다. 가서 전해라! 내 양이 나의 소리를 듣고 나를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가서 전하라. 주님이 우리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입을 열어 나의 이름과 복음을 소리내어 보아라. 나의 소리가 너의 음성을 통하여 들리게 하여라..나의 양들이 음성을 듣고 따를 것이다. &lt;br /&gt;
&lt;br /&gt;
너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땅의 가장 험한곳까지 전하라. 사람들이 개종하는 것이 너의 목표가 아니다. 너를 통하여 나의 음성을 듣게 하라 . 네가 감당 할 수 있으리라..&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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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님의 소리가 나의 음성을 통하여 전하여지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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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6-23T01:36:3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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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info|Let Christ’s Voice Be Heard in Yours}}성경을 보면 주님의 지상 대 명령을 완성 하고자 한 헌신의 맘에 자신감과 확신을 더하기 위한 복음의 깊이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양 우리안의 그들은 나를 따르고 믿는다고 말씀 하신 부분을 기억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나를 믿지 않는것은 나의 양 무리가 아니기 떄문이다” 라는 말씀도 믿습니다. 주님은 또한 말씀하시기를 &lt;br /&gt;
&lt;br /&gt;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떼들도 있는데 내가 꼭---”, 이말은 천지 만물의 왕으로서 정말 큰 감격적 말입니다--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여기서 영어 원문을 보면 신학적으로 중요한 단어 두가지가 있습니다. 요 10:16, &lt;br /&gt;
&lt;br /&gt;
인데 “내가 꼭 데려오고 그들은 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나는 결코 포기 하지 않는다. 라는 결코의 의지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제데로 배운 사람이라 생각듭니다. 그렇지요? 고린도에서 그는 좀 두렵고 위험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사실 요즘도 그런 상황이 선교를 바로 할수 있는 경우이긴 합니다. 꿈에 주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고 계속 하라고 하셨습니다. 멈추지 말아라 .계속 복음을 선포하라고.. 왜그러셨을 까요? 사도행전 18장 10절 에서 주님은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들은 나의 백성이다, 내가 데려왔고, 내가 선택하였다. 가서 전해라! 내 양이 나의 소리를 듣고 나를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가서 전하라. 주님이 우리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입을 열어 나의 이름과 복음을 소리내어 보아라. 나의 소리가 너의 음성을 통하여 들리게 하여라..나의 양들이 음성을 듣고 따를 것이다. 너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땅의 가장 험한곳까지 전하라. 사람들이 개종하는 것이 너의 목표가 아니다. 너를 통하여 나의 음성을 듣게 하라 . 네가 감당 할 수 있으리라..&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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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 권징은 언제 합니까? 죄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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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9T04:53: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amp;lt;p&amp;gt;&amp;lt;span class=&amp;quot;fck_mw_template&amp;quot;&amp;gt;{{info|When Do You Practice Church Discipline? And How Do You Confront the Sin?}}&amp;lt;/span&amp;gt;한 교회에서 대다수의 권징은 월요일부터 토요일...&lt;/p&gt;
&lt;hr /&gt;
&lt;div&gt;&amp;lt;p&amp;gt;&amp;lt;span class=&amp;quot;fck_mw_template&amp;quot;&amp;gt;{{info|When Do You Practice Church Discipline? And How Do You Confront the Sin?}}&amp;lt;/span&amp;gt;한 교회에서 대다수의 권징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일상적인 관계의 과정 속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항상 서로를 견책해 주면서 돌아다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끔찍하겠죠. 제 말은 성도들이 거룩함에 대해 갈망하는 성격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성원들이 성장을 원하기 때문에 견책을 요청하고, 그것이 싫어서 숨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이봐 라이언, 내가 인도했던 모임이 어땠는지 의견을 좀 들려 주겠어? 어떻게 했으면 좀 더 나았을까?”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잭, 내 결혼 생활과 내가 아내에게 사랑을 베푸는 방법들에 대해 언제든지 의견을 들려주면 좋겠어. 그리고 내 육은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부모로서는 어떤지에 관해서도 좀 얘기해줄 수 있을까?”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책의 저자들은 때로 형식적 권징(Formative discipline)과와 견책적 권징(Corrective discipline)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형식적 권징은 설교를 의미합니다. 견책적 권징이란 잘못을 견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는 함께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서로 분리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교회 생활에서 형식과 견책으로서의 권징은 단지 일요일만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로 성격이 규정되어야 합니다. 권징은 제자도 과정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자도와 권징은 언제 일어날까요? 일주일 내내 계속 되어야 합니다. 주일만이 아닙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amp;lt;b&amp;gt;좀 더 어려운 문제&amp;lt;/b&amp;gt;&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이제 좀 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권징의 과정에서 언제 다음 수준으로 넘어갈 것인가 입니다. 한 명에서 둘 또는 셋, 둘 또는 셋에서 전체 교회로 말입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여기에 정해진 공식은 없습니다. 각 사건은 자체적인 가치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장로님들이 오랜 기간 동안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 상황도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우리가 몇 달간 혹은 심지어 몇 년 간을 특정한 이슈에 대해 다음 수준으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심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이런 경우는 관련된 사람들이 죄와 싸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저희 교회에서는 장로회에서 한 부부에 대한 권징이 4~5년 동안 지속된 경우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부부를 상담했던 장로들이 임기가 만료되어서 장로회를 떠나게 되고 새로운 장로님들이 장로회에 들어와서 다시 상황을 보고받는 이런 과정이 이 커플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몇 차례 반복됐습니다. 부부는 모두 공개적으로 출교되지 않았습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amp;lt;b&amp;gt;약간 쉬운 문제&amp;lt;/b&amp;gt;&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적어도 신학적인 면에서 대답이 조금 더 쉬운 문제도 있지요. 어떤 죄에 대해 공개적인 노출과 출교를 집행하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이전 세대의 저자들은 성경에서 고전 5~6장에 나온 죄의 목록들을 제시하곤 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만일 이 목록에 따른다면 탐욕을 부리는 사람은 출교하고 공금 횡령자는 그냥 두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사기꾼은 출교하되 살인자나 소아성애자는 그냥 두라는 걸까요? 공금 횡령자, 살인자와 소아성애자는 이 목록에 언급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그러니까 분명히 이 목록 자체가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바울은 여기서 불신하고 회개하지 않는 상태의 사람들을 유형화하는 죄의 종류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전 6:9-10 참조).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그러므로 위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을 한다면, 밖으로 드러났고 중대하며 회개하지 않은 죄들은 공개적인 노출과 출교를 집행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해야 하며 한 가지나 두 가지만 포함해서는 안됩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i) 죄는 외적으로 드러난 것이어야 한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죄는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있는 죄여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서 조용하게 있는 상태의 죄를 의심한 것은 안됩니다. 바울은 위의 목록에서 탐욕을 지적했지만 탐욕에 대한 드러난 증거가 없는 사람을 탐욕적이라고 정죄하여 출교할 수는 없습니다. 세속 법정 시스템은 증거를 매우 신중하게 중시합니다. 교회들이 덜 신중해서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마녀사냥을 싫어하십니다.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지 “공적”이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우상숭배는 공적이지 않습니다. 사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밖으로 드러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ii) 죄는 중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염려와 두려움과 스트레스도 일종의 죄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개적 노출이나 출교에 해당하는 죄는 아닙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예를 들어 어떤 형제가 얘기를 좀 과장한 것을 제가 알아냈을 때 형제가 그걸 부정한다면 그것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공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벧전 4:8)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건강한 교회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는 지체들에게서 발견하는 죄들의 많은 부분, 심지어 대부분을 눈감아 주려는 마음일 것입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그렇다면 중대한 죄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이 회개하기를 거절했을 경우 그 사람이 성령을 소유한 크리스천이라고 더 이상 생각하기 어려운 죄입니다. 교회의 멤버십이 무엇인지를 기억해 보세요. 한 개인의 신앙 고백에 대한 교회의 인정입니다. 중대한 죄란 우리를 보고 있는 세상 앞에 서서 신앙 고백을 믿을 만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을,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어렵게 만드는 죄입니다. 내 깨끗한 양심에 따라 어떤 얘기를 과장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내 깨끗한 양심으로는 성적 문란, 언어적 학대, 술취함 등을 계속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합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중대하다”는 기준이 약간 주관적입니까? 그렇습니다. 한 상황에서는 같은 죄가 출교 집행으로 이어지지만 다른 경우에는 여러 가지 상황적 요소로 인해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모든 인지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다루는 정확한 방법이 나와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요.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지혜와 믿음 속에 걸어갈 수 있도록 구하게 하십니다. 곁가지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장로들을 키워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한 두명의 장로가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판단해서 교회에 이 문제를 상정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을테니까요.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iii) 회개하지 않은 죄여야 합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이 사람은 자신의 죄에 직면해 왔습니다. 그것이 죄라고 인정했는지의 여부 그리고 그가 그것으로 그만두겠다고 말했는지의 여부를 불문하고 그는 결국 그것을 포기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되돌아갑니다. 바보처럼 어리석음 속에서 그 죄로부터 분리되지 못합니다(혹은 그러려고 하지 않습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amp;lt;b&amp;gt;그렇지만 어떻게 죄를 다루어야 할까요?&amp;amp;nbsp;&amp;lt;/b&amp;gt;&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예수님이 분노하시며 탁자를 엎으신 상황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공개적으로 특정한 개인에게 날카로운 말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베드로와 마술사 시몬의 사도행전 8장, 고전 5장의 바울 등). 교회 멤버에 대한 견책이 심각도 9 또는 10 정도인 드문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그러나 대부분의 상황은 대응이나 문제 제기의 방식이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가집니다. &lt;br /&gt;
&amp;lt;/p&amp;gt;&lt;br /&gt;
&amp;lt;ul&amp;gt;&amp;lt;li&amp;gt;신중하라: 마태복음 18장은 진행 과정에서 될 수 있으면 범위를 작게 유지하라고 제언합니다.&lt;br /&gt;
&amp;lt;/li&amp;gt;&amp;lt;/ul&amp;gt;&lt;br /&gt;
&amp;lt;ul&amp;gt;&amp;lt;li&amp;gt;온화하라: 바울은 ‘온유한 심령’으로 사람들을 바로잡으라고 말합니다(갈 6:1) &lt;br /&gt;
&amp;lt;/li&amp;gt;&amp;lt;li&amp;gt;조심하라: 같은 구절에서 바울은 첨언하기를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ㅇ르 받을까 두려워하라.”라고 말합니다. 유다서에도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23절). 죄는 교활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할 때 조차도 쉽게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lt;br /&gt;
&amp;lt;/li&amp;gt;&amp;lt;li&amp;gt;자비하라: 유다서에는 두 번이나 말합니다. “긍휼히 여기라” 그리고 “긍휼히 여기라”(22절, 23절). 어조에 긍휼과 이해심이 묻어나야 하며, 마치 자신은 같은 죄에 전혀 넘어지지 않을 것처럼 자기 의를 내세우는 식은 안됩니다. &lt;br /&gt;
&amp;lt;/li&amp;gt;&amp;lt;li&amp;gt;공정하라: 먼저 판단해서는 안되며 양 당사자의 이야기를 모두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딤전 5:21 참조) &lt;br /&gt;
&amp;lt;/li&amp;gt;&amp;lt;li&amp;gt;명확하라: 소극적이거나 공격적이거나 또는 풍자적인 대응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태도이기 때문에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대신을 자신을 취약한 상황에 두더라도 명확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특히 죄를 지은 사람이 고백을 할 때 취약해질 상황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온유함을 위해 절제된 표현을 쓸 경우 좀 더 솔직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명확함을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공개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점점 더 분명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적은 누룩이온 덩이에 퍼지게 됩니다(고전 5:6). 사람들이 경고를 받아야만 합니다. &lt;br /&gt;
&amp;lt;/li&amp;gt;&amp;lt;li&amp;gt;과감하라: 관계적인 측면에서 권징의 최종 단계인 출교 또는 배척이 행해질 때는 교회 전체의 행동에 과단성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전 5:7), “이단에 속한 사람을 멀리하라”(디도서 3:10). 해당 개인은 더 이상 교회의 멤버가 아니며 성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lt;br /&gt;
&amp;lt;/li&amp;gt;&amp;lt;/ul&amp;gt;&lt;br /&gt;
&amp;lt;p&amp;gt;견책을 할 때는 모든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항상 지혜가 필요합니다. ‘음, 이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선례들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이 많지만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인도 그리고 모든 상황의 특수성과 특이성에 대한 신중한 조사 등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amp;lt;br /&amp;gt;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amp;lt;br /&amp;gt; &lt;br /&gt;
&amp;lt;/p&amp;gt;&amp;lt;p&amp;gt;&amp;lt;br /&amp;gt;&lt;br /&gt;
&amp;lt;/p&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A%A5%EA%B8%B0:_%EC%99%9C_%EC%9D%98%EC%9D%B8%EC%9D%B4_%EA%B3%A0%EB%82%9C%EC%9D%84_%EB%8B%B9%ED%95%98%EB%8A%94%EA%B0%80%3F</id>
		<title>욥기: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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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1T05:48: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lt;/p&gt;
&lt;hr /&gt;
&lt;div&gt;{{ info | The Book of Job: Why Do the Righteous Suffer?}}성서적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지혜 문학” 또는 “구약의 시적인 책들”이라고 불리는 다섯가지의 책이 있다. 잠언, 시편, 전도서, 아가, 그리고 욥기가 그것이다. 이 다섯권 중, 다른 네권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책이 있다. 그것은 욥기이다. 욥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혜는 격언의 형태로 전달되지 않는다. 도리어, 욥기는 욥의 심오한 고뇌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서술하면서 지혜의 문제를 다룬다. 이 서술의 배경은 족장 중심 사회이다. 이책이 실제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서술인지 또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가 있는 하늘나라에서의 첫 장면을 포함한 서문과 욥의 시련 동안에 잃은 엄청난 것들이 다시 채워지는 극적인 발문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기본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저작 의도에 의문이 제기됬다.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어찌됬건, 욥기의 중심적인 말씀은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고통과 연관이 있는가의 의문에 대한 대답에 관한 지혜이다. 모든 세대에 걸쳐 이런 이의가 제기되왔다. 하나님이 좋은 분이라면, 이 세상에 아픔, 고통, 죽음은 없어야 한다. 어떻게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이의와 함께 제의되는 것은 고통의 계산법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법에 따르면, 개인의 고통은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나 죄의 정도에 정비례한다. 이 이의에 대한 속답은 요한복음의 아홉번째 장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이 소경이로 태어난 자의 고통의 근원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답하시는 말씀이다. &lt;br /&gt;
&lt;br /&gt;
욥기에서, 주인공은 의인, 실로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그러나 사탄에 따르면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만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를 울타리 안에 보호하사 그 어느 인간 보다도 가장 많은 복을 허락하셨고 그 결과, 악마는 욥이 그의 창조자로 부터 받는 관대한 보수 때문에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비난받게 된다. 악마는 하나님에게 보호의 울타리를 없애고 그때에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기 시작하는지를 보자고 요구한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욥의 고통은 빠르게 더욱 더 악화된다. 그는 고통이 너무 강렬해서 똥거름 무더기 위에 앉자 그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끊임없는 고통에서 울부 짓는다. 그의 고통이 너무도 커서 심지어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서 고뇌를 덜라고 말한다. 그 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욥의 친구, 엘리바스, 빌닷 그리고 소발이 욥에게 주는 조언이다. 그들의 말은 욥에 대한 그들의 충절함이 얼마나 무의미한 피상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욥의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이 욥의 인격에 극적인 악화에 따른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amp;lt;br&amp;gt; &lt;br /&gt;
&lt;br /&gt;
욥에게의 조언은 엘리후의 다소 깊은 통찰력으로 극에 달한다. 엘리후는 많은 성서적 지혜를 포함한 여러 조언을 준다. 그러나 이 위대한 책에서 찾을 수 있는 궁극적 지혜는 욥의 친구도 엘리후도 아닌 하나님 그분에로 부터 온다. 욥이 하나님에게 답을 요구하자 하나님은 이런 꾸짖음으로 답하신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욥기 38:1-3). 이 꾸지람을 뒤따르는 것은 창조자가 초래한 가장 집요한 인간 심문이다. 언뜻보면 하나님이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4절)는 질문을 던지며 마치 욥을 괴롭히는것 같기 까지 하다.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계속 질문을 던진다.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31-32절). 물론, 이런 기관총 같은 빠른 속도로 퍼붇는 수사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항상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이다. 하나님은 그의 질문에서 욥의 열등함과 종속됨을 못박는다. 하나님은 욥이 할 수 없는,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욥의 능력을 계속 해서 질문한다.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40장에서, 하나님은 마침내 욥에게 이르기를,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2절). 이제, 욥의 대응은 그의 비참함에 대한 답을 도전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말하기를, “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5-6절).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심문이 계속되는데 이번에는 욥에게El Shaddai (전지전능의 하나님)로 알려진 하나님의 권력과 대비되는 욥의 무능함 사이의 압도적인 대조를 나타내는 더 심도있고 빠른 불같은 심문이 계속된다. 마침내, 욥은 그러한 것들이 너무도 훌륭하다고 고백한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42:5-5).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이 절대로 욥의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는, “욥아, 네가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이렇고 저래서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같이 심오한 고통의 부당함의 신비에 대해 하시는 것은 그가 욥에게 그 자신으로 대답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통에 대한 질문을 답하는 지혜이다—왜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이런 때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아니라, 이러한 고통 속에 나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욥기의 지혜로 부터 명백하게 알수 있는 여기에 대한 답은 다른 지혜 문학의 전제와도 일치한다: 주님을 경외함,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 이것이 지혜의 근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세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어리둥절하고 혼돈하게 될때, 우리는 항상 특정한 질문에 대한 특정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거룩하고, 의로우시고, 정의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알기위해 구해야 한다. 그것이 욥기에서 찾을 수 있는 지혜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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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자함은 모든것을 바꾼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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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19T16:32: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Kindness Changes Everything}}인자함은 과소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인자함을 주로 웃어줌, 사이좋게 지냄, 또는 거스리지 않음 정도의 착함 또...&lt;/p&gt;
&lt;hr /&gt;
&lt;div&gt;{{info|Kindness Changes Everything}}인자함은 과소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인자함을 주로 웃어줌, 사이좋게 지냄, 또는 거스리지 않음 정도의 착함 또는 유쾌함으로 생각한다. 다소 일상적인 미덕같아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인자함을 굉장히 다르게, 주목 받는 묘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인자함은 초자연적이다.''' &lt;br /&gt;
&lt;br /&gt;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서 자신이 진정한 사도임을 주장할때, 그는 복음을 위해 격었던 시험들과, 그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내적인 영적 삶과 하나님이 그의 삶속에 일궈내신 영적 열매를 열거하였다(고린도 후서 6:1-13). 놀랍게도 인자함은 그의 영적 열매의 목록에 속해 있다. “내가 진정한 사도라는 증거가 필요합니까?” 사실상 그의 말합니다. “좋습니다. 증거는 이것이요: 나는 인자합니다.” &lt;br /&gt;
&lt;br /&gt;
진정한 인자함은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골로새서 5:22). 사람들이 받을 자격이 없고 또 받고 그것을 되돌려 배풀이 않더라고 (인자함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 마음의 초자연적으로 인자한 경향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인자하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사람들을 통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로마서2:4). 이말은 (하나님이 인자함을 베푸실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그의 적이 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원수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본받아야 한다. &lt;br /&gt;
&lt;br /&gt;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다“ (누가복음 6:35). 우리의 인자함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반영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서로에게 인자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2) &lt;br /&gt;
&lt;br /&gt;
인자함은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머리를 한대 맞는 기분과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걸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시편 141:5) 예수님의 바리세인 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 불렀다.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인자함이다.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인자한 의사는 깊이 있는 암을 고치기 위해 절개 하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인자함은 막강하다.''' &lt;br /&gt;
&lt;br /&gt;
로자리아 버터필드(Rosaria Butterfield) 는 열성적인 동성연애자에서 열성적인 기독교인으로 변화받은 여정을 담은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기독교 인으로 볼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생각이 짧고 비판적이며, 멸시하고, 포괄성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로 보여졌다. 지방 신문에 복음주의 기독교 그룹에 대한 평론을 게재하고 나서 엄청난 양의 상반되는 반응을 받았다. 책상의 한쪽 빈 상자에는 중상 메일을 그리고 한쪽 구석에 빈 상자에는 팬 메일로 나주었다. 그런데 지방 목사님으로 부터 두장의 편지를 받았다. “친절하고 이것저것 묻는 편지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진실을 캐기위한 질문들에 따뜻함과 공손함이 있었다. 어느 상자에 넣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냥 책상위에 칠일 동안 올려 놓았다. “내가 받아 본 가장 친절한 반대의 편지였다.” 그 저자의 어조는 분명이 그녀에게 반대하는 투가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그 목사에게 연락을 했으면 그와 그의 아내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내가 잊혀졌다고 느끼지 않도록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들의 우정이 그녀의 신앙 여정에 중요한 역할의 했다. &lt;br /&gt;
&lt;br /&gt;
'''당신은 인자한가?''' &lt;br /&gt;
&lt;br /&gt;
성경의 증언이나 버터필드의 간증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혹은 그들에 대하여 거칠게 말하고 있느가? 우리 중 몇명은 운동 경기를 보거나 탈랜트 쇼(The Voice 같은 쇼)를 보면서 외모나 기량 부족, 또는 재능 부족들에 대해 거친 견해를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말로 퍼붙는 것이 너무 쉽게 엔터테인먼트 자체의 일부가 되버린다. &lt;br /&gt;
&lt;br /&gt;
어떤이에게는 매일 통근하는 시간이 인자함의 호된 시련이 장이기도 하다. 나는 끼어들이 하는 운전자 그리고 나를 바짝 쫗아 운전하는 운전자를 포함한 모든 운전자들에게 관대한 경향이 있는가? 우리 몇몇은 너무 자주 잔혹한 빈정됨을 꼬아 말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가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것을 더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뜻하지 않는 말을 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lt;br /&gt;
&lt;br /&gt;
인자함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주변 사람들의 삶에 어마어마한 결실을 이뤄낸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잠언 21:21) &lt;br /&gt;
&lt;br /&gt;
우리가 성령님께 우리안에 인자한 입술을 통해 흘러 넘치는 인자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할때 우리는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우리 자신을 내 놓는 것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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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B2%AD%EC%86%8C%EB%85%84%EB%93%A4_%EB%8C%80%ED%95%99%EC%9E%85%ED%95%99_%EB%B0%8F_%EC%84%B1%EB%85%84%EA%B8%B0_%EC%A4%80%EB%B9%84_%EC%8B%9C%ED%82%A4%EA%B8%B0</id>
		<title>청소년들 대학입학 및 성년기 준비 시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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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4-03-27T15:26: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Preparing Teens for College (And Adulthood)}}  &amp;lt;blockquote&amp;gt;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amp;amp;nbsp;(시편 127:4) &amp;lt;/blockquote&amp;gt; 청소년들...&lt;/p&gt;
&lt;hr /&gt;
&lt;div&gt;{{info|Preparing Teens for College (And Adulthood)}}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amp;amp;nbsp;(시편 127:4)&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청소년들을 신실한 기독교 어른으로 성장시키기란 항상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우리들과 같이, 우리의 자녀들은 죄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으로 변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 목회자, 선생님, 멘토로서 이런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기도하고 가르칠 때에, 우리는 한편으로 그들이 현 세상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다르게 보이는 이 두 가지는 사실 나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학업, 직업, 그리고 인간관계에서의 성공은 개인의 인성과 성숙함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인성과 성숙함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는 깊은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행위로 인해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선한 행위를 위해 구원을 받습니다 (에베소서 2:8-10). 좋은 나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빛내기 위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디도서 2:10). &lt;br /&gt;
&lt;br /&gt;
'''잘 못된 조합''' &lt;br /&gt;
&lt;br /&gt;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데에 유례없는 위협을 가합니다. 미국의 청소년 문화는 점점 더 자기 중심적으로 변하여져서, 그들을 피상적인 관심과 순간의 만족에 매료시킵니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은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보다는 사춘기인 소년으로 남아있기를 원합니다. 전 세대의 청소년들과 비교했을 때, 현재 그들은 어려움을 혼자서 극복하기 더 어려워하고, 부모를 더 의존하고, 디지털 대중매체에 주의력이 더 분산되어 있습니다. 정직함, 근면함, 그리고 뿌린 대로 거둠의 가치와 중요성은 이들에게 과거의 유물 정도로만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lt;br /&gt;
&lt;br /&gt;
사회학자 제임스 로센바움이 진행한 시카고 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약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 중 거의 반이 (46퍼센트) “고등학생 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내 미래의 꿈을 이룰 수 있다”와 같은 서술에 동의 하였다고 합니다 (Beyond College for All, 59-62). 또한 2009년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참여도 조사에서 77퍼센트의 응답자들이 숙제를 하는 데에 일주일에 다섯 시간 이하로 시간을 투자하고, 50퍼센트의 응답자들이 학교 공부하는 데에 한 시간 이하를 투자한다고 답변했습니다. &lt;br /&gt;
&lt;br /&gt;
예상하시는 대로, 교만함과 미숙한 직업 윤리로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온전한 삶의 기반을 형성 하기 힘듭니다. 자신의 실제 실력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착각하게 되면, 더 쉽게 결과물을 얻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노력을 덜하게 만들고, 성공하기를 더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더욱 더 실망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현재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청소년들을 대학에 보내고, 그들을 대학에 보내는 데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지만, 현실은 대학교 재학생 중 사분의 일은 입학 후 일년 이내에 중퇴를 하고, 반 정도는 졸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pathways to prosperity 월간지의2011년 2월호에 의하면 4년제 대학 재학생 중 56퍼센트가 졸업하는데 6년이 걸리고, 2년제 대학 재학생 중 29퍼센트가 졸업하는데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lt;br /&gt;
&lt;br /&gt;
'''부모가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좋은 소식은 이런 일을 방지하고 다른 방법을 선택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냐고요? 훈련, 모범, 그리고 기강이 집에서 부모로부터 바로 세워지면 됩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들과 대화하고, 귀 기울이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들에게 삶의 모든 부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 찾고, 시행하고, 책임지고, 교정하고, 일(공부)하고, 헌신하고, 확신하고, 교제하고, 그리고 시간, 재능, 자산을 관리할 때 —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환호로 할 때 — 우리들의 청소년들은 대학 그리고 그 이후 삶에서 성공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 자녀들이 자립 후 처음 몇 년을 신앙 안에서 그리고 진로 선택에서 방황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대학생 시절은 이들에게 우리가 삶을 통해 배우고 발견한 지혜의 길, 즉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해서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 한 길을 계속 이어 걸어나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시기 입니다 (디도서 3:8). &lt;br /&gt;
&lt;br /&gt;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함에 따라, 그들이 밟을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데 우리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힘과 능력을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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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저는 오늘 아침에 욥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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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6T04:21: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저는 오늘 아침에 욥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I Was Warned by Job This Morning}}저는 이것을 교회와 지역 사회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존경받는 위치에 계신 분들께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경고로 받아들입니다. 욥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amp;quot;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amp;quot; (욥기 1:1). 그가 그의 건강과 재산과 가족을 잃게 된 것은 그가 악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욥의 거룩의 잔 밑바닥에 남아 있는 교만의 잔재들마저 겉으로 드러내고 제거하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든간에, 욥은 신실한 사람이었고, 여러분이나 저보다 더 악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욥은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고, 노인들로부터도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권위가 있었고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예를 들면 욥기 29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lt;br /&gt;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lt;br /&gt;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lt;br /&gt;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lt;br /&gt;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lt;br /&gt;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lt;br /&gt;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lt;br /&gt;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lt;br /&gt;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lt;br /&gt;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lt;br /&gt;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lt;br /&gt;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lt;br /&gt;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lt;br /&gt;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욥이 가진 이 모든 것을 취하여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시험하셨습니다. 욥에게는 그의 성공들—심지어 그의 거룩한 성공들—이 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그의 가장 귀한 보물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신 것처럼 어느 날 우리를 시험하실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취하여 가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건강이나 가족이나 생명보다 더 사랑할 것인가? 이것이 그 질문입니다. 이것은 경고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초대입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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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저는 오늘 아침에 욥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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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6T04:21: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I Was Warned by Job This Morning}}저는 이것을 교회와 지역 사회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존경받는 위치에 계신 분들께 대한 심각하고 ...&lt;/p&gt;
&lt;hr /&gt;
&lt;div&gt;{{info|I Was Warned by Job This Morning}}저는 이것을 교회와 지역 사회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존경받는 위치에 계신 분들께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경고로 받아들입니다. 욥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amp;quot;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amp;quot; (욥기 1:1). 그가 그의 건강과 재산과 가족을 잃게 된 것은 그가 악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욥의 거룩의 잔 밑바닥에 남아 있는 교만의 잔재들마저 겉으로 드러내고 제거하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든간에, 욥은 신실한 사람이었고, 여러분이나 저보다 더 악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욥은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고, 노인들로부터도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권위가 있었고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예를 들면 욥기 29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lt;br /&gt;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lt;br /&gt;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lt;br /&gt;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lt;br /&gt;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lt;br /&gt;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lt;br /&gt;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lt;br /&gt;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lt;br /&gt;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lt;br /&gt;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lt;br /&gt;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lt;br /&gt;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lt;br /&gt;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lt;br /&gt;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욥이 가진 이 모든 것을 취하여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시험하셨습니다. 욥에게는 그의 성공들—심지어 그의 거룩한 성공들—이 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그의 가장 귀한 보물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신 것처럼 어느 날 우리를 시험하실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취하여 가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건강이나 가족이나 생명보다 더 사랑할 것인가? 이것이 그 질문입니다. 이것은 경고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초대입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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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직업을 고려할 때 해야 할 질문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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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6T04:17: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직업을 고려할 때 해야 할 질문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Some Questions to Ask When Considering a Job}}'''1. 이 직업의 모든 부분을 진정으로 &amp;quot;하나님의 영광을 위해&amp;quot; 할 수 있는가? 즉, 그 일을 통해 모든 것 위에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탁월한 가치가 찬란히 빛나는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갈 수 있는가? &amp;quot;'''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amp;quot; (고린도전서 10:31). &lt;br /&gt;
&lt;br /&gt;
'''2. 이 직업을 선택함은 개인적 거룩에 있어 더 성장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인가?''' &amp;quot;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amp;quot; (데살로니가전서 4:3) &lt;br /&gt;
&lt;br /&gt;
'''3. 이 직업은 당신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 소중히 여기는 데 도움이 되는 직업인가 아니면 방해가 되는 직업인가?''' &amp;quot;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amp;quot; (빌립보서 3:7). &lt;br /&gt;
&lt;br /&gt;
'''4. 이 직업에는 왕이신 예수님께 반하는 생각, 감정 또는 행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요소는 없는가?''' &amp;quot;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amp;quot; (고린도전서 7:23). &lt;br /&gt;
&lt;br /&gt;
'''5. 이 직업은 모든 미전도 족속 가운데 그리스도를 높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 성취에 당신의 삶이 긴밀하게 연관되게 삶의 패턴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amp;quot;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amp;quot; (마태복음 28:18-20). &lt;br /&gt;
&lt;br /&gt;
'''6. 이 직업은 당신이 가진 최고의 에너지를 쏟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amp;quot;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amp;quot; (전도서 9:10). &lt;br /&gt;
&lt;br /&gt;
'''7. 이 직업과 관련된 활동과 환경에 의해 당신이 변하게 될 것 같은가 아니면 당신이 주도적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는 하나님의 목적에 맞도록 그 일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바꾸어 갈 수 있겠는가?''' &amp;quot;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amp;quot;( 로마서 12:2). &lt;br /&gt;
&lt;br /&gt;
'''8. 이 직업이 당신으로 하여금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하늘 아버지를 위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그 회사의 비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타고 있던 심지조차 꺼뜨리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가? &amp;quot;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amp;quot; (마태복음 5:16). &lt;br /&gt;
&lt;br /&gt;
'''9. 이 직업의 목적은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리스도께 철저히 그리고 공개적으로 헌신되고 많은 열매가 있는 헌신된 삶을 사는 헌신의 강도가 더 강화되는 것과 불일치하는 면은 없는가?''' &amp;quot;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amp;quot; (마가복음 8:34). &lt;br /&gt;
&lt;br /&gt;
'''10. 이 직업은 영원을 위한 &amp;quot;2초 동안의&amp;quot; 준비 과정과 같은 당신의 인생이 끝났을 때, 과연 인생을 제대로 투자한 것이라고 느끼게 할 만한 일인가?''' &amp;quot;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amp;quot; (야고보서 4:14). &lt;br /&gt;
&lt;br /&gt;
'''11. 당신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 직업은 그러한 믿음과 부합하는가?''' &amp;quot;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amp;quot;(이사야 43:6-7). &amp;quot;[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amp;quot; (고린도전서 6:20). &lt;br /&gt;
&lt;br /&gt;
'''12. 이 직업은 만물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궁극적인 진리에 부합하는가?''' &amp;quot;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amp;quot; (골로새서 1:16). &lt;br /&gt;
&lt;br /&gt;
만물 위에 가장 뛰어나신 하나님을 위하여,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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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직업을 고려할 때 해야 할 질문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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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6T04:16: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Some Questions to Ask When Considering a Job}}'''1. 이 직업의 모든 부분을 진정으로 &amp;quot;하나님의 영광을 위해&amp;quot; 할 수 있는가? 즉, 그 일을 통해 모든 ...&lt;/p&gt;
&lt;hr /&gt;
&lt;div&gt;{{info|Some Questions to Ask When Considering a Job}}'''1. 이 직업의 모든 부분을 진정으로 &amp;quot;하나님의 영광을 위해&amp;quot; 할 수 있는가? 즉, 그 일을 통해 모든 것 위에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탁월한 가치가 찬란히 빛나는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갈 수 있는가? &amp;quot;'''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amp;quot; (고린도전서 10:31). &lt;br /&gt;
&lt;br /&gt;
'''2. 이 직업을 선택함은 개인적 거룩에 있어 더 성장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인가?''' &amp;quot;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amp;quot; (데살로니가전서 4:3) &lt;br /&gt;
&lt;br /&gt;
'''3. 이 직업은 당신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 소중히 여기는 데 도움이 되는 직업인가 아니면 방해가 되는 직업인가?''' &amp;quot;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amp;quot; (빌립보서 3:7). &lt;br /&gt;
&lt;br /&gt;
'''4. 이 직업에는 왕이신 예수님께 반하는 생각, 감정 또는 행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요소는 없는가?''' &amp;quot;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amp;quot; (고린도전서 7:23). &lt;br /&gt;
&lt;br /&gt;
'''5. 이 직업은 모든 미전도 족속 가운데 그리스도를 높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 성취에 당신의 삶이 긴밀하게 연관되게 삶의 패턴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amp;quot;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amp;quot; (마태복음 28:18-20). &lt;br /&gt;
&lt;br /&gt;
'''6. 이 직업은 당신이 가진 최고의 에너지를 쏟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amp;quot;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amp;quot; (전도서 9:10). &lt;br /&gt;
&lt;br /&gt;
'''7. 이 직업과 관련된 활동과 환경에 의해 당신이 변하게 될 것 같은가 아니면 당신이 주도적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는 하나님의 목적에 맞도록 그 일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바꾸어 갈 수 있겠는가?''' &amp;quot;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amp;quot;( 로마서 12:2). &lt;br /&gt;
&lt;br /&gt;
'''8. 이 직업이 당신으로 하여금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하늘 아버지를 위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그 회사의 비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타고 있던 심지조차 꺼뜨리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가? &amp;quot;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amp;quot; (마태복음 5:16). &lt;br /&gt;
&lt;br /&gt;
'''9. 이 직업의 목적은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리스도께 철저히 그리고 공개적으로 헌신되고 많은 열매가 있는 헌신된 삶을 사는 헌신의 강도가 더 강화되는 것과 불일치하는 면은 없는가?''' &amp;quot;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amp;quot; (마가복음 8:34). &lt;br /&gt;
&lt;br /&gt;
'''10. 이 직업은 영원을 위한 &amp;quot;2초 동안의&amp;quot; 준비 과정과 같은 당신의 인생이 끝났을 때, 과연 인생을 제대로 투자한 것이라고 느끼게 할 만한 일인가?''' &amp;quot;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amp;quot; (야고보서 4:14). &lt;br /&gt;
&lt;br /&gt;
'''11. 당신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 직업은 그러한 믿음과 부합하는가?''' &amp;quot;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amp;quot;(이사야 43:6-7). &amp;quot;[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amp;quot; (고린도전서 6:20). &lt;br /&gt;
&lt;br /&gt;
'''12. 이 직업은 만물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궁극적인 진리에 부합하는가?''' &amp;quot;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amp;quot; (골로새서 1:16). &lt;br /&gt;
&lt;br /&gt;
만물 위에 가장 뛰어나신 하나님을 위하여,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A%BB%98_%EA%BE%B8%EC%9D%B4%EB%8A%94_%EA%B2%83%EC%97%90_%EB%8C%80%ED%95%98%EC%97%AC</id>
		<title>하나님께 꾸이는 것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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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6T03:20: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하나님께 꾸이는 것에 대하여’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On Lending to God}}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amp;lt;br&amp;gt;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채권자로 떠울리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창고에서 재물을 꺼내서 하나님께 빌려드렸으니 하나님은 이제 나에게 빚을 지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amp;quot;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amp;quot; (시편 50:12)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확실히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그로부터 대가를 받아낸다는 거래 관념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고 받는 모든 것이 이미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 버리곤 합니다. 사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소유의 청지기나 보관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의 정당한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청지기가 주인에게 주인의 것을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11:35'''에서 &amp;quot;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amp;quot; 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잠언 19:17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책의 더 근본적인 가르침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mp;quot;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amp;quot;(잠언 3:5). 충만한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판단력을 의뢰하는 것을 중지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의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재산 증식에 대한 우리의 &amp;quot;통찰력&amp;quot;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때문에 우리를 복주시려고 목적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제 가난한 사람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이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amp;quot;자 여기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군. 그는 하나님께 뭘 드려서 받을 만한 능력이나 수단도 없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뿐이야. 그것이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지. 따라서 나는 이 사람보다 나를 낫게 생각하면서 우쭐해서는 안되겠어. 그뿐 아니라, 여기 내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표현할 기회가 있네. 내가 이 불쌍한 사람이 직장을 구하도록 돕기 위해 내가 가진 돈이나, 시간이나, 에너지 중 얼마를 주면, 나를 행복하기 위해 계획한 일을 하기 위한 돈이나 시간이나 에너지는 그만큼 줄어들게 될 거야. 그것은 내가 내 자신의 통찰력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더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큰 위험이 아니야.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기 때문이야. 사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더 충만한 삶으로 축복해 주시지. 따라서, 물론 나는 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거야.&amp;quot; &lt;br /&gt;
&lt;br /&gt;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고 신뢰하는 행동이라면, 이에는 하나님께서 빚진 자가 된다는 일종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에 대하여 빚진 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영광을 구하십니다. 그래서 만일 내가 그를 의지하고 그의 말씀과 지혜와 사랑이 의지할 만하다고 참으로 여기면,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과 지혜와 사랑의 가치를 유지하시기 위해 자신의 명예에 매이시고, 자신의 영광에 매이십니다. 우리의 의뢰는 하나님을 빚지시게 할 수 있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을 빚지시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은 썩은 지팡이와 같은 우리의 충분함, 우리의 충족성을 의지하는 헛된 믿음에서 드디어 눈을 돌려 하나님의 충분하심, 하나님의 충족성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유일한 인간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충분하심, 하나님의 충족성이 위기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만 있지 않으십니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데 있어 우리가 하나님께 실제로 뭔가를 빌려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주셔야 하는 그러한 위치에 우리 자신을 가져다 놓게 되는 것입니다—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는 자비를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친절을 베풀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빵집에서,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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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께 꾸이는 것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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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6T03:20: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On Lending to God}}  &amp;lt;blockquote&amp;gt;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amp;lt;br&amp;gt;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amp;lt;/blockquote&amp;gt; 저는 제 자...&lt;/p&gt;
&lt;hr /&gt;
&lt;div&gt;{{info|On Lending to God}}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amp;lt;br&amp;gt;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채권자로 떠울리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창고에서 재물을 꺼내서 하나님께 빌려드렸으니 하나님은 이제 나에게 빚을 지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amp;quot;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amp;quot; (시편 50:12)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확실히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그로부터 대가를 받아낸다는 거래 관념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고 받는 모든 것이 이미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 버리곤 합니다. 사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소유의 청지기나 보관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의 정당한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청지기가 주인에게 주인의 것을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11:35'''에서 &amp;quot;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amp;quot; 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잠언 19:17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책의 더 근본적인 가르침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mp;quot;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amp;quot;(잠언 3:5). 충만한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판단력을 의뢰하는 것을 중지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의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재산 증식에 대한 우리의 &amp;quot;통찰력&amp;quot;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때문에 우리를 복주시려고 목적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제 가난한 사람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이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amp;quot;자 여기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군. 그는 하나님께 뭘 드려서 받을 만한 능력이나 수단도 없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뿐이야. 그것이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지. 따라서 나는 이 사람보다 나를 낫게 생각하면서 우쭐해서는 안되겠어. 그뿐 아니라, 여기 내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표현할 기회가 있네. 내가 이 불쌍한 사람이 직장을 구하도록 돕기 위해 내가 가진 돈이나, 시간이나, 에너지 중 얼마를 주면, 나를 행복하기 위해 계획한 일을 하기 위한 돈이나 시간이나 에너지는 그만큼 줄어들게 될 거야. 그것은 내가 내 자신의 통찰력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더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큰 위험이 아니야.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기 때문이야. 사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더 충만한 삶으로 축복해 주시지. 따라서, 물론 나는 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거야.&amp;quot; &lt;br /&gt;
&lt;br /&gt;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고 신뢰하는 행동이라면, 이에는 하나님께서 빚진 자가 된다는 일종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에 대하여 빚진 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영광을 구하십니다. 그래서 만일 내가 그를 의지하고 그의 말씀과 지혜와 사랑이 의지할 만하다고 참으로 여기면,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과 지혜와 사랑의 가치를 유지하시기 위해 자신의 명예에 매이시고, 자신의 영광에 매이십니다. 우리의 의뢰는 하나님을 빚지시게 할 수 있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을 빚지시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은 썩은 지팡이와 같은 우리의 충분함, 우리의 충족성을 의지하는 헛된 믿음에서 드디어 눈을 돌려 하나님의 충분하심, 하나님의 충족성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유일한 인간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충분하심, 하나님의 충족성이 위기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만 있지 않으십니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데 있어 우리가 하나님께 실제로 뭔가를 빌려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주셔야 하는 그러한 위치에 우리 자신을 가져다 놓게 되는 것입니다—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는 자비를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친절을 베풀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빵집에서,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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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금, 고난, 그리고 만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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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2:02: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소금, 고난, 그리고 만족’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Salt, Suffering, and Satisfaction}}그리스도인이 소금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아봅시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이 된다는 것은 그 뿌리에 있어 그리스도를 영원한 상급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사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두려움과 탐욕으로부터 자유케 되고, 환난에도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다음 세 부분의 성경 구절에 이것이 적용되는지 살펴봅시다. &lt;br /&gt;
&lt;br /&gt;
'''마태복음 5:11-13'''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성경은 &amp;quot;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amp;quot;라는 말씀 직전에, &amp;quot;너희를 욕하고 박해할 때에는. . .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amp;quot;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사는 삶은 순리적이지 않은, 말 그대로 놀랍고 대단한 삶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즐거운 경험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기쁨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은 놀랍고 굉장한, 소금다운 일입니다. &lt;br /&gt;
&lt;br /&gt;
'''마가복음 9:47–50'''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예수님께서는, 지옥의 불구덩이를 언급하신 후에 &amp;quot;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amp;quot;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누구나 사는 동안 역경과 고난의 불구덩이를 겪을 것이며 이 경험이 너희를 소금답게 만든다는 의미라고 여겨집니다. 여러분에게 소금이 쳐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으로의 구원을 뜻합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지옥의 불길을 볼 것이고, 천국의 향기로 인해 세상에 대해서 놀랍도록 불만족하고 그리스도를 영원의 상급으로 완전히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50절을 보면, &amp;quot;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amp;quot; 즉, 다시 돌이킬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어서, &amp;quot;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amp;quot;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상받으려는 욕구로부터 자유하는 것보다 더 큰 평안을 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로부터 자유한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욕을 당하여도 기뻐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자유함은 사랑을 위한 것이며 현생과 다음 생에도 예수를 상급으로 만족하는 소금다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골로새서 4:6'''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과연 우리가 소금으로 맛을 냄으로써 어떻게 &amp;quot;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게&amp;quot; 될까요? 소금다워지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분별력 있게 할까요? 답변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상급으로 깊이 만족하고 세상에서 인정받고 상받으려는 욕구로부터 자유케 되면, 무엇이 사랑스러운지를 분별하는 우리의 분별 기능은 우리 이기심이 가져오는 왜곡들에 의하여 덜 어두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의 요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더 기꺼이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기꺼이 사랑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맺는 말''' &lt;br /&gt;
&lt;br /&gt;
이것이 저의 마지막 제안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원의 상급으로 깊이 만족하고, 사랑의 희생에 대한 두려움과 탐욕으로부터 자유케 되며, 환난에도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봄으로써, 세상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분이 누구신가에 대한 만족스러운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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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금, 고난, 그리고 만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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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2:02: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Salt, Suffering, and Satisfaction}}그리스도인이 소금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아봅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이 된다는 ...&lt;/p&gt;
&lt;hr /&gt;
&lt;div&gt;{{info|Salt, Suffering, and Satisfaction}}그리스도인이 소금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아봅시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이 된다는 것은 그 뿌리에 있어 그리스도를 영원한 상급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사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두려움과 탐욕으로부터 자유케 되고, 환난에도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다음 세 부분의 성경 구절에 이것이 적용되는지 살펴봅시다. &lt;br /&gt;
&lt;br /&gt;
'''마태복음 5:11-13'''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성경은 &amp;quot;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amp;quot;라는 말씀 직전에, &amp;quot;너희를 욕하고 박해할 때에는. . .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amp;quot;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사는 삶은 순리적이지 않은, 말 그대로 놀랍고 대단한 삶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즐거운 경험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기쁨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은 놀랍고 굉장한, 소금다운 일입니다. &lt;br /&gt;
&lt;br /&gt;
'''마가복음 9:47–50'''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예수님께서는, 지옥의 불구덩이를 언급하신 후에 &amp;quot;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amp;quot;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누구나 사는 동안 역경과 고난의 불구덩이를 겪을 것이며 이 경험이 너희를 소금답게 만든다는 의미라고 여겨집니다. 여러분에게 소금이 쳐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으로의 구원을 뜻합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지옥의 불길을 볼 것이고, 천국의 향기로 인해 세상에 대해서 놀랍도록 불만족하고 그리스도를 영원의 상급으로 완전히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50절을 보면, &amp;quot;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amp;quot; 즉, 다시 돌이킬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어서, &amp;quot;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amp;quot;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상받으려는 욕구로부터 자유하는 것보다 더 큰 평안을 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로부터 자유한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욕을 당하여도 기뻐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자유함은 사랑을 위한 것이며 현생과 다음 생에도 예수를 상급으로 만족하는 소금다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골로새서 4:6'''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과연 우리가 소금으로 맛을 냄으로써 어떻게 &amp;quot;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게&amp;quot; 될까요? 소금다워지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분별력 있게 할까요? 답변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상급으로 깊이 만족하고 세상에서 인정받고 상받으려는 욕구로부터 자유케 되면, 무엇이 사랑스러운지를 분별하는 우리의 분별 기능은 우리 이기심이 가져오는 왜곡들에 의하여 덜 어두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의 요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더 기꺼이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기꺼이 사랑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맺는 말''' &lt;br /&gt;
&lt;br /&gt;
이것이 저의 마지막 제안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원의 상급으로 깊이 만족하고, 사랑의 희생에 대한 두려움과 탐욕으로부터 자유케 되며, 환난에도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봄으로써, 세상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분이 누구신가에 대한 만족스러운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8%B0%EB%8F%84%EC%99%80_%EC%98%88%EC%A0%95</id>
		<title>기도와 예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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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1:57: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기도와 예정’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Prayer and Predestination}}'기도하는'과 '기도없는' 사이의 대화&lt;br /&gt;
&lt;br /&gt;
기도없는: 난 네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해. 맞지?&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맞아.&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러니까 너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말하는 것처럼 우연이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설계와 계획에 의해 일어난다고 믿는 거지?&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래, 난 성경이 그렇게 가르친다고 믿어.&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러면 너는 왜 기도하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난 문제가 없다고 봐. 뭐, 기도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니?&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글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명하시고 컨트롤하신다면, 그가 오래 전에 미리 정해 놓으신 일이 결국 일어나지 않을까? 안 그래?&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맞아.&lt;br /&gt;
&lt;br /&gt;
기도없는: 따라서 그 일은 네가 기도하건 하지 않건 정해진 대로 일어날거야.&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건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그 일이 일어나도록 결정해 놓으셨는지에 달려 있지. 만약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미리 정해 놓으셨다면, 그 일은 기도 없이는 일어나지 않을거야.&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잠깐만, 이거 헷갈리는데. 너 지금 기도에 대한 모든 응답들이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거니, 아니라고 말하는 거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거지. 그건 기도의 응답으로 예정되어 있어.&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래서, 만약 기도가 없다면, 그 응답도 일어나지 않는단 말이야?&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렇지.&lt;br /&gt;
&lt;br /&gt;
기도없는:그렇다면 특정 사건의 발생은 우리가 그 일이 일어나도록 기도하는 것에 모종의 조건적 연결로 관련되어 있다는 거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래. 내가 이해하기로는 여기서의 조건적 연결이란 무슨 의미인고 하면, 기도가 그 사건이 일어나는 데 있어서 정말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의미야. 따라서 기도 없이는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뜻이지.&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래 내 말이 그말이야. 그러나 특정 사건이 내 기도에 조건적 연결로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어떻게 여전히 영원히 결정되어 있고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을 수 있지?&lt;br /&gt;
&lt;br /&gt;
기도하는: 왜냐하면, 네 기도가 예정된 응답처럼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지.&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설명해 봐.&lt;br /&gt;
&lt;br /&gt;
기도하는: 이건 복잡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섭리대로 모든 사건을 정해 놓으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어떤 사건의 발생을 원인 없이 명하시지 않지. 그리고 이유 또한 사건이야. 따라서 이유 또한 미리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시지. 따라서 원인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특정 사건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없어.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정해 놓지 않으셨거든. 원인되는 사건이 발생해야 그 결과되는 사건이 발생하지.&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렇다면 네 말인즉슨, 기도에 대한 응답은 항상 여러 원인들 중 하나인 기도의 결과로 정해져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응답을 단지 그 원인의 결과로서 예정하셨다는 거네.&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맞아. 그리고 원인과 효과 모두 함께 정하여졌기 때문에, 원인 없이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어.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인과 동떨어지게 원인 없는 결과만을 정해 놓지 않으시거든.&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예를 좀 들어 줄 수 있겠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물론이지.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총상에 의해 죽도록 예정해 놓으셨다면,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다면 난 죽지 않을 거야. 만약 하나님께서 내가 수술로 회복된다고 예정해 놓으셨다면, 수술이 없다면 난 회복되지 않을거야. 만약 하나님께서 보일러 화재로 인한 열로 우리 집을 가득 채우도록 예정해 놓으셨다면, 만약 불이 나지 않는다면 열도 없을 거야. 넌 &amp;quot;하나님이 태양을 밝게 비추도록 예정했다면 태양에 불이 있든 없든 그것이 밝게 빛날거야&amp;quot;라고 말할수 있니?&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아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이유는 뭘까?&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왜냐하면 태양의 밝은 빛은 불로부터 오는 거니까.&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맞아. 그것이 내가 기도 응답에 대해 생각하는 바야. 응답은 태양의 밝기이고, 기도는 태양의 불이라고 할 수 있지. 하나님께서는 우주가 많은 부분 기도에 의해 운행되도록 설정하셨는데, 이는 마치 태양의 밝기가 대부분 불에 의해 일어나도록 설정하신 것과 같지. 이제 이해가 되니?&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런 것 같아.&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러면 이제 문제점만 생각하지 말고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하자. 구하라 그러면 주실것이요.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8%B0%EB%8F%84%EC%99%80_%EC%98%88%EC%A0%95</id>
		<title>기도와 예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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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1:57: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Prayer and Predestination}}'기도하는'과 '기도없는' 사이의 대화  기도없는: 난 네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해. 맞지?  기도하는: ...&lt;/p&gt;
&lt;hr /&gt;
&lt;div&gt;{{info|Prayer and Predestination}}'기도하는'과 '기도없는' 사이의 대화&lt;br /&gt;
&lt;br /&gt;
기도없는: 난 네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해. 맞지?&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맞아.&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러니까 너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말하는 것처럼 우연이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설계와 계획에 의해 일어난다고 믿는 거지?&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래, 난 성경이 그렇게 가르친다고 믿어.&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러면 너는 왜 기도하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난 문제가 없다고 봐. 뭐, 기도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니?&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글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명하시고 컨트롤하신다면, 그가 오래 전에 미리 정해 놓으신 일이 결국 일어나지 않을까? 안 그래?&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맞아.&lt;br /&gt;
&lt;br /&gt;
기도없는: 따라서 그 일은 네가 기도하건 하지 않건 정해진 대로 일어날거야.&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건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그 일이 일어나도록 결정해 놓으셨는지에 달려 있지. 만약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미리 정해 놓으셨다면, 그 일은 기도 없이는 일어나지 않을거야.&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잠깐만, 이거 헷갈리는데. 너 지금 기도에 대한 모든 응답들이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거니, 아니라고 말하는 거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거지. 그건 기도의 응답으로 예정되어 있어.&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래서, 만약 기도가 없다면, 그 응답도 일어나지 않는단 말이야?&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렇지.&lt;br /&gt;
&lt;br /&gt;
기도없는:그렇다면 특정 사건의 발생은 우리가 그 일이 일어나도록 기도하는 것에 모종의 조건적 연결로 관련되어 있다는 거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래. 내가 이해하기로는 여기서의 조건적 연결이란 무슨 의미인고 하면, 기도가 그 사건이 일어나는 데 있어서 정말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의미야. 따라서 기도 없이는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뜻이지.&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래 내 말이 그말이야. 그러나 특정 사건이 내 기도에 조건적 연결로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어떻게 여전히 영원히 결정되어 있고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을 수 있지?&lt;br /&gt;
&lt;br /&gt;
기도하는: 왜냐하면, 네 기도가 예정된 응답처럼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지.&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설명해 봐.&lt;br /&gt;
&lt;br /&gt;
기도하는: 이건 복잡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섭리대로 모든 사건을 정해 놓으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어떤 사건의 발생을 원인 없이 명하시지 않지. 그리고 이유 또한 사건이야. 따라서 이유 또한 미리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시지. 따라서 원인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특정 사건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없어.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정해 놓지 않으셨거든. 원인되는 사건이 발생해야 그 결과되는 사건이 발생하지.&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렇다면 네 말인즉슨, 기도에 대한 응답은 항상 여러 원인들 중 하나인 기도의 결과로 정해져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응답을 단지 그 원인의 결과로서 예정하셨다는 거네.&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맞아. 그리고 원인과 효과 모두 함께 정하여졌기 때문에, 원인 없이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어.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인과 동떨어지게 원인 없는 결과만을 정해 놓지 않으시거든.&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예를 좀 들어 줄 수 있겠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물론이지.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총상에 의해 죽도록 예정해 놓으셨다면,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다면 난 죽지 않을 거야. 만약 하나님께서 내가 수술로 회복된다고 예정해 놓으셨다면, 수술이 없다면 난 회복되지 않을거야. 만약 하나님께서 보일러 화재로 인한 열로 우리 집을 가득 채우도록 예정해 놓으셨다면, 만약 불이 나지 않는다면 열도 없을 거야. 넌 &amp;quot;하나님이 태양을 밝게 비추도록 예정했다면 태양에 불이 있든 없든 그것이 밝게 빛날거야&amp;quot;라고 말할수 있니?&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아니.&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이유는 뭘까?&lt;br /&gt;
&lt;br /&gt;
기도없는: 왜냐하면 태양의 밝은 빛은 불로부터 오는 거니까.&lt;br /&gt;
&lt;br /&gt;
기도하는: 맞아. 그것이 내가 기도 응답에 대해 생각하는 바야. 응답은 태양의 밝기이고, 기도는 태양의 불이라고 할 수 있지. 하나님께서는 우주가 많은 부분 기도에 의해 운행되도록 설정하셨는데, 이는 마치 태양의 밝기가 대부분 불에 의해 일어나도록 설정하신 것과 같지. 이제 이해가 되니?&lt;br /&gt;
&lt;br /&gt;
기도없는: 그런 것 같아.&lt;br /&gt;
&lt;br /&gt;
기도하는: 그러면 이제 문제점만 생각하지 말고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하자. 구하라 그러면 주실것이요.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7%AC%EC%84%B1%EB%93%A4%EC%97%90%EA%B2%8C_%EC%9E%88%EC%96%B4_%EB%AA%B8,_%EC%9E%90%EC%95%84,_%EA%B7%B8%EB%A6%AC%EA%B3%A0_%ED%95%98%EB%82%98%EB%8B%98%EC%9D%98_%EC%9D%98%EB%AF%B8</id>
		<title>여성들에게 있어 몸, 자아, 그리고 하나님의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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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여성들에게 있어 몸, 자아, 그리고 하나님의 의미’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Her Body, Her Self, and Her God}}10월 23일자 미니애폴리스 스타-트리뷴에는 조앤 브룸버그의 신간 서적 바디 프로젝트(Body Project)에 대한 마리 맥카티의 서평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100'''년 전 여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현재의 여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의 차이점에 대한 책입니다. 작가는 '''18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사춘기 소녀들의 일기장을 분석하였습니다. 논평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의 결론은 &amp;quot;'''19'''세기와 '''20'''세기 초에 소녀들의 일기는 '선한 행실'과 인성을 완벽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1990'''년대의 일기들은 '좋은 외모'와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amp;quot; &lt;br /&gt;
&lt;br /&gt;
예를 들어, '''1892'''년의 한 일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amp;quot;다짐했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기로. 열심히 일하기로. 말과 행동에 절제하기로. 품위 있도록. 다른 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기로.&amp;quot; '''1982'''년도의 일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이렇습니다: &amp;quot;내가 가지고 있는 돈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나는 내 자신을 가꿀 것이다. 나는 살을 뺄 것이고, 새로운 렌즈를 살 것이다. 머리는 이미 새로 했고, 좋은 화장품, 새 옷과 악세사리들을 샀다.&amp;quot; &lt;br /&gt;
&lt;br /&gt;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이 '''1892'''년으로부터 '''1982'''년에 이르는 기간에 일어난 이 변화들의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변화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서 여성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정확히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초점이 &amp;quot;선한 행실&amp;quot;에서 &amp;quot;좋은 외모&amp;quot;로 변화된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2:9-10''')&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당신의 치장이 그저 외면적이기만 하면 안됩니다—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사라의] 딸이 된 것이니라.(베드로전서 '''3:3-4, 6''')&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문제에 대한 작가 브룸버그의 진단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amp;quot;오늘날, 많은 어린 소녀들이 자신들의 몸의 라인에 관해 걱정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궁극적인 것이 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amp;quot;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가의 말에 의하면 꼭 몸매 말고도 자신에 대한 궁극적 표현이 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있는 것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자신이 시작점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듯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amp;quot;자신의 궁극적 표현&amp;quot;을 찾는 일이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성경은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진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시작점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위에 인용한 베드로전서 3장에서 생략한 구절이 말하기를, &amp;quot;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amp;quot; (5절). 성경에서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다루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amp;quot;하나님께 소망&amp;quot;을 둡니까 아니면 남성들의 인정에 소망을 둡니까? 이것이 &amp;quot;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않는&amp;quot; 핵심입니다(6절). 이것이 거울에 집착하는 데에서 벗어나는 비결의 핵심입니다. &lt;br /&gt;
&lt;br /&gt;
여성의 삶의 성경적 목표는 자신의(&amp;quot;몸&amp;quot;도 &amp;quot;인성&amp;quot;도 아닌) 궁극적인 표현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대한 성경적인 목표는 완전히 우리를 충족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함,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경건한 부녀가 원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얼굴, 머리, 그리고 피부에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의 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성들의 갈망들 즉 아름다움과 위대함과 진리와 사랑에 대한 갈망들을 만족케 하시면서 &amp;quot;태양&amp;quot; 같이 중심에 계실 때, 그제야 비로소 음식과 옷과 운동과 화장품과 자세와 표정의 &amp;quot;행성들&amp;quot;이 제 궤도에서 안정적으로 운행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 일이 일어난다면, 다음 세대의 일기들은 아마 외모와 인성을 넘어서, 하나님의 위대함과 그의 은혜의 승리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미국 시골의 편안한 오두막집에서보다 인도 캘커타같은 곳에서 더 자주 쓰여질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7%AC%EC%84%B1%EB%93%A4%EC%97%90%EA%B2%8C_%EC%9E%88%EC%96%B4_%EB%AA%B8,_%EC%9E%90%EC%95%84,_%EA%B7%B8%EB%A6%AC%EA%B3%A0_%ED%95%98%EB%82%98%EB%8B%98%EC%9D%98_%EC%9D%98%EB%AF%B8</id>
		<title>여성들에게 있어 몸, 자아, 그리고 하나님의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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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1:55: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Her Body, Her Self, and Her God}}10월 23일자 미니애폴리스 스타-트리뷴에는 조앤 브룸버그의 신간 서적 바디 프로젝트(Body Project)에 대한 마리 ...&lt;/p&gt;
&lt;hr /&gt;
&lt;div&gt;{{info|Her Body, Her Self, and Her God}}10월 23일자 미니애폴리스 스타-트리뷴에는 조앤 브룸버그의 신간 서적 바디 프로젝트(Body Project)에 대한 마리 맥카티의 서평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100'''년 전 여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현재의 여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의 차이점에 대한 책입니다. 작가는 '''18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사춘기 소녀들의 일기장을 분석하였습니다. 논평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의 결론은 &amp;quot;'''19'''세기와 '''20'''세기 초에 소녀들의 일기는 '선한 행실'과 인성을 완벽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1990'''년대의 일기들은 '좋은 외모'와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amp;quot; &lt;br /&gt;
&lt;br /&gt;
예를 들어, '''1892'''년의 한 일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amp;quot;다짐했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기로. 열심히 일하기로. 말과 행동에 절제하기로. 품위 있도록. 다른 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기로.&amp;quot; '''1982'''년도의 일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이렇습니다: &amp;quot;내가 가지고 있는 돈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나는 내 자신을 가꿀 것이다. 나는 살을 뺄 것이고, 새로운 렌즈를 살 것이다. 머리는 이미 새로 했고, 좋은 화장품, 새 옷과 악세사리들을 샀다.&amp;quot; &lt;br /&gt;
&lt;br /&gt;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이 '''1892'''년으로부터 '''1982'''년에 이르는 기간에 일어난 이 변화들의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변화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서 여성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정확히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초점이 &amp;quot;선한 행실&amp;quot;에서 &amp;quot;좋은 외모&amp;quot;로 변화된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2:9-10''')&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당신의 치장이 그저 외면적이기만 하면 안됩니다—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사라의] 딸이 된 것이니라.(베드로전서 '''3:3-4, 6''')&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문제에 대한 작가 브룸버그의 진단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amp;quot;오늘날, 많은 어린 소녀들이 자신들의 몸의 라인에 관해 걱정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궁극적인 것이 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amp;quot;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가의 말에 의하면 꼭 몸매 말고도 자신에 대한 궁극적 표현이 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있는 것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자신이 시작점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듯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amp;quot;자신의 궁극적 표현&amp;quot;을 찾는 일이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성경은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진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시작점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위에 인용한 베드로전서 3장에서 생략한 구절이 말하기를, &amp;quot;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amp;quot; (5절). 성경에서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다루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amp;quot;하나님께 소망&amp;quot;을 둡니까 아니면 남성들의 인정에 소망을 둡니까? 이것이 &amp;quot;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않는&amp;quot; 핵심입니다(6절). 이것이 거울에 집착하는 데에서 벗어나는 비결의 핵심입니다. &lt;br /&gt;
&lt;br /&gt;
여성의 삶의 성경적 목표는 자신의(&amp;quot;몸&amp;quot;도 &amp;quot;인성&amp;quot;도 아닌) 궁극적인 표현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대한 성경적인 목표는 완전히 우리를 충족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함,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경건한 부녀가 원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얼굴, 머리, 그리고 피부에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의 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성들의 갈망들 즉 아름다움과 위대함과 진리와 사랑에 대한 갈망들을 만족케 하시면서 &amp;quot;태양&amp;quot; 같이 중심에 계실 때, 그제야 비로소 음식과 옷과 운동과 화장품과 자세와 표정의 &amp;quot;행성들&amp;quot;이 제 궤도에서 안정적으로 운행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 일이 일어난다면, 다음 세대의 일기들은 아마 외모와 인성을 넘어서, 하나님의 위대함과 그의 은혜의 승리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미국 시골의 편안한 오두막집에서보다 인도 캘커타같은 곳에서 더 자주 쓰여질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82%B4%EA%B0%80_%EB%B0%B0%EC%9A%B4_%EA%B2%83%EB%93%A4</id>
		<title>내가 배운 것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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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1:46: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내가 배운 것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ings I Have Learned}}3월 6일에 부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저는 아버지께서 남긴 기록들을 훑어 보고 있습니다. 그 때 &amp;quot;내가 배운 것들&amp;quot;이라 는 제목 아래 15개 항목의 교훈들이 적혀 있는 작은 종이를 발견했습니다. 이 모든 항목들을 아버지께서 직접 다 만드신 것은 아 니었습니다. 그 중 몇몇은 아버지께서 대학 시절에 밥 존스 시니어의 지혜를 흡수하면서 배우신 것입니다. 거기 기록된 항목들을 살펴보니,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웠 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각 항목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lt;br /&gt;
&lt;br /&gt;
'''내가 배운 것들''' &lt;br /&gt;
&lt;br /&gt;
1. &amp;amp;nbsp;올바른 길은 올바른 장소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옳은 길을 택하고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가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저의 아버지는 그릇된 수단은 올바른 목적지로 인도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를 더 긍정적 방식으로 표현해 보면 , 옳은 길 안에서 사는 것—다시 말해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지로 우리를 필연적으로 인도하는 수단입니다 . 따라서 하나님께서 저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에 대해서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을 때, 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amp;quot;아들 아, 네가 있는 그 방을 깨끗이 하고 있으렴. 그러면 하나님의 시간에 다음 방으로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란다.&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2. &amp;amp;nbsp;무엇에든지 오직 하나의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올바른 것이다. 옳게 행하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결과가 불확실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지 모 릅니다. &amp;quot;이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amp;quot; 그 때, 옳은 일을 하라는 말을 듣는 것은 무용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무엇 을 해야 할지 정확히 말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는 옳지 않은 여러 생각들을 배제하게 해 줍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3. &amp;amp;nbsp;행복은 찾는다고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의무를 행하는 도상에서 행복이라는 돌부리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가르침 아래에서 저같이 기쁨을 강조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위와 같이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주된 이유는 성경이 우리에게 우리의 기쁨을 추구하라고 반복적으로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mp;quot;주 안에 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amp;quot; &amp;quot;주 안에서 즐거워하라.&amp;quot; 제 생각에 위 구절에서 아버지께서 의미했던 바는 이렇습니 다: 1) 기쁨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 기쁨입니다. 기쁨은 그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기쁨을 추구 합니다. 단지 일반적인 것에 대한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2) 의무가 어렵고 우리가 이를 수행하면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 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행할 때 기쁨이 주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무가 기쁨과 대 조될 수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쁨은 성경적 의무이기 때문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4. &amp;amp;nbsp;성공을 향한 문은 반대라는 경첩에 의해 회전한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놀랍게도 이 말은 반대가 단지 성공에 자연적으로 뒤따르는 것 혹은 성공에 앞서 존재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성공의 문을 여는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성경적 예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의 반대는 그가 애굽에서 지도자가 되는 문을 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세금 부과는 메시야가 나사렛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문을 열었고 이를 통해 예언이 성취되었 습니다. 유다의 배신은 세상의 구속을 향한 문을 열었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5. &amp;amp;nbsp;하나님을 내 삶의 바른 위치에 둘 때 나의 삶의 다른 모든 관계들이 고쳐진다 (마 6:33).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만약 하나님이 우리 인생 천체의 빛나는 중심에 좌정하신다면, 기타 다른 모든 행성들은 올바른 궤도를 운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일그러져 버릴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6. &amp;amp;nbsp;올바른 것을 그릇된 방법으로 얻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 좋은 성적, 부, 권력, 지위같은 것을 그릇된 방법으로 얻으면 안된다. 너의 원칙들을 희생시키지 말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다시 한번 아버지는 선한 목적을 위해 나쁜 수단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말합니다. 실용주의자가 아니라 원칙을 가 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말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교회들은 원칙을 가져야 하며, 문화에 끝없이 적응하여서는 안됩니다 . 약속을 하였으면 비록 손해가 난다 하여도 이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7. &amp;amp;nbsp;최선을 다하는 것에 미달하는 것은 죄이다. [단지] 정도껏 하는 것은 잘못이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네 손에 얻은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amp;quot;(전도서 9:10).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때론 B+짜리 설교를 하게 되더라도 당신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amp;quot;최선&amp;quot;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amp;quot;최선&amp;quot;을 다한다는 것은 한 가지 일로 단편적으로 판단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는 여러 결정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많은 일들이 되지 않은 채로 남겨지고 있는 상태를 의 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amp;quot;최선&amp;quot;을 다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디테일한 일 하나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전체적으로 판 단되는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8. &amp;amp;nbsp;그리스도의 멍에를 거부하는 사람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불신자와 결혼하지 마십시오.(고전 '''7:39''') 불신자와의 모든 관계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사 랑하고 축복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물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amp;quot;멍에&amp;quot;는 우리가 어디로 갈지 다스리 거나 혹은 그들이 어디로 갈지 강요하는 그러한 연결성을 말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자기 의 의사에 의하여 믿는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9. &amp;amp;nbsp;너의 성품에서 부족한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강점으로 일하라는 조언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하 나님의 은혜의 모든 증거들로 인해 격려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은사와 은혜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하지만 당신 앞에 놓인 부족함을 보충하지 않고 계속 행한다면 당신은 우쭐해하며 자만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0. &amp;amp;nbsp;포기하지 말라. 일을 끝까지 하라. 하나님은 중도에 포기하는 자를 사용할 수 없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경고는 이렇습니다. &amp;quot;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amp;quot;(마가복음 13:13). 약속은 이렇습니다. &amp;quot;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amp;quot;(빌립보서 '''1:6''')&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1. &amp;amp;nbsp;하나님을 향한 너의 성장과 진보를 방해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잘못된 것이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이 저희 아버지가 저로 하여금 성화를 추구하도록 하는 가장 주요한 방법이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 버지는 하지 말아야 하는 목록들을 제 앞에 제시하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목록들을 가지고 있었고 , 그 목록들은 명확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로 강조한 것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데 있어서 너의 진보를 극대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수많은 어리석은 행동들, 몇몇 나쁜 행동들, 몇몇 무죄하나 무익한 행동들을 배제하게 해 주었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2. &amp;amp;nbsp;너의 증거를 말 아래에 숨겨야겠다는 심적 압박을 받게 하는 악한 동무와의 사귐을 조심하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은 당신이 입을 열어 증거하고 예수님과 의를 위해서 견디고자 하는 기꺼운 마음만 있다면 악한 사람들과의 교제권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전서 15:3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amp;quot;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 을 더럽히나니&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3. &amp;amp;nbsp;선한 것으로 충분치 않다. 무언가를 위해 선하라. 기독교의 정수는 열정없는 순결이 아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단지 금지된 것을 피하는 데에만 신경쓰면서 무엇을 행해야 되는 의무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 '회피 윤리(avoidance ethic)'에 대한 저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의와 거룩을 생각할 때 어떤 금지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만 생 각하지 말고 당신이 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서도 생각하십시오. 저희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행하지 않는 것만 신경쓰는 자 가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어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4. &amp;amp;nbsp;모든 것을 긍정하면 부정적인 효과를 낳게 된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은 선에 대한 긍정은 항상 악에 대한 부정이라는 현명한 조언입니다. 삶을 살 때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고 살 수 있 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amp;quot;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amp;quot;(로마서 12:9). 사랑하는 자들을 해치는 것을 미워하 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5. &amp;amp;nbsp;상냥한 단호함을 배워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말을 안듣는 아들 때문에 어머니가 화가 나셨을 때 전화로 아버지가 어머니께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상냥하지만 단호 하라. 제 생각에 어머니는 성공하셨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아버지의 지혜에 대해 변하지 않는 깊은 감사를 표현하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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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배운 것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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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1:46: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Things I Have Learned}}3월 6일에 부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저는 아버지께서 남긴 기록들을 훑어 보고 있습니다. 그 때 &amp;quot;내가 배운 것들&amp;quot;이라 ...&lt;/p&gt;
&lt;hr /&gt;
&lt;div&gt;{{info|Things I Have Learned}}3월 6일에 부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저는 아버지께서 남긴 기록들을 훑어 보고 있습니다. 그 때 &amp;quot;내가 배운 것들&amp;quot;이라 는 제목 아래 15개 항목의 교훈들이 적혀 있는 작은 종이를 발견했습니다. 이 모든 항목들을 아버지께서 직접 다 만드신 것은 아 니었습니다. 그 중 몇몇은 아버지께서 대학 시절에 밥 존스 시니어의 지혜를 흡수하면서 배우신 것입니다. 거기 기록된 항목들을 살펴보니,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웠 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각 항목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lt;br /&gt;
&lt;br /&gt;
'''내가 배운 것들''' &lt;br /&gt;
&lt;br /&gt;
1. &amp;amp;nbsp;올바른 길은 올바른 장소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옳은 길을 택하고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가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저의 아버지는 그릇된 수단은 올바른 목적지로 인도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를 더 긍정적 방식으로 표현해 보면 , 옳은 길 안에서 사는 것—다시 말해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지로 우리를 필연적으로 인도하는 수단입니다 . 따라서 하나님께서 저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에 대해서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을 때, 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amp;quot;아들 아, 네가 있는 그 방을 깨끗이 하고 있으렴. 그러면 하나님의 시간에 다음 방으로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란다.&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2. &amp;amp;nbsp;무엇에든지 오직 하나의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올바른 것이다. 옳게 행하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결과가 불확실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지 모 릅니다. &amp;quot;이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amp;quot; 그 때, 옳은 일을 하라는 말을 듣는 것은 무용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무엇 을 해야 할지 정확히 말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는 옳지 않은 여러 생각들을 배제하게 해 줍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3. &amp;amp;nbsp;행복은 찾는다고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의무를 행하는 도상에서 행복이라는 돌부리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가르침 아래에서 저같이 기쁨을 강조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위와 같이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주된 이유는 성경이 우리에게 우리의 기쁨을 추구하라고 반복적으로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mp;quot;주 안에 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amp;quot; &amp;quot;주 안에서 즐거워하라.&amp;quot; 제 생각에 위 구절에서 아버지께서 의미했던 바는 이렇습니 다: 1) 기쁨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 기쁨입니다. 기쁨은 그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기쁨을 추구 합니다. 단지 일반적인 것에 대한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2) 의무가 어렵고 우리가 이를 수행하면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 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행할 때 기쁨이 주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무가 기쁨과 대 조될 수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쁨은 성경적 의무이기 때문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4. &amp;amp;nbsp;성공을 향한 문은 반대라는 경첩에 의해 회전한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놀랍게도 이 말은 반대가 단지 성공에 자연적으로 뒤따르는 것 혹은 성공에 앞서 존재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성공의 문을 여는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성경적 예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의 반대는 그가 애굽에서 지도자가 되는 문을 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세금 부과는 메시야가 나사렛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문을 열었고 이를 통해 예언이 성취되었 습니다. 유다의 배신은 세상의 구속을 향한 문을 열었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5. &amp;amp;nbsp;하나님을 내 삶의 바른 위치에 둘 때 나의 삶의 다른 모든 관계들이 고쳐진다 (마 6:33).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만약 하나님이 우리 인생 천체의 빛나는 중심에 좌정하신다면, 기타 다른 모든 행성들은 올바른 궤도를 운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일그러져 버릴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6. &amp;amp;nbsp;올바른 것을 그릇된 방법으로 얻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 좋은 성적, 부, 권력, 지위같은 것을 그릇된 방법으로 얻으면 안된다. 너의 원칙들을 희생시키지 말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다시 한번 아버지는 선한 목적을 위해 나쁜 수단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말합니다. 실용주의자가 아니라 원칙을 가 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말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교회들은 원칙을 가져야 하며, 문화에 끝없이 적응하여서는 안됩니다 . 약속을 하였으면 비록 손해가 난다 하여도 이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7. &amp;amp;nbsp;최선을 다하는 것에 미달하는 것은 죄이다. [단지] 정도껏 하는 것은 잘못이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네 손에 얻은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amp;quot;(전도서 9:10).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때론 B+짜리 설교를 하게 되더라도 당신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amp;quot;최선&amp;quot;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amp;quot;최선&amp;quot;을 다한다는 것은 한 가지 일로 단편적으로 판단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는 여러 결정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많은 일들이 되지 않은 채로 남겨지고 있는 상태를 의 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amp;quot;최선&amp;quot;을 다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디테일한 일 하나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전체적으로 판 단되는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8. &amp;amp;nbsp;그리스도의 멍에를 거부하는 사람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불신자와 결혼하지 마십시오.(고전 '''7:39''') 불신자와의 모든 관계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사 랑하고 축복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물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amp;quot;멍에&amp;quot;는 우리가 어디로 갈지 다스리 거나 혹은 그들이 어디로 갈지 강요하는 그러한 연결성을 말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자기 의 의사에 의하여 믿는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9. &amp;amp;nbsp;너의 성품에서 부족한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강점으로 일하라는 조언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하 나님의 은혜의 모든 증거들로 인해 격려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은사와 은혜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하지만 당신 앞에 놓인 부족함을 보충하지 않고 계속 행한다면 당신은 우쭐해하며 자만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0. &amp;amp;nbsp;포기하지 말라. 일을 끝까지 하라. 하나님은 중도에 포기하는 자를 사용할 수 없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경고는 이렇습니다. &amp;quot;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amp;quot;(마가복음 13:13). 약속은 이렇습니다. &amp;quot;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amp;quot;(빌립보서 '''1:6''')&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1. &amp;amp;nbsp;하나님을 향한 너의 성장과 진보를 방해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잘못된 것이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이 저희 아버지가 저로 하여금 성화를 추구하도록 하는 가장 주요한 방법이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 버지는 하지 말아야 하는 목록들을 제 앞에 제시하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목록들을 가지고 있었고 , 그 목록들은 명확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로 강조한 것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데 있어서 너의 진보를 극대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수많은 어리석은 행동들, 몇몇 나쁜 행동들, 몇몇 무죄하나 무익한 행동들을 배제하게 해 주었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2. &amp;amp;nbsp;너의 증거를 말 아래에 숨겨야겠다는 심적 압박을 받게 하는 악한 동무와의 사귐을 조심하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은 당신이 입을 열어 증거하고 예수님과 의를 위해서 견디고자 하는 기꺼운 마음만 있다면 악한 사람들과의 교제권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전서 15:3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amp;quot;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 을 더럽히나니&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3. &amp;amp;nbsp;선한 것으로 충분치 않다. 무언가를 위해 선하라. 기독교의 정수는 열정없는 순결이 아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단지 금지된 것을 피하는 데에만 신경쓰면서 무엇을 행해야 되는 의무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 '회피 윤리(avoidance ethic)'에 대한 저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의와 거룩을 생각할 때 어떤 금지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만 생 각하지 말고 당신이 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서도 생각하십시오. 저희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행하지 않는 것만 신경쓰는 자 가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어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4. &amp;amp;nbsp;모든 것을 긍정하면 부정적인 효과를 낳게 된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은 선에 대한 긍정은 항상 악에 대한 부정이라는 현명한 조언입니다. 삶을 살 때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고 살 수 있 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amp;quot;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amp;quot;(로마서 12:9). 사랑하는 자들을 해치는 것을 미워하 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5. &amp;amp;nbsp;상냥한 단호함을 배워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말을 안듣는 아들 때문에 어머니가 화가 나셨을 때 전화로 아버지가 어머니께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상냥하지만 단호 하라. 제 생각에 어머니는 성공하셨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아버지의 지혜에 대해 변하지 않는 깊은 감사를 표현하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C%9D%98_%EC%98%81%EA%B4%91%EC%9D%84_%EC%9C%84%ED%95%98%EC%97%AC_%EC%98%A4%EB%A0%8C%EC%A7%80_%EC%A3%BC%EC%8A%A4%EB%A5%BC_%EB%A7%88%EC%8B%9C%EB%8A%94_%EB%B0%A9%EB%B2%95</id>
		<title>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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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1:15: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방법’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How To Drink Orange Juice to the Glory of God}}2주 전 저는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가 성경적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의미한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는 (구원하는 은혜 없이는) 모두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불신자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죄가 되며 따라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제가 이렇게 믿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고린도전서 10:31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amp;quot;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amp;quot;. 저는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amp;quot;성경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인가?&amp;quot; 답은 예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다음과 같이 침울한 결론을 내립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는 단지 해로운 행위들(살인, 절도 등의)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무시한 채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지 않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렇다면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죄악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하는 은혜 없이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제가 말한 바 의미입니다. &lt;br /&gt;
&lt;br /&gt;
어떤 분들은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질문을 하시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amp;quot;먹고 마시나요?&amp;quot; 예를 들어, 아침으로 마시는 오렌지 주스는요? &lt;br /&gt;
&lt;br /&gt;
디모데전서 '''4:3-5'''에서 한 가지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amp;quot;[어떤이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amp;quot; &lt;br /&gt;
&lt;br /&gt;
오렌지 주스는 진리를 '''믿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자들은 오렌지 주스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믿음'''의 참 마음으로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돌리는 것—을 위해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그 목적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이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들이 마시는 오렌지 주스는 &amp;quot;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집니다.&amp;quot; '''하나님의 말씀'''은 그 주스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를 마실 수 있게 하는 힘조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4:7'''; 베드로전서 '''4:11''').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겸손한 반응입니다. 말씀 안에서 이 진리를 '''믿고,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lt;br /&gt;
&lt;br /&gt;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더 많이 마시겠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amp;quot;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amp;quot;. &amp;quot;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amp;quot;(고린도전서 '''11:1''').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심지어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것조차—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의도와 소망을 담은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의 모든 행위는 하나도 남김 없이 전부 타락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행위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도록 합시다! &lt;br /&gt;
&lt;br /&gt;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푹 젖어들기를 바라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C%9D%98_%EC%98%81%EA%B4%91%EC%9D%84_%EC%9C%84%ED%95%98%EC%97%AC_%EC%98%A4%EB%A0%8C%EC%A7%80_%EC%A3%BC%EC%8A%A4%EB%A5%BC_%EB%A7%88%EC%8B%9C%EB%8A%94_%EB%B0%A9%EB%B2%95</id>
		<title>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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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1:12:4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How To Drink Orange Juice to the Glory of God}}2주 전 저는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가 성경적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의미한 것...&lt;/p&gt;
&lt;hr /&gt;
&lt;div&gt;{{info|How To Drink Orange Juice to the Glory of God}}2주 전 저는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가 성경적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의미한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는 (구원하는 은혜 없이는) 모두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불신자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죄가 되며 따라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제가 이렇게 믿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고린도전서 10:31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amp;quot;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amp;quot;. 저는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amp;quot;성경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인가?&amp;quot; 답은 예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다음과 같이 침울한 결론을 내립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는 단지 해로운 행위들(살인, 절도 등의)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무시한 채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지 않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렇다면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죄악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하는 은혜 없이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제가 말한 바 의미입니다. &lt;br /&gt;
&lt;br /&gt;
어떤 분들은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질문을 하시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amp;quot;먹고 마시나요?&amp;quot; 예를 들어, 아침으로 마시는 오렌지 주스는요? &lt;br /&gt;
&lt;br /&gt;
디모데전서 '''4:3-5'''에서 한 가지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amp;quot;[어떤이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amp;quot; &lt;br /&gt;
&lt;br /&gt;
오렌지 주스는 진리를 '''믿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자들은 오렌지 주스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믿음'''의 참 마음으로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돌리는 것—을 위해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그 목적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이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들이 마시는 오렌지 주스는 &amp;quot;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집니다.&amp;quot; '''하나님의 말씀'''은 그 주스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를 마실 수 있게 하는 힘조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4:7'''; 베드로전서 '''4:11''').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겸손한 반응입니다. 말씀 안에서 이 진리를 '''믿고,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lt;br /&gt;
&lt;br /&gt;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더 많이 마시겠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amp;quot;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amp;quot;. &amp;quot;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amp;quot;(고린도전서 '''11:1''').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심지어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것조차—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의도와 소망을 담은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의 모든 행위는 하나도 남김 없이 전부 타락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행위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도록 합시다! &lt;br /&gt;
&lt;br /&gt;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푹 젖어들기를 바라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A3%84%EC%97%90_%EB%8C%80%ED%95%9C_%EC%8A%B9%EB%A6%AC%EC%9D%98_%EC%95%BD%EC%86%8D</id>
		<title>죄에 대한 승리의 약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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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0:55: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죄에 대한 승리의 약속’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Hope-Giving Promises for Triumph over Sin}}12월 3일의 설교에서, 우리가 &amp;quot;은혜 아래&amp;quot; 있는 동안에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는(로마서 6:14) 이유들 중 하나에 대해 전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은혜 아래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소원하는 의지를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시고 이를 행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전하였습니다. 즉, &amp;quot;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amp;quot; 라고 말하는 로마서 6:17의 문맥에 근거하여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로마의 성도들이 마음으로 순종한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안에 이러한 순종을 불러 일으키신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순종을 일으키기 위해 역사하시면,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시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이는 우리가 이 땅의 삶 가운데 완벽하게 된다고(빌립보서 '''3:12'''; 고린도후서'''3:18'''; 로마서 '''7:24''') 하는 의미가 아니라, 죄가 우리 삶에서 왕 노릇하지 못하며 따라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혹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디모데후서 '''4:7''')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에(디모데전서 6:12) 죄가 확실히 패배한다는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감이 입에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합니다. 저는 &amp;quot;하나님의 주권이 당신으로 하여금 변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소망하고 바라게 만드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이 당신으로 하여금 더 이상 아무런 변화도 필요없다는 듯한 수동적인 자세를 갖게 해서는 안됩니다&amp;quot;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죄를 쫓아 버리는 데 있어 진보할 수 있으며 진보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격려를 다음의 본문 말씀들로부터 취하시기 바랍니다. &lt;br /&gt;
&lt;br /&gt;
데살로니가후서 '''1:11-12''', &amp;quot;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amp;quot;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선한 결심들을 완수할 수 있께 하셨음이 명백하게 드러날 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lt;br /&gt;
&lt;br /&gt;
히브리서 '''13:20-21''', &amp;quot;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 하나님이 &amp;quot;그리스도로 말미암아&amp;quot;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우리로 하여금 행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에, 영광을 받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lt;br /&gt;
&lt;br /&gt;
베드로전서 '''4:11''', &amp;quot;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amp;quot; 주는 자가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의 섬김에 대한 성과와 공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lt;br /&gt;
&lt;br /&gt;
갈라디아서 '''5:22-23''', &amp;quot;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amp;quot;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행동은 성령의 열매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노력의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최종적 의미에서 결과를 좌우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빌립보서 '''2:12-13'''을 보십시오. &lt;br /&gt;
&lt;br /&gt;
위의 성경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들의 순종을 친히 이끌어 내실 것이라고 예언한 구약의 새 언약에 대한 약속들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몇몇 구절들입니다. 이제 새 언약에 대한 구약의 약속들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예레미야 '''31:31-33''', &amp;quot;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amp;quot; 한때, 그 법은 외부의 돌 위에 있었으며, 우리의 반항적인 마음은 이 법에 반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그 법을 바깥에 두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을 우리 안에 두셔서 순종을 낳게 하십니다. &lt;br /&gt;
&lt;br /&gt;
신명기 '''30:6''', &amp;quot;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 . .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amp;quot; &lt;br /&gt;
&lt;br /&gt;
에스겔 '''11:19-20''', &amp;quot;내가 . . .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amp;quot; &lt;br /&gt;
&lt;br /&gt;
에스겔 '''36:26-27''', &amp;quot;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amp;quot; &amp;quot;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amp;quot;라는 강한 말에 주의하십시오. 로마서 '''6:17'''에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lt;br /&gt;
&lt;br /&gt;
예레미야 '''32:40''', &amp;quot;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amp;quot;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함 가운데 지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은혜가 우리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의 예를 보겠습니다. &amp;quot;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amp;quot; (데살로니가전서 '''3:12'''; 빌립보서 '''1:9-11'''을 보십시오). &lt;br /&gt;
&lt;br /&gt;
우리는 우리의 의지력을 이용하여 순종하여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힘차게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amp;quot;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amp;quot; (빌립보서 '''2:12-13''').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amp;quot;은혜 아래&amp;quot; 기뻐하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A3%84%EC%97%90_%EB%8C%80%ED%95%9C_%EC%8A%B9%EB%A6%AC%EC%9D%98_%EC%95%BD%EC%86%8D</id>
		<title>죄에 대한 승리의 약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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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0:54: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Hope-Giving Promises for Triumph over Sin}}12월 3일의 설교에서, 우리가 &amp;quot;은혜 아래&amp;quot; 있는 동안에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는(로마서 6:14) 이유들...&lt;/p&gt;
&lt;hr /&gt;
&lt;div&gt;{{info|Hope-Giving Promises for Triumph over Sin}}12월 3일의 설교에서, 우리가 &amp;quot;은혜 아래&amp;quot; 있는 동안에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는(로마서 6:14) 이유들 중 하나에 대해 전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은혜 아래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소원하는 의지를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시고 이를 행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전하였습니다. 즉, &amp;quot;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amp;quot; 라고 말하는 로마서 6:17의 문맥에 근거하여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로마의 성도들이 마음으로 순종한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안에 이러한 순종을 불러 일으키신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순종을 일으키기 위해 역사하시면,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시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이는 우리가 이 땅의 삶 가운데 완벽하게 된다고(빌립보서 '''3:12'''; 고린도후서'''3:18'''; 로마서 '''7:24''') 하는 의미가 아니라, 죄가 우리 삶에서 왕 노릇하지 못하며 따라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혹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디모데후서 '''4:7''')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에(디모데전서 6:12) 죄가 확실히 패배한다는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감이 입에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합니다. 저는 &amp;quot;하나님의 주권이 당신으로 하여금 변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소망하고 바라게 만드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이 당신으로 하여금 더 이상 아무런 변화도 필요없다는 듯한 수동적인 자세를 갖게 해서는 안됩니다&amp;quot;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죄를 쫓아 버리는 데 있어 진보할 수 있으며 진보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격려를 다음의 본문 말씀들로부터 취하시기 바랍니다. &lt;br /&gt;
&lt;br /&gt;
데살로니가후서 '''1:11-12''', &amp;quot;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amp;quot;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선한 결심들을 완수할 수 있께 하셨음이 명백하게 드러날 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lt;br /&gt;
&lt;br /&gt;
히브리서 '''13:20-21''', &amp;quot;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 하나님이 &amp;quot;그리스도로 말미암아&amp;quot;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우리로 하여금 행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에, 영광을 받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lt;br /&gt;
&lt;br /&gt;
베드로전서 '''4:11''', &amp;quot;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amp;quot; 주는 자가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의 섬김에 대한 성과와 공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lt;br /&gt;
&lt;br /&gt;
갈라디아서 '''5:22-23''', &amp;quot;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amp;quot;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행동은 성령의 열매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노력의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최종적 의미에서 결과를 좌우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빌립보서 '''2:12-13'''을 보십시오. &lt;br /&gt;
&lt;br /&gt;
위의 성경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들의 순종을 친히 이끌어 내실 것이라고 예언한 구약의 새 언약에 대한 약속들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몇몇 구절들입니다. 이제 새 언약에 대한 구약의 약속들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예레미야 '''31:31-33''', &amp;quot;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amp;quot; 한때, 그 법은 외부의 돌 위에 있었으며, 우리의 반항적인 마음은 이 법에 반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그 법을 바깥에 두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을 우리 안에 두셔서 순종을 낳게 하십니다. &lt;br /&gt;
&lt;br /&gt;
신명기 '''30:6''', &amp;quot;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 . .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amp;quot; &lt;br /&gt;
&lt;br /&gt;
에스겔 '''11:19-20''', &amp;quot;내가 . . .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amp;quot; &lt;br /&gt;
&lt;br /&gt;
에스겔 '''36:26-27''', &amp;quot;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amp;quot; &amp;quot;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amp;quot;라는 강한 말에 주의하십시오. 로마서 '''6:17'''에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lt;br /&gt;
&lt;br /&gt;
예레미야 '''32:40''', &amp;quot;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amp;quot;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함 가운데 지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은혜가 우리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의 예를 보겠습니다. &amp;quot;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amp;quot; (데살로니가전서 '''3:12'''; 빌립보서 '''1:9-11'''을 보십시오). &lt;br /&gt;
&lt;br /&gt;
우리는 우리의 의지력을 이용하여 순종하여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힘차게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amp;quot;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amp;quot; (빌립보서 '''2:12-13''').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amp;quot;은혜 아래&amp;quot; 기뻐하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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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몇몇에게 회개함을 주십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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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20:34: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몇몇에게 회개함을 주십니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God Desires All to Be Saved, and Grants Repentance to Some}}두 개의 본문을 나란히 놓고서, 여기서 어떠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eis epignōsin alētheias'')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amp;quot; (디모데전서 2:4).&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eis epignōsin alētheias) 하실까 하며&amp;quot; (디모데후서 2:25).&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위의 두 본문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lt;br /&gt;
&lt;br /&gt;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지만, &amp;quot;혹 회개함을 주사&amp;quot; 라고 기록되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회개함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바라시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라시는 것들 중 일부는 실행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바람은 다른 고려 사항들로 말미암아 실행하시지 않습니다 — 예를 들면 그의 지혜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충만하게 드러나는 방향으로 그를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에게 회개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몇몇 죄인들에게는 &amp;quot;혹 회개함을 주시&amp;quot;고 다른 죄인들에게는 주시지 않으시는 데에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2. &amp;quot;진리의 지식&amp;quot;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amp;quot;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amp;quot;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선물이 없으면 우리는 진리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또한 명백히 디모데전서 2:4 말씀이 의미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amp;quot;구원을 받으며 [그럼으로써] 진리를 아는 데에&amp;quot; 이르러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 눈 먼 상태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3. 따라서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는 &amp;quot;진리&amp;quot;는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인도 많은 진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인 앞에 수만 개의 진리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amp;quot;진리의 지식&amp;quot;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은 이에 대해 눈 멀어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인은 어떤 진리를 볼 수 없는 것일까요? 자연인은 복음 안에 있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amp;quot;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amp;quot; (고린도후서 '''4:4''') &lt;br /&gt;
&lt;br /&gt;
4.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amp;quot;주셔야&amp;quot;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계속 그렇게 되게 지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함(''&amp;quot;메타노이아&amp;quot;'')—복음의 진리를 보고 받을 수 있는 마음의 변화—을 &amp;quot;주시면&amp;quot; 우리는 눈이 열립니다. &lt;br /&gt;
&lt;br /&gt;
5.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불신자들을 위해 하는 우리의 기도나 우리의 전도는 그들의 구원을 위한 이 단 하나의 유일한 희망에 의하여 이끌리어 행해져야 합니다: &amp;quot;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시는 것&amp;quot;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만 그들의 영적인 죽음과 사탄적 눈 멂을 극복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므로, 우리는 이 진리 위에 우리의 기도와 증거를 붙들어야 합니다. 즉, &amp;quot;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시는 것.&amp;quot;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니 바울을 따르도록 합시다: &amp;quot;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amp;quot; (로마서 '''10:1'''). 그리고: &amp;quot;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amp;quot; (로마서 '''10:17''').&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C%9D%80_%EB%AA%A8%EB%93%A0_%EC%82%AC%EB%9E%8C%EC%9D%B4_%EA%B5%AC%EC%9B%90%EB%B0%9B%EA%B8%B0%EB%A5%BC_%EC%9B%90%ED%95%98%EC%8B%9C%EA%B3%A0,_%EB%AA%87%EB%AA%87%EC%97%90%EA%B2%8C_%ED%9A%8C%EA%B0%9C%ED%95%A8%EC%9D%84_%EC%A3%BC%EC%8B%AD%EB%8B%88%EB%8B%A4.</id>
		<title>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몇몇에게 회개함을 주십니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C%9D%80_%EB%AA%A8%EB%93%A0_%EC%82%AC%EB%9E%8C%EC%9D%B4_%EA%B5%AC%EC%9B%90%EB%B0%9B%EA%B8%B0%EB%A5%BC_%EC%9B%90%ED%95%98%EC%8B%9C%EA%B3%A0,_%EB%AA%87%EB%AA%87%EC%97%90%EA%B2%8C_%ED%9A%8C%EA%B0%9C%ED%95%A8%EC%9D%84_%EC%A3%BC%EC%8B%AD%EB%8B%88%EB%8B%A4."/>
				<updated>2013-12-05T20:34: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God Desires All to Be Saved, and Grants Repentance to Some}}두 개의 본문을 나란히 놓고서, 여기서 어떠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lt;/p&gt;
&lt;hr /&gt;
&lt;div&gt;{{info|God Desires All to Be Saved, and Grants Repentance to Some}}두 개의 본문을 나란히 놓고서, 여기서 어떠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eis epignōsin alētheias'')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amp;quot; (디모데전서 2:4).&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eis epignōsin alētheias) 하실까 하며&amp;quot; (디모데후서 2:25).&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위의 두 본문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lt;br /&gt;
&lt;br /&gt;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지만, &amp;quot;혹 회개함을 주사&amp;quot; 라고 기록되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회개함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바라시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라시는 것들 중 일부는 실행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바람은 다른 고려 사항들로 말미암아 실행하시지 않습니다 — 예를 들면 그의 지혜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충만하게 드러나는 방향으로 그를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에게 회개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몇몇 죄인들에게는 &amp;quot;혹 회개함을 주시&amp;quot;고 다른 죄인들에게는 주시지 않으시는 데에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2. &amp;quot;진리의 지식&amp;quot;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amp;quot;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amp;quot;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선물이 없으면 우리는 진리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또한 명백히 디모데전서 2:4 말씀이 의미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amp;quot;구원을 받으며 [그럼으로써] 진리를 아는 데에&amp;quot; 이르러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 눈 먼 상태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3. 따라서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는 &amp;quot;진리&amp;quot;는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인도 많은 진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인 앞에 수만 개의 진리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amp;quot;진리의 지식&amp;quot;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은 이에 대해 눈 멀어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인은 어떤 진리를 볼 수 없는 것일까요? 자연인은 복음 안에 있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amp;quot;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amp;quot; (고린도후서 '''4:4''') &lt;br /&gt;
&lt;br /&gt;
4.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amp;quot;주셔야&amp;quot;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계속 그렇게 되게 지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함(''&amp;quot;메타노이아&amp;quot;'')—복음의 진리를 보고 받을 수 있는 마음의 변화—을 &amp;quot;주시면&amp;quot; 우리는 눈이 열립니다. &lt;br /&gt;
&lt;br /&gt;
5.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불신자들을 위해 하는 우리의 기도나 우리의 전도는 그들의 구원을 위한 이 단 하나의 유일한 희망에 의하여 이끌리어 행해져야 합니다: &amp;quot;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시는 것&amp;quot;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만 그들의 영적인 죽음과 사탄적 눈 멂을 극복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므로, 우리는 이 진리 위에 우리의 기도와 증거를 붙들어야 합니다. 즉, &amp;quot;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시는 것.&amp;quot;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니 바울을 따르도록 합시다: &amp;quot;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amp;quot; (로마서 '''10:1'''). 그리고: &amp;quot;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amp;quot; (로마서 '''10:17''').&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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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코네티컷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예수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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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9:18: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코네티컷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예수님’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How Does Jesus Come to Newtown?}} &lt;br /&gt;
&lt;br /&gt;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히브리서 4:15) 이 세상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대량 학살 사건들을 보면,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왜 2000년 전 이 세상에 오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오셨던 것인지 그 이유 중의 일부를 보게 됩니다. 잔혹한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찢어질 때, 우리는 어떤 구주를 필요로 할까요? &lt;br /&gt;
&lt;br /&gt;
우리는 고난받으신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공포의 잔을 이미 맛보신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바로 그와 같은 구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코미디언이 아닙니다. 스포츠 스타도 아닙니다. 영화 배우도 아닙니다. 타고난 정치인도 아닙니다. 의사도 아니고, 심지어 목사도 아닙니다. 세상은 인간에 불과한 자로서는 될 수 없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였던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세상은 고난받는 주권자의 모습을 갖는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그저 고난받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이는 너무 약해서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단지 주권자로는 안됩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약하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예수님은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같은 그러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동정하는 왕으로 오셨고, 죽임당하신 정복자로 오셨고. 어린양 같은 사자. 고난받는 주권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예수님은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코네티컷의 뉴타운에 오십니다. &lt;br /&gt;
&lt;br /&gt;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신 분. (히브리서 2:10) &lt;br /&gt;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신 분. (요한복음 7:7) &lt;br /&gt;
*힘있는 자들에게 악마 취급을 당하신 분. (마태복음 9:34) &lt;br /&gt;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분. (고린도 후서 8:9) &lt;br /&gt;
*슬픔을 많이 겪고 질고를 아시는 분. (이사야 53:3) &lt;br /&gt;
*상함받으시려고 정하신 분. (이사야 53:5) &lt;br /&gt;
*인간들에게 멸시받고 버려짐을 당하신 분. (이사야 53:3) &lt;br /&gt;
*우리를 대신하여 찔림을 당하기로 예비된 분. (이사야 53:5) &lt;br /&gt;
*도살되려고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고 잠잠히 순종하신 분. (이사야 53:7) &lt;br /&gt;
*괴로움을 참으시는 분 (이사야 53:11) &lt;br /&gt;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신 분. (이사야 53:12) &lt;br /&gt;
*우리를 도우시려고 다시 살아나신 분. (로마서 14:7-9)&lt;br /&gt;
&lt;br /&gt;
코네티컷, 뉴타운에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은 고난받고 동정하는 신인(God-man),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누구도 그분이 느꼈던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그분이 사랑할 수 있는 것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그분이 구원하실 수 있는 것같이 구원할 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 리틀턴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크나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을 어떻게 돌보면 좋을지에 대한 목회적인 조언을 구하는 분들을 위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에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졌을 때 이 전에 쓴글에 덧붙여 수정하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 글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 다음의 링크에서 그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고난받는 주권자의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특사들로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며.&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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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코네티컷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예수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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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How Does Jesus Come to Newtown?}}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lt;/p&gt;
&lt;hr /&gt;
&lt;div&gt;{{info|How Does Jesus Come to Newtown?}} &lt;br /&gt;
&lt;br /&gt;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히브리서 4:15) 이 세상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대량 학살 사건들을 보면,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왜 2000년 전 이 세상에 오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오셨던 것인지 그 이유 중의 일부를 보게 됩니다. 잔혹한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찢어질 때, 우리는 어떤 구주를 필요로 할까요? &lt;br /&gt;
&lt;br /&gt;
우리는 고난받으신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공포의 잔을 이미 맛보신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바로 그와 같은 구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코미디언이 아닙니다. 스포츠 스타도 아닙니다. 영화 배우도 아닙니다. 타고난 정치인도 아닙니다. 의사도 아니고, 심지어 목사도 아닙니다. 세상은 인간에 불과한 자로서는 될 수 없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였던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세상은 고난받는 주권자의 모습을 갖는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그저 고난받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이는 너무 약해서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단지 주권자로는 안됩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약하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예수님은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같은 그러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동정하는 왕으로 오셨고, 죽임당하신 정복자로 오셨고. 어린양 같은 사자. 고난받는 주권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예수님은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코네티컷의 뉴타운에 오십니다. &lt;br /&gt;
&lt;br /&gt;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신 분. (히브리서 2:10) &lt;br /&gt;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신 분. (요한복음 7:7) &lt;br /&gt;
*힘있는 자들에게 악마 취급을 당하신 분. (마태복음 9:34) &lt;br /&gt;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분. (고린도 후서 8:9) &lt;br /&gt;
*슬픔을 많이 겪고 질고를 아시는 분. (이사야 53:3) &lt;br /&gt;
*상함받으시려고 정하신 분. (이사야 53:5) &lt;br /&gt;
*인간들에게 멸시받고 버려짐을 당하신 분. (이사야 53:3) &lt;br /&gt;
*우리를 대신하여 찔림을 당하기로 예비된 분. (이사야 53:5) &lt;br /&gt;
*도살되려고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고 잠잠히 순종하신 분. (이사야 53:7) &lt;br /&gt;
*괴로움을 참으시는 분 (이사야 53:11) &lt;br /&gt;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신 분. (이사야 53:12) &lt;br /&gt;
*우리를 도우시려고 다시 살아나신 분. (로마서 14:7-9)&lt;br /&gt;
&lt;br /&gt;
코네티컷, 뉴타운에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은 고난받고 동정하는 신인(God-man),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누구도 그분이 느꼈던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그분이 사랑할 수 있는 것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그분이 구원하실 수 있는 것같이 구원할 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 리틀턴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크나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을 어떻게 돌보면 좋을지에 대한 목회적인 조언을 구하는 분들을 위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에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졌을 때 이 전에 쓴글에 덧붙여 수정하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 글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 다음의 링크에서 그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고난받는 주권자의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특사들로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며.&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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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건 없는 사랑보다 더 큰 것을 소망하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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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9:14: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조건 없는 사랑보다 더 큰 것을 소망하기’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Hope for More Than Unconditional Love}}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소망한다면, 여러분의 소망은 대단하지만 매우 작은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의 사랑에 대한 가장 달콤한 경험이 아닙니다. 최고로 달콤한 경험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입니다: &amp;quot;내가 너를 나의 외아들과 닮게 지었으므로 너를 바라보고 너와 함께 있음이 즐거우니라. 네가 나의 영광과 함께 빛나므로 너는 나에게 기쁨이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이 달콤한 경험은 우리가 변화받아 우리의 감정과 선택과 행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조건적인 사랑의 달콤함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의 변화의 근원과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볼품 없는 삶에 개입하지도 않으실테고,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지도 않으실테고,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지도 않으실테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지도 않으실테고, 우리를 점점 예수님과 닮아가게 하지도 않으실 겁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게 하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는 멈추지 않는 변화의 과정을 가동시키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에 부응하는 영예를 얻게 해 주십니다. &lt;br /&gt;
&lt;br /&gt;
에베소서 5장 25-27절을 보면, &lt;br /&gt;
&lt;br /&gt;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무조건적인 사랑] . . .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조건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아직 믿지 않는 죄인일 때 하나님이 조건 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놀랍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궁극적인 이유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영원히 즐길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의 절정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볼 뿐만 아니라 그 영광을 반영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12). &lt;br /&gt;
&lt;br /&gt;
우리가 마지막 날에 얻을 그 영광은 하나님을 깊이 기쁘시게 합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는(데살로니가후서 1:11) 모든 과정을 끝내신 후, 우리에게 이런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2:29; 고린도전서 4:5).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이며 택하시는 사랑에 확실하게 여러분의 소망을 두십시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마십시오. 이 영광스러운 소식이 여러분을 더 큰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십시오. 즉, 하나님의 그 사랑이 여러분을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에 마땅한 자가 되게 한다는 더 큰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십시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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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건 없는 사랑보다 더 큰 것을 소망하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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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Hope for More Than Unconditional Love}}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소망한다면, 여러분의 소망은 대단하지만 매우 작은 것입니다.   하...&lt;/p&gt;
&lt;hr /&gt;
&lt;div&gt;{{info|Hope for More Than Unconditional Love}}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소망한다면, 여러분의 소망은 대단하지만 매우 작은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의 사랑에 대한 가장 달콤한 경험이 아닙니다. 최고로 달콤한 경험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입니다: &amp;quot;내가 너를 나의 외아들과 닮게 지었으므로 너를 바라보고 너와 함께 있음이 즐거우니라. 네가 나의 영광과 함께 빛나므로 너는 나에게 기쁨이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이 달콤한 경험은 우리가 변화받아 우리의 감정과 선택과 행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조건적인 사랑의 달콤함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의 변화의 근원과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볼품 없는 삶에 개입하지도 않으실테고,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지도 않으실테고,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지도 않으실테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지도 않으실테고, 우리를 점점 예수님과 닮아가게 하지도 않으실 겁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게 하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는 멈추지 않는 변화의 과정을 가동시키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에 부응하는 영예를 얻게 해 주십니다. &lt;br /&gt;
&lt;br /&gt;
에베소서 5장 25-27절을 보면, &lt;br /&gt;
&lt;br /&gt;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무조건적인 사랑] . . .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조건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아직 믿지 않는 죄인일 때 하나님이 조건 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놀랍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궁극적인 이유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영원히 즐길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의 절정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볼 뿐만 아니라 그 영광을 반영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12). &lt;br /&gt;
&lt;br /&gt;
우리가 마지막 날에 얻을 그 영광은 하나님을 깊이 기쁘시게 합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는(데살로니가후서 1:11) 모든 과정을 끝내신 후, 우리에게 이런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2:29; 고린도전서 4:5).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이며 택하시는 사랑에 확실하게 여러분의 소망을 두십시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마십시오. 이 영광스러운 소식이 여러분을 더 큰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십시오. 즉, 하나님의 그 사랑이 여러분을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에 마땅한 자가 되게 한다는 더 큰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십시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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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A%BB%98%EC%84%9C_%EC%9D%B8%EB%8F%84%ED%95%98%EC%8B%9C%EB%8A%94_%EB%84%A4_%EA%B0%80%EC%A7%80_%EB%B0%A9%EB%B2%95</id>
		<title>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네 가지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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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9:12: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네 가지 방법’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Four Ways God Leads His People}}하나님께서 적어도 네 가지 방법을 통하여 그의 뜻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들 네 가지 방법 모두 영문자 &amp;quot;D&amp;quot;로 시작합니다. &lt;br /&gt;
&lt;br /&gt;
'''1) Decree: 천명''':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명하시고 상황을 만드셔서 그가 원하시는 데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경우 우리의 의식 작용과는 무관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 것은 그들이 갇히려고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얻는 상황으로 인도되었습니다(사도행전 16:24-34). 이것은 바울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이렇게 주권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 가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명하시고 섭리하시는 인도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말할 다른 세 가지 인도하심들마저 다 포함합니다(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뜻은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amp;quot;[하나님의]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amp;quot; 욥기 42:2). 따라서, 다른 세 가지 인도보다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다른 세 가지 인도에 있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의식하면서 인도됩니다. &lt;br /&gt;
&lt;br /&gt;
'''2) Direction: 지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있는 명령과 가르침을 주심으로 인도하십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지시하십니다. 십계명이 그 한 예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지시하십니다. 또는 산상수훈에 나오는 것처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지시하십니다. 또는 서신서에 나오는 것처럼 성령 충만하라, 겸손하라, 이렇게 지시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그의 지시를 계시하십니다. &lt;br /&gt;
&lt;br /&gt;
'''3) Discernment: 분별''':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결정들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우리는 분별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즉, 우리의 특별한 상황에 성경적 진리를 영적으로 분별력 있게 적용하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분별이 우리의 결정에 있어 적용되는 방식입니다. 로마서 12:2은 이러한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amp;quot;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amp;quot; 분별을 사용하여야 하는 경우 이래라 저래라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없지만, 그의 성령께서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과 심령을 다듬어 주심으로써 결국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가장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 그리고 이웃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끌리도록 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4) Declaration: 직접 말씀하심''': 이것은 가장 흔하지 않은 하나님의 인도 방법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8:26을 보겠습니다. &amp;quot;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amp;quot; 또한 사도행전 8:29을 보겠습니다. &amp;quot;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amp;quot; &lt;br /&gt;
&lt;br /&gt;
** *&lt;br /&gt;
&lt;br /&gt;
여기서 다음의 세 가지를 주의하도록 하십시다. 첫째,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손길 안에서 안식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면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선을 이룹니다(로마서 8:28). 그러므로 이에 대한 믿음 가운데 안식하여야 합니다. 우리 삶에 닥치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한 걱정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하나님의 인도 즉 &amp;quot;지시&amp;quot;, &amp;quot;분별&amp;quot;, &amp;quot;직접 말씀하심&amp;quot;에 의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 가운데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둘째, 하나님의 섭리를 통한 인도하심은 지시, 분별, 또는 직접 말씀하심에 의한 인도와는 상반되는 일들이 발생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amp;quot;살인하지 말라&amp;quot;고 지시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의 살인적 광기에 의해 못박히는 방식으로 죽음을 당하시도록 섭리적으로 명하실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4:28). 여기에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서 금하신 것들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시는 경우들이 성경에는 참으로 여러 군데서 명백히 나옵니다.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이 각각의 인도하심 속에서 우리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있다는 확신은 우리가 이 목록의 하단에서부터 상단으로 옮겨감에 따라 상승합니다.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하나님의 직접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모든 인도하심 가운데 가장 흔하지 않은 것이며 또한 자주 자주 남용되곤 합니다. 이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확신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관련되어 있는 다른 방법들만큼 크지 않습니다. 성경적 원리에 근거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별한다는 것은 성경에 구체적 지시가 있을 때보다 확신이 덜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는 진리는 다른 모든 것들 저변에 깔려 있는 확고한 확신이 거하는 곳입니다. 그곳은 편히 안식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A%BB%98%EC%84%9C_%EC%9D%B8%EB%8F%84%ED%95%98%EC%8B%9C%EB%8A%94_%EB%84%A4_%EA%B0%80%EC%A7%80_%EB%B0%A9%EB%B2%95</id>
		<title>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네 가지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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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Four Ways God Leads His People}}하나님께서 적어도 네 가지 방법을 통하여 그의 뜻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들 네 가지 방법 모두 영문...&lt;/p&gt;
&lt;hr /&gt;
&lt;div&gt;{{info|Four Ways God Leads His People}}하나님께서 적어도 네 가지 방법을 통하여 그의 뜻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들 네 가지 방법 모두 영문자 &amp;quot;D&amp;quot;로 시작합니다. &lt;br /&gt;
&lt;br /&gt;
'''1) Decree: 천명''':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명하시고 상황을 만드셔서 그가 원하시는 데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경우 우리의 의식 작용과는 무관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 것은 그들이 갇히려고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얻는 상황으로 인도되었습니다(사도행전 16:24-34). 이것은 바울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이렇게 주권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 가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명하시고 섭리하시는 인도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말할 다른 세 가지 인도하심들마저 다 포함합니다(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뜻은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amp;quot;[하나님의]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amp;quot; 욥기 42:2). 따라서, 다른 세 가지 인도보다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다른 세 가지 인도에 있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의식하면서 인도됩니다. &lt;br /&gt;
&lt;br /&gt;
'''2) Direction: 지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있는 명령과 가르침을 주심으로 인도하십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지시하십니다. 십계명이 그 한 예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지시하십니다. 또는 산상수훈에 나오는 것처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지시하십니다. 또는 서신서에 나오는 것처럼 성령 충만하라, 겸손하라, 이렇게 지시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그의 지시를 계시하십니다. &lt;br /&gt;
&lt;br /&gt;
'''3) Discernment: 분별''':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결정들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우리는 분별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즉, 우리의 특별한 상황에 성경적 진리를 영적으로 분별력 있게 적용하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분별이 우리의 결정에 있어 적용되는 방식입니다. 로마서 12:2은 이러한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amp;quot;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amp;quot; 분별을 사용하여야 하는 경우 이래라 저래라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없지만, 그의 성령께서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과 심령을 다듬어 주심으로써 결국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가장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 그리고 이웃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끌리도록 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4) Declaration: 직접 말씀하심''': 이것은 가장 흔하지 않은 하나님의 인도 방법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8:26을 보겠습니다. &amp;quot;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amp;quot; 또한 사도행전 8:29을 보겠습니다. &amp;quot;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amp;quot; &lt;br /&gt;
&lt;br /&gt;
** *&lt;br /&gt;
&lt;br /&gt;
여기서 다음의 세 가지를 주의하도록 하십시다. 첫째,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손길 안에서 안식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면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선을 이룹니다(로마서 8:28). 그러므로 이에 대한 믿음 가운데 안식하여야 합니다. 우리 삶에 닥치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한 걱정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하나님의 인도 즉 &amp;quot;지시&amp;quot;, &amp;quot;분별&amp;quot;, &amp;quot;직접 말씀하심&amp;quot;에 의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 가운데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둘째, 하나님의 섭리를 통한 인도하심은 지시, 분별, 또는 직접 말씀하심에 의한 인도와는 상반되는 일들이 발생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amp;quot;살인하지 말라&amp;quot;고 지시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의 살인적 광기에 의해 못박히는 방식으로 죽음을 당하시도록 섭리적으로 명하실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4:28). 여기에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서 금하신 것들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시는 경우들이 성경에는 참으로 여러 군데서 명백히 나옵니다.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이 각각의 인도하심 속에서 우리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있다는 확신은 우리가 이 목록의 하단에서부터 상단으로 옮겨감에 따라 상승합니다.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하나님의 직접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모든 인도하심 가운데 가장 흔하지 않은 것이며 또한 자주 자주 남용되곤 합니다. 이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확신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관련되어 있는 다른 방법들만큼 크지 않습니다. 성경적 원리에 근거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별한다는 것은 성경에 구체적 지시가 있을 때보다 확신이 덜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는 진리는 다른 모든 것들 저변에 깔려 있는 확고한 확신이 거하는 곳입니다. 그곳은 편히 안식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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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 이교도처럼 행하지 말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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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info|Don’t Do God’s Will Like an Atheist}}리버티 대학 학생들에게 지난 주에 메시지를 전한 후, 한 통찰력 있는 학생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그러면 이타적인 행동이 가능하다거나 바람직하다고는 믿지 않으십니까? &lt;br /&gt;
&lt;br /&gt;
저는 먼저 그가 이타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가 진정 물어보는 것에 대해 답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지요. 그가 대답하기를, &amp;quot;어떠한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을 위하여 선한 행위를 하는 것&amp;quot;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대답하기를: 좋아요, 그것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간에, 나는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이 진정한 사랑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니까요. &lt;br /&gt;
&lt;br /&gt;
'''하나님이 영광받으실 때''' &lt;br /&gt;
&lt;br /&gt;
저는 그 집회의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른 일을 하되 그것이 바르기 때문에 하는 것은 이교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른 일을 하되 하나님을 위하여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고전 10:31).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생각에서 빠뜨리고도, 바른 일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된다고 말하면, 하나님은 영광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생략하고, 자체적으로 정당화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것을 하되, 그러한 행함 속에서 하나님을 더 즐거워하기 때문에 이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amp;quot;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amp;quot;(사도행전 20:35)라고 말씀하셨을 때, 복이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동기부여, 즉 복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은 물론 더 많은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인색한 자보다는 관대한 자에게 자신을 더 많이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요한복음 14:23). &lt;br /&gt;
&lt;br /&gt;
이러한 모티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보물로 삼아 그를 갈망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른 그 무엇보다 더 행복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와의 더 깊은 교통을 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갈망에 의해 동기부여됨으로써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의 동기부여'''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거짓으로 우리를 거슬러 악한 말을 할 때 기뻐하고(마태복음 5:12),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마태복음 5:44), 이는 &amp;quot;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amp;quot;고(마태복음 5:12) &amp;quot;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amp;quot;기(마태복음 5:45)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호소하시는 동기부여는 무엇입니까? 희생적인 사랑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기쁨을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amp;quot;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amp;quot;라고 동기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amp;quot;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amp;quot;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4:13-14). 다시 말하면: 너그럽게 주는 자가 되고, 이 세상에서 희생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물론 이 상급은 하나님의 유업 안의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너는 세상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로마서 4:13). &amp;quot;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amp;quot;(고린도전서 3:21). 온유한 자는 &amp;quot;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amp;quot;(마태복음 5:5)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상급은 땅의 것들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그 날에는 우상숭배의 위험이 없을 것입니다. 땅과 하늘과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언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에는 땅의 것에 대한 우리의 기쁨의 본질은 순전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기초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상급을 참으로 위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의 더 큰 충만입니다. &amp;quot;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amp;quot;(시편 16:11). &lt;br /&gt;
&lt;br /&gt;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의를 행하고 이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동기의 배후에는 이 구절에서 말씀한 &amp;quot;충만&amp;quot;과 &amp;quot;영원&amp;quot;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상 주심을 보았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였습니다. &amp;quot;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amp;quot;(히브리서 10:34). 그들은 박해 중에도 기뻐하였습니다.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명을 걸 정도로 담대하였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amp;quot;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amp;quot;(히브리서 10:36) &lt;br /&gt;
&lt;br /&gt;
따라서 다시 대답합니다: &amp;quot;어떠한 상도 바라보지 않고 타인을 위하여 선한 행위를 하는 것&amp;quot;은 비성경적이고 이교적인 관념입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반합니다. 하나님은 &amp;quot;바른 것 자체를 위하여&amp;quot; 바른 일을 행한다는 자들이 아니라 &amp;quot;하나님을 위하여&amp;quot; 바르게 행하는 자들과의 교제 안에서 더 큰 기쁨을 주십니다. 선을 행한다 하면서도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고 환영하지 안는다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상급을 환영하고 소중히 여겨 얼싸안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의 보물로 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타인을 사랑하는 기쁨'''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그 학생의 훌륭한 질문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옳다는 이유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사랑으로 경험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더 큰 기쁨을 추구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행하는 선을 사랑으로 경험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단지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가요? &lt;br /&gt;
&lt;br /&gt;
아닙니다. 그들에게 선을 행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추구하는 더 큰 기쁨 중 일부는 우리의 기쁨에 그들이 개입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의하여 더 확장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더 큰 기쁨을 위하여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더 큰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고 구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일부가 되는 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바른 것을 위하여 바른 일을 하는 것은 이러한 효과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심근경색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나이 많은 할머니 에델이라는 분을 문병하거 간다고 합시다. 그녀의 작은 팔 위에 제 손을 올려놓습니다. 그녀는 눈을 뜨고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오! 목사님, 오실 필요 없었는데요.&amp;quot; 이 때, 제가 &amp;quot;압니다. 하지만 문병오는 것은 제 의무입니다. 이는 올바른 일을 그 자체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왔습니다.&amp;quot; 이러한 대답은 에델로 하여금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하지 못합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amp;quot;압니다, 하지만 에델, 당신에게 몇 마디 격려를 하고, 주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하여 당신을 일깨우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저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amp;quot; 라고 말한다면, 에델은 결코 &amp;quot;당신은 너무 이기적이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항상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뿐이로군요&amp;quot;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amp;quot;하나님 안에서 저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amp;quot;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은 제가 이기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선을 행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더 많은 기쁨을 추구하는 것과 그녀가 그 기쁨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바로 참된 사랑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사 올바름 자체를 위하여 올바른 일을 한다는 이교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amp;quot;상 주심을 바라봄&amp;quot;으로써, &amp;quot;잠시 죄악의 낙&amp;quot;을 누리는 것을 부인하고 &amp;quot;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amp;quot; 선택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히브리서 11:25-26).&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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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 이교도처럼 행하지 말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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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9:08: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Don’t Do God’s Will Like an Atheist}}리버티 대학 학생들에게 지난 주에 메시지를 전한 후, 한 통찰력 있는 학생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lt;/p&gt;
&lt;hr /&gt;
&lt;div&gt;{{info|Don’t Do God’s Will Like an Atheist}}리버티 대학 학생들에게 지난 주에 메시지를 전한 후, 한 통찰력 있는 학생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그러면 이타적인 행동이 가능하다거나 바람직하다고는 믿지 않으십니까? &lt;br /&gt;
&lt;br /&gt;
저는 먼저 그가 이타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가 진정 물어보는 것에 대해 답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지요. 그가 대답하기를, &amp;quot;어떠한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을 위하여 선한 행위를 하는 것&amp;quot;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대답하기를: 좋아요, 그것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간에, 나는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이 진정한 사랑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니까요. &lt;br /&gt;
&lt;br /&gt;
'''하나님이 영광받으실 때''' &lt;br /&gt;
&lt;br /&gt;
저는 그 집회의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른 일을 하되 그것이 바르기 때문에 하는 것은 이교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른 일을 하되 하나님을 위하여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고전 10:31).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생각에서 빠뜨리고도, 바른 일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된다고 말하면, 하나님은 영광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생략하고, 자체적으로 정당화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것을 하되, 그러한 행함 속에서 하나님을 더 즐거워하기 때문에 이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amp;quot;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amp;quot;(사도행전 20:35)라고 말씀하셨을 때, 복이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동기부여, 즉 복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은 물론 더 많은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인색한 자보다는 관대한 자에게 자신을 더 많이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요한복음 14:23). &lt;br /&gt;
&lt;br /&gt;
이러한 모티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보물로 삼아 그를 갈망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른 그 무엇보다 더 행복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와의 더 깊은 교통을 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갈망에 의해 동기부여됨으로써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의 동기부여'''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거짓으로 우리를 거슬러 악한 말을 할 때 기뻐하고(마태복음 5:12),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마태복음 5:44), 이는 &amp;quot;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amp;quot;고(마태복음 5:12) &amp;quot;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amp;quot;기(마태복음 5:45)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호소하시는 동기부여는 무엇입니까? 희생적인 사랑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기쁨을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amp;quot;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amp;quot;라고 동기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amp;quot;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amp;quot;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4:13-14). 다시 말하면: 너그럽게 주는 자가 되고, 이 세상에서 희생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물론 이 상급은 하나님의 유업 안의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너는 세상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로마서 4:13). &amp;quot;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amp;quot;(고린도전서 3:21). 온유한 자는 &amp;quot;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amp;quot;(마태복음 5:5)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상급은 땅의 것들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그 날에는 우상숭배의 위험이 없을 것입니다. 땅과 하늘과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언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에는 땅의 것에 대한 우리의 기쁨의 본질은 순전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기초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상급을 참으로 위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의 더 큰 충만입니다. &amp;quot;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amp;quot;(시편 16:11). &lt;br /&gt;
&lt;br /&gt;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의를 행하고 이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동기의 배후에는 이 구절에서 말씀한 &amp;quot;충만&amp;quot;과 &amp;quot;영원&amp;quot;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상 주심을 보았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였습니다. &amp;quot;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amp;quot;(히브리서 10:34). 그들은 박해 중에도 기뻐하였습니다.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명을 걸 정도로 담대하였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amp;quot;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amp;quot;(히브리서 10:36) &lt;br /&gt;
&lt;br /&gt;
따라서 다시 대답합니다: &amp;quot;어떠한 상도 바라보지 않고 타인을 위하여 선한 행위를 하는 것&amp;quot;은 비성경적이고 이교적인 관념입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반합니다. 하나님은 &amp;quot;바른 것 자체를 위하여&amp;quot; 바른 일을 행한다는 자들이 아니라 &amp;quot;하나님을 위하여&amp;quot; 바르게 행하는 자들과의 교제 안에서 더 큰 기쁨을 주십니다. 선을 행한다 하면서도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고 환영하지 안는다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상급을 환영하고 소중히 여겨 얼싸안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의 보물로 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타인을 사랑하는 기쁨'''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그 학생의 훌륭한 질문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옳다는 이유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사랑으로 경험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더 큰 기쁨을 추구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행하는 선을 사랑으로 경험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단지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가요? &lt;br /&gt;
&lt;br /&gt;
아닙니다. 그들에게 선을 행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추구하는 더 큰 기쁨 중 일부는 우리의 기쁨에 그들이 개입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의하여 더 확장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더 큰 기쁨을 위하여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더 큰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고 구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일부가 되는 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바른 것을 위하여 바른 일을 하는 것은 이러한 효과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심근경색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나이 많은 할머니 에델이라는 분을 문병하거 간다고 합시다. 그녀의 작은 팔 위에 제 손을 올려놓습니다. 그녀는 눈을 뜨고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오! 목사님, 오실 필요 없었는데요.&amp;quot; 이 때, 제가 &amp;quot;압니다. 하지만 문병오는 것은 제 의무입니다. 이는 올바른 일을 그 자체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왔습니다.&amp;quot; 이러한 대답은 에델로 하여금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하지 못합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amp;quot;압니다, 하지만 에델, 당신에게 몇 마디 격려를 하고, 주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하여 당신을 일깨우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저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amp;quot; 라고 말한다면, 에델은 결코 &amp;quot;당신은 너무 이기적이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항상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뿐이로군요&amp;quot;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amp;quot;하나님 안에서 저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amp;quot;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은 제가 이기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선을 행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더 많은 기쁨을 추구하는 것과 그녀가 그 기쁨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바로 참된 사랑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사 올바름 자체를 위하여 올바른 일을 한다는 이교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amp;quot;상 주심을 바라봄&amp;quot;으로써, &amp;quot;잠시 죄악의 낙&amp;quot;을 누리는 것을 부인하고 &amp;quot;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amp;quot; 선택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히브리서 11:25-26).&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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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누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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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9:05: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누리기’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Enjoying God’s Being God}}하나님의 능력의 결과는 그가 사람의 능력에 감동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함의 결과는 그가 사람의 위대함에도 감동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쟁자들에게 나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참 좋은 소식입니다. &lt;br /&gt;
&lt;br /&gt;
시편 '''147'''편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누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짜릿한 희망의 메세지입니다. 이 시편은 &amp;quot;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amp;quot;라고 말씀합니다(4절). 이 위대한 진리는 우리의 이해를 능가합니다! &amp;quot;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amp;quot; (시편 '''139:6'''). &lt;br /&gt;
&lt;br /&gt;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부피가 지구의 '''130'''만 배가 넘는 태양이라 불리는 별의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입니다. 태양보다 백만 배나 더 밝은 별들도 있습니다. 밀키웨이이라고 불리는 우리 은하계에는 대략 천억 개의 별이 있습니다. 너비는 10만 광년입니다. (일광년은 6천억 마일입니다.) 태양은 매초 155마일을 이동하며 밀키웨이를 한 바퀴 도는 데에는 2억 년이 걸립니다. 우리 은하계 외에도 수백만 개의 다른 은하계들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시편 '''147'''편은 하나님이 별들의 수를 결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 별들의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당신이 햄스터나 강아지, 혹은 토끼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애완동물들을 잘 살펴본 후에, 특징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잘 맞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저는 지난 주일 우리가 부른 찬송에 큰 만족함으로 미소지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그의 법을 발하시매:&amp;lt;br&amp;gt; 별들은 각자의 자리에 있고, &amp;lt;br&amp;gt; 태양은 그 궤도를 따라 &amp;lt;br&amp;gt; 순종하며 빛을 비추네.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네, 저는 &amp;quot;순종하며&amp;quot;가 꼭 맞는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양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 그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태양의 이름을 지어주시고 그 할 일을 명령하셨습니다. 태양은 순종합니다. 그리고 수백경 개의 다른 별들도 순종합니다. (별들과 행성들을 이루는 물질들의 모든 분자들 안에 있는 모든 전자들도 순종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이런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편 147:10-11절이 매우 쉽게 설명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amp;lt;br&amp;gt;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amp;lt;br&amp;gt;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amp;lt;br&amp;gt;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느니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올림픽 역도 선수가 '''500'''파운드를 들어 올렸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혹은 한 과학자가 특정 분자와 다른 분자간의 상호작용을 발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능력이나 사람의 위대함에 감동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은 그가 그의 헤아릴 수 없는 능력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을 즐거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재림절 시즌에 하나님이 하나님되시고 그가 그를 기다리며(이사야 '''64:4''') 그에게 소망을 두는(시편 147:11)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로마서 8:28) 사람들을 위해 전능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진리가 우리를 감싸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그에게 구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을 위한 하나님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 대한 경외 가운데 서 있는,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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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9:04:5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Enjoying God’s Being God}}하나님의 능력의 결과는 그가 사람의 능력에 감동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함의 결과는 그...&lt;/p&gt;
&lt;hr /&gt;
&lt;div&gt;{{info|Enjoying God’s Being God}}하나님의 능력의 결과는 그가 사람의 능력에 감동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함의 결과는 그가 사람의 위대함에도 감동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쟁자들에게 나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참 좋은 소식입니다. &lt;br /&gt;
&lt;br /&gt;
시편 '''147'''편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누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짜릿한 희망의 메세지입니다. 이 시편은 &amp;quot;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amp;quot;라고 말씀합니다(4절). 이 위대한 진리는 우리의 이해를 능가합니다! &amp;quot;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amp;quot; (시편 '''139:6'''). &lt;br /&gt;
&lt;br /&gt;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부피가 지구의 '''130'''만 배가 넘는 태양이라 불리는 별의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입니다. 태양보다 백만 배나 더 밝은 별들도 있습니다. 밀키웨이이라고 불리는 우리 은하계에는 대략 천억 개의 별이 있습니다. 너비는 10만 광년입니다. (일광년은 6천억 마일입니다.) 태양은 매초 155마일을 이동하며 밀키웨이를 한 바퀴 도는 데에는 2억 년이 걸립니다. 우리 은하계 외에도 수백만 개의 다른 은하계들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시편 '''147'''편은 하나님이 별들의 수를 결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 별들의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당신이 햄스터나 강아지, 혹은 토끼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애완동물들을 잘 살펴본 후에, 특징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잘 맞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저는 지난 주일 우리가 부른 찬송에 큰 만족함으로 미소지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그의 법을 발하시매:&amp;lt;br&amp;gt; 별들은 각자의 자리에 있고, &amp;lt;br&amp;gt; 태양은 그 궤도를 따라 &amp;lt;br&amp;gt; 순종하며 빛을 비추네.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네, 저는 &amp;quot;순종하며&amp;quot;가 꼭 맞는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양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 그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태양의 이름을 지어주시고 그 할 일을 명령하셨습니다. 태양은 순종합니다. 그리고 수백경 개의 다른 별들도 순종합니다. (별들과 행성들을 이루는 물질들의 모든 분자들 안에 있는 모든 전자들도 순종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이런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편 147:10-11절이 매우 쉽게 설명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amp;lt;br&amp;gt;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amp;lt;br&amp;gt;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amp;lt;br&amp;gt;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느니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올림픽 역도 선수가 '''500'''파운드를 들어 올렸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혹은 한 과학자가 특정 분자와 다른 분자간의 상호작용을 발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능력이나 사람의 위대함에 감동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은 그가 그의 헤아릴 수 없는 능력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을 즐거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재림절 시즌에 하나님이 하나님되시고 그가 그를 기다리며(이사야 '''64:4''') 그에게 소망을 두는(시편 147:11)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로마서 8:28) 사람들을 위해 전능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진리가 우리를 감싸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그에게 구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을 위한 하나님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 대한 경외 가운데 서 있는,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8%B0%EB%8F%85%EA%B5%90%EC%A0%81_%EC%9A%A9%EA%B8%B0</id>
		<title>기독교적 용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8%B0%EB%8F%85%EA%B5%90%EC%A0%81_%EC%9A%A9%EA%B8%B0"/>
				<updated>2013-12-05T18:55: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기독교적 용기’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Christian Courage}}기독교적 용기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때문에 당신을 돕고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세상적인 대가에 상관없이 기꺼이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행동이 고통스러울 것 같으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고통은 전쟁과 구출 작전에서처럼 육체적일 수 있습니다. 또는 그 고통은 대결과 논쟁에서처럼 정신적일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용기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하고 보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저항을 만나게 될거라고 약속하셨습니다: &amp;quot;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amp;quot; (마태복음 24:9). 바울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진리에 충실함이 저항에 부딪치리라 경고하셨습니다: &amp;quot;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amp;quot; (사도행전 20:29-30; 또한 디모데후서 '''4:3-4''' 를 보라). &lt;br /&gt;
&lt;br /&gt;
따라서, 진실된 복음 전도와 진실된 가르침은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복음 전도와 가르침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말하기 안전한 진리만 말하는 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lt;br /&gt;
&lt;br /&gt;
만약 내가 세상과 사탄이 그 순간에 공격하고 있는 바로 그 조그만 점을 제외한 하나님의 진리의 모든 부분을 가장 큰 목소리로 가장 명확한 설명으로 고백한다면, 아무리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고백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투가 일어나는 곳에 군인의 충성심이 드러납니다, 만약 그가 그 순간에 물러선다면 그 외의 모든 전쟁터에서 견고하였던 것이 단순한 도주와 불명예일 뿐입니다. (파커 T 윌리암슨 저 '견고히 서서: 논쟁시에 기독교 신앙을 되찾으며' [펜실베니아 주 스프링필드: PLC 출판, 1996], p.5에서 인용) &lt;br /&gt;
&lt;br /&gt;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이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지침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lt;br /&gt;
&lt;br /&gt;
'''죄의 사유와 의롭게됨으로부터''' - &amp;quot;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amp;quot; (잠언 28:1). &amp;quot;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amp;quot; (마태복음 9:2). &lt;br /&gt;
&lt;br /&gt;
'''하나님을 믿고 바람으로부터''' - &amp;quot;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amp;quot; (시편 31:24; 또한 고린도후서 3:12을 보라). &lt;br /&gt;
&lt;br /&gt;
'''성령 충만함으로부터''' - &amp;quot;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amp;quot; (사도행전 4:31).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 &amp;quot;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amp;quot; (여호수아 1:9).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하는 이는 적보다 강한 것을 앎으로부터''' - &amp;quot;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하라 . . .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amp;quot; (역대하 32:7-8). &lt;br /&gt;
&lt;br /&gt;
'''하나님이 전쟁의 주권자이심을 확신함으로부터''' - &amp;quot;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amp;quot; (사무엘하 10:12). &lt;br /&gt;
&lt;br /&gt;
'''기도를 통하여 '''- &amp;quot;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amp;quot; (시편 138:3; 또한 에베소서 6:19-20을 보라). &lt;br /&gt;
&lt;br /&gt;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로부터''' - &amp;quot;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amp;quot; (빌립보서 1:14).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견고히 서기를 바라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8%B0%EB%8F%85%EA%B5%90%EC%A0%81_%EC%9A%A9%EA%B8%B0</id>
		<title>기독교적 용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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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8:55: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Christian Courage}}기독교적 용기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때문에 당신을 돕고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세상적인 대가에 상관없이 기...&lt;/p&gt;
&lt;hr /&gt;
&lt;div&gt;{{info|Christian Courage}}기독교적 용기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때문에 당신을 돕고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세상적인 대가에 상관없이 기꺼이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행동이 고통스러울 것 같으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고통은 전쟁과 구출 작전에서처럼 육체적일 수 있습니다. 또는 그 고통은 대결과 논쟁에서처럼 정신적일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용기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하고 보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저항을 만나게 될거라고 약속하셨습니다: &amp;quot;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amp;quot; (마태복음 24:9). 바울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진리에 충실함이 저항에 부딪치리라 경고하셨습니다: &amp;quot;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amp;quot; (사도행전 20:29-30; 또한 디모데후서 '''4:3-4''' 를 보라). &lt;br /&gt;
&lt;br /&gt;
따라서, 진실된 복음 전도와 진실된 가르침은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복음 전도와 가르침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말하기 안전한 진리만 말하는 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lt;br /&gt;
&lt;br /&gt;
만약 내가 세상과 사탄이 그 순간에 공격하고 있는 바로 그 조그만 점을 제외한 하나님의 진리의 모든 부분을 가장 큰 목소리로 가장 명확한 설명으로 고백한다면, 아무리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고백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투가 일어나는 곳에 군인의 충성심이 드러납니다, 만약 그가 그 순간에 물러선다면 그 외의 모든 전쟁터에서 견고하였던 것이 단순한 도주와 불명예일 뿐입니다. (파커 T 윌리암슨 저 '견고히 서서: 논쟁시에 기독교 신앙을 되찾으며' [펜실베니아 주 스프링필드: PLC 출판, 1996], p.5에서 인용) &lt;br /&gt;
&lt;br /&gt;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이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지침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lt;br /&gt;
&lt;br /&gt;
'''죄의 사유와 의롭게됨으로부터''' - &amp;quot;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amp;quot; (잠언 28:1). &amp;quot;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amp;quot; (마태복음 9:2). &lt;br /&gt;
&lt;br /&gt;
'''하나님을 믿고 바람으로부터''' - &amp;quot;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amp;quot; (시편 31:24; 또한 고린도후서 3:12을 보라). &lt;br /&gt;
&lt;br /&gt;
'''성령 충만함으로부터''' - &amp;quot;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amp;quot; (사도행전 4:31).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 &amp;quot;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amp;quot; (여호수아 1:9).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하는 이는 적보다 강한 것을 앎으로부터''' - &amp;quot;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하라 . . .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amp;quot; (역대하 32:7-8). &lt;br /&gt;
&lt;br /&gt;
'''하나님이 전쟁의 주권자이심을 확신함으로부터''' - &amp;quot;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amp;quot; (사무엘하 10:12). &lt;br /&gt;
&lt;br /&gt;
'''기도를 통하여 '''- &amp;quot;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amp;quot; (시편 138:3; 또한 에베소서 6:19-20을 보라). &lt;br /&gt;
&lt;br /&gt;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로부터''' - &amp;quot;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amp;quot; (빌립보서 1:14).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견고히 서기를 바라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82%AC%EB%9E%8C%EB%93%A4%EC%9D%84_%EB%B3%80%ED%99%94%EC%8B%9C%ED%82%A4%EB%8A%94_%EA%B2%83%EC%9D%80_%EC%B1%85%EC%9D%B4_%EC%95%84%EB%8B%8C,_%EB%8B%A8%EB%9D%BD%EC%9E%85%EB%8B%88%EB%8B%A4.</id>
		<title>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책이 아닌, 단락입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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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8:51: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책이 아닌, 단락입니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Books Don’t Change People, Paragraphs Do}}저는 종종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락—가끔은 문장—이 변화시킨다고 말했습니다. &lt;br /&gt;
&lt;br /&gt;
책을 통해서 단락을 읽게 되고, 종종 책 전체의 문맥에 따라 단락이 특정한 힘을 얻게 되기 때문에, 위와 같이 말하는 것은 어쩌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요점은 이것입니다: 다른 모든 부분은 잊어버려도 한 문장 또는 한 단락이 마음 속에 강력하게 각인되고 그 영향은 매우 클 수도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제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 두 권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책들의 핵심 단락들과 교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외의 나머지 내용들은 아주 오랫동안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제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지금껏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도.) &lt;br /&gt;
&lt;br /&gt;
'''1.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lt;br /&gt;
&lt;br /&gt;
성경 이외에 이 책은 어쩌면 제가 읽은 책들 중에서 제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일 것입니다. 그 책은 신학교 학생 시절 '''성경의 통일성'''이라는 강좌의 강의 계획서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책을 접한 이후 그 책의 영향력은 제게 있어 뗄래야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족시킨 거대한 진리 두 개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의 궁극적 목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모든 것은 짧은 한 구절의 어구, &amp;quot;하나님의 영광&amp;quot;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예일대 출판부,제8권, 526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 책을 통해 성경 말씀은 마치 산사태와 같이 전해지고 있었으며, 이 책은 제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확신들 중의 하나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의 삶은 필연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피조물이 하나님을 알고, 높이며,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되며 또한 인식된다. 하나님의 충만은 수용되기도 하며 되돌려지기도 한다. 여기에 '''발산'''과 '''환원'''이 모두 존재한다. 그 광채는 피조물에게 비추어지고, 그 빛의 근원으로 다시 반사된다. 영광의 빛 줄기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이 빛 줄기들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며, 다시 그 근원되는 분께로 되돌려진다. 따라서 그 전부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일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 되신다. (예일대 출판부, 제8권, 531 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 단락은 제게 그저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그려놓은 것 같이 저를 압도하였습니다. 로마서 '''11:36''' &amp;quot;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 을 분명하게 드러낸 메아리같은 마지막 구절은 충격에 휩싸인 저를 더욱 고무시켰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삶에 영향을 미친 주된 충격은 바로 다음의 문장입니다: &amp;quot;피조물이 하나님을 알고, 높이며,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되며 또한 인식된다.&amp;quot;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amp;quot;피조물이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된다.&amp;quot; 제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됩니다. 또는 에드워즈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amp;quot; 피조물의 행복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있다. 이에 의해 또한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신다.&amp;quot; (예일대 출판부, 제 8권, 442쪽.)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극히 기뻐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그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면, 이제 모든 것은 달라집니다. &lt;br /&gt;
&lt;br /&gt;
이는 제 삶에 있어 줄기차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우리 안에서 가장 영광받으신다.''' &lt;br /&gt;
&lt;br /&gt;
'''2. 의지의 자유''' &lt;br /&gt;
&lt;br /&gt;
이 책은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책입니다. 그 논증의 광범위함과 엄격함 때문에 이는 제가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많은 생각과 노력을 요구하는 책들 중 하나입니다. 데이비드 웰즈는 이 책을 분수령 같은 책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이 책의 주장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삶의 모든 물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결정될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는 이 책은 저항할 수 없게 구구절절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그 책에서 잊을 수 없는 요약 문장이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인간을 도덕적 행위자로 대하시는 것, 인간을 하나님의 명령과 조언과 부름과 경고와 훈계와 약속과 위협과 보상과 형벌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것은, 그것이 적극적 개입이든 허용이든 섭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전 우주에 걸친 모든 종류의 모든 사건들을 뜻대로 결정하시는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예일대 출판부, 제1권 431 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모든 사건들을 그의 대권 하에서 통치하십니다, 이에는 저의 의지의 행동들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 속에서도 제게는 여전히 보상과 벌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나의 책임은 양립합니다. 이 사실이 갖는 의미는 매우 방대합니다. &lt;br /&gt;
&lt;br /&gt;
이 부분을 연구하면서 제게 가장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자연적''' 무능력과 '''도덕적''' 무능력에 대한 에드워즈의 대조였습니다. 중요한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의지를 발동하더라도 우리가 이를 할 수 없을 때, 이는 '''자연적'''으로 무능력하다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통상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의지 외부에 있는 것 즉 우리의 이해력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든가 몸의 일부 구성요소라든가 기타 어떠한 외적인 것 안에 결함 혹은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무능력은 이 중 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다. 도덕적 무능력은 오히려, 마음이 거룩한 방향으로 이끌리는 데 있어서의 결핍, 혹은 거룩한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이끌리는 강력한 이끌림, 의지의 행위를 유발하거나 일으키기 위한 충분한 동기들의 결핍,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맹백한 동기들의 강력함 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예일대 출판부, 제1권 , 159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데에 있어 '''자연적인''' 무능력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없을 것이지만(마치 의자에서 참으로 벗어나려고 의지를 발동하지만 이에 체인으로 감겨 있는 경우처럼),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함에 있어 '''도덕적으로''' 무능력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싫어하기에 지킬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통찰은 로마서 8:7 (&amp;quot;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amp;quot;)과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알 수도 없나니'''&amp;quot;)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했습니다 &lt;br /&gt;
&lt;br /&gt;
제 삶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지금껏 제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보고 맛볼 수 있었던 것을 돌아볼 때, 저는 제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문장들과 단락들, 그리고 그 글을 쓴 하나님께 푹 빠졌던 저자들을 허락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특히 이 경우,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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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책이 아닌, 단락입니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82%AC%EB%9E%8C%EB%93%A4%EC%9D%84_%EB%B3%80%ED%99%94%EC%8B%9C%ED%82%A4%EB%8A%94_%EA%B2%83%EC%9D%80_%EC%B1%85%EC%9D%B4_%EC%95%84%EB%8B%8C,_%EB%8B%A8%EB%9D%BD%EC%9E%85%EB%8B%88%EB%8B%A4."/>
				<updated>2013-12-05T18:50:5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Books Don’t Change People, Paragraphs Do}}저는 종종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락—가끔은 문장—이 변화시킨다고 말했습니다.   ...&lt;/p&gt;
&lt;hr /&gt;
&lt;div&gt;{{info|Books Don’t Change People, Paragraphs Do}}저는 종종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락—가끔은 문장—이 변화시킨다고 말했습니다. &lt;br /&gt;
&lt;br /&gt;
책을 통해서 단락을 읽게 되고, 종종 책 전체의 문맥에 따라 단락이 특정한 힘을 얻게 되기 때문에, 위와 같이 말하는 것은 어쩌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요점은 이것입니다: 다른 모든 부분은 잊어버려도 한 문장 또는 한 단락이 마음 속에 강력하게 각인되고 그 영향은 매우 클 수도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제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 두 권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책들의 핵심 단락들과 교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외의 나머지 내용들은 아주 오랫동안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제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지금껏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도.) &lt;br /&gt;
&lt;br /&gt;
'''1.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lt;br /&gt;
&lt;br /&gt;
성경 이외에 이 책은 어쩌면 제가 읽은 책들 중에서 제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일 것입니다. 그 책은 신학교 학생 시절 '''성경의 통일성'''이라는 강좌의 강의 계획서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책을 접한 이후 그 책의 영향력은 제게 있어 뗄래야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족시킨 거대한 진리 두 개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의 궁극적 목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모든 것은 짧은 한 구절의 어구, &amp;quot;하나님의 영광&amp;quot;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예일대 출판부,제8권, 526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 책을 통해 성경 말씀은 마치 산사태와 같이 전해지고 있었으며, 이 책은 제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확신들 중의 하나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의 삶은 필연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피조물이 하나님을 알고, 높이며,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되며 또한 인식된다. 하나님의 충만은 수용되기도 하며 되돌려지기도 한다. 여기에 '''발산'''과 '''환원'''이 모두 존재한다. 그 광채는 피조물에게 비추어지고, 그 빛의 근원으로 다시 반사된다. 영광의 빛 줄기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이 빛 줄기들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며, 다시 그 근원되는 분께로 되돌려진다. 따라서 그 전부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일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 되신다. (예일대 출판부, 제8권, 531 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 단락은 제게 그저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그려놓은 것 같이 저를 압도하였습니다. 로마서 '''11:36''' &amp;quot;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 을 분명하게 드러낸 메아리같은 마지막 구절은 충격에 휩싸인 저를 더욱 고무시켰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삶에 영향을 미친 주된 충격은 바로 다음의 문장입니다: &amp;quot;피조물이 하나님을 알고, 높이며,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되며 또한 인식된다.&amp;quot;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amp;quot;피조물이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된다.&amp;quot; 제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됩니다. 또는 에드워즈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amp;quot; 피조물의 행복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있다. 이에 의해 또한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신다.&amp;quot; (예일대 출판부, 제 8권, 442쪽.)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극히 기뻐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그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면, 이제 모든 것은 달라집니다. &lt;br /&gt;
&lt;br /&gt;
이는 제 삶에 있어 줄기차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우리 안에서 가장 영광받으신다.''' &lt;br /&gt;
&lt;br /&gt;
'''2. 의지의 자유''' &lt;br /&gt;
&lt;br /&gt;
이 책은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책입니다. 그 논증의 광범위함과 엄격함 때문에 이는 제가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많은 생각과 노력을 요구하는 책들 중 하나입니다. 데이비드 웰즈는 이 책을 분수령 같은 책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이 책의 주장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삶의 모든 물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결정될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는 이 책은 저항할 수 없게 구구절절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그 책에서 잊을 수 없는 요약 문장이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인간을 도덕적 행위자로 대하시는 것, 인간을 하나님의 명령과 조언과 부름과 경고와 훈계와 약속과 위협과 보상과 형벌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것은, 그것이 적극적 개입이든 허용이든 섭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전 우주에 걸친 모든 종류의 모든 사건들을 뜻대로 결정하시는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예일대 출판부, 제1권 431 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모든 사건들을 그의 대권 하에서 통치하십니다, 이에는 저의 의지의 행동들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 속에서도 제게는 여전히 보상과 벌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나의 책임은 양립합니다. 이 사실이 갖는 의미는 매우 방대합니다. &lt;br /&gt;
&lt;br /&gt;
이 부분을 연구하면서 제게 가장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자연적''' 무능력과 '''도덕적''' 무능력에 대한 에드워즈의 대조였습니다. 중요한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의지를 발동하더라도 우리가 이를 할 수 없을 때, 이는 '''자연적'''으로 무능력하다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통상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의지 외부에 있는 것 즉 우리의 이해력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든가 몸의 일부 구성요소라든가 기타 어떠한 외적인 것 안에 결함 혹은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무능력은 이 중 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다. 도덕적 무능력은 오히려, 마음이 거룩한 방향으로 이끌리는 데 있어서의 결핍, 혹은 거룩한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이끌리는 강력한 이끌림, 의지의 행위를 유발하거나 일으키기 위한 충분한 동기들의 결핍,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맹백한 동기들의 강력함 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예일대 출판부, 제1권 , 159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데에 있어 '''자연적인''' 무능력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없을 것이지만(마치 의자에서 참으로 벗어나려고 의지를 발동하지만 이에 체인으로 감겨 있는 경우처럼),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함에 있어 '''도덕적으로''' 무능력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싫어하기에 지킬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통찰은 로마서 8:7 (&amp;quot;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amp;quot;)과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알 수도 없나니'''&amp;quot;)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했습니다 &lt;br /&gt;
&lt;br /&gt;
제 삶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지금껏 제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보고 맛볼 수 있었던 것을 돌아볼 때, 저는 제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문장들과 단락들, 그리고 그 글을 쓴 하나님께 푹 빠졌던 저자들을 허락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특히 이 경우,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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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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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8:20: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Boasting Only in the Cross}}테네시주 멤피스 &lt;br /&gt;
&lt;br /&gt;
갈라디아서 '''6:14'''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 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 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라디아서 '''6:14''').&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여러분의 인생이 세상에 영속적인 차이를 만들기 위하여 많은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몇 가지 위 대한 것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 그것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영속적인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마스터한 사람들이 아니라, 몇 개의 위대한 것들에 의하여 정복된 사람입니다. 여러 분의 삶이 중요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떨어뜨리는 조약돌이 물 결을 일으켜 지구 끝에 도달하는 물결이 되기를 원하며 수 세기 동안 그리 고 영원히 물결이 밀어닥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높은 IQ나 EQ를 갖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고, 잘 생기거나 부자일 필요가 없고, 좋은 집안 혹은 좋은 학교를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몇 개의 위대하고, 장엄하고, 변 하지 않고, 명백하고, 단순하고, 영광스러운 것들을 알아야 하며, 이를 통 해 불타 올라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여러분 중에는 자신의 삶이 세 상에 진정한 변화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어떤 위대한 것을 위하여 영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사람들이 여 러분을 좋아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단지 여러분을 좋아하면, 여러분은 만족됩니다. 여러분이 좋은 직업, 좋은 아내, 몇 명의 좋은 아이들, 멋진 차, 긴 휴가, 몇 명의 좋은 친구들, 즐거운 은퇴, 빠르고 고통없는 죽음 , 그리고 지옥에 가지 않음, (하나님은 없고) 이것들만 있다면 여러분은 만족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lt;br /&gt;
&lt;br /&gt;
'''낭비되지 않는 삶에 대 한 증거들''' &lt;br /&gt;
&lt;br /&gt;
삼 주 전에 저희 교회에 루비 엘리아슨과 로라 에드워 즈가 카메룬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루비는 80살이 넘 은 노인이었습니다. 평생 독신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위대한 것에 쏟았습니다. 미전도종족,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가운데 예수 그리 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요. 한편, 로라는 거의 80살에 육박할 정도로 나이 많은 과부이자 의사였으며, 카메룬에서 루비와 함께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들은 차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사고에 의해 차량이 절벽에서 떨어져 서 사고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저는 이 사고와 관련하여 저희 교회 회중에 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비극인가요? 이 두 생명은 하나의 위대한 비전에 의하여 이끌림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멸망하고 있는 가 난한 자들을 섬기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미 은퇴할 나이에서도 20년이나 지난 시점에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플로리다 혹은 뉴 멕시코에서의 하찮은 일에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그것은 비극이 아 닙니다. 그것은 영광입니다. &lt;br /&gt;
&lt;br /&gt;
비극이 무엇인지 말하겠습니다. 리 더스 다이제스트(2000년 2월판 98쪽)에서 읽어 보겠습니다. &amp;quot;밥과 페니 는 각각 59살과 51살 때인 5년 전에 북서부 지역에서 은퇴하였습니다. 지금 그들은 플로리다주 푼타 고르다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30 피트 트롤선을 타고 배 여행을 즐기며, 소프트볼을 하고, 조개를 모으 기도 합니다.&amp;quot; 이것이 소위 아메리컨 드림입니다. 하지만 일생 - 하나뿐인 유일한 인생 - 이 끝나고 여러분의 창조주 앞에 회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장 위대한 일이란 &amp;quot;조개껍질을 수집했어요. 제가 수집한 조개껍질을 한번 보세요&amp;quot; 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비 극적 아메리칸 드림을 얼싸안으라고 설득하는 데 수십억 달러의 광고비를 쓰 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여러분더러 그러한 꿈을 사지 말라고 간청하 기 위한 40분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lt;br /&gt;
&lt;br /&gt;
여러분의 인생을 낭비하 지 마십시오. 너무나 짧고 너무나 소중한 인생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인생을 바쳤습니다. 아버지는 하나의 비전에 몰두하셨습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내내 우리 집 부엌에는 기념 액자가 걸려 있 었습니다. 지금 이 액자는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 의 48년 동안이나 이 액자를 거의 매일 보았습니다. 그 액자에 기록되어 있는 글은 이렇습니다: &amp;quot;한번뿐인 인생, 금방 지나가리.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것만 남을 것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저는 어떤 면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고 여기 와 있습니다. 저는 54살입니다. 저에게는 네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습니다. 카스텐은 27살이고, 벤자민은 24살이고, 아브라함은 20살이고, 바나바는 17살입니다. 탈리타는 4살입니다. 최근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간절한 소원은 나의 장성한 아들들이 그들의 인생을 치명 적인 성공을 잡으려고 몰두하는 데에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랑하는 아버지의 간청''' &lt;br /&gt;
&lt;br /&gt;
여러분을 아들과 딸로 간주하 고 아버지로서 간청합니다. 아마 여러분이 결코 가져보지 못한 그런 유형의 아버지로서요. 보통 아버지들은 여러분을 위해 비전을 갖고 있지 않거나, 혹 여러분을 향해 비전을 갖고 있더라도, 보통 돈이라든가 사회적 지위에 관한 비전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여러분을 향해 갖고 있는 비전이 라든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 갖고 계시는 비전은 독특할 것입니다. 여러 분을 아들과 딸로 여겨 간청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더 위대한 무언가를 위하여 그리고 영원토록 중요성을 갖는 무언가를 위하여 아낌없이 사용하십 시오. 그런 것을 원하십시오. 열정 없이 인생을 흘러보내지 마십시오. &lt;br /&gt;
&lt;br /&gt;
열정 98 수련회와 열정 99 수련회와 열정 원데이 수련회의 비 전을 제가 좋아하였던 이유 중 하나는 268선언은 명확하게 제 삶의 관심사 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언은 이사야 26:8에 기초하고 있지요. &amp;quot;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amp;quot; 여기 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습니다. 여기 그냥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열정과 갈망을 가진 영혼이 있습니다. 여기 단지 사랑받으려는 갈망, 혹은 소프트볼에 대한 갈 망이 아니라 무언가 무한히 위대하고 무한히 아름답고 무한히 가치 있고 무 한히 만족을 주는 것 -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 - 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amp;quot;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 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저는 이를 알기 위해 살며 이를 경험하기를 갈망합니다. 제 인생과 제가 섬기는 교회의 미션 선언문은 이렇습니다: &amp;quot;우리는 모든 민족의 기쁨을 위하여 만물 안의 하나님의 으뜸되심에 대한 열정을 퍼뜨리기 위하여 존재한다.&amp;quot; &lt;br /&gt;
&lt;br /&gt;
제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 다. 루이 기글리오(Louie Giglio)가 말한 것처럼(혹은 베쓰 무어(Beth Moore)가 말한 것처럼 혹은 보디 바우샴(Voddie Baucham)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열 정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하여''' &lt;br /&gt;
&lt;br /&gt;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의 열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말하고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는 여러분 의 길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속되는 차이를 만들 것입니다. 여 러분은 사도 바울과 같을 것입니다. 아무도 바울같이 자기 인생에 대하여 두 마음 없이 일편단심으로 비전을 가진 이는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 비전 을 여러 방법으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사도행 전 '''20:24''', &amp;quot;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 기지 아니하노라.&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한 가지를 중요하게 여김: 달려갈 길과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는 것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빌립 보서 '''3:7-8''', &amp;quot;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어떻게 여러분을 도와 드릴가요? 여러분 안에서 한 가지 위대한 현실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켜 여러분을 작은 꿈들에서 해방시키고 땅 끝으로 파 송하려면 오늘 이 원데이 수련회에서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제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요? &lt;br /&gt;
&lt;br /&gt;
'''핵심 성경 본문''' &lt;br /&gt;
&lt;br /&gt;
주님이 주신 것으 로 생각하는 답은: 중심에 가장 가까운 말씀 구절로 데려 가서 바울이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말씀은 갈라디아서 6:14을 보겠습니다. &amp;quot;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 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 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혹은 이것 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amp;quot;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라. 그 것은 단일한 생각이다. 단일한 목표이다. 단일한 열정이다. 오직 십자가만 을 자랑하라. 이 말씀은 &amp;quot;기뻐하라&amp;quot; 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 도의 십자가를 기뻐하라. 바울은 이것이 너의 단일한 열정이 되게 하라, 너의 단일한 자랑과 기쁨이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ONE DAY라고 불리는 이 위대한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러분이 사랑하는 한 가지 것,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한 가지 것, 여러분이 기뻐하는 한 가지 것이 되게 하십시오. &lt;br /&gt;
&lt;br /&gt;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충격적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 우선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 름 없습니다: 오직 전기 의자를 자랑하라. 오직 가스실을 기뻐하라. 오직 사형집행 주사를 기뻐하라. 너의 한 가지 자랑과 한 가지 기쁨이 교수형 밧줄이 되게 하라. 충격적인 말입니다. &amp;quot;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amp;quot; 십자가에 못 박는 처형법은 역사 상 그 어느 처형법보다 더 잔인하고 더 괴로운 사형법이었습니다. 그것은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쥐어뜯고 옷을 찢지 않고는 이 를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광경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한 가지 열정이 되게 하십시오.&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2) 두 번째는 바울이 이것이 유일 한 자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일한 기쁨. 유일한 즐거움. &amp;quot;내게는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바울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정말 다른 자랑은 없나요? 다른 기쁨은 없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 외에는 다 른 기쁨은 없나요? &lt;br /&gt;
&lt;br /&gt;
'''하지만 바울은 다른 것들을 자랑하지 않나요?''' &lt;br /&gt;
&lt;br /&gt;
바울이 &amp;quot;자랑하다&amp;quot; 혹은 &amp;quot;기뻐하다&amp;quot;라는 단어를 사용하 고 있는 다른 경우들을 살펴볼까요? 예를 들면,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로마서 5:2, &amp;quot;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로 마서 5:3, &amp;quot;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 난은 인내를.&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고린도후서 12:9, &amp;quot;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 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데살로니가전서 2:19, &amp;quot;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 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따 라서, 바울이 이 모든 것들을 자랑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바울이 &amp;quot;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아니하리니&amp;quot;라고 말한 것은 무 슨 뜻입니까? &lt;br /&gt;
&lt;br /&gt;
무슨 뜻인가요? 그냥 횡설수설 앞뒤가 안맞는 이야 기를 한 것인가요? 어떤 것을 즐거워하면서도, 말로는 그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즐거워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그렇게 말한 데에는 심오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 움, 모든 기쁨, 모든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다른 자랑은 결국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을 즐거 워하는 것은 결국 십자가를 즐거워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영광의 소망을 즐거워한다면 이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즐거워하고 있어 야 합니다. 환난이 소망을 낳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때, 이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즐거워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약함을 즐거워한다면, 혹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즐거워한다면, 이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왜 십자가만을 자 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가''' &lt;br /&gt;
&lt;br /&gt;
왜 그런가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구속된 죄인에게 있어서, 모든 좋은 것 - 실은 모든 나쁜 것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어 주시지요 - 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하여 우리를 위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떠나서는, 죄인들에게는 오직 심판 밖 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오직 정죄만이 있습니다. 그 러므로 여러분이 -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다른 모든 것을 즐거워하는 것은 결국 십자가를 즐거워하는 것이어 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모든 축복이 획득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댓가로 획득된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마땅한 만큼 그리스도 중심적이 되지 못하고 십자가에 대한 생 각으로 충만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모든 것 - 모든 좋은 것들 그 리고 하나님이 구속된 백성을 위하여 선으로 바꾸시는 모든 나쁜 것들 - 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획득된 것이라고 깨닫지 못해서 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호흡과 건강과 친구들과 기타 모든 것들을 그냥 당 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마치 이것들이 우리의 권리인 것처럼요.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가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 우리는 피조물이고 우리의 창조주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셔야 하 는 의무에 묶여 있지 않으십니다. 생명과 건강과 그 어떤 것이라도요. 그 가 주시든, 그가 취하시든, 그는 우리에게 어떠한 불의를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2)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에게 어떠한 것도 내놓으라고 주장할 수 없는 피조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 광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를 무시하였고 그에게 순종하지 않았고 그를 사랑하는 데 있어 실패하였고, 그를 신뢰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그 의 정의의 진노는 우리에 대하여 촉발되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받아 마 땅한 것은 오직 심판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숨쉬는 모든 호흡, 우리 의 심장이 뛰는 모든 시간, 해가 떠오르는 모든 날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다리로 걷는 이 모든 것들은 값없이 얻은 것이고 오직 심판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 받을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베풀어주시는 선물 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누가 이 선물들을 우리를 위하여 사 셨습니까? 누가 값을 지불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값을 지불하셨습니까? 그의 피로써 지불하셨습니다. &lt;br /&gt;
&lt;br /&gt;
'''하 나님은 왜 우리에게 선물들을 주시는가''' &lt;br /&gt;
&lt;br /&gt;
우리 삶 속에서 주어지는 모든 축복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확대하기 위하여 설계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좋은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확대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를 들면, 저희 가정의 1991년식 다지 스피릿 차량 이 지난 주에 완전히 파손되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러한 안전에 대해 저는 기뻐합니다. 그러한 안전을 영광스러워 합니다. 하 지만 왜 아무도 다치지 않은 걸까요? 우리 중 아무도 그러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대도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는 죄인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러한 선물을 받게 된 것일까요?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 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치워 버리셨기 때문입 니다. 우리는 그러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우 리의 유익을 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한 은혜를 받 을 자격이 전혀 없었지요. 따라서 제가 우리의 안전을 기뻐할 때, 저는 그 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보험회사는 차량 파손에 대해서 $2,800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그 돈 을 받았고 아이오와에 가서 92년식 쉐보레 루미나를 사서 눈 속에서 그 차 를 몰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시 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저는 그렇게 넘치는 놀라운 은혜를 즐거워합니다. 차가 파손되나 , 다치지 않고 차에서 나오고, 보험금이 지불되고, 다른 차를 삽니다. 그 리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리고 감사 가운데 저는 머리를 숙이고 이 작은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베풀어 주시 는 말할 수 없는 자비를 기뻐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죄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자비는 십자가를 통하여 옵니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오직 심판만이 있습니다. 심판을 보류하시는 인내와 잠시 동안의 자비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내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이 모든 자 비는 심판을 강화하는 데에만 기여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물은 피로 사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모든 자랑은 - 그리고 모든 기쁨은 - 십자가를 자랑하 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하지 않으면서 어떠한 축 복을 기뻐한다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다르게 말하면, 십 자가의 경륜은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 스도께서 영예롭게 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 말씀, &amp;quot;그러나 내 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amp;quot; 라 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항상 확대되는 것이며 못 박 히신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의 자랑과 환희와 기쁨과 찬양이 되는 것이며 우 리 삶의 모든 선한 일 -그리고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모든 나쁜 일 - 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감사와 영예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말 씀합니다. &lt;br /&gt;
&lt;br /&gt;
'''기쁨을 위한 교육''' &lt;br /&gt;
&lt;br /&gt;
하지만 이제 질문이 있 습니다. 그러한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즉 &amp;quot;십자가에 못박히신&amp;quot;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으로 인해 영광을 받고 영화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얻으시게 할 수 있을까요? 답은 아이들과 청소년들과 성인들에게 그 와 같은 것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 하는 기쁨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교육입니다. &lt;br /&gt;
&lt;br /&gt;
이것 이 나의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침으로써 예수님께 영광 돌 리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에 의거하여 행동하고 그러한 가르침을 더 많은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여러분의 일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교육은 예수님을 기뻐하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안에서 외에는 기쁨이 없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십자가에 관한 교육 그리고 십자가 아래 있는 교 육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혹은 아마 &amp;quot;십자가 위에&amp;quot; 라는 표현을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십자가 위의 교육은 십자가를 기뻐하게 이끌 것입니 다. 무슨 뜻이냐구요? &lt;br /&gt;
&lt;br /&gt;
14절 나머지 부분을 보겠습니다. &amp;quot;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 을 대하여 그러하니라.&amp;quot;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내가 십자가 위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1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 아닌가요?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힙니 다. 세상이 나를 대하여 죽고, 나는 세상을 대하여 죽습니다. 왜요?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위에 있을 때, 우리는 십 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을 배웁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lt;br /&gt;
&lt;br /&gt;
그건 무슨 뜻입니까? 언제 그 일이 일어났습니까? 언제 여러분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그 답은 갈라디아서 2:20에 있습니다. &amp;quot;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amp;quot; 그리스도께서 죽 으셨을 때, 우리도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영광스러운 의미는 그가 죽으셨을 때 그의 소유된 그의 모든 백성도 그 안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은, 그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우리의 죽음이 됩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여 러분 중에 &amp;quot;나는 살아있지 않나요? 나는 살아있다고 느낍니다&amp;quot; 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 교육의 필요가 대두됩니다. 우리는 우리에 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배워야만 합니다. 우린는 이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 그래서 갈라디아서 2:20이나 6:14이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신 구원의 방법을 알게 되고, 마땅히 기뻐해야 할 만큼 하나님을 기뻐하게 되고, 그의 아들을 기 뻐하게 되고, 십자기를 기뻐하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갈라디아서 2:20을 다시 읽습니다. 네,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네, 우리는 살았 습니다. &amp;quot;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그래서 나는 죽었습 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왜죠? 내가 죽었기 때문에, 즉 나의 옛 사람, 반역적이고 믿지 않는 옛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따라 서, 나는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죽었던 &amp;quot;나&amp;quot;와 동일한 &amp;quot;나&amp;quot;인 것이 아 닙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amp;quot; 다시 말하면, 살아 있는 &amp;quot;나&amp;quot;는 믿음의 새로운 &amp;quot;나&amp;quot;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살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살고 있습 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lt;br /&gt;
&lt;br /&gt;
&amp;quot;이 러한 현실과 연결되는 열쇠는 무엇이죠? 이것이 어떻게 나의 것이 될 수 있나요?&amp;quot;라고 물으신다면, 그 답은 갈라디아서 2:20 안의 믿음에 관한 단어들에 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amp;quot;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amp;quot; 이것이 바로 그 연결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에 의하여 여러분을 그의 아들과 연결시키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과의 연합이 있으 며, 이를 통해 그의 죽음은 여러분의 죽음이 되고 그의 생명은 여러분의 생명이 됩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이 모든 것을 갈라디아서 '''6:14'''로 가지고 가 봅시다. &amp;quot;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 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 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철저하게 십자가 중 심적이 되는 것'''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는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 나의 모든 기쁨이 십자가에서 비롯되게 - 십자가 중심적이 될 수 있나요? 그리 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여러분도 죽었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그 죽음은 여러분의 삶에 영향 을 미쳤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바울이 말하길, 세상이 여러분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여러분이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다고 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께 신뢰를 둘 때, 세상에 대한 속박은 깨어지고, 세상의 강력한 유혹은 깨어집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대하여 시체입니다. 그리고 세 상은 여러분에 대하여 시체입니다. 긍정적 형식으로 표현하면, 15절에 따 라, 여러분은 &amp;quot;새로운 피조물&amp;quot;입니다. 옛 여러분은 죽었습니다. 새로운 여 러분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리고 믿음이 기뻐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입니다. &lt;br /&gt;
&lt;br /&gt;
여러분은 이렇게 해서 십자 가 중심적이 됩니다. 그리고 바울과 마찬가지로 &amp;quot;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나니&amp;quot;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의 보화가 아닙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의 생명이나 나의 만족이나 나의 기쁨 의 원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그 원천이십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앞에 서 말했듯이 교통 사고에서 다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보험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이에 대해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세상이 아닌가요? 여러분은 세상에 대하여 죽어 있습니까? &lt;br /&gt;
&lt;br /&gt;
교통사고에서 다치지 않은 것이나 보험금을 받은 것을 기뻐하면서도 나 는 세상에 대해 죽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랬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 상에 대하여 무엇을 느끼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부정적 감정이 든 긍정적 감정이든지요(요한1서 2:15, 디모데전서 4:3). 대신에, 세 상에 대한 모든 합법적인 기쁨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피로 산 증거가 되며, 십자가를 자랑하는 경우가 됩니다. 돈이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십 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그 돈을 주시는 분이 우리를 만족시킬 때, 우 리는 보험금을 타는 것에 대하여 죽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축복 의 광선을 죽 거슬러 올라가서 십자가 안의 원천에 도달할 때, 그 축복의 세속성은 죽고,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 되시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러한 것이 바로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에 대한 교육의 목표입니 다. 오! 그리스도의 영광과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꿈꾸고 계획을 짜고 일하고 주고 가르치고 살게 하시길 축원합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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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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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8:19: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Boasting Only in the Cross}}테네시주 멤피스   갈라디아서 '''6:14'''  &amp;lt;blockquote&amp;gt;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 에 결코 자랑...&lt;/p&gt;
&lt;hr /&gt;
&lt;div&gt;{{info|Boasting Only in the Cross}}테네시주 멤피스 &lt;br /&gt;
&lt;br /&gt;
갈라디아서 '''6:14'''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 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 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라디아서 '''6:14''').&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여러분의 인생이 세상에 영속적인 차이를 만들기 위하여 많은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몇 가지 위 대한 것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 그것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영속적인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마스터한 사람들이 아니라, 몇 개의 위대한 것들에 의하여 정복된 사람입니다. 여러 분의 삶이 중요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떨어뜨리는 조약돌이 물 결을 일으켜 지구 끝에 도달하는 물결이 되기를 원하며 수 세기 동안 그리 고 영원히 물결이 밀어닥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높은 IQ나 EQ를 갖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고, 잘 생기거나 부자일 필요가 없고, 좋은 집안 혹은 좋은 학교를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몇 개의 위대하고, 장엄하고, 변 하지 않고, 명백하고, 단순하고, 영광스러운 것들을 알아야 하며, 이를 통 해 불타 올라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여러분 중에는 자신의 삶이 세 상에 진정한 변화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어떤 위대한 것을 위하여 영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사람들이 여 러분을 좋아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단지 여러분을 좋아하면, 여러분은 만족됩니다. 여러분이 좋은 직업, 좋은 아내, 몇 명의 좋은 아이들, 멋진 차, 긴 휴가, 몇 명의 좋은 친구들, 즐거운 은퇴, 빠르고 고통없는 죽음 , 그리고 지옥에 가지 않음, (하나님은 없고) 이것들만 있다면 여러분은 만족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lt;br /&gt;
&lt;br /&gt;
'''낭비되지 않는 삶에 대 한 증거들''' &lt;br /&gt;
&lt;br /&gt;
삼 주 전에 저희 교회에 루비 엘리아슨과 로라 에드워 즈가 카메룬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루비는 80살이 넘 은 노인이었습니다. 평생 독신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위대한 것에 쏟았습니다. 미전도종족,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가운데 예수 그리 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요. 한편, 로라는 거의 80살에 육박할 정도로 나이 많은 과부이자 의사였으며, 카메룬에서 루비와 함께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들은 차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사고에 의해 차량이 절벽에서 떨어져 서 사고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저는 이 사고와 관련하여 저희 교회 회중에 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비극인가요? 이 두 생명은 하나의 위대한 비전에 의하여 이끌림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멸망하고 있는 가 난한 자들을 섬기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미 은퇴할 나이에서도 20년이나 지난 시점에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플로리다 혹은 뉴 멕시코에서의 하찮은 일에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그것은 비극이 아 닙니다. 그것은 영광입니다. &lt;br /&gt;
&lt;br /&gt;
비극이 무엇인지 말하겠습니다. 리 더스 다이제스트(2000년 2월판 98쪽)에서 읽어 보겠습니다. &amp;quot;밥과 페니 는 각각 59살과 51살 때인 5년 전에 북서부 지역에서 은퇴하였습니다. 지금 그들은 플로리다주 푼타 고르다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30 피트 트롤선을 타고 배 여행을 즐기며, 소프트볼을 하고, 조개를 모으 기도 합니다.&amp;quot; 이것이 소위 아메리컨 드림입니다. 하지만 일생 - 하나뿐인 유일한 인생 - 이 끝나고 여러분의 창조주 앞에 회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장 위대한 일이란 &amp;quot;조개껍질을 수집했어요. 제가 수집한 조개껍질을 한번 보세요&amp;quot; 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비 극적 아메리칸 드림을 얼싸안으라고 설득하는 데 수십억 달러의 광고비를 쓰 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여러분더러 그러한 꿈을 사지 말라고 간청하 기 위한 40분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lt;br /&gt;
&lt;br /&gt;
여러분의 인생을 낭비하 지 마십시오. 너무나 짧고 너무나 소중한 인생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인생을 바쳤습니다. 아버지는 하나의 비전에 몰두하셨습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내내 우리 집 부엌에는 기념 액자가 걸려 있 었습니다. 지금 이 액자는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 의 48년 동안이나 이 액자를 거의 매일 보았습니다. 그 액자에 기록되어 있는 글은 이렇습니다: &amp;quot;한번뿐인 인생, 금방 지나가리.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것만 남을 것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저는 어떤 면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고 여기 와 있습니다. 저는 54살입니다. 저에게는 네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습니다. 카스텐은 27살이고, 벤자민은 24살이고, 아브라함은 20살이고, 바나바는 17살입니다. 탈리타는 4살입니다. 최근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간절한 소원은 나의 장성한 아들들이 그들의 인생을 치명 적인 성공을 잡으려고 몰두하는 데에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랑하는 아버지의 간청''' &lt;br /&gt;
&lt;br /&gt;
여러분을 아들과 딸로 간주하 고 아버지로서 간청합니다. 아마 여러분이 결코 가져보지 못한 그런 유형의 아버지로서요. 보통 아버지들은 여러분을 위해 비전을 갖고 있지 않거나, 혹 여러분을 향해 비전을 갖고 있더라도, 보통 돈이라든가 사회적 지위에 관한 비전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여러분을 향해 갖고 있는 비전이 라든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 갖고 계시는 비전은 독특할 것입니다. 여러 분을 아들과 딸로 여겨 간청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더 위대한 무언가를 위하여 그리고 영원토록 중요성을 갖는 무언가를 위하여 아낌없이 사용하십 시오. 그런 것을 원하십시오. 열정 없이 인생을 흘러보내지 마십시오. &lt;br /&gt;
&lt;br /&gt;
열정 98 수련회와 열정 99 수련회와 열정 원데이 수련회의 비 전을 제가 좋아하였던 이유 중 하나는 268선언은 명확하게 제 삶의 관심사 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언은 이사야 26:8에 기초하고 있지요. &amp;quot;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amp;quot; 여기 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습니다. 여기 그냥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열정과 갈망을 가진 영혼이 있습니다. 여기 단지 사랑받으려는 갈망, 혹은 소프트볼에 대한 갈 망이 아니라 무언가 무한히 위대하고 무한히 아름답고 무한히 가치 있고 무 한히 만족을 주는 것 -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 - 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amp;quot;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 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저는 이를 알기 위해 살며 이를 경험하기를 갈망합니다. 제 인생과 제가 섬기는 교회의 미션 선언문은 이렇습니다: &amp;quot;우리는 모든 민족의 기쁨을 위하여 만물 안의 하나님의 으뜸되심에 대한 열정을 퍼뜨리기 위하여 존재한다.&amp;quot; &lt;br /&gt;
&lt;br /&gt;
제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 다. 루이 기글리오(Louie Giglio)가 말한 것처럼(혹은 베쓰 무어(Beth Moore)가 말한 것처럼 혹은 보디 바우샴(Voddie Baucham)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열 정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하여''' &lt;br /&gt;
&lt;br /&gt;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의 열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말하고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는 여러분 의 길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속되는 차이를 만들 것입니다. 여 러분은 사도 바울과 같을 것입니다. 아무도 바울같이 자기 인생에 대하여 두 마음 없이 일편단심으로 비전을 가진 이는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 비전 을 여러 방법으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사도행 전 '''20:24''', &amp;quot;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 기지 아니하노라.&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한 가지를 중요하게 여김: 달려갈 길과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는 것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빌립 보서 '''3:7-8''', &amp;quot;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어떻게 여러분을 도와 드릴가요? 여러분 안에서 한 가지 위대한 현실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켜 여러분을 작은 꿈들에서 해방시키고 땅 끝으로 파 송하려면 오늘 이 원데이 수련회에서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제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요? &lt;br /&gt;
&lt;br /&gt;
'''핵심 성경 본문''' &lt;br /&gt;
&lt;br /&gt;
주님이 주신 것으 로 생각하는 답은: 중심에 가장 가까운 말씀 구절로 데려 가서 바울이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말씀은 갈라디아서 6:14을 보겠습니다. &amp;quot;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 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 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혹은 이것 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amp;quot;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라. 그 것은 단일한 생각이다. 단일한 목표이다. 단일한 열정이다. 오직 십자가만 을 자랑하라. 이 말씀은 &amp;quot;기뻐하라&amp;quot; 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 도의 십자가를 기뻐하라. 바울은 이것이 너의 단일한 열정이 되게 하라, 너의 단일한 자랑과 기쁨이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ONE DAY라고 불리는 이 위대한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러분이 사랑하는 한 가지 것,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한 가지 것, 여러분이 기뻐하는 한 가지 것이 되게 하십시오. &lt;br /&gt;
&lt;br /&gt;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충격적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 우선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 름 없습니다: 오직 전기 의자를 자랑하라. 오직 가스실을 기뻐하라. 오직 사형집행 주사를 기뻐하라. 너의 한 가지 자랑과 한 가지 기쁨이 교수형 밧줄이 되게 하라. 충격적인 말입니다. &amp;quot;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amp;quot; 십자가에 못 박는 처형법은 역사 상 그 어느 처형법보다 더 잔인하고 더 괴로운 사형법이었습니다. 그것은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쥐어뜯고 옷을 찢지 않고는 이 를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광경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한 가지 열정이 되게 하십시오.&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2) 두 번째는 바울이 이것이 유일 한 자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일한 기쁨. 유일한 즐거움. &amp;quot;내게는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바울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정말 다른 자랑은 없나요? 다른 기쁨은 없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 외에는 다 른 기쁨은 없나요? &lt;br /&gt;
&lt;br /&gt;
'''하지만 바울은 다른 것들을 자랑하지 않나요?''' &lt;br /&gt;
&lt;br /&gt;
바울이 &amp;quot;자랑하다&amp;quot; 혹은 &amp;quot;기뻐하다&amp;quot;라는 단어를 사용하 고 있는 다른 경우들을 살펴볼까요? 예를 들면,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로마서 5:2, &amp;quot;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로 마서 5:3, &amp;quot;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 난은 인내를.&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고린도후서 12:9, &amp;quot;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 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데살로니가전서 2:19, &amp;quot;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 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따 라서, 바울이 이 모든 것들을 자랑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바울이 &amp;quot;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아니하리니&amp;quot;라고 말한 것은 무 슨 뜻입니까? &lt;br /&gt;
&lt;br /&gt;
무슨 뜻인가요? 그냥 횡설수설 앞뒤가 안맞는 이야 기를 한 것인가요? 어떤 것을 즐거워하면서도, 말로는 그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즐거워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그렇게 말한 데에는 심오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 움, 모든 기쁨, 모든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다른 자랑은 결국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을 즐거 워하는 것은 결국 십자가를 즐거워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영광의 소망을 즐거워한다면 이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즐거워하고 있어 야 합니다. 환난이 소망을 낳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때, 이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즐거워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약함을 즐거워한다면, 혹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즐거워한다면, 이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왜 십자가만을 자 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가''' &lt;br /&gt;
&lt;br /&gt;
왜 그런가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구속된 죄인에게 있어서, 모든 좋은 것 - 실은 모든 나쁜 것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어 주시지요 - 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하여 우리를 위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떠나서는, 죄인들에게는 오직 심판 밖 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오직 정죄만이 있습니다. 그 러므로 여러분이 -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다른 모든 것을 즐거워하는 것은 결국 십자가를 즐거워하는 것이어 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모든 축복이 획득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댓가로 획득된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마땅한 만큼 그리스도 중심적이 되지 못하고 십자가에 대한 생 각으로 충만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모든 것 - 모든 좋은 것들 그 리고 하나님이 구속된 백성을 위하여 선으로 바꾸시는 모든 나쁜 것들 - 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획득된 것이라고 깨닫지 못해서 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호흡과 건강과 친구들과 기타 모든 것들을 그냥 당 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마치 이것들이 우리의 권리인 것처럼요.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가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 우리는 피조물이고 우리의 창조주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셔야 하 는 의무에 묶여 있지 않으십니다. 생명과 건강과 그 어떤 것이라도요. 그 가 주시든, 그가 취하시든, 그는 우리에게 어떠한 불의를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2)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에게 어떠한 것도 내놓으라고 주장할 수 없는 피조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 광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를 무시하였고 그에게 순종하지 않았고 그를 사랑하는 데 있어 실패하였고, 그를 신뢰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그 의 정의의 진노는 우리에 대하여 촉발되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받아 마 땅한 것은 오직 심판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숨쉬는 모든 호흡, 우리 의 심장이 뛰는 모든 시간, 해가 떠오르는 모든 날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다리로 걷는 이 모든 것들은 값없이 얻은 것이고 오직 심판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 받을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베풀어주시는 선물 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누가 이 선물들을 우리를 위하여 사 셨습니까? 누가 값을 지불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값을 지불하셨습니까? 그의 피로써 지불하셨습니다. &lt;br /&gt;
&lt;br /&gt;
'''하 나님은 왜 우리에게 선물들을 주시는가''' &lt;br /&gt;
&lt;br /&gt;
우리 삶 속에서 주어지는 모든 축복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확대하기 위하여 설계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좋은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확대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를 들면, 저희 가정의 1991년식 다지 스피릿 차량 이 지난 주에 완전히 파손되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러한 안전에 대해 저는 기뻐합니다. 그러한 안전을 영광스러워 합니다. 하 지만 왜 아무도 다치지 않은 걸까요? 우리 중 아무도 그러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대도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는 죄인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러한 선물을 받게 된 것일까요?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 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치워 버리셨기 때문입 니다. 우리는 그러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우 리의 유익을 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한 은혜를 받 을 자격이 전혀 없었지요. 따라서 제가 우리의 안전을 기뻐할 때, 저는 그 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보험회사는 차량 파손에 대해서 $2,800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그 돈 을 받았고 아이오와에 가서 92년식 쉐보레 루미나를 사서 눈 속에서 그 차 를 몰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시 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저는 그렇게 넘치는 놀라운 은혜를 즐거워합니다. 차가 파손되나 , 다치지 않고 차에서 나오고, 보험금이 지불되고, 다른 차를 삽니다. 그 리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리고 감사 가운데 저는 머리를 숙이고 이 작은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베풀어 주시 는 말할 수 없는 자비를 기뻐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죄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자비는 십자가를 통하여 옵니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오직 심판만이 있습니다. 심판을 보류하시는 인내와 잠시 동안의 자비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내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이 모든 자 비는 심판을 강화하는 데에만 기여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물은 피로 사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모든 자랑은 - 그리고 모든 기쁨은 - 십자가를 자랑하 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하지 않으면서 어떠한 축 복을 기뻐한다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다르게 말하면, 십 자가의 경륜은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 스도께서 영예롭게 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 말씀, &amp;quot;그러나 내 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amp;quot; 라 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항상 확대되는 것이며 못 박 히신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의 자랑과 환희와 기쁨과 찬양이 되는 것이며 우 리 삶의 모든 선한 일 -그리고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모든 나쁜 일 - 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감사와 영예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말 씀합니다. &lt;br /&gt;
&lt;br /&gt;
'''기쁨을 위한 교육''' &lt;br /&gt;
&lt;br /&gt;
하지만 이제 질문이 있 습니다. 그러한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즉 &amp;quot;십자가에 못박히신&amp;quot;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으로 인해 영광을 받고 영화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얻으시게 할 수 있을까요? 답은 아이들과 청소년들과 성인들에게 그 와 같은 것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뻐 하는 기쁨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교육입니다. &lt;br /&gt;
&lt;br /&gt;
이것 이 나의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침으로써 예수님께 영광 돌 리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에 의거하여 행동하고 그러한 가르침을 더 많은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여러분의 일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교육은 예수님을 기뻐하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안에서 외에는 기쁨이 없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십자가에 관한 교육 그리고 십자가 아래 있는 교 육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혹은 아마 &amp;quot;십자가 위에&amp;quot; 라는 표현을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십자가 위의 교육은 십자가를 기뻐하게 이끌 것입니 다. 무슨 뜻이냐구요? &lt;br /&gt;
&lt;br /&gt;
14절 나머지 부분을 보겠습니다. &amp;quot;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 을 대하여 그러하니라.&amp;quot;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내가 십자가 위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1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 아닌가요?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힙니 다. 세상이 나를 대하여 죽고, 나는 세상을 대하여 죽습니다. 왜요?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위에 있을 때, 우리는 십 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을 배웁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lt;br /&gt;
&lt;br /&gt;
그건 무슨 뜻입니까? 언제 그 일이 일어났습니까? 언제 여러분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그 답은 갈라디아서 2:20에 있습니다. &amp;quot;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amp;quot; 그리스도께서 죽 으셨을 때, 우리도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영광스러운 의미는 그가 죽으셨을 때 그의 소유된 그의 모든 백성도 그 안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은, 그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우리의 죽음이 됩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여 러분 중에 &amp;quot;나는 살아있지 않나요? 나는 살아있다고 느낍니다&amp;quot; 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 교육의 필요가 대두됩니다. 우리는 우리에 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배워야만 합니다. 우린는 이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 그래서 갈라디아서 2:20이나 6:14이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신 구원의 방법을 알게 되고, 마땅히 기뻐해야 할 만큼 하나님을 기뻐하게 되고, 그의 아들을 기 뻐하게 되고, 십자기를 기뻐하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갈라디아서 2:20을 다시 읽습니다. 네,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네, 우리는 살았 습니다. &amp;quot;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그래서 나는 죽었습 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왜죠? 내가 죽었기 때문에, 즉 나의 옛 사람, 반역적이고 믿지 않는 옛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따라 서, 나는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죽었던 &amp;quot;나&amp;quot;와 동일한 &amp;quot;나&amp;quot;인 것이 아 닙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amp;quot; 다시 말하면, 살아 있는 &amp;quot;나&amp;quot;는 믿음의 새로운 &amp;quot;나&amp;quot;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살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살고 있습 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lt;br /&gt;
&lt;br /&gt;
&amp;quot;이 러한 현실과 연결되는 열쇠는 무엇이죠? 이것이 어떻게 나의 것이 될 수 있나요?&amp;quot;라고 물으신다면, 그 답은 갈라디아서 2:20 안의 믿음에 관한 단어들에 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amp;quot;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amp;quot; 이것이 바로 그 연결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에 의하여 여러분을 그의 아들과 연결시키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과의 연합이 있으 며, 이를 통해 그의 죽음은 여러분의 죽음이 되고 그의 생명은 여러분의 생명이 됩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이 모든 것을 갈라디아서 '''6:14'''로 가지고 가 봅시다. &amp;quot;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 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 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철저하게 십자가 중 심적이 되는 것'''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는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 나의 모든 기쁨이 십자가에서 비롯되게 - 십자가 중심적이 될 수 있나요? 그리 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여러분도 죽었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그 죽음은 여러분의 삶에 영향 을 미쳤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바울이 말하길, 세상이 여러분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여러분이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다고 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께 신뢰를 둘 때, 세상에 대한 속박은 깨어지고, 세상의 강력한 유혹은 깨어집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대하여 시체입니다. 그리고 세 상은 여러분에 대하여 시체입니다. 긍정적 형식으로 표현하면, 15절에 따 라, 여러분은 &amp;quot;새로운 피조물&amp;quot;입니다. 옛 여러분은 죽었습니다. 새로운 여 러분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리고 믿음이 기뻐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입니다. &lt;br /&gt;
&lt;br /&gt;
여러분은 이렇게 해서 십자 가 중심적이 됩니다. 그리고 바울과 마찬가지로 &amp;quot;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나니&amp;quot;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의 보화가 아닙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의 생명이나 나의 만족이나 나의 기쁨 의 원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그 원천이십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앞에 서 말했듯이 교통 사고에서 다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보험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이에 대해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세상이 아닌가요? 여러분은 세상에 대하여 죽어 있습니까? &lt;br /&gt;
&lt;br /&gt;
교통사고에서 다치지 않은 것이나 보험금을 받은 것을 기뻐하면서도 나 는 세상에 대해 죽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랬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 상에 대하여 무엇을 느끼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부정적 감정이 든 긍정적 감정이든지요(요한1서 2:15, 디모데전서 4:3). 대신에, 세 상에 대한 모든 합법적인 기쁨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피로 산 증거가 되며, 십자가를 자랑하는 경우가 됩니다. 돈이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십 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그 돈을 주시는 분이 우리를 만족시킬 때, 우 리는 보험금을 타는 것에 대하여 죽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축복 의 광선을 죽 거슬러 올라가서 십자가 안의 원천에 도달할 때, 그 축복의 세속성은 죽고,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 되시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러한 것이 바로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에 대한 교육의 목표입니 다. 오! 그리스도의 영광과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꿈꾸고 계획을 짜고 일하고 주고 가르치고 살게 하시길 축원합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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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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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8:10: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lt;/p&gt;
&lt;hr /&gt;
&lt;div&gt;{{info|Beholding Glory and Becoming Whole: Seeing and Savoring God as the Heart of Mental Health}}미국 기독상담가협회 콘퍼런스 &lt;br /&gt;
&lt;br /&gt;
미국 기독상담가협회 콘퍼런스 강사로 이렇게 서게 되어 영광이며, 겸허한 마음이 들고 제 모습을 감출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생각건대 세상 어느 청중이라도 여러분만큼 강사를 꿰뚫어 볼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선이란 문제와 맞닥뜨리게끔 하거든요. 위선의 문제를 늘 수직적 차원에서 마주하는 것이 사실인데 여러분은 그 문제를 수평적 차원에서 마주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 그가 위선자인지 아닌지 그 속을 훤히 아십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 정서가 그 앞에선 숨김없이 드러나겠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여러분과 이 시간을 함께 하게 되어 좋습니다. 이것은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위험을 일깨우는 경종입니다. &lt;br /&gt;
&lt;br /&gt;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lt;br /&gt;
&lt;br /&gt;
먼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 앞에 선 이 강사가 어떤 죄인인지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lt;br /&gt;
&lt;br /&gt;
*칭찬을 사랑하는 마음을 매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십오 세 사춘기 때와 마찬가지로 예순 셋인 지금도 바보같이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사랑 받지 못할 때, 뿌루퉁해하고 자기연민을 느끼기 일쑤인 사람입니다. &lt;br /&gt;
*시간을 최선으로 사용했다는 확신이 들 때가 거의 없으며 그래서 죄의식과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부족하고, 분석하여 비평하는 데는 능한 그런 사람입니다. &lt;br /&gt;
*피곤할 때 감정이 완전히 무뎌져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남의 탓이라 여기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큰 집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무척 좋아하고 자기 거실에서는 영적으로 움츠러드는 사람입니다. &lt;br /&gt;
*40년이란 세월 동안 아내를 사랑했으나 부족하고 불완전한 까닭에, 3년이 넘게 크리스천 상담가의 상담을 받으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더 나은 형상이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lt;br /&gt;
*이 모든 것을 어째서 여러분에게 털어놓는지 지금 이 시간을 포함해 도무지 동기가 순수하다는 확신이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lt;br /&gt;
&lt;br /&gt;
저는 한편으로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제 강의를 듣기를 바라고, 제가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여러분이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더욱 바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제가 어째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지 여러분이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선 무한한 권능으로 저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이 점에서 이 콘퍼런스의 주제인 은혜와 진리는 제게 참으로 귀합니다.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시편 '''63:3''', 새번역) &lt;br /&gt;
&lt;br /&gt;
그래서 여기서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싶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아버지,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시고 부활하고 다스리고 다시 오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도록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기다림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이 시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오니, 이 기독학자들을 잘 섬기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능력에서 영광으로 이동''' &lt;br /&gt;
&lt;br /&gt;
콘퍼런스 본문 요한복음 '''1:14'''이 오늘밤 이 강의의 요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보여드리고 나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쓴 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강의제목이 앞서 발표된 것과 다른 데, 강의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그렇습니다. 알고 계신 제목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능력”이지만, 은혜의 능력이 아닌 은혜의 영광에 초점을 두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에 제목을 붙인다면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콘퍼런스 주제 ‘은혜와 진리’의 본문인 요한복음 '''1:14-16'''에 간략히 담겨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요 '''1:14, 16''', 새번역)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사도 요한이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들은 신적인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 영광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마 13:13 새번역)라고 하신 까닭이고, 그것이 베드로에게 “네 혈육이 이것을 네게 알려 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이다”(마 '''16:17''', 우리말성경)라고 하신 까닭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들은 그 아들[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이 은혜와 진리 – 콘퍼런스 주제가 여기서 나온 것이지요 - 로 충만한 영광이라고 전합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서 사도 요한은 충만함과 우리 삶 사이를 연결합니다. 요한복음 1:1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우리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외아들의 영광을 보았고, 은혜 위에 은혜로 그 충만함이 넘쳐흘러 우리에게 임한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여기에 덧붙여 우리가 확신하는 진리는 이것인데, 이 은혜 – 강력하며, 어마어마한 변화를 일으키는, 신적인 은혜 – 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충만한 그분의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습니다. &lt;br /&gt;
&lt;br /&gt;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에서 비롯되어 우리에게 미치며, 그리스도로부터 우리 마음 속으로 비취는 영광의 빛 – 광선 – 을 따라서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높이게 되는 그 크나큰 변화는 전부 –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든 그렇지 않든 간에 – 그렇게 일어납니다. 고린도후서 3장의 바울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고후 3:18, 새번역). 그런 이유로 오늘 강의제목을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이라고 붙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콘퍼런스 본문 요한복음 '''1:14, 16'''의 의미를 간략히 풀어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 강의의 요지를 더 자세히 이해하고 부제(“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함께 에베소서를 살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 &lt;br /&gt;
&lt;br /&gt;
에베소서 1:4-6은 우리를 영원 과거(eternity past)에서 영원 미래(eternity future) – 만물의 원인에서 만물의 목적까지 – 로 인도합니다. 제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곳은 만물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타락을 허락하시며, 구속을 계획하시고,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시며, 역사를 인도하셨을까요? 여기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이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이것이 에베소서의 가장 궁극적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거룩함과 흠 없음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으며, 미리 작정하심과 양자 삼으심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송” 보다 더 문자적인 번역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음'''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큰 목적 – 즉, 구속 받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그 목적– 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상담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은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이것을 두 번 더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소망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1:12, 우리말성경).”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 다음으로 14절 “이 성령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구속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우리의 궁극적 유업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고 그 영광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맛보고, 드러낼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정신건강의 핵심''' &lt;br /&gt;
&lt;br /&gt;
우리가 창조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온전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온전한 경외를 받으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핵심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온전해지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경외 받으시는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흠 없이 온전하게 되고 완전한 만족을 누리는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온전한 경외와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계십니다. 우리는 영광을 보기 위해 – 그 영광을 맛보기 위해, 그 영광을 찬양으로 나타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인간의 온전함(human wholeness)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함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것은 온전한 인간다움의 핵심의미가 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맛보는 것은 정신건강의 핵심인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찬양은 그 자체가 목적임''' &lt;br /&gt;
&lt;br /&gt;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시편사색(Reflections on the Psalms)에서 인간의 모든 찬양 속에 이러한 진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하나님에 대해서건, 다른 무엇에 대해서건, 찬양에 대한 아주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습니다… 찬양은 기쁨이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 수줍은 마음에, 혹은 옆에 있는 사람이 지루해할까 봐 일부러 자제하지 않는 한 (때로는 자제함에도 불구하고) – 일이기도 하다는 또 한가지 사실은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온통 찬양소리로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시인을 찬양하는 소리, 여행지의 풍경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게임을 찬양하는 소리부터 날씨, 포도주, 음식, 배우, 자동차, 말, 대학, 나라, 위인, 아이, 꽃, 산, 진귀한 우표, 희귀한 딱정벌레, 심지어 정치인들과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저는 진실로 겸손하며 도량이 넓고 균형감있는 사람들일수록 칭찬을 많이 하고, 괴짜요 적응못하는 자요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일수록 칭찬에 인색하다는 사실은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amp;amp;nbsp;&amp;lt;ref&amp;gt;C. S. 루이스, 시편사색 Reflections on the Psalms [홍성사, 2004] pp. 134-135&amp;lt;/ref&amp;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찬양이란 건강한 삶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에 바탕을 둔 찬양은 방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찬양이라는 것은 본성상 어떤 수단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찬양은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법은 없습니다. “당신을 기뻐하는 건 내가 즐겨먹는 저녁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법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건 내가 건강해지기 위해서지요.” 이것은 찬양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은, 찬양이란 원하는 바를 얻는데 쓰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란 겁니다. 찬양은 무엇을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닙니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에 바탕을 둔, 하나님 중심적인 찬양은 정신건강의 수단이 아니라 정신건강의 표지인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lt;br /&gt;
&lt;br /&gt;
제 논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함 그 자체가 인간의 온전함의 정점이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함은 더 없는 만족을 주는 인간존재의 목적인 것이지 여러분이 그러한 온전함에 이르는 수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그 영광을 보는 것이 이 은혜 – 이 “은혜 위에 은혜,” 온전하게 되는 은혜가 깨어진 우리 인생에 들어오는 방식인 것입니다. 영광을 보고 우리는 온전하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봄으로 말미암아 그 영광의 광선 아래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 무엇보다 귀히 여기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은혜를 입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18, 새번역). &lt;br /&gt;
&lt;br /&gt;
'''상담에 내포된 엄청난 의미''' &lt;br /&gt;
&lt;br /&gt;
자,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정확한 것이라면, 상담에는 엄청난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lt;br /&gt;
&lt;br /&gt;
'''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법'''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의 온전함이 정점에 이른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함은 우리의 찬양을 받겠다는 그분의 의지를 한치도 굽히는 법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께 매료되어 온통 마음을 그분께 쏟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닫힌 눈을 열고 죽은 마음을 소생시키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영원토록 보고 맛보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고자 힘써 수고하는 그분의 일하심인데, 그 까닭은 하나님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온전함의 정점이자 우리 정신건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의 드러남을 에베소서 '''2:4-7'''에서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 성구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가오는 모든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보여주다[그리스어로 endeixetai]” (위 성구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함을 보여주기 위한”에서)란 말은 그저 친절과 호의로 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말은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표현하고, 제시하고, 직접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전시(展示)라는 말입니다. 제 논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에베소서 '''1:6''') 지음 받고 작정되었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우리를 위해 더욱더 그 영광의 풍성함을 드러내실 터인데, 이는 우리의 용량이 끊임없이 커져서 그 영광의 풍성함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라고 합니다. '''4'''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살리시고 닫힌 우리 눈을 여셨으며, 다가오는 세대에 더욱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 영원토록 알려지고 찬양 받으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끊임없이 늘어나는 선물 – 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이며,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가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귀히 여기시는 데 있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것을 영원히 즐거워하도록 그에 필요한 모든 일을 아낌없이 행하시는, 그분의 일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는 두 번째 함의로 이끄는데 즉,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2.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의 의미''' &lt;br /&gt;
&lt;br /&gt;
이것은 명백한 문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교와 상담에 있어서, 우리가 영적으로 명백한 데서 이탈해 본성적으로 끌리는 데 – 특별히 본성적으로 끌리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하면 - 로 늘 떠밀려 다니는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바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경우에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하나같이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 인정받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중요시 여김을 받는 경우에 우리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토록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이 되지 못할까요? &lt;br /&gt;
&lt;br /&gt;
이에 대한 통렬한 경고가 250년 전에 조나단 에드워즈로부터 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참된 성도의 마음은 우선 하나님이 행하신 일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영광스럽고 사랑할만한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가진 모든 기쁨의 원천이며, 성도가 가진 모든 즐거움의 정수다…. 하지만 위선자들이 느끼는 감정의 순서는 정반대다. 그들은 먼저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우쭐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amp;lt;ref&amp;gt;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감정론 Religious Affections [부흥과개혁사, 2005] p. 359&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이것이 제가 우려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그럴만한 자격이 없으나 그리스도께서 어쨌든 나를 사랑하시기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며, 내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둬졌기 때문에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고요.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그러셨을까요?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진노가 거둬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요? &lt;br /&gt;
&lt;br /&gt;
이 지점에서 저는 우리 중 다수가 이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 바람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인정, 오로지 그것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나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 나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시려고 아무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하셨다. 나를 중요하다 여기시려고 내 죄를 사하셨다. 나를 중요하다 여기시려고 자기 진노를 거두셨다.” 이것으로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분이 드는지요! 참으로 귀한 복음 아닌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본성적인 생각입니다. 거기엔 아무런 초자연적인 변화도 없습니다. 상담에서 목적하는 회복과 치유 같습니다!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순전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나란 존재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두 번째 함의는 이것인데,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이란 다음과 같은 그분의 일하심을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상하게 하신 것뿐만 아니라,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과 다투는 어떤 즐거움도, 그에 대한 털끝만한 갈망일지라도 모조리 십자가에서 상하게 하고 계신다는 사실 또한 기뻐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제가 이 강의를 마치며 제시할 마지막 함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이 크나큰 변화는, 타락한 인간에게는 참으로 그 본성에 반하여 일어나는 일이므로,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lt;br /&gt;
&lt;br /&gt;
'''3.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려면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함'''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상담에서, 설교에서, 그리고 성도의 인생에서 소망을 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날마다 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18'''(우리말성경)에서 바울은 기도하기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이 표제를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으로 우리가 영광의 아버지를 알 수 있게 - 보고 맛보게 -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가 여러분의 마음눈을 밝게 하셔서 [본성적인 시각이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시각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소망이 무엇일까요? 즉,] 성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여러분으로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다가오는 세대에 “우리에게 자비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 유업(엡 2:7)이며,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설교와 상담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높이게 되는 그 크나큰 변화를 바랄 수 있는 한 가지 유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더 없는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맛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 바로 거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일하심이 있을 때에, 비로소 자아에 대한 집착은 깨어지고, 주님의 영광을 보고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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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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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8:06: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Beholding Glory and Becoming Whole: Seeing and Savoring God as the Heart of Mental Health}}미국 기독상담가협회 콘퍼런스 &lt;br /&gt;
&lt;br /&gt;
미국 기독상담가협회 콘퍼런스 강사로 이렇게 서게 되어 영광이며, 겸허한 마음이 들고 제 모습을 감출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생각건대 세상 어느 청중이라도 여러분만큼 강사를 꿰뚫어 볼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선이란 문제와 맞닥뜨리게끔 하거든요. 위선의 문제를 늘 수직적 차원에서 마주하는 것이 사실인데 여러분은 그 문제를 수평적 차원에서 마주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 그가 위선자인지 아닌지 그 속을 훤히 아십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 정서가 그 앞에선 숨김없이 드러나겠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여러분과 이 시간을 함께 하게 되어 좋습니다. 이것은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위험을 일깨우는 경종입니다. &lt;br /&gt;
&lt;br /&gt;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lt;br /&gt;
&lt;br /&gt;
먼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 앞에 선 이 강사가 어떤 죄인인지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lt;br /&gt;
&lt;br /&gt;
*칭찬을 사랑하는 마음을 매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십오 세 사춘기 때와 마찬가지로 예순 셋인 지금도 바보같이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사랑 받지 못할 때, 뿌루퉁해하고 자기연민을 느끼기 일쑤인 사람입니다. &lt;br /&gt;
*시간을 최선으로 사용했다는 확신이 들 때가 거의 없으며 그래서 죄의식과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부족하고, 분석하여 비평하는 데는 능한 그런 사람입니다. &lt;br /&gt;
*피곤할 때 감정이 완전히 무뎌져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남의 탓이라 여기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큰 집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무척 좋아하고 자기 거실에서는 영적으로 움츠러드는 사람입니다. &lt;br /&gt;
*40년이란 세월 동안 아내를 사랑했으나 부족하고 불완전한 까닭에, 3년이 넘게 크리스천 상담가의 상담을 받으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더 나은 형상이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lt;br /&gt;
*이 모든 것을 어째서 여러분에게 털어놓는지 지금 이 시간을 포함해 도무지 동기가 순수하다는 확신이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lt;br /&gt;
&lt;br /&gt;
저는 한편으로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제 강의를 듣기를 바라고, 제가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여러분이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더욱 바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제가 어째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지 여러분이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선 무한한 권능으로 저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이 점에서 이 콘퍼런스의 주제인 은혜와 진리는 제게 참으로 귀합니다.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시편 '''63:3''', 새번역) &lt;br /&gt;
&lt;br /&gt;
그래서 여기서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싶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아버지,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시고 부활하고 다스리고 다시 오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도록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기다림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이 시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오니, 이 기독학자들을 잘 섬기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능력에서 영광으로 이동''' &lt;br /&gt;
&lt;br /&gt;
콘퍼런스 본문 요한복음 '''1:14'''이 오늘밤 이 강의의 요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보여드리고 나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쓴 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강의제목이 앞서 발표된 것과 다른 데, 강의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그렇습니다. 알고 계신 제목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능력”이지만, 은혜의 능력이 아닌 은혜의 영광에 초점을 두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에 제목을 붙인다면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콘퍼런스 주제 ‘은혜와 진리’의 본문인 요한복음 '''1:14-16'''에 간략히 담겨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요 '''1:14, 16''', 새번역)&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사도 요한이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들은 신적인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 영광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마 13:13 새번역)라고 하신 까닭이고, 그것이 베드로에게 “네 혈육이 이것을 네게 알려 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이다”(마 '''16:17''', 우리말성경)라고 하신 까닭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들은 그 아들[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이 은혜와 진리 – 콘퍼런스 주제가 여기서 나온 것이지요 - 로 충만한 영광이라고 전합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서 사도 요한은 충만함과 우리 삶 사이를 연결합니다. 요한복음 1:1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우리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외아들의 영광을 보았고, 은혜 위에 은혜로 그 충만함이 넘쳐흘러 우리에게 임한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여기에 덧붙여 우리가 확신하는 진리는 이것인데, 이 은혜 – 강력하며, 어마어마한 변화를 일으키는, 신적인 은혜 – 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충만한 그분의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습니다. &lt;br /&gt;
&lt;br /&gt;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에서 비롯되어 우리에게 미치며, 그리스도로부터 우리 마음 속으로 비취는 영광의 빛 – 광선 – 을 따라서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높이게 되는 그 크나큰 변화는 전부 –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든 그렇지 않든 간에 – 그렇게 일어납니다. 고린도후서 3장의 바울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고후 3:18, 새번역). 그런 이유로 오늘 강의제목을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이라고 붙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콘퍼런스 본문 요한복음 '''1:14, 16'''의 의미를 간략히 풀어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 강의의 요지를 더 자세히 이해하고 부제(“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함께 에베소서를 살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 &lt;br /&gt;
&lt;br /&gt;
에베소서 1:4-6은 우리를 영원 과거(eternity past)에서 영원 미래(eternity future) – 만물의 원인에서 만물의 목적까지 – 로 인도합니다. 제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곳은 만물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타락을 허락하시며, 구속을 계획하시고,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시며, 역사를 인도하셨을까요? 여기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이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이 에베소서의 가장 궁극적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거룩함과 흠 없음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으며, 미리 작정하심과 양자 삼으심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송” 보다 더 문자적인 번역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음'''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큰 목적 – 즉, 구속 받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그 목적– 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상담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은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이것을 두 번 더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소망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1:12, 우리말성경).”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 다음으로 14절 “이 성령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구속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우리의 궁극적 유업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고 그 영광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맛보고, 드러낼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정신건강의 핵심''' &lt;br /&gt;
&lt;br /&gt;
우리가 창조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온전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온전한 경외를 받으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핵심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온전해지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경외 받으시는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흠 없이 온전하게 되고 완전한 만족을 누리는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온전한 경외와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계십니다. 우리는 영광을 보기 위해 – 그 영광을 맛보기 위해, 그 영광을 찬양으로 나타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인간의 온전함(human wholeness)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함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것은 온전한 인간다움의 핵심의미가 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맛보는 것은 정신건강의 핵심인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찬양은 그 자체가 목적임''' &lt;br /&gt;
&lt;br /&gt;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시편사색(Reflections on the Psalms)에서 인간의 모든 찬양 속에 이러한 진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하나님에 대해서건, 다른 무엇에 대해서건, 찬양에 대한 아주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습니다… 찬양은 기쁨이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 수줍은 마음에, 혹은 옆에 있는 사람이 지루해할까 봐 일부러 자제하지 않는 한 (때로는 자제함에도 불구하고) – 일이기도 하다는 또 한가지 사실은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온통 찬양소리로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시인을 찬양하는 소리, 여행지의 풍경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게임을 찬양하는 소리부터 날씨, 포도주, 음식, 배우, 자동차, 말, 대학, 나라, 위인, 아이, 꽃, 산, 진귀한 우표, 희귀한 딱정벌레, 심지어 정치인들과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저는 진실로 겸손하며 도량이 넓고 균형감있는 사람들일수록 칭찬을 많이 하고, 괴짜요 적응못하는 자요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일수록 칭찬에 인색하다는 사실은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amp;amp;nbsp;&amp;lt;ref&amp;gt;C. S. 루이스, 시편사색 Reflections on the Psalms [홍성사, 2004] pp. 134-135&amp;lt;/ref&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찬양이란 건강한 삶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에 바탕을 둔 찬양은 방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찬양이라는 것은 본성상 어떤 수단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찬양은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법은 없습니다. “당신을 기뻐하는 건 내가 즐겨먹는 저녁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법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건 내가 건강해지기 위해서지요.” 이것은 찬양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은, 찬양이란 원하는 바를 얻는데 쓰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란 겁니다. 찬양은 무엇을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닙니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에 바탕을 둔, 하나님 중심적인 찬양은 정신건강의 수단이 아니라 정신건강의 표지인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lt;br /&gt;
&lt;br /&gt;
제 논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함 그 자체가 인간의 온전함의 정점이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함은 더 없는 만족을 주는 인간존재의 목적인 것이지 여러분이 그러한 온전함에 이르는 수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그 영광을 보는 것이 이 은혜 – 이 “은혜 위에 은혜,” 온전하게 되는 은혜가 깨어진 우리 인생에 들어오는 방식인 것입니다. 영광을 보고 우리는 온전하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봄으로 말미암아 그 영광의 광선 아래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 무엇보다 귀히 여기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은혜를 입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18, 새번역). &lt;br /&gt;
&lt;br /&gt;
'''상담에 내포된 엄청난 의미''' &lt;br /&gt;
&lt;br /&gt;
자,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정확한 것이라면, 상담에는 엄청난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lt;br /&gt;
&lt;br /&gt;
'''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법'''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의 온전함이 정점에 이른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함은 우리의 찬양을 받겠다는 그분의 의지를 한치도 굽히는 법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께 매료되어 온통 마음을 그분께 쏟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닫힌 눈을 열고 죽은 마음을 소생시키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영원토록 보고 맛보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고자 힘써 수고하는 그분의 일하심인데, 그 까닭은 하나님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온전함의 정점이자 우리 정신건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의 드러남을 에베소서 '''2:4-7'''에서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 성구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가오는 모든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보여주다[그리스어로 endeixetai]” (위 성구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함을 보여주기 위한”에서)란 말은 그저 친절과 호의로 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말은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표현하고, 제시하고, 직접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전시(展示)라는 말입니다. 제 논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에베소서 '''1:6''') 지음 받고 작정되었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우리를 위해 더욱더 그 영광의 풍성함을 드러내실 터인데, 이는 우리의 용량이 끊임없이 커져서 그 영광의 풍성함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라고 합니다. '''4'''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살리시고 닫힌 우리 눈을 여셨으며, 다가오는 세대에 더욱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 영원토록 알려지고 찬양 받으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끊임없이 늘어나는 선물 – 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이며,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가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귀히 여기시는 데 있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것을 영원히 즐거워하도록 그에 필요한 모든 일을 아낌없이 행하시는, 그분의 일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는 두 번째 함의로 이끄는데 즉,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2.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의 의미''' &lt;br /&gt;
&lt;br /&gt;
이것은 명백한 문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교와 상담에 있어서, 우리가 영적으로 명백한 데서 이탈해 본성적으로 끌리는 데 – 특별히 본성적으로 끌리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하면 - 로 늘 떠밀려 다니는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바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경우에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하나같이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 인정받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중요시 여김을 받는 경우에 우리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토록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이 되지 못할까요? &lt;br /&gt;
&lt;br /&gt;
이에 대한 통렬한 경고가 250년 전에 조나단 에드워즈로부터 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참된 성도의 마음은 우선 하나님이 행하신 일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영광스럽고 사랑할만한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가진 모든 기쁨의 원천이며, 성도가 가진 모든 즐거움의 정수다…. 하지만 위선자들이 느끼는 감정의 순서는 정반대다. 그들은 먼저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우쭐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amp;lt;ref&amp;gt;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감정론 Religious Affections [부흥과개혁사, 2005] p. 359&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이것이 제가 우려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그럴만한 자격이 없으나 그리스도께서 어쨌든 나를 사랑하시기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며, 내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둬졌기 때문에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고요.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그러셨을까요?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진노가 거둬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요? &lt;br /&gt;
&lt;br /&gt;
이 지점에서 저는 우리 중 다수가 이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 바람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인정, 오로지 그것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나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 나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시려고 아무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하셨다. 나를 중요하다 여기시려고 내 죄를 사하셨다. 나를 중요하다 여기시려고 자기 진노를 거두셨다.” 이것으로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분이 드는지요! 참으로 귀한 복음 아닌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본성적인 생각입니다. 거기엔 아무런 초자연적인 변화도 없습니다. 상담에서 목적하는 회복과 치유 같습니다!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순전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나란 존재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두 번째 함의는 이것인데,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이란 다음과 같은 그분의 일하심을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상하게 하신 것뿐만 아니라,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과 다투는 어떤 즐거움도, 그에 대한 털끝만한 갈망일지라도 모조리 십자가에서 상하게 하고 계신다는 사실 또한 기뻐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제가 이 강의를 마치며 제시할 마지막 함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이 크나큰 변화는, 타락한 인간에게는 참으로 그 본성에 반하여 일어나는 일이므로,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lt;br /&gt;
&lt;br /&gt;
'''3.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려면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함'''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상담에서, 설교에서, 그리고 성도의 인생에서 소망을 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날마다 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18'''(우리말성경)에서 바울은 기도하기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이 표제를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으로 우리가 영광의 아버지를 알 수 있게 - 보고 맛보게 -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가 여러분의 마음눈을 밝게 하셔서 [본성적인 시각이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시각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소망이 무엇일까요? 즉,] 성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여러분으로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다가오는 세대에 “우리에게 자비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 유업(엡 2:7)이며,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설교와 상담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높이게 되는 그 크나큰 변화를 바랄 수 있는 한 가지 유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더 없는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맛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 바로 거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일하심이 있을 때에, 비로소 자아에 대한 집착은 깨어지고, 주님의 영광을 보고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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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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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새 문서: {{info|Beholding Glory and Becoming Whole: Seeing and Savoring God as the Heart of Mental Health}}미국 기독상담가협회 콘퍼런스   미국 기독상담가협회 콘퍼런스 ...&lt;/p&gt;
&lt;hr /&gt;
&lt;div&gt;{{info|Beholding Glory and Becoming Whole: Seeing and Savoring God as the Heart of Mental Health}}미국 기독상담가협회 콘퍼런스 &lt;br /&gt;
&lt;br /&gt;
미국 기독상담가협회 콘퍼런스 강사로 이렇게 서게 되어 영광이며, 겸허한 마음이 들고 제 모습을 감출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생각건대 세상 어느 청중이라도 여러분만큼 강사를 꿰뚫어 볼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선이란 문제와 맞닥뜨리게끔 하거든요. 위선의 문제를 늘 수직적 차원에서 마주하는 것이 사실인데 여러분은 그 문제를 수평적 차원에서 마주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 그가 위선자인지 아닌지 그 속을 훤히 아십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 정서가 그 앞에선 숨김없이 드러나겠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여러분과 이 시간을 함께 하게 되어 좋습니다. 이것은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위험을 일깨우는 경종입니다. &lt;br /&gt;
&lt;br /&gt;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lt;br /&gt;
&lt;br /&gt;
먼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 앞에 선 이 강사가 어떤 죄인인지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lt;br /&gt;
&lt;br /&gt;
*칭찬을 사랑하는 마음을 매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십오 세 사춘기 때와 마찬가지로 예순 셋인 지금도 바보같이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사랑 받지 못할 때, 뿌루퉁해하고 자기연민을 느끼기 일쑤인 사람입니다. &lt;br /&gt;
*시간을 최선으로 사용했다는 확신이 들 때가 거의 없으며 그래서 죄의식과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부족하고, 분석하여 비평하는 데는 능한 그런 사람입니다. &lt;br /&gt;
*피곤할 때 감정이 완전히 무뎌져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남의 탓이라 여기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lt;br /&gt;
*큰 집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무척 좋아하고 자기 거실에서는 영적으로 움츠러드는 사람입니다. &lt;br /&gt;
*40년이란 세월 동안 아내를 사랑했으나 부족하고 불완전한 까닭에, 3년이 넘게 크리스천 상담가의 상담을 받으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더 나은 형상이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lt;br /&gt;
*이 모든 것을 어째서 여러분에게 털어놓는지 지금 이 시간을 포함해 도무지 동기가 순수하다는 확신이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lt;br /&gt;
&lt;br /&gt;
저는 한편으로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제 강의를 듣기를 바라고, 제가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여러분이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더욱 바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제가 어째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지 여러분이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선 무한한 권능으로 저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이 점에서 이 콘퍼런스의 주제인 은혜와 진리는 제게 참으로 귀합니다.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시편 '''63:3''', 새번역) &lt;br /&gt;
&lt;br /&gt;
그래서 여기서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싶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아버지,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시고 부활하고 다스리고 다시 오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도록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기다림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이 시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오니, 이 기독학자들을 잘 섬기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능력에서 영광으로 이동''' &lt;br /&gt;
&lt;br /&gt;
콘퍼런스 본문 요한복음 '''1:14'''이 오늘밤 이 강의의 요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보여드리고 나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쓴 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강의제목이 앞서 발표된 것과 다른 데, 강의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그렇습니다. 알고 계신 제목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능력”이지만, 은혜의 능력이 아닌 은혜의 영광에 초점을 두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에 제목을 붙인다면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콘퍼런스 주제 ‘은혜와 진리’의 본문인 요한복음 '''1:14-16'''에 간략히 담겨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요 '''1:14, 16''', 새번역)&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사도 요한이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들은 신적인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 영광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마 13:13 새번역)라고 하신 까닭이고, 그것이 베드로에게 “네 혈육이 이것을 네게 알려 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이다”(마 '''16:17''', 우리말성경)라고 하신 까닭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들은 그 아들[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이 은혜와 진리 – 콘퍼런스 주제가 여기서 나온 것이지요 - 로 충만한 영광이라고 전합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서 사도 요한은 충만함과 우리 삶 사이를 연결합니다. 요한복음 1:1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우리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외아들의 영광을 보았고, 은혜 위에 은혜로 그 충만함이 넘쳐흘러 우리에게 임한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여기에 덧붙여 우리가 확신하는 진리는 이것인데, 이 은혜 – 강력하며, 어마어마한 변화를 일으키는, 신적인 은혜 – 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충만한 그분의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습니다. &lt;br /&gt;
&lt;br /&gt;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에서 비롯되어 우리에게 미치며, 그리스도로부터 우리 마음 속으로 비취는 영광의 빛 – 광선 – 을 따라서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높이게 되는 그 크나큰 변화는 전부 –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든 그렇지 않든 간에 – 그렇게 일어납니다. 고린도후서 3장의 바울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고후 3:18, 새번역). 그런 이유로 오늘 강의제목을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이라고 붙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콘퍼런스 본문 요한복음 '''1:14, 16'''의 의미를 간략히 풀어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 강의의 요지를 더 자세히 이해하고 부제(“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함께 에베소서를 살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 &lt;br /&gt;
&lt;br /&gt;
에베소서 1:4-6은 우리를 영원 과거(eternity past)에서 영원 미래(eternity future) – 만물의 원인에서 만물의 목적까지 – 로 인도합니다. 제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곳은 만물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타락을 허락하시며, 구속을 계획하시고,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시며, 역사를 인도하셨을까요? 여기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이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이 에베소서의 가장 궁극적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거룩함과 흠 없음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으며, 미리 작정하심과 양자 삼으심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송” 보다 더 문자적인 번역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음'''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큰 목적 – 즉, 구속 받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그 목적– 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상담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은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이것을 두 번 더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소망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1:12, 우리말성경).”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 다음으로 14절 “이 성령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구속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우리의 궁극적 유업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고 그 영광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맛보고, 드러낼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정신건강의 핵심''' &lt;br /&gt;
&lt;br /&gt;
우리가 창조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온전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온전한 경외를 받으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핵심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온전해지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경외 받으시는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흠 없이 온전하게 되고 완전한 만족을 누리는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온전한 경외와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계십니다. 우리는 영광을 보기 위해 – 그 영광을 맛보기 위해, 그 영광을 찬양으로 나타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인간의 온전함(human wholeness)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함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것은 온전한 인간다움의 핵심의미가 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맛보는 것은 정신건강의 핵심인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찬양은 그 자체가 목적임''' &lt;br /&gt;
&lt;br /&gt;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시편사색(Reflections on the Psalms)에서 인간의 모든 찬양 속에 이러한 진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하나님에 대해서건, 다른 무엇에 대해서건, 찬양에 대한 아주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습니다… 찬양은 기쁨이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 수줍은 마음에, 혹은 옆에 있는 사람이 지루해할까 봐 일부러 자제하지 않는 한 (때로는 자제함에도 불구하고) – 일이기도 하다는 또 한가지 사실은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온통 찬양소리로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시인을 찬양하는 소리, 여행지의 풍경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게임을 찬양하는 소리부터 날씨, 포도주, 음식, 배우, 자동차, 말, 대학, 나라, 위인, 아이, 꽃, 산, 진귀한 우표, 희귀한 딱정벌레, 심지어 정치인들과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저는 진실로 겸손하며 도량이 넓고 균형감있는 사람들일수록 칭찬을 많이 하고, 괴짜요 적응못하는 자요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일수록 칭찬에 인색하다는 사실은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amp;amp;nbsp;&amp;lt;ref&amp;gt;C. S. 루이스, 시편사색 Reflections on the Psalms [홍성사, 2004] pp. 134-135&amp;lt;/ref&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찬양이란 건강한 삶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에 바탕을 둔 찬양은 방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찬양이라는 것은 본성상 어떤 수단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찬양은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법은 없습니다. “당신을 기뻐하는 건 내가 즐겨먹는 저녁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법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건 내가 건강해지기 위해서지요.” 이것은 찬양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은, 찬양이란 원하는 바를 얻는데 쓰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란 겁니다. 찬양은 무엇을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닙니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에 바탕을 둔, 하나님 중심적인 찬양은 정신건강의 수단이 아니라 정신건강의 표지인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영광을 보고 온전하게 됨''' &lt;br /&gt;
&lt;br /&gt;
제 논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함 그 자체가 인간의 온전함의 정점이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함은 더 없는 만족을 주는 인간존재의 목적인 것이지 여러분이 그러한 온전함에 이르는 수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그 영광을 보는 것이 이 은혜 – 이 “은혜 위에 은혜,” 온전하게 되는 은혜가 깨어진 우리 인생에 들어오는 방식인 것입니다. 영광을 보고 우리는 온전하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봄으로 말미암아 그 영광의 광선 아래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 무엇보다 귀히 여기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은혜를 입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18, 새번역). &lt;br /&gt;
&lt;br /&gt;
'''상담에 내포된 엄청난 의미''' &lt;br /&gt;
&lt;br /&gt;
자,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정확한 것이라면, 상담에는 엄청난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lt;br /&gt;
&lt;br /&gt;
'''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법'''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의 온전함이 정점에 이른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함은 우리의 찬양을 받겠다는 그분의 의지를 한치도 굽히는 법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께 매료되어 온통 마음을 그분께 쏟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닫힌 눈을 열고 죽은 마음을 소생시키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영원토록 보고 맛보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고자 힘써 수고하는 그분의 일하심인데, 그 까닭은 하나님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온전함의 정점이자 우리 정신건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의 드러남을 에베소서 '''2:4-7'''에서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 성구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가오는 모든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보여주다[그리스어로 endeixetai]” (위 성구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함을 보여주기 위한”에서)란 말은 그저 친절과 호의로 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말은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표현하고, 제시하고, 직접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전시(展示)라는 말입니다. 제 논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에베소서 '''1:6''') 지음 받고 작정되었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우리를 위해 더욱더 그 영광의 풍성함을 드러내실 터인데, 이는 우리의 용량이 끊임없이 커져서 그 영광의 풍성함을 보고 맛보고 찬양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라고 합니다. '''4'''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살리시고 닫힌 우리 눈을 여셨으며, 다가오는 세대에 더욱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 영원토록 알려지고 찬양 받으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끊임없이 늘어나는 선물 – 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을 보고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의 핵심이며,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가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귀히 여기시는 데 있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것을 영원히 즐거워하도록 그에 필요한 모든 일을 아낌없이 행하시는, 그분의 일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는 두 번째 함의로 이끄는데 즉,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2.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의 의미''' &lt;br /&gt;
&lt;br /&gt;
이것은 명백한 문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교와 상담에 있어서, 우리가 영적으로 명백한 데서 이탈해 본성적으로 끌리는 데 – 특별히 본성적으로 끌리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하면 - 로 늘 떠밀려 다니는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바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경우에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하나같이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 인정받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중요시 여김을 받는 경우에 우리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토록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이 되지 못할까요? &lt;br /&gt;
&lt;br /&gt;
이에 대한 통렬한 경고가 250년 전에 조나단 에드워즈로부터 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참된 성도의 마음은 우선 하나님이 행하신 일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영광스럽고 사랑할만한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가진 모든 기쁨의 원천이며, 성도가 가진 모든 즐거움의 정수다…. 하지만 위선자들이 느끼는 감정의 순서는 정반대다. 그들은 먼저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우쭐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amp;lt;ref&amp;gt;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감정론 Religious Affections [부흥과개혁사, 2005] p. 359&amp;lt;/ref&amp;gt; &lt;br /&gt;
&lt;br /&gt;
이것이 제가 우려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그럴만한 자격이 없으나 그리스도께서 어쨌든 나를 사랑하시기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며, 내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둬졌기 때문에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고요.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그러셨을까요?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진노가 거둬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요? &lt;br /&gt;
&lt;br /&gt;
이 지점에서 저는 우리 중 다수가 이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 바람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인정, 오로지 그것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나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 나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시려고 아무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하셨다. 나를 중요하다 여기시려고 내 죄를 사하셨다. 나를 중요하다 여기시려고 자기 진노를 거두셨다.” 이것으로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분이 드는지요! 참으로 귀한 복음 아닌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본성적인 생각입니다. 거기엔 아무런 초자연적인 변화도 없습니다. 상담에서 목적하는 회복과 치유 같습니다!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순전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나란 존재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두 번째 함의는 이것인데,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감정이란 다음과 같은 그분의 일하심을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상하게 하신 것뿐만 아니라,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과 다투는 어떤 즐거움도, 그에 대한 털끝만한 갈망일지라도 모조리 십자가에서 상하게 하고 계신다는 사실 또한 기뻐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제가 이 강의를 마치며 제시할 마지막 함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이 크나큰 변화는, 타락한 인간에게는 참으로 그 본성에 반하여 일어나는 일이므로,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lt;br /&gt;
&lt;br /&gt;
'''3.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려면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함'''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상담에서, 설교에서, 그리고 성도의 인생에서 소망을 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날마다 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18'''(우리말성경)에서 바울은 기도하기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이 표제를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으로 우리가 영광의 아버지를 알 수 있게 - 보고 맛보게 -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가 여러분의 마음눈을 밝게 하셔서 [본성적인 시각이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시각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소망이 무엇일까요? 즉,] 성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여러분으로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다가오는 세대에 “우리에게 자비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 유업(엡 2:7)이며,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설교와 상담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높이게 되는 그 크나큰 변화를 바랄 수 있는 한 가지 유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더 없는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맛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 바로 거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일하심이 있을 때에, 비로소 자아에 대한 집착은 깨어지고, 주님의 영광을 보고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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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Already,_Not_Yet:_%EC%9D%B4%EB%AF%B8_%EA%B2%B0%EC%A0%95%EC%A0%81%EC%9C%BC%EB%A1%9C_%EA%B7%B8%EB%A6%AC%EA%B3%A0_%EB%90%98%EB%8F%8C%EB%A6%B4_%EC%88%98_%EC%97%86%EA%B2%8C_%EC%9E%90%EC%9C%A0%EB%A1%AD%EC%A7%80%EB%A7%8C_%EC%95%84%EC%A7%81_%EC%B5%9C%EC%A2%85%EC%A0%81%EC%9C%BC%EB%A1%9C_%EC%99%84%EB%B2%BD%ED%95%98%EA%B2%8C_%EC%9E%90%EC%9C%A0%EB%A1%AD%EC%A7%80%EB%8A%94_%EC%95%8A%EB%8B%A4%EB%8A%94_%EC%A7%84%EB%A6%AC%EC%97%90_%EB%8C%80%ED%95%98%EC%97%AC</id>
		<title>Already, Not Yet: 이미 결정적으로 그리고 되돌릴 수 없게 자유롭지만 아직 최종적으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다는 진리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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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3-12-05T17:54: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Kathyyee: ‘Already, Not Yet: 이미 결정적으로 그리고 되돌릴 수 없게 자유롭지만 아직 최종적으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다는 진리에 대하여’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Already: Decisively and Irrevocably Free, Not Yet: Finally and Perfectly Free}}로마서 6장과 7장에서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우리의 보물로!) 믿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됩니다(로마서 '''6:5, 7:4''').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로마서 6:8; 골로새서 '''2:20, 3:3''')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로마서 6:4, 골로새서 2:12, 에베소서 2:6). 이를 통해 결정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하게 되었고(고린도후서 5:17), 결정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해방이 일어났습니다(로마서 '''6:14, 18'''). 우리는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우리에 대한 결정적인 심판은 우리 등 뒤에 즉 골고다 언덕에 있습니다(요한복음 '''5:24''').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골로새서 '''1:13'''). &lt;br /&gt;
&lt;br /&gt;
하지만 우리는 또한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직은 최종적이고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해방은 결정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최종적이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 속에 죄는 거하고 있습니다(로마서 '''7:17, 20'''). 아직도 우리 안에 악이 있습니다(로마서 '''7:21'''). 그리고 &amp;quot;육신&amp;quot;은 매일 말썽을 일으킵니다(로마서 '''7:25'''). 우리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고 우리의 면류관과 상도 얻지 못했습니다(빌립보서 '''3:1'''). 우리 안에 죄가 없다고 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요한일서 '''1:8, 10'''). &lt;br /&gt;
&lt;br /&gt;
그러면 바울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가르칩니까? 그는 &amp;quot;너는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게 새롭게 되었다. 그러니 새롭게 되기 위하여 아무 수고없이 쉽고 편안한 삶을 살거라&amp;quot; 라고 할까요? 아니면 &amp;quot;너는 결정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니 그리스도 안에서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된다&amp;quot;라고 할까요? 둘 다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amp;quot;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위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얼싸 안으며,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사실을 얼싸 안으시오. 그 사실을 믿으시오. 그리고 이제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게서 당신을 위하여 정복하신 영토를 취하기 위하여 싸우시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실제 행실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하여 싸우시오.&amp;quot;라고 할 것입니다. 이 진리에 대한 8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lt;br /&gt;
&lt;br /&gt;
1. 새롭게 되었다는 선언: 로마서 '''6:14''', &amp;quot;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amp;quot; 새롭게 되라는 명령: 로마서 '''6:12''', &amp;quot;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amp;quot; &lt;br /&gt;
&lt;br /&gt;
2. 새롭게 되었다는 선언: 로마서 '''6:18'''. &amp;quot;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amp;quot; 새롭게 되라는 명령: 로마서 '''6:19''', &amp;quot;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amp;quot; &lt;br /&gt;
&lt;br /&gt;
3. 새롭게 되었다는 선언: 로마서 '''6:6''', &amp;quot;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amp;quot; 새롭게 되라는 명령: 로마서 '''6:11''', &amp;quot;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로 여길지어다.&amp;quot; &lt;br /&gt;
&lt;br /&gt;
4. 새롭게 되었다는 선언: 골로새서 '''3:9''', &amp;quot;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amp;quot; 새롭게 되라는 명령: 에베소서 '''4:22''', &amp;quot;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amp;quot; &lt;br /&gt;
&lt;br /&gt;
5. 새롭게 되었다는 선언: 골로새서 '''3:10''', &amp;quot;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amp;quot; 새롭게 되라는 명령: 에베소서 '''4:24''', &amp;quot;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amp;quot; &lt;br /&gt;
&lt;br /&gt;
6. 새롭게 되었다는 선언: 갈라디아서 '''3:27''', &amp;quot;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amp;quot; 새롭게 되라는 명령: 로마서 '''13:14''', &amp;quot;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amp;quot; &lt;br /&gt;
&lt;br /&gt;
7. 새롭게 되었다는 선언: 갈라디아서 '''5:24''', &amp;quot;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amp;quot; 새롭게 되라는 명령: 로마서 '''13:14''', &amp;quot;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amp;quot; &lt;br /&gt;
&lt;br /&gt;
8. 새롭게 되었다는 선언: 고린도전서 '''5:7''', &amp;quot;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amp;quot; 새롭게 되라는 명령: 고린도전서 '''5:7''', &amp;quot;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amp;quot; &lt;br /&gt;
&lt;br /&gt;
새로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새롭게 되기 위해 싸우고 있는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lt;/div&gt;</summary>
		<author><name>Kathyyee</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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