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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ì„±ê²½ ì±… ë°� ì„¤êµ� - 새 문서 목록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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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ì„±ê²½ ì±… ë°� ì„¤êµ�</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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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BuildDate>Wed, 17 Jun 2026 22:36:44 GMT</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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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에 의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이상하고 놀라운 기적</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C%97%90_%EC%9D%98%ED%95%B4_%EC%82%AC%EB%9E%91%EB%B0%9B%EA%B3%A0_%EC%9E%88%EC%9D%8C%EC%9D%84_%EB%8A%90%EB%81%BC%EB%8A%94_%EC%9D%B4%EC%83%81%ED%95%98%EA%B3%A0_%EB%86%80%EB%9D%BC%EC%9A%B4_%EA%B8%B0%EC%A0%81</link>
			<description>&lt;p&gt;Pcain: ‘하나님에 의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이상하고 놀라운 기적’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Strange and Wonderful Miracle of Feeling Loved by God}}&lt;br /&gt;
&lt;br /&gt;
&amp;lt;p&amp;gt;저는 직감적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길은 나의 방법, 나의 길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방법은 나의 통상적 예상과 일치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오늘날 인간들이 주제넘게도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혹은 저런 방식으로 사랑하셔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참으로 기가 막히는 노릇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그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는 것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성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다른 열방을 사랑하신 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다른 이들을 사랑하신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메시아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들로 이루어진 참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통상적 생각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다른 열방과는 다른 이스라엘&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구약과 신약 두 곳에서 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집중해서 말씀하십니다. 마치 더럽고 피투성이의 버려진 아이에게 왕자가 말하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 외에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죽음에서 일으킬 것이며, 너를 깨끗하게 할 것이고, 너와 결혼할 것이다 (에스겔 16:1-14).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하나님은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amp;amp;quot;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amp;amp;quot; (예레미야 31:3). 이스라엘 역사 속의 모든 신적인 사랑의 행위 뒤에는 영원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존재하기 전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amp;quot;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amp;amp;quot; (신명기 7:7-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모든 열방과는 다르게 사랑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이스라엘의 어떠함에 대한 사후적 반응이 아닙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있기 전부터 그 사랑이 있었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 사랑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며, 에서와 에돔의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mp;amp;quot;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amp;amp;quot; (말라기 1:2-3). 이 말씀은 인간적 생각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특별한 사랑으로. 영원 전부터.&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메시아를 믿는 신자들&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신약에서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참된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 나라 안의 남은 자가 있었으며, 이들은 메시아 예수님을 참으로 신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amp;amp;quot;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amp;amp;quot; (로마서 2:29). &amp;amp;quot;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amp;amp;quot; (로마서 9:8)&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이어갑니다. 이 &amp;amp;quot;하나님의 자녀&amp;amp;quot;는 &amp;amp;quot;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amp;amp;quot;라고 말합니다(로마서 9:24). &amp;amp;quot;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amp;amp;quot; (로마서 10:11-12).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바울은 이들 참 유대인들 - 하나님의 자녀들, 메시아를 믿는 신자들 - 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큰 사랑으로 사랑받음&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amp;quot;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amp;amp;quot; (에베소서 1:4-5). 하나님은 우리가 창조되기 이전에, 또는 입양되기 전에, 심지어 결혼하기도 전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마치 악랄한 반역자들도 이루어진 왕국에서 자신을 경멸했던 여인을 찾아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선택한 것처럼 말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amp;amp;quot;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amp;amp;quot;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9). 천지창조 이전에 이같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바울은 이를 &amp;amp;quot;큰 사랑&amp;amp;quot;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 때문에 강포하고, 더럽고, 반역적이고, 마음이 죽어 있던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랑을 큰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amp;amp;quot;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great love)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amp;amp;quot; (에베소서 2:4-5). 그 큰 사랑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것은 너무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종종 제가 견딜 수 있는 그 이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내가 &amp;amp;quot;다른 이들과 같이&amp;amp;quot;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에베소서 2:3). 하지만 나를 죽은 채로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내게 마땅한 것은 죽음이었지만요. 그는 냄새나는 무덤을 들여다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amp;amp;quot;존 파이퍼야, 나오너라&amp;amp;quot; (요한복음 11:43). 그는 내게 믿음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8; 빌립보서 1:29). 나를 양자삼으셨습니다. 나를 그의 백성, 그의 신부에 포함시키셨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항복하시겠습니까?&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 사랑은 인간들 속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사랑을 헤아리고, 이 사랑을 느끼는 것은 자연적이지 않습니다. 이 사랑을 알고, 이 사랑이 무언지 느끼기 위해서는, 이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 사랑이 당신을 향해 행해져야 합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처럼 사랑받기 원합니까? 아마 아닐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이 좀 더 민주적으로, 좀 더 보편적으로 사랑하시길 요구하는 것이 아마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즉,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만을 선택하지 말라고, 모든 민족들 중에 신부만을 선택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이해하고, 이처럼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그러면 이미 당신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이 사랑에 항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사랑이 가장 충만한 구현이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amp;amp;quot;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amp;amp;quot; (로마서 10:9).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영원 전부터 큰 사랑으로 위대한 사랑으로 사랑받아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amp;lt;/p&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07 Dec 2018 20:42:12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D%95%98%EB%82%98%EB%8B%98%EC%97%90_%EC%9D%98%ED%95%B4_%EC%82%AC%EB%9E%91%EB%B0%9B%EA%B3%A0_%EC%9E%88%EC%9D%8C%EC%9D%84_%EB%8A%90%EB%81%BC%EB%8A%94_%EC%9D%B4%EC%83%81%ED%95%98%EA%B3%A0_%EB%86%80%EB%9D%BC%EC%9A%B4_%EA%B8%B0%EC%A0%81</comments>		</item>
		<item>
			<title>당신의 장작을 태우기 위한 불 쏘시개</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8B%B9%EC%8B%A0%EC%9D%98_%EC%9E%A5%EC%9E%91%EC%9D%84_%ED%83%9C%EC%9A%B0%EA%B8%B0_%EC%9C%84%ED%95%9C_%EB%B6%88_%EC%8F%98%EC%8B%9C%EA%B0%9C</link>
			<description>&lt;p&gt;Pcain: ‘당신의 장작을 태우기 위한 불 쏘시개’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Some Kindling for Your Embers}}&lt;br /&gt;
&lt;br /&gt;
&amp;lt;p&amp;gt;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작다고 느낍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것은 우리가 작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존 파이퍼는 조그만 복음주의의 연못에서는 큰 물고기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바다 속에서 저는 통계적으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의 창조주께 속해 있으며, 우리는 멈출 수 없는 열방을 향한 그분의 전 지구적인 목적의 일 부분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올해 12월에 있을 &amp;lt;sup&amp;gt;1&amp;lt;/sup&amp;gt;크로스 컨퍼런스(CROSS conference)를 준비하며 저는 당신의 소망의 불에 불쏘시개를 놓기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번 컨퍼런스에서 불을 지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3분간 세상의 모든 열방을 향한 결코 무너질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느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열방을 구원하시기 위해 택하실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랍고 우회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을 마친 바울은 &amp;quot;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amp;quot; (로마서 11:33) 라고 말했습니다. 그 계획은 놀랍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바울이 방금 말한 것은 이것입니다: 열방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분은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은 열방에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열방에 베푸신 긍휼 때문에, 이스라엘에도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30-31절). &amp;quot;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amp;quot; (로마서 11:32).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하나님은 하시는 모든 일에서, 결코 한 가지만 행하시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실 때마다 항상 수천 가지 일을 하십니다. 따라서 그의 모든 행하심이 우리에게는 복잡하고 우회적으로 보입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amp;lt;strong&amp;gt;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얻으려고 애쓰십니다. 그리고 조만간 그들을 얻으실 것입니다.&amp;lt;/strong&amp;gt;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열방의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계획에 잠시 사로잡혀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조그만 삶은 거대한 무언가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만들라는 신약의 계명을 잠시 제쳐두십시오. 그냥 열방을 향한 구약의 &amp;lt;strong&amp;gt;권면&amp;lt;/strong&amp;gt;과 &amp;lt;strong&amp;gt;약속&amp;lt;/strong&amp;gt;과 &amp;lt;strong&amp;gt;기도&amp;lt;/strong&amp;gt; 몇 가지를 살펴보십시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권면&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p&amp;gt;너희 &amp;lt;strong&amp;gt;만민&amp;lt;/strong&amp;gt;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시편 47:1).&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lt;strong&amp;gt;만민&amp;lt;/strong&amp;gt;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시편 66:8).&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amp;lt;strong&amp;gt;만민&amp;lt;/strong&amp;gt;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시편 96:3).&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 &amp;lt;strong&amp;gt;만국의 족속&amp;lt;/strong&amp;gt;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시편 96:7).&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너희 &amp;lt;strong&amp;gt;모든 나라&amp;lt;/strong&amp;gt;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amp;lt;strong&amp;gt;모든 백성들아&amp;lt;/strong&amp;gt; 그를 찬송할지어다! (시편 117:1).&amp;lt;/p&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약속&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p&amp;gt;내가 &amp;lt;strong&amp;gt;이방 나라&amp;lt;/strong&amp;gt;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시편 2:8; 비고 111:6).&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lt;strong&amp;gt;만민&amp;lt;/strong&amp;gt;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5:17).&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lt;strong&amp;gt;뭇 나라의 고관들이&amp;lt;/strong&amp;gt;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시편 47:9).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주여 주께서 지으신 &amp;lt;strong&amp;gt;모든 민족&amp;lt;/strong&amp;gt;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시편 86:9).&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amp;lt;strong&amp;gt;만민&amp;lt;/strong&amp;gt;을 위하여 기름진 것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이사야 25:6).&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lt;strong&amp;gt;땅 끝까지도&amp;lt;/strong&amp;gt;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이사야 52:10).&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내 집은 &amp;lt;strong&amp;gt;만민&amp;lt;/strong&amp;gt;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사야 56:7).&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amp;lt;strong&amp;gt;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amp;lt;/strong&amp;gt;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이사야 66:18).&amp;lt;/p&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기도&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p&amp;gt;하나님이여 &amp;lt;strong&amp;gt;민족들&amp;lt;/strong&amp;gt;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 . . .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amp;lt;strong&amp;gt;모든 민족&amp;lt;/strong&amp;gt;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시편 67:3-5).&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amp;lt;strong&amp;gt;모든 민족&amp;lt;/strong&amp;gt;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시편 72:11).&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amp;lt;strong&amp;gt;모든 민족&amp;lt;/strong&amp;gt;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시편 72:17).&amp;lt;/p&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amp;quot;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amp;quot; 하였노라 (이사야 46:10).&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러므로 당신의 작음을 절대로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대사로서,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큰 조직에 속해 있습니다. 12월에 크로스 컨퍼런스에 올 계획을 세우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불쏘시개가 높이 쌓이기를, 그리고 그 불이 떨어지기를.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r&amp;gt;&lt;br /&gt;
&amp;lt;p&amp;gt;&amp;lt;sup&amp;gt;1&amp;lt;/sup&amp;gt; 켄터키 주 루이즈빌에서 열리는 선교 컨퍼런스. &amp;lt;/p&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06 Dec 2018 21:09:01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8B%B9%EC%8B%A0%EC%9D%98_%EC%9E%A5%EC%9E%91%EC%9D%84_%ED%83%9C%EC%9A%B0%EA%B8%B0_%EC%9C%84%ED%95%9C_%EB%B6%88_%EC%8F%98%EC%8B%9C%EA%B0%9C</comments>		</item>
		<item>
			<title>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해야 하는가?</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5%84%EC%9D%B4%EB%93%A4%EC%97%90%EA%B2%8C_%EC%98%88%EC%88%98%EB%8B%98%EC%9D%84_%EC%82%AC%EB%9E%91%ED%95%98%EB%9D%BC%EA%B3%A0_%ED%95%B4%EC%95%BC_%ED%95%98%EB%8A%94%EA%B0%80%3F</link>
			<description>&lt;p&gt;Pcain: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해야 하는가?’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Should We Tell Children to Love Jesus?}}&lt;br /&gt;
&lt;br /&gt;
&amp;lt;p&amp;gt;스펄전은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amp;lt;strong&amp;gt;신뢰하라&amp;lt;/strong&amp;gt;고 하기보다 예수님을 &amp;lt;strong&amp;gt;사랑하라&amp;lt;/strong&amp;gt;고 하는 것에 더 강조점을 두는 것에 대해 염려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p&amp;gt;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를 왜곡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해 말하기보다 예수님을 &amp;lt;strong&amp;gt;사랑하는&amp;lt;/strong&amp;gt;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는 분명히 어린 마음에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며 진정한 평화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amp;lt;strong&amp;gt;Lectures to My Students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amp;lt;/strong&amp;gt;, Vol.2, 1889, 270쪽)&amp;lt;/p&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는 타당한 염려입니다. &amp;lt;strong&amp;gt;신뢰&amp;lt;/strong&amp;gt;는 아이들에게 &amp;lt;strong&amp;gt;사랑&amp;lt;/strong&amp;gt;보다 더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네 번째 계단에서 뛰어내리면 아빠가 잡아줄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amp;quot;아빠를 믿어. 아빠가 너를 잡아줄거야.&amp;quot; 두 살만 되면 믿음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와 비슷하게, 어린아이는 이를 예수님께 적용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를 돌보시기 위해 언제나 거기에 계시단다. 사실, 그분은 너를 구원하고 보호하시기 위해 죽으셨단다. 언젠가는 그 사실을 더욱 이해하게 될 날이 올거야.&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러나 &amp;lt;strong&amp;gt;예수님을 사랑하는&amp;lt;/strong&amp;gt; 것이 의미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더 복잡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아름답고 탁월한 분으로 만드는 품성들과 그분은 우리에게서 최고의 경탄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그분을 구별시키는 예수님의 완전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수반합니다. 이것은 신뢰에 대해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신뢰 안에서 사랑하기&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아이에게 예수님을 신뢰할 필요를 강조하는 것보다 그분을 사랑할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사랑을 행위의 집합으로 왜곡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인지된 모든 의무들을 바로 행위로 해석합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러나 사랑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사랑은 행위보다 먼저이며 행위의 밑바탕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amp;quot;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amp;quot; (요한복음 14:15) 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랑이 곧 순종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은 순종에 선행하며 순종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한편, 우리는 조만간 우리를 구원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그 안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음을 아이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예수님을 믿는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물—영원토록 전적인 만족을 주는 우리 삶 속의 가장 귀한 보물—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에 기대고 있습니다. 복음은 &amp;quot;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amp;quot; (고린도후서 4:4)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amp;quot;아버지여... 그들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amp;quot; (요한복음 17:24).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예수님의 사역은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영원히 사랑하도록 자신을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으시면서까지 우리를 위해 선물로 주시고자 하신 예수님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그의 일을 하실 것을 &amp;lt;strong&amp;gt;신뢰한다&amp;lt;/strong&amp;gt;고 말할 수 없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리고 예수님을 &amp;lt;strong&amp;gt;사랑하는 것&amp;lt;/strong&amp;gt;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실 것을 &amp;lt;strong&amp;gt;신뢰&amp;lt;/strong&amp;gt;하는 것을 항상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사랑하는 것 중의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 가장 잘 보여주신 그분의 신뢰할 만한 성품과 그분의 완전한 자비 그리고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사랑의 필요성&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리고 조만간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필요성(&amp;quot;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네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amp;quot; 사도행전 16:31)에 대해서 말할 뿐만 아니라 그분을 사랑할 필요에 대해서도 소개해야 할 것입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다음의 본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amp;quot;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amp;lt;strong&amp;gt;사랑을&amp;lt;/strong&amp;gt;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진리를 &amp;lt;strong&amp;gt;믿지&amp;lt;/strong&amp;gt;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amp;quot; (데살로니가후서 2:9-12).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amp;quot;진리를 &amp;lt;strong&amp;gt;사랑하는 것&amp;lt;/strong&amp;gt;&amp;quot;은 단지 무엇이 어떻다고 &amp;lt;strong&amp;gt;믿는 것&amp;lt;/strong&amp;gt;이 아니라, 그 안에서 &amp;quot;&amp;lt;strong&amp;gt;기쁨을 얻는 것&amp;lt;/strong&amp;gt;&amp;quot;임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리되시는 &amp;lt;strong&amp;gt;예수님&amp;lt;/strong&amp;gt;을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우리는 매우 심각하게 우리 아이들에게 경고하며 다음의 본문을 읽을 것입니다. &amp;quot;만일 누구든지 주를 &amp;lt;strong&amp;gt;사랑하지&amp;lt;/strong&amp;gt;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amp;quot; (고린도전서 16:22). 그리고 예수님의 적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습니다. &amp;quot;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amp;lt;strong&amp;gt;사랑하였으리니&amp;lt;/strong&amp;gt;'&amp;quot; (요한복음 8:42)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하기&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러나 우리는 큰 기쁨으로 아이들 위에 약속이 풍성하게 넘치게 할 것입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amp;gt;&amp;quot;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amp;lt;strong&amp;gt;사랑하는&amp;lt;/strong&amp;gt;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amp;quot; (야고보서 1:12)&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quot;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amp;lt;strong&amp;gt;사랑하는&amp;lt;/strong&amp;gt;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amp;quot; (로마서 8:28)&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quot;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amp;lt;strong&amp;gt;사랑하면&amp;lt;/strong&amp;gt;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amp;quot; (고린도전서 8:3)&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quot;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amp;lt;strong&amp;gt;사랑한즉&amp;lt;/strong&amp;gt;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amp;quot; (시편 91:14)&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quot;여호와께서 자기를 &amp;lt;strong&amp;gt;사랑하는&amp;lt;/strong&amp;gt;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amp;quot; (시편 145:20)&amp;lt;/p&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우리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amp;quot;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amp;quot;(요한일서 4:19)고 하신 바, 놀라운 진리를 찬양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로마서 5:8)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의 사랑이 우리에게서 돌의 마음을 제하시고 그를 향한 사랑을 일깨워주셨다는 뜻입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하나님의 영이시여, 내 마음에 내리소서; » 이 땅의 것에 대한 애착을 끊게 하소서; 주는 강하시오니, 나의 약함을 구부려 살피소서; » 그리고 나로 하여금 마땅히 사랑할 만큼 주를 사랑하게 하소서.&amp;lt;/p&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30 Nov 2018 20:51:16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5%84%EC%9D%B4%EB%93%A4%EC%97%90%EA%B2%8C_%EC%98%88%EC%88%98%EB%8B%98%EC%9D%84_%EC%82%AC%EB%9E%91%ED%95%98%EB%9D%BC%EA%B3%A0_%ED%95%B4%EC%95%BC_%ED%95%98%EB%8A%94%EA%B0%80%3F</comments>		</item>
		<item>
			<title>기독교 선교에 있어 &quot;지금 현 시점&quot;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8%B0%EB%8F%85%EA%B5%90_%EC%84%A0%EA%B5%90%EC%97%90_%EC%9E%88%EC%96%B4_%22%EC%A7%80%EA%B8%88_%ED%98%84_%EC%8B%9C%EC%A0%90%22%EC%9D%B4_%EA%B0%96%EB%8A%94_%EC%97%AD%EC%82%AC%EC%A0%81_%EC%A4%91%EC%9A%94%EC%84%B1</link>
			<description>&lt;p&gt;Pcain: ‘기독교 선교에 있어 &amp;quot;지금 현 시점&amp;quot;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Thrilling “Now” of Christian Mission}}&lt;br /&gt;
&lt;br /&gt;
&amp;lt;p&amp;gt;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창세기&lt;br /&gt;
&lt;br /&gt;
12장에서 아브람을 부르신 이래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2,000년 동안, 전 우주의 하나님께서 한 작은 민족인 이스라엘에게만&lt;br /&gt;
&lt;br /&gt;
특별한 계시와 구속 사역을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lt;br /&gt;
&lt;br /&gt;
게 방임하셨습니다(사도행전 14:16).&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하지만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 모든 것은 변하였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amp;quot;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lt;br /&gt;
&lt;br /&gt;
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amp;quot;(누가복음 24:47). &amp;quot;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amp;quot;(마태복음&lt;br /&gt;
&lt;br /&gt;
28:19). 이것은  세계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하나님의 세심한 계획&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모든 민족을 제자&lt;br /&gt;
&lt;br /&gt;
로 삼으라고 하신 명령은 상황에 따라 급조된 계획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실 때부터 이미 있었던 계획이었습&lt;br /&gt;
&lt;br /&gt;
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amp;quot;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amp;quot;(창세기 12:3)&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바울은&lt;br /&gt;
&lt;br /&gt;
이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복음에 적용했습니다. &amp;quot;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lt;br /&gt;
&lt;br /&gt;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amp;quot;(갈라디아서 3:8). 결국 하&lt;br /&gt;
&lt;br /&gt;
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2,000년 전에 아브람을 택하셨을 때 이미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미치도록 예비하&lt;br /&gt;
&lt;br /&gt;
셨던 것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지상 대명령이 주어지기 전까지,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lt;br /&gt;
&lt;br /&gt;
것일까요?&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의 긴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하나님은 그의 지혜 안에서 율&lt;br /&gt;
&lt;br /&gt;
법과 은혜, 믿음과 실패, 제사와 대속, 지혜와 예언, 자비와 심판 등으로 점철된 이스라엘의 2,000년 역사의 배경을 통하여 민&lt;br /&gt;
&lt;br /&gt;
족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의 본 모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바울은 로마서&lt;br /&gt;
&lt;br /&gt;
3:19–20에서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mp;quot;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lt;br /&gt;
&lt;br /&gt;
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lt;br /&gt;
&lt;br /&gt;
없나니&amp;quot;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amp;quot;온 세상&amp;quot;이 우리가 &amp;quot;행한 바 의로운 행위&amp;quot;(디도서 3:5)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어&lt;br /&gt;
&lt;br /&gt;
떤 희망도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2,00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열방들을 위한 교훈집&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lt;br /&gt;
&lt;br /&gt;
스라엘의 역사는 단지 이스라엘에만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이는 &amp;quot;모든 입&amp;quot; 그리고 &amp;quot;온 세상&amp;quot;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2,000년에&lt;br /&gt;
&lt;br /&gt;
걸쳐 둘러 가는 우회로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열방들을 위한 교훈집을 기록하셨습니다. 성경에 구약이 들어 있는 것은&lt;br /&gt;
&lt;br /&gt;
우연이 아닙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바울이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들에게 아레오바고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당시까지는 &amp;quot;무지의 시간들&lt;br /&gt;
&lt;br /&gt;
&amp;quot;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닙니다. &amp;quot;이제는 어디든지 사&lt;br /&gt;
&lt;br /&gt;
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lt;br /&gt;
&lt;br /&gt;
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amp;quot;(사도행전 17:30-21)&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모든 민족들에게&lt;br /&gt;
&lt;br /&gt;
있어 &amp;quot;지금 현 시점&amp;quot;이 갖는 의미&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amp;quot;지금 현 시점&amp;quot;의 역사적 의의입니다. &amp;quot;지금 하나님께&lt;br /&gt;
&lt;br /&gt;
서는 모든 곳의 모든 민족에게 회개를 명하십니다.&amp;quot;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명령을 인증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성취 안에&lt;br /&gt;
&lt;br /&gt;
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우리는 &amp;quot;모든 민족들&amp;quot;의 &amp;quot;지금 현 시점&amp;quot;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lt;br /&gt;
&lt;br /&gt;
에 오시기 이전 2,000년 동안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래로 2,000년 동안 이를 추&lt;br /&gt;
&lt;br /&gt;
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구원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이제 추수의 때입니다.&amp;lt;/p&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9 Nov 2018 22:04:52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A%B8%B0%EB%8F%85%EA%B5%90_%EC%84%A0%EA%B5%90%EC%97%90_%EC%9E%88%EC%96%B4_%22%EC%A7%80%EA%B8%88_%ED%98%84_%EC%8B%9C%EC%A0%90%22%EC%9D%B4_%EA%B0%96%EB%8A%94_%EC%97%AD%EC%82%AC%EC%A0%81_%EC%A4%91%EC%9A%94%EC%84%B1</comments>		</item>
		<item>
			<title>때때로 주님은 사랑하시는 이들을 치십니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95%8C%EB%95%8C%EB%A1%9C_%EC%A3%BC%EB%8B%98%EC%9D%80_%EC%82%AC%EB%9E%91%ED%95%98%EC%8B%9C%EB%8A%94_%EC%9D%B4%EB%93%A4%EC%9D%84_%EC%B9%98%EC%8B%AD%EB%8B%88%EB%8B%A4.</link>
			<description>&lt;p&gt;Pcain: ‘때때로 주님은 사랑하시는 이들을 치십니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Sometimes the Lord Slays His Loved Ones}}&lt;br /&gt;
&lt;br /&gt;
&amp;lt;p&amp;gt;어떤 사람들은 타고나기를 거칠고, 퉁명스럽고, 사무적이고, 냉정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상냥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감정적으로 예민합니다. 가끔은, 놀랍게도, 이 둘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통, 이렇게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처럼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일은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설교나 대화 중에 언급한 말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극과 극입니다. 한 사람은 확실히 사랑받았다고 느끼고, 다른 한 사람은 불쾌하게 느끼며 실망하기도 합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 삶이 말씀 안에 푹 젖어들어서, 성경이 이것이 실은 사랑하는 것이라고 기술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이를 통해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제가 보기에 우리 대부분은 부드럽고 긍정적인 교훈을 통해서는 사랑받고 있음을 잘 느끼지만, 힘든 훈련을 통해서는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정이 없다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탓하는 마음으로부터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성경에서 견디기 힘든 일들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곳을 특별히 적어 놓습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예들 들어, 바울은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amp;lt;em&amp;gt;정죄함을 받지&amp;lt;/em&amp;gt; 않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를 &amp;lt;em&amp;gt;판단하신다&amp;lt;/em&amp;gt;는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죽음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거친 말로 하자면 우리를 죽이시는 것이고, 부드러운 말로 하자면 우리의 삶을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만찬을 욕되게 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amp;gt;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amp;lt;sup&amp;gt;30&amp;lt;/sup&amp;gt;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amp;lt;em&amp;gt;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amp;lt;/em&amp;gt;.&amp;lt;sup&amp;gt;31&amp;lt;/sup&amp;gt;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amp;lt;sup&amp;gt;32&amp;lt;/sup&amp;gt;&amp;lt;em&amp;gt;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amp;lt;/em&amp;gt;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amp;lt;em&amp;gt;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amp;lt;/em&amp;gt;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서 11:29-32)&amp;lt;/p&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성만찬을 욕되게 여김으로 인해 어떤 사람은 &amp;lt;em&amp;gt;죽기도&amp;lt;/em&amp;gt; 하였습니다. 이는 &amp;quot;징계&amp;quot;라고 불리웁니다. &amp;quot;우리가 정죄함을 받지 않기 위해 징계를 받음이라.&amp;quot; 이것은 &amp;quot;주께 판단받는&amp;quot; 것으로 묘사됩니다. &amp;quot;우리가 주께 판단을 받는 것은...&amp;quot;&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어떻게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자신의 사람들을 치시는 목적이 그들로 하여금 &amp;quot;세상과 함게 정죄함을 받지 않게&amp;quot;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한 인간의 삶의 궤도가 자연스럽게 속죄의 삶과는 양립할 수 없는 죄의 패턴을 향해서 가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곳으로 가기 전에 미리 차단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하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 있어서 종종 그렇듯이) 두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1)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신다면 (잠언 21:1,2, 데살로니가 후서 3:5), 어째서 하나님은 그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을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둠으로써 미래의 죄로부터 보호하시지 않는 것일까요 (예레미야 32:40)?  어째서 그들을 지키시기 위해 그들을 치시는 걸까요?&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p&amp;gt;답: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한 가지 가능한 답은 하나님은 우리의 불순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죄성을 보여 주는 한 가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하기(히브리서 13:21)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어쩌면 조금 더 충격적인 방법인, 죽음이라는 최후의 징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 도저히 헤아리기 어려운 방법들을 지니고 계십니다 (로마서 11:33).&amp;lt;/p&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2) 만약 거듭났고 영원을 약속받은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정죄함을 받지 않기 위해 죽게 되었다면, 선택된 이 사람들은 실제로 그들의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amp;lt;/p&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lt;p&amp;gt;답: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끝내 구원과 양립할 수 없는 죄의 패턴들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그 같은 죄의 패턴에 굴복하도록 두시기보다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편을 택하실 것입니다.&amp;lt;/p&amp;gt;&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amp;gt;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생명 (또는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이 언제나 지혜로우시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주에 의해 취하여질 때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신자들이 될 수 있도록 위의 말씀들로 우리의 마음이 푹  잠길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amp;lt;/p&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15 Nov 2018 20:08:54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95%8C%EB%95%8C%EB%A1%9C_%EC%A3%BC%EB%8B%98%EC%9D%80_%EC%82%AC%EB%9E%91%ED%95%98%EC%8B%9C%EB%8A%94_%EC%9D%B4%EB%93%A4%EC%9D%84_%EC%B9%98%EC%8B%AD%EB%8B%88%EB%8B%A4.</comments>		</item>
		<item>
			<title>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흠 없이 맞이할 수 있을까요?</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A%B0%EB%A6%AC%EB%8A%94_%EA%B7%B8%EB%A6%AC%EC%8A%A4%EB%8F%84%EC%9D%98_%EC%9E%AC%EB%A6%BC%EC%9D%84_%ED%9D%A0_%EC%97%86%EC%9D%B4_%EB%A7%9E%EC%9D%B4%ED%95%A0_%EC%88%98_%EC%9E%88%EC%9D%84%EA%B9%8C%EC%9A%94%3F</link>
			<description>&lt;p&gt;Pcain: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흠 없이 맞이할 수 있을까요?’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Will We Arrive Blameless on the Day of Christ?}} &lt;br /&gt;
&lt;br /&gt;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날—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하게 될 예수님의 재림의 날(고린도전서 15:23)—에 그의 회심자들이 믿음으로 유지되는 거룩함을 갖기 원합니다. 이 거룩함( 바울은 이를 &amp;quot;흠 없음&amp;quot;, &amp;quot;허물 없음&amp;quot;, &amp;quot;책망할 것 없음&amp;quot; 그리고 &amp;quot;정결&amp;quot; 등으로 부르기도 함)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하여 확실하게 확보되고, 인내하는 믿음을 조건으로 하며, 인간측 기관 혹은 작인(human agency)에 의존합니다.&lt;br /&gt;
&lt;br /&gt;
==== 확실성 ====&lt;br /&gt;
&lt;br /&gt;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회심자들의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과 거룩함을 붙들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일부분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3–24)&lt;br /&gt;
&lt;br /&gt;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린도전서 1:7–9)&lt;br /&gt;
&lt;br /&gt;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이것이 바로 회심자들을 향한 바울의 기대와 확신입니다. 하지만 회심자들이 믿음과 거룩함 안에서 인생을 마치는 날까지 인내하리라는 사실의 확실성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일하심 없이도 회심자들의 믿음과 거룩함이 끝까지 확실히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확실성은 회심자들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 회심자(고린도후서 5:17)에게는 믿음 안에서 끝까지 인내하는 능력이 스스로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새로운 피조물은 믿음 안에서 끝까지 인내하는 능력을 날마다 채워 주시는 분에 대한 연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결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단호히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울이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amp;quot;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amp;quot; (데살로니가전서 5:24; 고린도전서 1:9).&lt;br /&gt;
&lt;br /&gt;
==== 조건성 ====&lt;br /&gt;
&lt;br /&gt;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모두에게 이것은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신자들에게 말하기를, “... 너희를 이제는 그[예수]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골로새서 1:21–23).&lt;br /&gt;
&lt;br /&gt;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우리가 소유하고 있어야 할 거룩함은 우리가 그 때까지 믿음 안에서 지속하는 여부에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확실성과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이를 확실히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amp;quot;믿음 안에 거하지&amp;quot; 않고도 그리스도를 만날 준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은 신실하게 우리 안에 은혜를 끊임없이 일깨워 주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유지시켜 주십니다. 그는 우리를 붙드십니다. 하나님을 보물 삼고 거룩함을 추구하려는 열정을 주심으로 우리를 붙드십니다. &lt;br /&gt;
&lt;br /&gt;
==== 작인(agency) ====&lt;br /&gt;
&lt;br /&gt;
바울은 그의 회심자들의 삶 속에 있는 이러한 역동적인 일들을 그냥 지켜 보기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가 기도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날에 참으로 정결하고 흠 없기를 기도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들이 믿음과 거룩함 안에서 예수님의 날에 안전하게 도달할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한 안전한 도달은 인내하는 믿음이라는 조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본향으로 무사히 데려오시는 데에 사용하시는 작인(agency)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립보서 1:9–10)&lt;br /&gt;
&lt;br /&gt;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3:12-13)&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그러므로, 바울의 확실성의 진리가 우리를 확신하게 합시다. 조건성의 진리가 우리를 '''심각하게''' 합시다. 그리고 작인(agency)의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믿음과 거룩함을 위해 기도해 주는 형제 자매들이 우리를 '''둘러쌓게''' 합시다.&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4 Aug 2018 19:28:42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A%B0%EB%A6%AC%EB%8A%94_%EA%B7%B8%EB%A6%AC%EC%8A%A4%EB%8F%84%EC%9D%98_%EC%9E%AC%EB%A6%BC%EC%9D%84_%ED%9D%A0_%EC%97%86%EC%9D%B4_%EB%A7%9E%EC%9D%B4%ED%95%A0_%EC%88%98_%EC%9E%88%EC%9D%84%EA%B9%8C%EC%9A%94%3F</comments>		</item>
		<item>
			<title>바울이 말하는 풍성함의 의미에 따라 깊이 생각하고 기도합시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B0%94%EC%9A%B8%EC%9D%B4_%EB%A7%90%ED%95%98%EB%8A%94_%ED%92%8D%EC%84%B1%ED%95%A8%EC%9D%98_%EC%9D%98%EB%AF%B8%EC%97%90_%EB%94%B0%EB%9D%BC_%EA%B9%8A%EC%9D%B4_%EC%83%9D%EA%B0%81%ED%95%98%EA%B3%A0_%EA%B8%B0%EB%8F%84%ED%95%A9%EC%8B%9C%EB%8B%A4.</link>
			<description>&lt;p&gt;Pcain: ‘바울이 말하는 풍성함의 의미에 따라 깊이 생각하고 기도합시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Pray and Ponder Yourself into Sync with Paul’s Sense of Wealth}}&lt;br /&gt;
&lt;br /&gt;
&amp;lt;p&amp;gt;사도 바울은 &amp;quot;부요함&amp;quot;과 &amp;quot;풍성함&amp;quot;을 이야기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amp;lt;em&amp;gt;풍성&amp;lt;/em&amp;gt;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에 노력을 쏟아야 할까?&amp;lt;/p&amp;gt;&lt;br /&gt;
&amp;lt;p&amp;gt;다음은 바울이 좋아하는 말인 &amp;quot;풍성함&amp;quot;(그리스어로는 &amp;lt;em&amp;gt;플루토스&amp;lt;/em&amp;gt;)이 쓰인 성경구절들입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맛보고 찾아보시길 바랍니다.&amp;lt;/p&amp;gt;&lt;br /&gt;
&amp;lt;ul&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 (로마서 2:4)&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 (로마서 9:23)&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 (로마서 11:33)&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그들의 풍성한 연보 (고린도후서 8:2)&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그의 은혜의 풍성함 (에베소서 1:7)&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에베소서 1:18)&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에베소서 2:7)&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 (에베소서 3:8)&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그의 영광의 풍성함 (에베소서 3:16)&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빌립보서 4:19)&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서 1:27)&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골로새서 2:2)&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디모데전서 6:17)&amp;lt;/p&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4 Aug 2018 19:22:27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B0%94%EC%9A%B8%EC%9D%B4_%EB%A7%90%ED%95%98%EB%8A%94_%ED%92%8D%EC%84%B1%ED%95%A8%EC%9D%98_%EC%9D%98%EB%AF%B8%EC%97%90_%EB%94%B0%EB%9D%BC_%EA%B9%8A%EC%9D%B4_%EC%83%9D%EA%B0%81%ED%95%98%EA%B3%A0_%EA%B8%B0%EB%8F%84%ED%95%A9%EC%8B%9C%EB%8B%A4.</comments>		</item>
		<item>
			<title>&quot;예수 그리스도 안에&quot; 있다는 놀라운 현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22%EC%98%88%EC%88%98_%EA%B7%B8%EB%A6%AC%EC%8A%A4%EB%8F%84_%EC%95%88%EC%97%90%22_%EC%9E%88%EB%8B%A4%EB%8A%94_%EB%86%80%EB%9D%BC%EC%9A%B4_%ED%98%84%EC%8B%A4</link>
			<description>&lt;p&gt;Pcain: ‘&amp;quot;예수 그리스도 안에&amp;quot; 있다는 놀라운 현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Stupendous Reality of Being “in Christ Jesus”}} &lt;br /&gt;
&lt;br /&gt;
&amp;lt;p&amp;gt;&amp;quot;예수 그리스도 안에&amp;quot;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현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음의 의미는 숨이 멎게 할 정도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리스도에 묶여 있다는 것.  &amp;quot;그리스도 안에&amp;quot; 있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무슨 의미인지 들어보십시오:&amp;lt;/p&amp;gt;&lt;br /&gt;
&amp;lt;ol&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amp;quot;영원 전부터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예수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amp;quot; (디모데후서 1:9)&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amp;quot;창세 전에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우리를 택하사&amp;quot; (에베소서 1:4)&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끊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amp;quot;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amp;lt;strong&amp;gt;&amp;lt;em&amp;gt;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amp;lt;/em&amp;gt;&amp;lt;/strong&amp;gt;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amp;quot; (로마서 8:38–39)&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구원받아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amp;quot;우리는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amp;quot; (에베소서 1:7) &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의를 입었습니다. &amp;quot;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amp;quot; (고린도후서 5:21)&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amp;quot;그런즉 누구든지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안에&amp;lt;/em&amp;gt;&amp;lt;/strong&amp;gt;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amp;quot; (고린도후서5:17) &amp;quot;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amp;quot; (갈라디아서 3:26)&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그가 이 세상에 살아계실 때에도 이미 천국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amp;quot;또 함께 일으키사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예수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amp;quot; (에베소서 2:6)&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예가 되니&amp;quot; (고린도후서 1:20)&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거룩하게 하심을 얻었습니다. &amp;quot;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예수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거룩하여지고&amp;quot; (고린도전서 1:2)&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정말로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집니다. &amp;quot;나의 하나님이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예수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amp;quot; (빌립보서 4:19)&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amp;quot;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예수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amp;quot; (빌립보서 4:7)&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영생을 얻습니다. &amp;quot;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amp;lt;/em&amp;gt;&amp;lt;/strong&amp;gt; 영생이니라&amp;quot; (로마서 6:23)&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p&amp;gt;그리고 그가 재림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은 사망에서 건져질 것입니다. &amp;quot;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amp;lt;strong&amp;gt;&amp;lt;em&amp;gt;그리스도 안에서&amp;lt;/em&amp;gt;&amp;lt;/strong&amp;gt;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amp;quot; (고린도전서 15:22) 아담과 혈육으로 하나가 된 모든 인간은 사망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새로운 피조물은 모두 구원받아 부활하는 것입니다.&amp;lt;/p&amp;gt;&lt;br /&gt;
  &amp;lt;/li&amp;gt;&lt;br /&gt;
&amp;lt;/ol&amp;gt;&lt;br /&gt;
&amp;lt;p&amp;gt;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는 걸까요?&amp;lt;/p&amp;gt;&lt;br /&gt;
&amp;lt;p&amp;gt;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단계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amp;quot;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amp;quot; (고린도전서 1:30)&amp;lt;/p&amp;gt;&lt;br /&gt;
&amp;lt;p&amp;gt;반면, 우리가 의식하는 우리의 행동의 단계에서, 그것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amp;quot;믿음으로 말미암아&amp;quot;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에베소서 3:17) 그리고 그의 죽음과 삶에 하나되어 &amp;quot;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amp;quot;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우리가 &amp;quot;믿음으로 말미암아&amp;quot; 그의 죽음과 부활에 하나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2)&amp;lt;/p&amp;gt;&lt;br /&gt;
&amp;lt;p&amp;gt;이것은 놀라운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영원한 기쁨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값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amp;lt;/p&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3 Aug 2018 20:20:20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22%EC%98%88%EC%88%98_%EA%B7%B8%EB%A6%AC%EC%8A%A4%EB%8F%84_%EC%95%88%EC%97%90%22_%EC%9E%88%EB%8B%A4%EB%8A%94_%EB%86%80%EB%9D%BC%EC%9A%B4_%ED%98%84%EC%8B%A4</comments>		</item>
		<item>
			<title>시편 135편과 하시는 모든 일을 기뻐하시는 하나님</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8B%9C%ED%8E%B8_135%ED%8E%B8%EA%B3%BC_%ED%95%98%EC%8B%9C%EB%8A%94_%EB%AA%A8%EB%93%A0_%EC%9D%BC%EC%9D%84_%EA%B8%B0%EB%BB%90%ED%95%98%EC%8B%9C%EB%8A%94_%ED%95%98%EB%82%98%EB%8B%98</link>
			<description>&lt;p&gt;Pcain: ‘시편 135편과 하시는 모든 일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Psalm 135 and the Pleasure of God in All He Does}} &lt;br /&gt;
&lt;br /&gt;
시편 135:1-6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시편은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그 다음에, 시편 저자는 3절에서 시작하여 왜 여호와를 향하여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송을 드려야 하는지 이유를 밝힙니다. 예를 들어(3절), &amp;quot;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다.&amp;quot; 찬송의 이유가 6절까지 계속되는데 저는 이 절에 집중하기 원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여호와께서는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다 행하신다&amp;lt;br&amp;gt;천지와,&amp;lt;br&amp;gt;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시편 115편 3절도 같은 말씀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amp;lt;br&amp;gt;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 언제나 자유로우시고, 절대로 구속받지 않으심 ====&lt;br /&gt;
&lt;br /&gt;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때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데로 행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멸시하시는 일을 하도록 절대로 구속받지 않으십니다. 그는 그가 싫어하시는 일을 하도록 절대로 몰리지 않습니다. 그는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그는 그가 하시는 모든 일을 기뻐하십니다. &lt;br /&gt;
&lt;br /&gt;
이 본문과 여러 다른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 자신의 기뻐하시는 것들의 명령을 추종하는 하나님 자신의 &amp;quot;선한 기쁨&amp;quot;에 따라 언제나 자유롭게 행하시는, 그의 주권적 자유를 찬송케 인도하여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은 절대로 상황의 피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절대로 그가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지 않습니다. 그는 조롱받지 않습니다. 그는 함정에 빠지거나, 몰리거나, 강요당하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 향기로운 제물 ====&lt;br /&gt;
&lt;br /&gt;
역사상 어떤 의미로 하나님께 가장 힘드신 일, 즉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로마서 8:32) 십자가에 죽게 내어 주시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자유로우셨고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자기 희생이 &amp;quot;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amp;quot; 이었다 (에베소서 5:2)고 말합니다. 가장 큰 죄, 가장 큰 죽음과 하나님의 가장 힘든 일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 갈보리 언덕으로 가시는 도중에도 예수님은 부릴 수 있는 하늘의 군단이 있었습니다. &amp;quot;내 생명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amp;quot; — 그 자신의 선한 기쁨을 위하여, 그리고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우주 역사상 예수님께서 갇혀 있는 것 같은 그 순간에, 그는 정확하게 그가 기뻐하는 일—당신과 나와 같은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돌아가시는 일—을 온전히 담당하셨습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경외와 감탄으로 일어섭시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우리의 찬송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우리의 구원도 &amp;quot;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그는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다 행하신다&amp;quot;는 사실에 달려 있다는데 전율합시다.&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3 Aug 2018 19:51:30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8B%9C%ED%8E%B8_135%ED%8E%B8%EA%B3%BC_%ED%95%98%EC%8B%9C%EB%8A%94_%EB%AA%A8%EB%93%A0_%EC%9D%BC%EC%9D%84_%EA%B8%B0%EB%BB%90%ED%95%98%EC%8B%9C%EB%8A%94_%ED%95%98%EB%82%98%EB%8B%98</comments>		</item>
		<item>
			<title>예수님보다 영화를 더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을 아십니까</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8%88%EC%88%98%EB%8B%98%EB%B3%B4%EB%8B%A4_%EC%98%81%ED%99%94%EB%A5%BC_%EB%8D%94_%EC%82%AC%EB%9E%91%ED%95%98%EB%8A%94_%EA%B7%B8%EB%A6%AC%EC%8A%A4%EB%8F%84%EC%9D%B8%EC%9D%84_%EC%95%84%EC%8B%AD%EB%8B%88%EA%B9%8C</link>
			<description>&lt;p&gt;Pcain: ‘예수님보다 영화를 더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을 아십니까’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Know a Christian Who Seems to Love Movies More Than Jesus?}} &lt;br /&gt;
&lt;br /&gt;
예수님보다 영화에 더 신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lt;br /&gt;
&lt;br /&gt;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 중 많은 이들은 최신 영화보다 예수님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증거가 거의 없습니다. 혹은 얼마 전에 산 옷들이나 얼마 전에 다운받은 어플리케이션이나 얼마 전에 즐기기 시작한 게임보다 예수님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증거가 거의 없습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서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실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아마, 심령에 어두움이 파고 들어왔거나, 마음에 영적인 죽음이 존재하거나, 아니면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이 막혀 있을지 모르겠으며, 이런 문제를 복합적으로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최고로 소중하게 보이지 않거나, 최고로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최고로 소중하다고 고백되지 않거나, 이 중 둘 이상에 해당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의 제안은 이렇습니다. 영화, 옷, 어플리케이션, 이벤트 등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대신에, 그런 것은 그냥 하나님께서 주신 개성의 표현으로 놔두십시오. 대신에, 예수님 안에 있으며 주변에 표현되는 탁월한 기쁨의 견본이 되어 이를 그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이런 견본을 보고도,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마음에 아무런 울림이 없는 것 같으면, 그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가서 다음과 같이 물어보십시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저는 당신이 신나하는 것들에 대한 당신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좋은 영화들과 좋은 옷과 멋진 어플리케이션들에 대해 매우 자유로우며 이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당신이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표현하지 않는 것이 제게는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이 질문의 핵심은 그들이 이런 창조된 것에 애정을 갖는 것이 문제가 아님을 볼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같은 애정이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만일 유사한 애정을 예수님에 대해 가질 수 없다면, 심각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의 신나하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에 그들의 주의를 끈다면, 당신이 지적하기 전에 그들이 이를 스스로 감지할 수도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그들이 좋은 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을 잃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으뜸되심으로써 그들의 모든 기쁨이 그리스도 아래에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들 마음에 예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느껴진다면, 다른 모든 것은 천천히 정리되고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커다란 용기와 지혜를 주셔서 사람들을 일깨워 예수님의 최고의 가치에 관심을 갖도록 도울 수 있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21 Aug 2018 20:05:27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8%88%EC%88%98%EB%8B%98%EB%B3%B4%EB%8B%A4_%EC%98%81%ED%99%94%EB%A5%BC_%EB%8D%94_%EC%82%AC%EB%9E%91%ED%95%98%EB%8A%94_%EA%B7%B8%EB%A6%AC%EC%8A%A4%EB%8F%84%EC%9D%B8%EC%9D%84_%EC%95%84%EC%8B%AD%EB%8B%88%EA%B9%8C</comments>		</item>
		<item>
			<title>스티브 잡스: &quot;그는 그가 하고 싶었던 몇 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quot;</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8A%A4%ED%8B%B0%EB%B8%8C_%EC%9E%A1%EC%8A%A4:_%22%EA%B7%B8%EB%8A%94_%EA%B7%B8%EA%B0%80_%ED%95%98%EA%B3%A0_%EC%8B%B6%EC%97%88%EB%8D%98_%EB%AA%87_%EA%B0%80%EC%A7%80%EB%A5%BC_%EC%95%8C%EA%B3%A0_%EC%9E%88%EC%97%88%EC%8A%B5%EB%8B%88%EB%8B%A4%22</link>
			<description>&lt;p&gt;Pcain: ‘스티브 잡스: &amp;quot;그는 그가 하고 싶었던 몇 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amp;quot;’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Steve Jobs: “He Knew the Couple of Things He Wanted to Do”}} &lt;br /&gt;
&lt;br /&gt;
월터 아이작슨이 쓴 자서전 ''스티브 잡스''가 어제부터 판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작슨은 인터뷰에서 잡스의 암이 그의 삶의 촛점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는 병에 걸렸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병이 그를 얼마나 집중하게 만들었는지 나에게 많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외출을 즐기기도 원치 않으며, 여행을 하면서 세상 구경을 하기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상품에만 집중하였습니다. 그는 그가 하고 싶었던 몇 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폰과 아이패드였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 초상집 안에서의 지혜로움 ====&lt;br /&gt;
&lt;br /&gt;
저는 방금 전 장례식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장례식들은 저에게 특전입니다. &amp;quot;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amp;quot; (전도서 7:2). 여기엔 많은 지혜가 있습니다. &amp;quot;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amp;quot; (시편 90:12).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과 지혜의 가르침을 배우게 해 줍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를 초상집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는 암에 걸리게 명하십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 장례식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즉, 죽음을 생각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장례식의 그림자가 지혜의 학교입니다. &lt;br /&gt;
&lt;br /&gt;
스티브 잡스가 말한, 그가 배운 지혜는 이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하고, 그것을 잘 하십시오. 당신에겐 많은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것들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두, 세 가지를 하고, 그것을 놀랍게 잘 하십시요.&lt;br /&gt;
&lt;br /&gt;
나쁘지 않은 교훈입니다. 어느 정도는 아주 좋은 교훈입니다. &lt;br /&gt;
&lt;br /&gt;
==== 중요한 것들은 한 가지 것 안에 연합되어 있음 ====&lt;br /&gt;
&lt;br /&gt;
그러나 바울이 그가 자신의 장례식의 긴 그림자 속에서 배운 것을 묘사할 때, 그것은 단순히 피할 수 없는 죽음에 기초한 것이 아니며, 죽음의 죽음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amp;quot;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amp;quot;(고전 15:54)—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lt;br /&gt;
&lt;br /&gt;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amp;quot;그러므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amp;quot; (고전 15:58)&lt;br /&gt;
&lt;br /&gt;
중요한 것은 두, 세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 입니다. 모든 것이 한 가지 것 즉 &amp;quot;주의 일&amp;quot; 안에서 연합되어 있습니다. 컴퓨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회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당신의 장례식의 그림자 안에서, 그것이 &amp;quot;주의 일&amp;quot; 이 되게 하십시오. &lt;br /&gt;
&lt;br /&gt;
&amp;quot;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amp;quot; (골 3:23). &amp;quot;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amp;quot; (고전 10:31). &amp;quot;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amp;quot; (골로새서 3:17).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써, 모든 행동은 이 하나의 것—주의 일—이 됩니다. &lt;br /&gt;
&lt;br /&gt;
==== 배워 봅시다 ====&lt;br /&gt;
&lt;br /&gt;
초상집에서의 지혜를 소유하십시요. 당신 자신의 장례식의 그늘로부터 배우십시요. 한 가지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아이폰을 만들든지, 사용하든지, 모든 호흡, 모든 생각, 모든 행위가 하나의 것—&amp;quot; 믿음의 일&amp;quot;—주의 일이 되게 하십시요.&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16 Aug 2018 20:11:29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8A%A4%ED%8B%B0%EB%B8%8C_%EC%9E%A1%EC%8A%A4:_%22%EA%B7%B8%EB%8A%94_%EA%B7%B8%EA%B0%80_%ED%95%98%EA%B3%A0_%EC%8B%B6%EC%97%88%EB%8D%98_%EB%AA%87_%EA%B0%80%EC%A7%80%EB%A5%BC_%EC%95%8C%EA%B3%A0_%EC%9E%88%EC%97%88%EC%8A%B5%EB%8B%88%EB%8B%A4%22</comments>		</item>
		<item>
			<title>육체적 운동: 나는 무슨 운동을 하고 왜 하는가(2부)</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C%A1%EC%B2%B4%EC%A0%81_%EC%9A%B4%EB%8F%99:_%EB%82%98%EB%8A%94_%EB%AC%B4%EC%8A%A8_%EC%9A%B4%EB%8F%99%EC%9D%84_%ED%95%98%EA%B3%A0_%EC%99%9C_%ED%95%98%EB%8A%94%EA%B0%80(2%EB%B6%80)</link>
			<description>&lt;p&gt;Pcain: ‘육체적 운동: 나는 무슨 운동을 하고 왜 하는가(2부)’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Physical Exercise: What I Do and Why (Part 2)}}&amp;lt;br&amp;gt; &lt;br /&gt;
&lt;br /&gt;
[1부도 보십시오.]&lt;br /&gt;
&lt;br /&gt;
1부에서는 제가 하는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이야기하겠습니다.&lt;br /&gt;
&lt;br /&gt;
저는 제가 죄가 전혀 없는 완전히 순수한 동기를 가진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집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들을 자만심으로 물들었다고 얼마든지 흠잡아도 좋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것을 저는 고백하였습니다. 제가 볼 수 없는 것은 주님께서 조만간 보여주시겠지요.&lt;br /&gt;
&lt;br /&gt;
저는 살이 찌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지가 웃기게 꽉 끼고, 허리띠가 보이지 않습니다. 19살 가량 되었을 때, 몸집이 좀 있으신 부흥전도자들과 함께 골프를 치러 갔을 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amp;quot;존의 납작한 배 좀 봐. 10년 후를 지켜보자구.&amp;quot; 그 순간, 제 속에서 무언가 일어났습니다.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말했습니다. &amp;quot;절대 그런 일은 없을거야.&amp;quot; 그 속엔 죄가 있었다고 의심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때의 다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비만과 폭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어떤 큰 실수를 한 후에야 그 차이를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폭식이 아닌 다른 문제로 인해 과체중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과체중을 게으름이나 무절제와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lt;br /&gt;
&lt;br /&gt;
==== 청결함과 생산성을 위해 ====&lt;br /&gt;
&lt;br /&gt;
제가 운동을 하는 주된 목적은 깨끗함과 생산성입니다. 깨끗함이라 함은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amp;quot;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amp;quot;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마태복음 22:39). 생산성이라 함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이 &amp;quot;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amp;quot;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58).&lt;br /&gt;
&lt;br /&gt;
저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죄성의 바탕에는 낙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세 번씩 제 몸을 괴롭히면 우울해질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엔돌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자아도취일 수도 있겠지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우울증 치료제나 심리치료보다는 저렴합니다. 그냥 기분이 더 좋습니다. 잠도 더 잘 잡니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갖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그 대부분의 에너지는 성경과 설교, 그리고 사람들에게 쏟아집니다. 그 열매는 덕을 세우는 일이길 바랍니다. 다시 말해, 제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더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함입니다. &lt;br /&gt;
&lt;br /&gt;
==== 성령께서 열매를 맺는 방법 ====&lt;br /&gt;
&lt;br /&gt;
운동의 결과가 성령의 열매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신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맺어집니다.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최악의 상황에 있을 때 여러분을 바로 제압해서 온화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그 일을 하실 때가 더 많습니다. &lt;br /&gt;
&lt;br /&gt;
예를 들어, 만약 여러분이 잠이 부족해서 참을성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시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이므로(갈라디아서 5:22),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하나님의 약속의 영광을 상기시켜 주실 뿐 아니라, 겸손하게 9시 반에 잠자리에 들게 하실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여러분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잠을 잘 잔다면, 성령님께서는 운동이라는 겸손한 훈련을 통하여 여러분이 잠을 잘 자고 더 잘 인내할 수 있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하신다면 그 결과는 여전히 ''성령''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의사들의 말을 덧붙이자면, 체중을 유지함으로써 수백 가지의 질병과 노화의 악영향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일지는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저의 주된 목적이라면 제가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지는 않을 겁니다. &lt;br /&gt;
&lt;br /&gt;
요컨대, 예수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하나의 인생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고린도후서 5:15). 이 인생을 더 길게 살려는 것이 아니라, 그 깨끗함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복음의 진리를 최대한 많이 알리고 이를 출판하고 싶습니다. 지난 43년 간, 운동이 도움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07 Aug 2018 21:01:57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C%A1%EC%B2%B4%EC%A0%81_%EC%9A%B4%EB%8F%99:_%EB%82%98%EB%8A%94_%EB%AC%B4%EC%8A%A8_%EC%9A%B4%EB%8F%99%EC%9D%84_%ED%95%98%EA%B3%A0_%EC%99%9C_%ED%95%98%EB%8A%94%EA%B0%80(2%EB%B6%80)</comments>		</item>
		<item>
			<title>육체적 운동: 나는 무슨 운동을 하고 왜 하는가 (1부)</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C%A1%EC%B2%B4%EC%A0%81_%EC%9A%B4%EB%8F%99:_%EB%82%98%EB%8A%94_%EB%AC%B4%EC%8A%A8_%EC%9A%B4%EB%8F%99%EC%9D%84_%ED%95%98%EA%B3%A0_%EC%99%9C_%ED%95%98%EB%8A%94%EA%B0%80_(1%EB%B6%80)</link>
			<description>&lt;p&gt;Pcain: ‘육체적 운동: 나는 무슨 운동을 하고 왜 하는가 (1부)’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Physical Exercise: What I Do and Why (Part 1)}}&amp;lt;br&amp;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2부도 읽어 보십시오.]&lt;br /&gt;
&lt;br /&gt;
대학교 교목이면서 베들레헴 신학 대학교의 리더쉽 개발 조교수인 글렌 블룸스트롬이 육체적 운동에 대한 저의 평생의 헌신에 대한 글을 그의 학생들을 위해 부탁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우선 운동을 해도 그것이 수명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고 식사도 고루 잘 하는 어떤 경건한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급사하곤 합니다. 반면 앉아서 폭식만 하는 사람들이 90세까지 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애는 우리가 아닌 하나님에 의해 정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때보다 하루라도 더 살지도 덜 살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뛰어내려도 살아남았던 사람들도 있었음을 명심하십시오. 목숨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해서 함부로 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 저는 조깅을 합니다. ====&lt;br /&gt;
&lt;br /&gt;
스물 두 살이 될 때까지 저는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하고 밖에서 놀 뿐이었습니다. 생활 운동량이 충분했기에 따로 운동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lt;br /&gt;
&lt;br /&gt;
결혼을 하고 신학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육체적인 일이나 놀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 때부터 조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가 벌써 43년 전입니다. 파사데나에서 일주일에 여러 번 조깅을 했습니다. 독일 뮌헨에서도 3년 동안 조깅을 했습니다. 세인트폴의 베델에서 가르칠 때에도 조깅을 했습니다. 그리고 31년 전, 베들레헴 교회의 목사로 온 이후로도 거의 매주 조깅을 해 오고 있습니다.&lt;br /&gt;
&lt;br /&gt;
교회에 갈 때에도 운전하기 보다는 주로 걷습니다. 적게 잡아도 교회와 집 사이를 만 번은 걸은 것 같습니다. 집 현관문부터 교회 정문까지 정확히 600 걸음이니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생활 습관은 저의 건강에 유익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는, 그렇게 걸어가는 그 시간에 다른 어느 시간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lt;br /&gt;
&lt;br /&gt;
43년 동안 평균적으로 매주 9마일을 조깅한 것 같습니다. &amp;quot;달린다&amp;quot;고 하지 않고 &amp;quot;조깅한다&amp;quot;고 의도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느립니다. 한때, 스물 여덟에서 서른 여덟 살 사이에는 더 멀리 그리고 빠르게 달리곤 했습니다. (8분에 1마일 정도의 속도로 한 시간을 달렸습니다.) 제일 멀리 달린 기록은 12마일로, 그 당시 80대 초반이었던 톰 스텔러와 함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예순 다섯인 지금은 매주 세 번씩 11분에 1마일 정도의 속도로 30분을 조깅합니다. 잘 모르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이 정도는 느린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매주 여섯 시간 정도. ====&lt;br /&gt;
&lt;br /&gt;
저는 스포츠 경기를 좋아합니다. 아마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조깅 대신에 정기적으로 라켓볼이나 핸드볼, 농구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도 잘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좀 방해가 됩니다. 그러니 혼자 하는 게 낫습니다. 저만의 속도를 맞출 수 있죠. &lt;br /&gt;
&lt;br /&gt;
한때는 자전거를 자주 탔습니다. 아들과 함께 미네소타 주를 횡단했습니다. 요즘도 자전거를 꺼내면 10 내지 15 마일은 달립니다. &lt;br /&gt;
&lt;br /&gt;
작년부터는 주 3회 조깅과 더불어 역기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60대가 되면 근육량이 줄어들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역기가 해결책입니다. 그래서 저는 YMCA에서 주 3회 30분씩 역도를 합니다. 따라서 옷 갈아 입고 씻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제가 운동에 투자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총 여섯 시간 정도가 됩니다. &lt;br /&gt;
&lt;br /&gt;
월요일 아침 블로그 포스트에서 제가 이렇게 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07 Aug 2018 20:43:21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C%A1%EC%B2%B4%EC%A0%81_%EC%9A%B4%EB%8F%99:_%EB%82%98%EB%8A%94_%EB%AC%B4%EC%8A%A8_%EC%9A%B4%EB%8F%99%EC%9D%84_%ED%95%98%EA%B3%A0_%EC%99%9C_%ED%95%98%EB%8A%94%EA%B0%80_(1%EB%B6%80)</comments>		</item>
		<item>
			<title>두려워하지 않음의 논리</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91%90%EB%A0%A4%EC%9B%8C%ED%95%98%EC%A7%80_%EC%95%8A%EC%9D%8C%EC%9D%98_%EB%85%BC%EB%A6%AC</link>
			<description>&lt;p&gt;Pcain: ‘두려워하지 않음의 논리’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Logic of Fearlessness}} &lt;br /&gt;
&lt;br /&gt;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은 원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말하였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 .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빌립보서 1:27-28). &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그리고 나서 그는 두려워하지 않음의 논리를 제시하였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립보서 1:29).&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그 논리는 이러합니다:&lt;br /&gt;
&lt;br /&gt;
하나님은 당신에게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믿음과 고난. 그것이 29절에서 말씀하는 바입니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맥락에서 그것은 고난에 맞서는 당신의 믿음과 당신의 고난 둘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말라고 했을 때 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지 그는 두가지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lt;br /&gt;
하나는 대적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대적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이것이 29절의 첫 번째 핵심입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는 당신의 믿음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29절의 다른 핵심입니다. &lt;br /&gt;
&lt;br /&gt;
&lt;br /&gt;
따라서 환란의 때에 담대함의 논리는 이 두 가지 진리입니다: 당신의 환란과 환란에 맞서는 당신의 믿음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lt;br /&gt;
&lt;br /&gt;
왜 이것을 &amp;quot;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amp;quot; (27절) 이라고 할까요? 이는 복음은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가 그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그들에게 믿음을 주고 그들의 원수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언제나 그의 백성의 영원한 선을 위하시는—를 틀림없이 획득하였다는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두려워 마십시오. 당신의 적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 이상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이 필요한 믿음을 허락하십니다. 이 약속은 피로 사셨으며 인치셨습니다. 복음이 약속합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03 Aug 2018 14:56:59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91%90%EB%A0%A4%EC%9B%8C%ED%95%98%EC%A7%80_%EC%95%8A%EC%9D%8C%EC%9D%98_%EB%85%BC%EB%A6%AC</comments>		</item>
		<item>
			<title>근심하는 것에 관해 예수님이 당신의 영혼과 논쟁하게 하십시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7%BC%EC%8B%AC%ED%95%98%EB%8A%94_%EA%B2%83%EC%97%90_%EA%B4%80%ED%95%B4_%EC%98%88%EC%88%98%EB%8B%98%EC%9D%B4_%EB%8B%B9%EC%8B%A0%EC%9D%98_%EC%98%81%ED%98%BC%EA%B3%BC_%EB%85%BC%EC%9F%81%ED%95%98%EA%B2%8C_%ED%95%98%EC%8B%AD%EC%8B%9C%EC%98%A4.</link>
			<description>&lt;p&gt;Pcain: ‘근심하는 것에 관해 예수님이 당신의 영혼과 논쟁하게 하십시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Let Jesus Argue With Your Soul About Being Anxious}} &lt;br /&gt;
&lt;br /&gt;
우리는 예수님이 마치 그가 하시는 일을 잘 모르는 것처럼 간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근심을 다루시는 데에 초보자가 아니십니다. 마태복음 6:25-34에서 세 번씩이나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고 (25, 31, 34절) 염려하지 말아야 될 8가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lt;br /&gt;
&lt;br /&gt;
분명히 그는 이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십니다. 따라서 이것을 단순하다고 부르지 마십시오. 은혜라 부르십시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모든 이유를 들어 당신의 영혼에게 진리로 설교하십시오. 이렇게 말하십시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내영혼아, 이것은 진실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를 믿어. 그는 너를 위해 돌아가셨어. 그는 너를 사랑하셔. 그가 너를 창조하셨어. 그는 너를 아셔. 아무도 — 상담자나, 목사나, 친구나 — 너에 관해 예수님만큼 알지 못해. 그의 말을 들어. 이 이유들을 마음에 새겨. 그것을 믿어. 이제, 일어나서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자. 근심아 사라져.&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예수님의 말씀의 요점이 여기 있습니다.&lt;br /&gt;
&lt;br /&gt;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 (마태복음 6:25). &lt;br /&gt;
#하늘 아버지께서 공중의 새를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더 귀하다 (마태복음 6:26). &lt;br /&gt;
#아무도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다 (마태복음 6:27). &lt;br /&gt;
#하나님이 찰나적인 들풀을 입히신다면, 영원한 너를 더욱 입히실 것이다 (마태복음 6:28-30). &lt;br /&gt;
#믿지 않는 자들은 하찮은 것에 대해 염려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가 아니다 (마태복음 6:32). &lt;br /&gt;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가 걱정하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 (마태복음 6:32). &lt;br /&gt;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lt;br /&gt;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다 (마태복음 6:34).&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02 Aug 2018 15:06:27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A%B7%BC%EC%8B%AC%ED%95%98%EB%8A%94_%EA%B2%83%EC%97%90_%EA%B4%80%ED%95%B4_%EC%98%88%EC%88%98%EB%8B%98%EC%9D%B4_%EB%8B%B9%EC%8B%A0%EC%9D%98_%EC%98%81%ED%98%BC%EA%B3%BC_%EB%85%BC%EC%9F%81%ED%95%98%EA%B2%8C_%ED%95%98%EC%8B%AD%EC%8B%9C%EC%98%A4.</comments>		</item>
		<item>
			<title>미네소타주 결혼법 수정안에 관한 생각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AF%B8%EB%84%A4%EC%86%8C%ED%83%80%EC%A3%BC_%EA%B2%B0%ED%98%BC%EB%B2%95_%EC%88%98%EC%A0%95%EC%95%88%EC%97%90_%EA%B4%80%ED%95%9C_%EC%83%9D%EA%B0%81%EB%93%A4</link>
			<description>&lt;p&gt;Pcain: ‘미네소타주 결혼법 수정안에 관한 생각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oughts on the Minnesota Marriage Amendment}} &lt;br /&gt;
&lt;br /&gt;
2011년 5월 21일, 미네소타주 결혼법 수정안이 70대 62의 표결로 하원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2012년도의 선거에서 이 문제가 투표의 관심사항이 되게 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수정안이 내년 11월에 통과된다면, 제13조는 &amp;quot;미네소타 주에서는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만이 결혼으로 유효하거나 결혼으로 인정될 것이다&amp;quot; 라는 어구를 포함하게 수정될 것입니다.&lt;br /&gt;
&lt;br /&gt;
&amp;quot;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만이 미네소타 주에서 결혼으로 유효하거나 결혼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규정하기 위하여 미네소타 주 헌법이 수정되어야 할 것인가?&amp;quot; 라는 질문이 투표자들에게 제기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여기에 이 문제에 대한 저의 기독교적, 성경적 확신에 근거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바르게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lt;br /&gt;
&lt;br /&gt;
==== 1. 소위 말하는 &amp;quot;동성 결혼&amp;quot;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위와 같은 문장에서 쓰는 것 외에는 &amp;quot;동성 결혼&amp;quot;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상적 대화에서 우리는 &amp;quot;소위 동성 결혼&amp;quot; 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저는 정치인, 목사, 기타의 사람들이 이 간단한 습관을 채택할 것을 권하는 바입니다. &lt;br /&gt;
&lt;br /&gt;
그 이유는 하나님의 눈에는, &amp;quot;동성 결혼&amp;quot; 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욕망이나 결정이나 언어나 법이나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amp;quot;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amp;quot; (창세기 2:24) 라는 말씀으로 결혼에 대하여 정하셨습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남편과 아내로서 평생에 걸친 언약 안에서 결합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람이 결혼을 창조하거나 정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amp;quot;결혼&amp;quot; 이라는 용어를 하나님이 정하신 것 외의 다른 관계를 일컫는데 사용하면 안됩니다. &lt;br /&gt;
&lt;br /&gt;
==== 2. 동성간의 성관계는 죄입니다. ====&lt;br /&gt;
&lt;br /&gt;
인류의 시초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성생활의 선함을 포함하여 수많은 선한 것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우리 존재의 수직축이 무질서해 졌을때, 수평축도 무질서해졌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무질서의 비극적인 표현이 성생활의 영역에 많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자아 도취, 노출증, 수간, 포르노, 간음, 간통, 성적 학대, 강압 등등이 존재합니다. 우리 모두 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성적으로 파괴되어 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오는 용서와 치료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lt;br /&gt;
&lt;br /&gt;
우리 성생활의 이 수평적 무질서의 표현 중 하나가 바로 동성애의 욕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수많은 품위 있고 도덕적인 사람들이 그들의 욕망 가운데 이 무질서를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원하지 않지만, 그렇지만 존재합니다. 사도 바울은 설명하기를 동성애의 욕망의 뿌리는, 다른 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질서하게 된 데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서 1:25-27)&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이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동성애의 욕망을 발견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거짓 것으로 바꾸어 의식적으로 그것을 자신에게 도입하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가장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들 중에도 몇몇은 자신에게 깊은 무질서가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이 상기 성경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인류 가운데 있는 현상을 일반적으로 말할 때 하나님에 대한 무질서하게 된 갈증은 인간을 향한 무질서한 갈증을 초래하였다는 것입니다. 동성애의 욕망은 그 무질서의 여러 형태들 중 하나입니다. &lt;br /&gt;
&lt;br /&gt;
다른 무질서한 욕망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동성애의 욕망에 빠지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amp;quot;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amp;quot; (고린도 전서 6:9-10).&lt;br /&gt;
&lt;br /&gt;
그러므로 동성애는 죄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구절에서 이성애자의 간음도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죄는 무질서한 성적 욕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남자는 다른 남자에게나 다른 남자의 아내에게 욕정을 품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것과 우리 고유의 상한 것을 치유받는 것이 얼마나 깊이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하는가 알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노하기를 더디하고 긍휼히 여기기를 빨리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상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십자가 상에서 교만한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amp;quot;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amp;quot; (누가복음 23:34). 1997년에 에이즈로 죽은 조 할렛은 어떻게 유죄 선고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같이 오는가&amp;amp;lt;/a&amp;amp;gt;를 제가 맛볼 수 있게 도와 주었습니다. 저는 동성 결혼에 관한 토론이 계속될 때 이 주목할 만하고 진귀한 조합이 기독교 공동체에 널리 보급되기를 기도합니다. &lt;br /&gt;
&lt;br /&gt;
==== 3. 모든 죄를 인간의 법으로 규율해서는 안되지만 어떤 죄는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법의 처벌로 규제해서는 안될 비윤리적인 행동들이 있는 반면, 법의 처벌로 규제하여야 할 비윤리적인 행동들이 있습니다. 도둑이나 살인은 인간의 법으로 금지하여야 할 비윤리적 행동이라고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생명과 재산이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면, 사회 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어떤 비윤리적인 행동을 법으로 규율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 정부 시스템에서는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판단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의 자유(누가복음 12:57; 고린도후서 5:11;사도행전 17:11)와 정부가 법을 만들고 강제력을 행사하는 권리간의 균형을 맞추는 매우 좋은 시스템입니다 (로마서 13:1-4).&lt;br /&gt;
&lt;br /&gt;
예를 들면, 포르노를 보는 것은 인간의 법으로 금지시키면 안됩니다. 확실히, 포르노를 음탕하게 사용하는 것은 성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를 모욕하며, 남녀 관계를 손상시키고, 인간의 거룩한 사랑의 능력을 타락시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법으로 금지되면 안됩니다.&lt;br /&gt;
&lt;br /&gt;
이에 대한 몇가지 이유는 1) 성경적 거룩함에 대한 공통 분모 없이 무엇을 보는 것을 수용하고 무엇을 처벌할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을 끝없는 논쟁에 휘말리게 할 뿐이며; 2) 사생활의 비밀 때문에 사실상 법을 집행하는 것이 어려우며; 3) 사람들이 상처받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인하여, 이 법은 적정 비례에 따라 다루어지기 어렵습니다. 포르노를 보는 것 외에도 많은 죄된 행동들이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하여 법에 의하여 규율될 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 4. 결혼의 법적인 중요성은 결혼을 법규로 정의하는 것을 필요하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결혼과 관련하여 법률의 규정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특히 자녀와 관련해서 법률의 명확한 규정이 필요합니다. 결혼 안에서 자녀가 태어나는데, 이 경우 양 부모는 상호적 자녀 양육권을 갖게 됩니다. 부모들이 갖는 이 권리는 법으로 보호되어야 하는데, 왜냐 하면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서로 양육하려고 경쟁하던 부모 중 하나가 아이들을 몰래 납치하듯 데려가 버리는 문제나 이혼시 일어나는 후견 갈등 등의 문제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상속법이라든가, 결혼한 부부의 재산 소유권, 함께 소득세를 신고할 수 있게 하는 법 등 결혼에 관련된 많은 법규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피할 수 없는 결혼의 법적인 중요성 때문에 결혼이란 무엇인지를 법규에 의하여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lt;br /&gt;
&lt;br /&gt;
==== 5. 우리 법이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동성애를 법에 의해 금지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법적으로 허가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동성간의 결합이 허락되느냐가 아니라 제도화되어야 하느냐 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동성간의 관계를 관용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 위에 사회의 기초를 세워야 하느냐 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특정한 죄를 금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그 죄에 대한 사회적 승인을 위임하느냐 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죄악된 행동을 막느냐가 아니라 우리 법에 그것을 심느냐 입니다. &lt;br /&gt;
&lt;br /&gt;
저는 동성애에 대한 법적 처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성간의 간음에 대한 법적 처벌도 옹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간음의 제도화, 그것을 사회의 기본 구성 분자로 만드는 것, 그 승인을 법규로 명령하는 것, 그리고 이를 우리 법 체제 안에 심는 것에 반대합니다. 죄를 관용하는 것과 사회를 그 죄 위에 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lt;br /&gt;
&lt;br /&gt;
________&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법은 우리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혼법 수정안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영광에 대한 각성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과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역사 가운데 있습니다. 법들로 인해 감사하고 용기 있는 정치 공복들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복음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십시오 (마가복음 8:35).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7 Jul 2018 15:19:35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AF%B8%EB%84%A4%EC%86%8C%ED%83%80%EC%A3%BC_%EA%B2%B0%ED%98%BC%EB%B2%95_%EC%88%98%EC%A0%95%EC%95%88%EC%97%90_%EA%B4%80%ED%95%9C_%EC%83%9D%EA%B0%81%EB%93%A4</comments>		</item>
		<item>
			<title>하나님은 오사마 빈 라덴이 죽어서 기쁘실까?</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5%98%EB%82%98%EB%8B%98%EC%9D%80_%EC%98%A4%EC%82%AC%EB%A7%88_%EB%B9%88_%EB%9D%BC%EB%8D%B4%EC%9D%B4_%EC%A3%BD%EC%96%B4%EC%84%9C_%EA%B8%B0%EC%81%98%EC%8B%A4%EA%B9%8C%3F</link>
			<description>&lt;p&gt;Pcain: ‘하나님은 오사마 빈 라덴이 죽어서 기쁘실까?’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Is God Glad Osama Bin Laden’s Dead?}}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감정은 당신의 감정과 같이 복잡합니다—단지 백만 배 더 복잡합니다. 지금, 당신의 빈 라덴에 대한 감정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감정들이 서로 섞여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같습니다.&lt;br /&gt;
&lt;br /&gt;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에 대해, 많은 트윗과 블로그들이 &amp;quot;하나님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amp;quot; 는 성경의 진리를 인용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amp;lt;br&amp;gt; &amp;lt;br&amp;gt;하나님이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신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죽음에 관해 하나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는 것과 탐탁찮다고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lt;br /&gt;
&lt;br /&gt;
==== 하나님은 이중적이신가? ====&lt;br /&gt;
&lt;br /&gt;
이것은 횡설수설하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사려 깊은 사람들이 그런 구분을 합니다. 예를 들면, 제 딸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같은 영화에 대해 예라고도 혹은 아니오라고도 대답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영화는 1) 연기, 2) 줄거리, 3) 영화 촬영 기술, 4) 노출, 5) 불경, 6) 서스펜스, 7) 복잡성, 8) 출처에 충실함, 9) 하나님에 대한 존경, 10) 인간 본성의 정확한 묘사 등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제 대답은 어떤 면에서 거의 언제나 &amp;quot;예&amp;quot; 지만 다른 면에서는 &amp;quot;아니오&amp;quot; 입니다. 그러나 정상을 참작하여 때로 저는 단순히 예 라고 하고 어떤 때는 아니오 라고 말합니다.&lt;br /&gt;
&lt;br /&gt;
여기에 왜 제가 하나님은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을 좋게 생각하시고 동시에 좋지 않게 생각하신다고 말하는지 이유가 있습니다.&lt;br /&gt;
&lt;br /&gt;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기쁨이 아닙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 .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에스겔 18:23, 32).&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다른 의미에서, 회개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심판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에스겔 5:13]&lt;br /&gt;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언 1:25–26)&lt;br /&gt;
&lt;br /&gt;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8:20)&lt;br /&gt;
&lt;br /&gt;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를 번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던 것 같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뽑힐 것이요.(신명기 28:63)&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우리는 이 말씀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무시해 버리면 안되며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사실이 될 수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lt;br /&gt;
&lt;br /&gt;
==== 하나님은 악의가 없으며 피흘리기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제 생각에는 회개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불행 그 자체는 하나님께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잔혹을 즐기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악의가 없으며 피흘리기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죽음과 고통 그 자체만은 그에게 기쁨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오히려, 반항적이고, 사악하고, 믿지 않는 사람이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진리와 공의가 높임받고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의 변호가 되기 때문입니다. (심판과 관련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하여 더 알고 싶으면, 하나님의 기쁨 안의 &amp;quot;어떤 면에서 하나님은 조지 워싱턴 같으신가?&amp;quot;라는 제목의 섹션을 읽어 보십시오.) &lt;br /&gt;
&lt;br /&gt;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회개치 하니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라고 경고했을 때 (신명기 28:63), 그 의미는 여호와께 반역하고 회개의 범위를 넘어선 사람들이 전능자를 참담하게 하였다고 고소해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lt;br /&gt;
&lt;br /&gt;
하나님은 의로우신 심판의 승리 가운데 패하지 않으십니다. 그와는 아주 반대입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그들이 심판받을 때 부지중에 하나님이 그의 공의와 능력과 무한하신 영광을 드러냄으로 기뻐하실 기회를 제공합니다.(또한 로마서 9:22-23을 보십시오).&lt;br /&gt;
&lt;br /&gt;
==== 경고 ====&lt;br /&gt;
&lt;br /&gt;
이것이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합시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는 함정에 빠지거나 구석으로 몰리거나 구속당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갈보리로 가시는 중에도 천사 군단들이 그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amp;quot;내 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그의 선하신 뜻 으로, 그에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하여— 버리노라&amp;quot;. &lt;br /&gt;
&lt;br /&gt;
우주 역사상 하나님이 함정에 빠진 것 같은 한 순간에, 그는 정확히 자신이 기뻐하는 일—당신과 나와 같은 악인을 의롭게 하시려고 죽으시는 일—을 하면서 상황을 주관하셨습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7 Jul 2018 15:13:23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D%95%98%EB%82%98%EB%8B%98%EC%9D%80_%EC%98%A4%EC%82%AC%EB%A7%88_%EB%B9%88_%EB%9D%BC%EB%8D%B4%EC%9D%B4_%EC%A3%BD%EC%96%B4%EC%84%9C_%EA%B8%B0%EC%81%98%EC%8B%A4%EA%B9%8C%3F</comments>		</item>
		<item>
			<title>이스라엘, 아랍,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D%B4%EC%8A%A4%EB%9D%BC%EC%97%98,_%EC%95%84%EB%9E%8D,_%EA%B7%B8%EB%A6%AC%EA%B3%A0_%ED%95%98%EB%82%98%EB%8B%98%EC%9D%98_%EA%B0%80%EC%A1%B1</link>
			<description>&lt;p&gt;Pcain: ‘이스라엘, 아랍,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Israel, Arabs, and the Family of God}} &lt;br /&gt;
&lt;br /&gt;
지난 주일 저는 우리 교회를 방문한 한 아랍계 기독교인을 만났습니다. 정중하게 그는 중동에 있는 그의 민족의 곤경에 대해 그리고 미국의 기독교 목사들이 아랍 기독교인들에 대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설교를 전혀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는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계 기독교인들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는 미국 교회 어느 강단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래서 저는 제가 보기에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몇가지 견해를 공적으로 밝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lt;br /&gt;
&lt;br /&gt;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의 시민이며, 지상 어느 나라나 주에서는 그 다음으로 시민일 뿐입니다.  &lt;br /&gt;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가족이나 국가 등 이 땅에서의 어떤 유대보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형제와 자매로 친밀하게 연합되었습니다. &lt;br /&gt;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비기독교 이스라엘 국가보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 아랍계 기독교인과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더 친밀하게 연합되었습니다. &lt;br /&gt;
#이스라엘은 세계 모든 백성 중에서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로 절정을 이룬 구원 역사의 특별한 축복의 촛점이 되도록 선택되었습니다. &amp;quot;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amp;quot; (신명기 7:6). &lt;br /&gt;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부터 현재 분쟁이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길, &amp;quot;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amp;quot; (신명기 34:4). &lt;br /&gt;
#이스라엘은 모든 아랍 국가를 포함한 이 땅의 다른 모든 나라와 같이 예수님을 하나님, 메시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언약을 지키는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는 것은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lt;br /&gt;
#언약을 지키지 않는 백성은—유대인이나 아랍인이나—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지속하는 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백성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차지할 신적 권리가 없습니다. &amp;quot;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amp;quot; (출애굽기 19:5). &lt;br /&gt;
#이것은 다른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거나 혹은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를 핍박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주변국들은 여전히 여러 나라들 가운데 각자의 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메시야를 거부하는 동안에는 그 땅에 대한 신적 권리는 없지만.  &lt;br /&gt;
#하나님은 아랍국가들에 대하여 구원하는 목적을 갖고 계시듯이 (이사야 19:19-25; 시편 22:27; 마태복음 28:19-20; 로마서3:29-30), 민족적 이스라엘에 대하여 구원하는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로마서 11:25-26),  &lt;br /&gt;
#팔레스타인인들과 유대인들을 향하여 중동 지방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간청은: &amp;quot;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amp;quot; (사도행전 16:31) 입니다. 이것이 평화의 길입니다. &amp;quot;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amp;quot; (에베소서 2:14). &lt;br /&gt;
#그 위대한 날, 왕이신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그 약속의 땅을 포함해서) 땅을 유업으로 받을 때까지는, 각국의 권리는 전쟁에 의하지 않고, 동정심 많고 공의로운 정의의 원칙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신적인 권리나 신분에 따라 주장되어서는 안됩니다.  &lt;br /&gt;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목회자들은, 아랍계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에 대해 공개적으로 기쁘게 말해야 하며, 이스라엘이나 혹은 아랍 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동료 신자들에 대한 가족적 지지보다 우선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7 Jul 2018 14:06:29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D%B4%EC%8A%A4%EB%9D%BC%EC%97%98,_%EC%95%84%EB%9E%8D,_%EA%B7%B8%EB%A6%AC%EA%B3%A0_%ED%95%98%EB%82%98%EB%8B%98%EC%9D%98_%EA%B0%80%EC%A1%B1</comments>		</item>
		<item>
			<title>불굴의 기쁨의 비밀</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B6%88%EA%B5%B4%EC%9D%98_%EA%B8%B0%EC%81%A8%EC%9D%98_%EB%B9%84%EB%B0%80</link>
			<description>&lt;p&gt;Pcain: ‘불굴의 기쁨의 비밀’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Secret of Invincible Joy}}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고난의 위협과 형통의 위협에서 우리의 행복을 보호하는 비밀을 밝히셨습니다. 그 비밀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상급이 천국에서 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상급은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충만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4)&lt;br /&gt;
&lt;br /&gt;
예수님은 고난으로부터 우리의 행복을 보호하십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1–12)''&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하늘에서 받을 우리의 큰 상급은 박해와 모욕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다음 구절과 같이 말씀하실 때, 또한 모종의 형통함으로부터 우리의 행복을 보호하십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20)''&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겨나는 등 사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들의 기쁨의 근거를 은근히 사역의 성공에 놓아두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누가복음 10:17). 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기쁨은 기쁨의 유일하고 확실한 닻에 붙어 있지 못하고 이로부터 끊어졌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예수님은 하늘의 위대한 상을 약속하심으로 그들의 참된 기쁨을 보호하십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너희 유업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확실하다. &lt;br /&gt;
&lt;br /&gt;
우리의 기쁨은 안전합니다. 고난도 성공도 그 닻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 여러분의 상급이 클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천국 상급 안에 고난받는 성도들의 행복을 닻 내리셨습니다. 또한 천국 상급 안에 형통하는 성도들의 행복을 닻 내리셨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럼으로써 그는 세상의 고통과 쾌락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7 Jul 2018 13:57:10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B6%88%EA%B5%B4%EC%9D%98_%EA%B8%B0%EC%81%A8%EC%9D%98_%EB%B9%84%EB%B0%80</comments>		</item>
		<item>
			<title>여러분이 믿는 바를 말하는 것이 &quot;칼빈주의자&quot;라고 말하는 것 보다 더 분명하게 전달됩니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7%AC%EB%9F%AC%EB%B6%84%EC%9D%B4_%EB%AF%BF%EB%8A%94_%EB%B0%94%EB%A5%BC_%EB%A7%90%ED%95%98%EB%8A%94_%EA%B2%83%EC%9D%B4_%22%EC%B9%BC%EB%B9%88%EC%A3%BC%EC%9D%98%EC%9E%90%22%EB%9D%BC%EA%B3%A0_%EB%A7%90%ED%95%98%EB%8A%94_%EA%B2%83_%EB%B3%B4%EB%8B%A4_%EB%8D%94_%EB%B6%84%EB%AA%85%ED%95%98%EA%B2%8C_%EC%A0%84%EB%8B%AC%EB%90%A9%EB%8B%88%EB%8B%A4.</link>
			<description>&lt;p&gt;Pcain: ‘여러분이 믿는 바를 말하는 것이 &amp;quot;칼빈주의자&amp;quot;라고 말하는 것 보다 더 분명하게 전달됩니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Saying What You Believe Is Clearer Than Saying “Calvinist”}} &lt;br /&gt;
&lt;br /&gt;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철저하게 독실하고, 전력을 다하고, 성경에 흠뻑 빠져 있으며, 그리스도를 높히고, 하나님 중심적이며, 선교를 향해 전진하고, 영혼 구원에 힘쓰며, 교회를 사랑하며, 거룩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사모하며, 은혜로 충만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진 우리는 전능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최소한 이것이 우리의 불완전한 헌신입니다.&lt;br /&gt;
&lt;br /&gt;
다시 말하면, 우리는 칼빈주의자들입니다. 하지만 이 꼬리표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실제로 믿는 바를 말하는 것만큼 유용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 같은 꼬리표를 잊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얼버무림이나 모호함 없이 분명한 표현을 사용하여, 구원에 대해 여러분이 믿는 바를 말하십시오. &lt;br /&gt;
&lt;br /&gt;
만약 누군가가 &amp;quot;칼빈주의자이십니까?&amp;quot; 라고 묻는다면, &amp;quot;들어보고 당신이 결정하세요. 다만 제가 믿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amp;quot; 와 같이 대응하십시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저는 제가 과거에 지니고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의 마지막 흔적까지 정복하고 이기신 하나님의 자비롭고 주권적인 승리 없이는 제 스스로는 결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올 수 없는 영적으로 타락하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존재라는 것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2:14; 에베소서 2:1-4; 로마서 8:7)&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저를 그분의 자녀로 택하신 것은 제 안에 있는 그 무엇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에베소서 1:4-6; 사도행전 13:48; 로마서 8:29-30; 11:5-7)&lt;br /&gt;
&lt;br /&gt;
저는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정한'' 구원의 제안을 제공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대속물로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음 안에서 그의 택하신 신부, 즉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영원히 기록되어 있는 신자들의 무리를 얻고자 하는 저항할 수 없는 계획을 갖고 계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3:16; 요한복음 10:15; 에베소서 5:25; 요한계시록 13:8)&lt;br /&gt;
&lt;br /&gt;
제가 저의 죄로 인해 죽어 있었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해 눈멀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주셨고, 제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셨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죄 용서와 칭의와 영원한 생명의 모든 축복을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4-5; 고린도후서 4:6; 빌립보서 2:29; 에베소서 2:8-9; 사도행전 16:14; 에베소서 1:7; 빌립보서 3:9)&lt;br /&gt;
&lt;br /&gt;
제가 영원히 안전한 것은 제가 이전에 행한 무엇이 그 주된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고,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게 시작하신 일을 완성시키시는데 신실하셔서, 저의 믿음을 유지시키시고, 배교로부터 저를 보존하시고, 죽음에 이르는 죄로부터 저를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8-9; 데살로니가전서 5:23-24; 빌립보서 1:6; 베드로전서 1:5; 유다서 1:25; 요한복음 10:28-29; 요한1서 5:16)&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이것이 저의 삶입니다. 이를 칼빈주의라고 부르던 무엇이라 부르던 원하는데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제가 이렇게 믿는 것은 성경에서 이를 보았기 때문이며, 제 삶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의 위대하심을 영원토록 찬양합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6 Jul 2018 20:29:40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7%AC%EB%9F%AC%EB%B6%84%EC%9D%B4_%EB%AF%BF%EB%8A%94_%EB%B0%94%EB%A5%BC_%EB%A7%90%ED%95%98%EB%8A%94_%EA%B2%83%EC%9D%B4_%22%EC%B9%BC%EB%B9%88%EC%A3%BC%EC%9D%98%EC%9E%90%22%EB%9D%BC%EA%B3%A0_%EB%A7%90%ED%95%98%EB%8A%94_%EA%B2%83_%EB%B3%B4%EB%8B%A4_%EB%8D%94_%EB%B6%84%EB%AA%85%ED%95%98%EA%B2%8C_%EC%A0%84%EB%8B%AC%EB%90%A9%EB%8B%88%EB%8B%A4.</comments>		</item>
		<item>
			<title>베들레헴의 기초를 다시 세우기: 미래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의 정결하게 하는 능력</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B2%A0%EB%93%A4%EB%A0%88%ED%97%B4%EC%9D%98_%EA%B8%B0%EC%B4%88%EB%A5%BC_%EB%8B%A4%EC%8B%9C_%EC%84%B8%EC%9A%B0%EA%B8%B0:_%EB%AF%B8%EB%9E%98%EC%9D%98_%EC%9D%80%ED%98%9C%EB%A5%BC_%EB%AF%BF%EB%8A%94_%EB%AF%BF%EC%9D%8C%EC%9C%BC%EB%A1%9C_%EC%82%AC%EB%8A%94_%EC%82%B6%EC%9D%98_%EC%A0%95%EA%B2%B0%ED%95%98%EA%B2%8C_%ED%95%98%EB%8A%94_%EB%8A%A5%EB%A0%A5</link>
			<description>&lt;p&gt;Pcain: &lt;/p&gt;
&lt;hr /&gt;
&lt;div&gt;{{info|Rebuilding the Basics: The Purifying Power of Living by Faith in Future Grace}} &lt;br /&gt;
&lt;br /&gt;
은혜는 자격 없는 우리에게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선한 일들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 리를 위해서 일어나게 하는 실제적 능력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실제적 능력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 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 안에서 행하셔서 사도 바울이 더 열심히 일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amp;quot; 네 구원을 이루라&amp;quot;고 말했을 때, 그는 &amp;quot;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amp;quot; (빌립보서 2:13) 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은혜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선한 일을 행하는 하나님 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입니다. &lt;br /&gt;
&lt;br /&gt;
이 은혜는 과거이며 또한 미래입니다. 미래에는 고갈되지 않는 은혜의 강이 있어서 이로부터 우리에게 영원히 은혜가 오고 있습 니다. 그래서 현재의 작은 폭포를 통해 우리에게 끊임 없이 은혜가 주어지며, 이렇게 주어진 은혜는 갈수록 쌓이고 쌓여서 과거의 은혜의 저수지는 영원히 그 용량이 증가해 가게 됩니다. 앞으로 오분 동안, 당신은 미래로부터 오는 삶을 지탱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것이며, 과거의 저수지에는 그 오분 동안의 은혜를 추가로 저장하게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과거에 경험한 은혜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감사이며, 미래에 약속된 은혜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은 혜에 대해 감사하며, 장차 경험할 은혜에 대해 확신합니다. &lt;br /&gt;
&lt;br /&gt;
과거의 은혜—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은혜라든가 우리의 거듭남 안에서 나타내신 은혜 등등—에 대해서도 믿는다는 표현을 쓸 수 있지만, 이 경우에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장래의 은혜에 관한 믿음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은혜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과거의 은혜 때문에 우리의 미래에 온통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이며 결국 죄없는 완전함의 은혜에 도달하게 될 것을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패턴은 장래의 은혜는 믿는 것이고 과거의 은혜에는 감사하는 것 입니다. &lt;br /&gt;
&lt;br /&gt;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의 능력을 이해하는 길은 이 믿음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에 만족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amp;quot;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amp;quot; (빌립보서 4:11, 13), 라고 말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미래에 경험할 하나님의 은 혜에 대한 믿음이 그에게 두려움과 욕심을 이겨내고 자족할수 있는 힘을 준다는 뜻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원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 죄를 범치 않는 성결한 삶의 핵심 비결 중 하 나는 미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입니다. 미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두려움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인간을 근본적으로 사랑스럽게 만드는지 몇 가지 예를 살펴보십시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브 리서 10:34) 믿음으로 모세는. . .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 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11:24-26)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히브리서 12: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태복음 5:11-12) 우리가 . . .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골로새서 1:4-5)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 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누가복음 14:13-14)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장래에(오 분 후나—오백만 년 후나) 우리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신 모든 것에 대한 깊은 만족에 의해 서, 우리는 사랑을 파괴하는 이기적인 두려움과 탐욕의 욕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타협이 없는 철저한 사랑은 미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믿음으로 사는,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19 Jul 2018 14:21:55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B2%A0%EB%93%A4%EB%A0%88%ED%97%B4%EC%9D%98_%EA%B8%B0%EC%B4%88%EB%A5%BC_%EB%8B%A4%EC%8B%9C_%EC%84%B8%EC%9A%B0%EA%B8%B0:_%EB%AF%B8%EB%9E%98%EC%9D%98_%EC%9D%80%ED%98%9C%EB%A5%BC_%EB%AF%BF%EB%8A%94_%EB%AF%BF%EC%9D%8C%EC%9C%BC%EB%A1%9C_%EC%82%AC%EB%8A%94_%EC%82%B6%EC%9D%98_%EC%A0%95%EA%B2%B0%ED%95%98%EA%B2%8C_%ED%95%98%EB%8A%94_%EB%8A%A5%EB%A0%A5</comments>		</item>
		<item>
			<title>베들레헴 교회의 기초 다시 쌓기: 은혜의 교리</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B2%A0%EB%93%A4%EB%A0%88%ED%97%B4_%EA%B5%90%ED%9A%8C%EC%9D%98_%EA%B8%B0%EC%B4%88_%EB%8B%A4%EC%8B%9C_%EC%8C%93%EA%B8%B0:_%EC%9D%80%ED%98%9C%EC%9D%98_%EA%B5%90%EB%A6%AC</link>
			<description>&lt;p&gt;Pcain: ‘베들레헴 교회의 기초 다시 쌓기: 은혜의 교리’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Rebuilding Some Basics of Bethlehem: The Doctrines of Grace}} &lt;br /&gt;
&lt;br /&gt;
==== '''칼빈주의 5대 교리 또는 TULIP이라고도 알려진 교리''' ====&lt;br /&gt;
&lt;br /&gt;
우리는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성경적이며 그러므로 진리라고 믿습니다. 이 교리들은 하나님의 고귀한 은혜를 높이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죄인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고 믿습니다. &lt;br /&gt;
&lt;br /&gt;
==== 전적 타락 ====&lt;br /&gt;
&lt;br /&gt;
우리의 죄악된 부패함은 너무 깊고 너무 강해서 우리를 죄의 노예로 만들며 우리의 반역과 무지를 극복할 수 없게 합니다.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이 무능력함은 ''총체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반역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며 구원자에게 우리를 이끄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해야 하는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우리는 우리의 허물로 인해 죽어 있었습니다.(에베소서 2:5)&lt;br /&gt;
&lt;br /&gt;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로마서 8:7-8)&lt;br /&gt;
&lt;br /&gt;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린도전서 2:14) &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 무조건적인 선택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선택은 창세 전에 그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무조건적인 값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도 전에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실 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회개와 예수님에 대한 구원 얻는 믿음 가운데로 이끌 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에베소서 1:4)&lt;br /&gt;
&lt;br /&gt;
&amp;quot;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amp;quot;(사도행전 13:48)&lt;br /&gt;
&lt;br /&gt;
&amp;quot;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amp;quot; 그렇기에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로마서 9:15-16)&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고린도전서 1:27)&lt;br /&gt;
&lt;br /&gt;
이스라엘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얻었고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습니다.(로마서 11:7; cf. 9:11-12; 요한복음 6:37)&lt;br /&gt;
&lt;br /&gt;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이사야 43:10)&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 불가항력적인 은혜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값없는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자격없는 반역자들의 반역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극복됩니다. 그들의 반역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 하나님 보시기에 적당한 때가 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의해 아름답게 극복됩니다. 이 은혜 입는 반역자들의 반역도 기타의 모든 인류가 매일 하나님을 대적하여 행하는 반역들(로마서 3:10-12; 사도행전 7:51) 과 다를 바가 없었음에도 이런 일이 은혜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5)&lt;br /&gt;
&lt;br /&gt;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요한복음 6:65)&lt;br /&gt;
&lt;br /&gt;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디모데후서 2:25)&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 제한 속죄 ====&lt;br /&gt;
&lt;br /&gt;
예수님의 속죄는 모든 인간들에게 ''충분하며'' 그를 믿는 자들에게 ''유효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속죄의 온전한, 구원하는 효과는 이를 위하여 예비된 자들에게 제한됩니다. 속죄의 총체적 충분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어 있습니다. 누가 믿든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여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택함 받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한 새 언약의 약속들의 성취에 대한 신적인 계획이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지만, 동일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아닙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amp;quot;(요한복음 3:16; cf. 요한계시록 22:17)&lt;br /&gt;
&lt;br /&gt;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누가복음 22:20)&lt;br /&gt;
&lt;br /&gt;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에베소서 5:25)&lt;br /&gt;
&lt;br /&gt;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한복음 10:15)&lt;br /&gt;
&lt;br /&gt;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즉, 죽기를 준비하심],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9, 19)&lt;br /&gt;
&lt;br /&gt;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 8:32)&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 성도의 견인 ====&lt;br /&gt;
&lt;br /&gt;
우리는 의롭게 된 모든 자들이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절대로 영혼의 적에게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 안의 인내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의하여 확보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스스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새 언약의 약속입니다. 이는 우리가 깨어 경계하는 노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에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지만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 8:30)&lt;br /&gt;
&lt;br /&gt;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0:27-28)&lt;br /&gt;
&lt;br /&gt;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lt;br /&gt;
&lt;br /&gt;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2)&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며 푯대를 향하여 가는&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3 Jul 2018 20:18:14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B2%A0%EB%93%A4%EB%A0%88%ED%97%B4_%EA%B5%90%ED%9A%8C%EC%9D%98_%EA%B8%B0%EC%B4%88_%EB%8B%A4%EC%8B%9C_%EC%8C%93%EA%B8%B0:_%EC%9D%80%ED%98%9C%EC%9D%98_%EA%B5%90%EB%A6%AC</comments>		</item>
		<item>
			<title>베들레헴 교회의 기초 다시 쌓기: 기독교 희락주의</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B2%A0%EB%93%A4%EB%A0%88%ED%97%B4_%EA%B5%90%ED%9A%8C%EC%9D%98_%EA%B8%B0%EC%B4%88_%EB%8B%A4%EC%8B%9C_%EC%8C%93%EA%B8%B0:_%EA%B8%B0%EB%8F%85%EA%B5%90_%ED%9D%AC%EB%9D%BD%EC%A3%BC%EC%9D%98</link>
			<description>&lt;p&gt;Pcain: ‘베들레헴 교회의 기초 다시 쌓기: 기독교 희락주의’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Rebuilding the Basics: Christian Hedonism}} &lt;br /&gt;
&lt;br /&gt;
우리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기독교 희락주의입니다. 기독교 희락주의란 하나님은 우리 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가장 영광받으신다는 성경적 진리를 말합니다. 이러한 진리의 기 초는 매우 깊고 탄탄하며, 또한 그 함축된 의미는 무한한 높이와 영원한 길이를 갖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진리의 기초를 빌립보서 1:20-21 등의 성경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 구절에서 바울은 &amp;quot;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amp;quot; 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의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 게 되는 것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amp;quot;죽는 것도 유익함이라&amp;quot;고 진술합니다. 죽는 것도 유익한 이유 는 이를 통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23절)이라고 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죽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게 되어 이를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 손실이 아닌 유익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서 3:8에서 &amp;quot;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 라&amp;quot; 라고 말하였습니다.&lt;br /&gt;
&lt;br /&gt;
따라서 저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특히 고통이나 죽 음 가운데에서—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가장 존귀하게 되십니다. 이와 같은 기독교 희락주의의 깃발 이 우리 교회 위에 드높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영광 받으신다.&lt;br /&gt;
&lt;br /&gt;
기독교 희락주의가 함축하는 의미는 매우 광범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찾을 수 있다 정도가 아닙니다. 찾아야만 한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력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음을 기 울여야 하는 주된 비즈니스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 선물들로 만족하는 것 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을 저는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최고의 만족을 하나님 안에서 추구하여야만 하는 성경적 이유 여덟 가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1) 우리는 만족을 추구하도록 명령 받았습니다.'''&lt;br /&gt;
&lt;br /&gt;
시편 100:2: &amp;quot;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amp;quot; 빌립보서 4:4: &amp;quot;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amp;quot; 시편 37:4: &amp;quot;여호와를 기뻐하라.&amp;quot; &lt;br /&gt;
&lt;br /&gt;
'''2)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적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lt;br /&gt;
&lt;br /&gt;
신명기 28:47-48: &amp;quot;네가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 미암아. . .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amp;quot; &lt;br /&gt;
&lt;br /&gt;
'''3) 믿음의 본질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추구하라고 가르칩니다.'''&lt;br /&gt;
&lt;br /&gt;
히브리서 11:6: &amp;quot;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amp;quot;&lt;br /&gt;
&lt;br /&gt;
'''4) 악의 본질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추구하라고 가르칩니다.'''&lt;br /&gt;
&lt;br /&gt;
예레미야 2:12-13: &amp;quot;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 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amp;quot;&lt;br /&gt;
&lt;br /&gt;
'''5) 회심의 본질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추구하도록 가르칩니다.'''&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3:44: &amp;quot;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 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amp;quot;&lt;br /&gt;
&lt;br /&gt;
'''6) 자신을 부인하라는 부르심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추구하도록 가르칩니다.'''&lt;br /&gt;
&lt;br /&gt;
마가복음 8:34-36: &amp;quot;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 리요?&amp;quot;&lt;br /&gt;
&lt;br /&gt;
'''7)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요구가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추구하도록 가르칩니다.'''&lt;br /&gt;
&lt;br /&gt;
히브리서 12:2: &amp;quot;그 [예수님]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amp;quot; 사도행전 20:35: &amp;quot;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amp;quot; &lt;br /&gt;
&lt;br /&gt;
'''8)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요구가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추구하도록 가르칩니다 .'''&lt;br /&gt;
&lt;br /&gt;
빌립보서 1:20-21: &amp;quot;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 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그 안에서 궁극적이고 완전한 만족을 누림 )이라 .&amp;quot; &lt;br /&gt;
&lt;br /&gt;
이제 저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고 고아들의 아버지였던 조지 뮬러의 말을 인용하면서 여러분도 그와 같이 하라고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amp;quot;나는 내가 매일 나의 관심을 쏟아야만 하는 크고 주된 일은 하나님 안에서 내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하게 깨닫고 있다.&amp;quot; 이와 같이 함으로써, 우리는 희생적 사랑에 의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되 어도 이를 기쁨으로 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하나님을 추구하며,&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12 Jul 2018 20:16:49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B2%A0%EB%93%A4%EB%A0%88%ED%97%B4_%EA%B5%90%ED%9A%8C%EC%9D%98_%EA%B8%B0%EC%B4%88_%EB%8B%A4%EC%8B%9C_%EC%8C%93%EA%B8%B0:_%EA%B8%B0%EB%8F%85%EA%B5%90_%ED%9D%AC%EB%9D%BD%EC%A3%BC%EC%9D%98</comments>		</item>
		<item>
			<title>나는 아무 공로가 없다는 나의 행복한 고백</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82%98%EB%8A%94_%EC%95%84%EB%AC%B4_%EA%B3%B5%EB%A1%9C%EA%B0%80_%EC%97%86%EB%8B%A4%EB%8A%94_%EB%82%98%EC%9D%98_%ED%96%89%EB%B3%B5%ED%95%9C_%EA%B3%A0%EB%B0%B1</link>
			<description>&lt;p&gt;Pcain: ‘나는 아무 공로가 없다는 나의 행복한 고백’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My Happy Confession of Having No Merit}} &lt;br /&gt;
&lt;br /&gt;
다음은 저의 고백입니다:&lt;br /&gt;
&lt;br /&gt;
저는 전혀 제 자신의 공로 없이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lt;br /&gt;
&lt;br /&gt;
저는 전혀 제 자신의 공로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정신과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부여받았습니다.&lt;br /&gt;
&lt;br /&gt;
저는 전혀 제 자신의 공로 없이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전혀 제 자신의 공로 없이 저의 반역심은 수그러들었으며, 완고함도 없어졌고, 무지함도 극복되었으며, 죽었던 심령이 되살아났습니다.&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저는 전혀 제 자신의 공로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가 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저는 전혀 제 자신의 공로 없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lt;br /&gt;
&lt;br /&gt;
지금 제가 저를 속량해 주신 주님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제게는 전혀 공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것은 제가 아닌,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lt;br /&gt;
&lt;br /&gt;
...하나님은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제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3:21)&lt;br /&gt;
&lt;br /&gt;
...하나님은 그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선하게 해결하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11)&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그러므로 제 자랑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린도전서 1:31)&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12 Jul 2018 19:53:00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82%98%EB%8A%94_%EC%95%84%EB%AC%B4_%EA%B3%B5%EB%A1%9C%EA%B0%80_%EC%97%86%EB%8B%A4%EB%8A%94_%EB%82%98%EC%9D%98_%ED%96%89%EB%B3%B5%ED%95%9C_%EA%B3%A0%EB%B0%B1</comments>		</item>
		<item>
			<title>결혼을 준비할 때 꼭 해야 하는 질문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2%B0%ED%98%BC%EC%9D%84_%EC%A4%80%EB%B9%84%ED%95%A0_%EB%95%8C_%EA%BC%AD_%ED%95%B4%EC%95%BC_%ED%95%98%EB%8A%94_%EC%A7%88%EB%AC%B8%EB%93%A4</link>
			<description>&lt;p&gt;Pcain: ‘결혼을 준비할 때 꼭 해야 하는 질문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Questions to Ask When Preparing for Marriage}} &lt;br /&gt;
&lt;br /&gt;
다음 글에서 제가 열거하지는 않았 지만 이에 추가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부간의 차이점들을 잘 핸들링하면서 이러한 차이점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 차이점들 중 어떤 것을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차이점으로 볼 것이며, 따라서 어떤 차이점을 결혼 후에도 그냥 유지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각각의 부제목을 공부할 때마다 토론에 이 질문을 포함시키십시오. &lt;br /&gt;
&lt;br /&gt;
'''신학''' &lt;br /&gt;
&lt;br /&gt;
*삶의 모든 면에 대하여...당신은 무엇을 믿는가&amp;amp;nbsp;? &lt;br /&gt;
*다양한 성경적 교리에 대해 서로가 어떤 신학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Desiring God Affirmation of Faith 를 우선 통독해 볼 것을 권합니다. &lt;br /&gt;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지 살펴보십시오. 당신이 추론하고 믿는 프로세스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당신은 성경을 어떻게 대하는가?&lt;br /&gt;
&lt;br /&gt;
'''공예배, 가정 예배, 개인 예배''' &lt;br /&gt;
&lt;br /&gt;
*당신에게 공예배는 얼 마나 중요한가? 교회생활에서 어떤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가? &lt;br /&gt;
*당신에게 있어 어떠한 봉 사 부서에 속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lt;br /&gt;
*삶과 예배에 있어 음악은 얼마나 중요한가? &lt;br /&gt;
*당신은 매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향상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기도, 말씀읽기 , 묵상, 성경암송. &lt;br /&gt;
*가족 예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누가 이 모임을 인도하는가&amp;amp;nbsp;? &lt;br /&gt;
*우리는 지금 합당한 방법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 삶과 미래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lt;br /&gt;
&lt;br /&gt;
'''남편과 아내''' &lt;br /&gt;
&lt;br /&gt;
*성경에서 그리고 우리 결혼 생활에서 머리됨과 복종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 &lt;br /&gt;
*당신이 배우자와 의견 충돌이 있을 경우 바람직한 행동은 어떤 것인가? &lt;br /&gt;
*집 에서 가사일은 어떻게 분담되고 있는가? 집안청소, 요리, 설겆이, 정원관리, 자동차 정비, 수리, 식료품 구입, 기타 등등. &lt;br /&gt;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lt;br /&gt;
*일상 의 저녁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 것이 이상적인가? &lt;br /&gt;
*누가 먼저 그리고 얼마나 자주 부부관 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는 어떠한가? &lt;br /&gt;
*누가 통장을 관리하는가—혼자 아니면 둘이 같이?&lt;br /&gt;
&lt;br /&gt;
'''자녀''' &lt;br /&gt;
&lt;br /&gt;
*자녀 계획이 있 다면 언제가 좋은가? 이유는? &lt;br /&gt;
*몇 명의 자녀? &lt;br /&gt;
*몇 살 터울로? &lt;br /&gt;
*입양도 고려할 것인가? &lt;br /&gt;
*자녀들이 따라야 할 행동의 기준은 무엇인가? &lt;br /&gt;
*자녀 를 징계하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징계하기 전에 몇 번을 참을 것인가? &lt;br /&gt;
*자녀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며 그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언제가 좋은가? &lt;br /&gt;
*자녀들 에게 애정표현은 어떻게 할 것인가? &lt;br /&gt;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홈스쿨? 기독교학 교? 공립학교?&lt;br /&gt;
&lt;br /&gt;
'''생활방식''' &lt;br /&gt;
&lt;br /&gt;
*집을 소유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유는? &lt;br /&gt;
*어느 지역에 살 것인가? 이유는? &lt;br /&gt;
*차는 몇 대가 필요한가? 새 차? 중고차? &lt;br /&gt;
*금전관리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 교회에 헌금은 얼마나? &lt;br /&gt;
*돈에 관한 결정은 어떻게? &lt;br /&gt;
*옷은 어디에서 살 것 인가: 백화점? 재활용품점? 일반 상점? 이유는?&lt;br /&gt;
&lt;br /&gt;
'''여가''' &lt;br /&gt;
&lt;br /&gt;
*여가선용에 얼마의 돈을 지출할 것인가? &lt;br /&gt;
*얼마나 자주 외식을 할 것인가? 어디에서? &lt;br /&gt;
*어떤 휴가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적당 하고 도움이 되는가? &lt;br /&gt;
*휴가에 필요한 특수장비는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 스노우모빌, 보 트, 통나무집? &lt;br /&gt;
*집에 TV를 둘 것인가? 어디에?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할 것인가? 얼마 나 자주? &lt;br /&gt;
*영화나 연극에 대한 기준은 어떠한가? 우리 자녀들이 시청가능한 프로그램의 기준은 무엇인가?&lt;br /&gt;
&lt;br /&gt;
'''갈등''' &lt;br /&gt;
&lt;br /&gt;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lt;br /&gt;
*당신은 불만이나 화를 어떻게 조절하는가? &lt;br /&gt;
*성가신 이 슈는 누가 먼저 꺼내야 하는가? &lt;br /&gt;
*만약 문제 해결에 대한 부부간의 의견이 다르다면, 그 리고 그 문제가 아주 심각한 것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lt;br /&gt;
*서로에게 화가 난 채 잠자리에 들 것인가? &lt;br /&gt;
*친구나 카운셀러로부터 도움을 얻는 것에 대한 서로의 견해는 어떠한가?&lt;br /&gt;
&lt;br /&gt;
'''일''' &lt;br /&gt;
&lt;br /&gt;
*집안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 인가? &lt;br /&gt;
*아내도 직장을 가질 것인가? 출산 전에만? 아아들을 집에 두고도? 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 &lt;br /&gt;
*아이들을 보육 시설에 맡기는 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lt;br /&gt;
*어느 곳에 정착할지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직업? 누구의 직업? 교회? 가족?&lt;br /&gt;
&lt;br /&gt;
'''친구''' &lt;br /&gt;
&lt;br /&gt;
*배우자 없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도 좋은 가? &lt;br /&gt;
*만약 부부 중 한 명은 특정 친구와 놀기를 원하지만 다른 한명은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건강과 질병''' &lt;br /&gt;
&lt;br /&gt;
*당신은 부부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만한 질병이나 신체장애가 있거나 과거에 경험한 적이 있는가? (알 러지, 암, 식이 장애, 성병, 등등.) &lt;br /&gt;
*당신은 신적 치유를 믿는가 그리고 기도는 의 학적 치료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가? &lt;br /&gt;
*운동과 건강한 식이요법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lt;br /&gt;
*당신은 건강을 해치는 나쁜 습관이 있는가?&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12 Jul 2018 19:18:18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A%B2%B0%ED%98%BC%EC%9D%84_%EC%A4%80%EB%B9%84%ED%95%A0_%EB%95%8C_%EA%BC%AD_%ED%95%B4%EC%95%BC_%ED%95%98%EB%8A%94_%EC%A7%88%EB%AC%B8%EB%93%A4</comments>		</item>
		<item>
			<title>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A%B0%EB%A6%AC%EA%B0%80_%EA%B7%B8%EC%9D%98_%EC%98%81%EA%B4%91%EC%9D%84_%EB%B3%B4%EB%8B%88_%EC%9D%80%ED%98%9C%EC%99%80_%EC%A7%84%EB%A6%AC%EA%B0%80_%EC%B6%A9%EB%A7%8C%ED%95%98%EB%8D%94%EB%9D%BC</link>
			<description>&lt;p&gt;Pcain: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We Beheld His Glory, Full of Grace and Truth}} &lt;br /&gt;
&lt;br /&gt;
'''요한복음 1:14-18'''&lt;br /&gt;
&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본문 말씀의 주된 포인트를 보기 위해 14절에서 시작하겠습니다. &amp;quot;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mp;quot; 1절로 돌아가서 이 말씀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다시 생각해 봅시다. &amp;quo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amp;quot;(요한복음 1:1). 따라서 말씀은 성자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lt;br /&gt;
&lt;br /&gt;
아들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이 용어가 14절에 있기 때문입니다: &amp;quot;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mp;quot; 따라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lt;br /&gt;
&lt;br /&gt;
==== 한 하나님, 세 위격 ====&lt;br /&gt;
&lt;br /&gt;
무슬림은 아들이라는 이 단어에 걸려 넘어집니다. 다른 많은 이들도 그렇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우리가 아들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성관계를 맺어서 아들을 생산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1은 말씀하기를, &amp;quo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amp;quot; 이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는 시작이 없습니다. 그는 태초에 거기 계셨습니다. 그는 당신이 갈 수 있는 최대한 과거로 돌아가도 거기 계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거기 계셨습니다. 그리고 3절은 말씀합니다. &amp;quot;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amp;quot; 즉, 그는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도 피조물의 일부가 아닙니다. 여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아는 것이 있습니다. 1)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2) 아버지도 하나님이십니다. 3) 아들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4) 그는 창조되지 않았고 영원하십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세 위격 즉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 안에서 한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는 삼위일체의 교리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말할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마음에 간직하십시다. 아들과 아버지는 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두 위격이십니다. 그들은 하나의 신적 본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들은 각각 별개의 의식작용을 갖고 계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lt;br /&gt;
&lt;br /&gt;
====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신 것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14절이 말씀하는 것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말씀, 아들이 하나님이신 것을 중단하지 않으시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두 주간 동안 우리가 살펴볼 것입니다: 어떻게 정말 그랬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며, 이것은 우리 각 자에게 개인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가?&lt;br /&gt;
&lt;br /&gt;
&amp;quot;말씀이 육신이 되어.&amp;quot; 즉, 신성한 말씀,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이심을 중단하지 않으시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습니까? 우리는 오늘 14절을 살펴 보면서 이에 대하여 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lt;br /&gt;
&lt;br /&gt;
====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lt;br /&gt;
&lt;br /&gt;
신적 말씀은 인간이 되실 때에도 신적 말씀이시길 멈추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이유는 14절에 나오는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거하셨다는 동사의 주어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은 하나님이신 말씀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천사들이 마태복음 1:23에서 &amp;quot;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amp;quot;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했던 이유입니다. 말씀이신 아들께서는 사람이 되셨을 때 하나님이기를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lt;br /&gt;
&lt;br /&gt;
====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 ====&lt;br /&gt;
&lt;br /&gt;
우리가 이렇게 믿는 두 번째 이유는 14절의 다음 구절입니다. &amp;quot;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mp;quot; 누구의 영광이라구요? 말씀의 영광, 하나님이신 말씀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종류의 영광이라구요? 그것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lt;br /&gt;
&lt;br /&gt;
요한 사도가 성육신한 말씀의 영광은 &amp;quot;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amp;quot;(역자주: 영어 성경 KJV 등의 표현에서는 &amp;quot;the glory as of the the only Son from the Father(아버지의 독생자로서의 영광)&amp;quot;이라고 되어 있으며, 저자는 여기서 &amp;quot;로서의&amp;quot;(as)의 뜻에 대하여 논합니다)을 이라고 말할 때, 이것이 아들처럼 흉내낸 영광이라는 의미입니까? 아들의 참 영광이란 뜻이 아니고, 마치 아들의 영광같이 크게 영광스러웠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가 &amp;quot;저는 선물로 줄 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가 가장 첫 번째로 선택한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주고 싶습니다.&amp;quot;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amp;quot;저는 당신의 진짜 첫 번째 선택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첫 번째 선택한 사람으로서 받는 것이지요&amp;quot; 라고 대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는 제가 &amp;quot;첫 번째로 선택한 사람으로서 이것을 당신에게 드립니다&amp;quot;라고 할 때, 여기서 &amp;quot;으로서&amp;quot;가 의미하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amp;quot;으로서&amp;quot;가 의미하는 바는 당신은 참으로 나의 첫 번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amp;quot;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mp;quot; 라고 말할 때, 이 말의 뜻은 &amp;quot;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었다&amp;quot;라는 의미입니다. &lt;br /&gt;
&lt;br /&gt;
다시, 14절 초반부에서 요한은 단순하게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amp;quot;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amp;quot; 누구의 영광이라구요? 영원한 말씀, 아들의 영광입니다. &amp;quot;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amp;quot; 따라서 성육신의 놀라움을 감소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말씀은 육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심을 그만 두시는 일 없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lt;br /&gt;
&lt;br /&gt;
====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습니까? ====&lt;br /&gt;
&lt;br /&gt;
15-18절은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중단하지 않으시면서 육신이 되셨다고 믿을 수 있는 더 많은 이유를 제공합니다. 주의 뜻이라면 다음 주에 이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나님이심을 중단하지 않으시면서 사람이 되신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봅시다. 왜 우리는 이 질문을 하여야 합니까? 첫째로는 성경 본문이 이에 대하여 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 관계적 문화를 개간함 ====&lt;br /&gt;
&lt;br /&gt;
두 달 전에 제가 소위 관계적 문화를 우리 교회 안에서 증진시키는 데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면서 몇 개의 메시지를 전하였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제가 빌립보서 2:3-4절을 인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amp;quot;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amp;quot; 다시 말하면, 한 교회로서 우리가 우리 밖으로 나가서 다른 이들을 섬기고 다른 이들의 유익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라가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그러한 종의 마음가짐, 관계적 마음가짐의 기초는 무엇인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다음 절은 설명하기를, &amp;quot;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amp;quot; (빌립보서 2:5-7). 다시 말하면, 겸손, 종됨, 사랑 그리고 저희 교회의 갱신된 관계적 문화의 기초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성육신과 적용 ====&lt;br /&gt;
&lt;br /&gt;
제가 이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amp;quot;지난 여름에는 관계적 문화에 대해 강조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신학을 파고들고 있구만&amp;quot;이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2장과 같은 신학은 매우 중요한 신학입니다. 이것은 요한의 복음과 정확히 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의 영광을 알고 사랑을 위하여(13:34, 15:12) 그리스도에 의하여 변화되게 도와 줍니다. 즉, 우리 교회의 관계성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를 더 사랑하고, 더 도와 주고, 더 종과 같이 섬기게 하고, 덜 교만하게 하고, 덜 이기적이게 하고, 덜 내향적이 되게 하고, 더 배려하고 보살피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제가 &amp;quot;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볼 때까지 14절에서 떠나지 맙시다&amp;quot;라고 말할 때, 여러분은 그 물음 위에 있는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이 위대한 신학이 우리의 개인적인 그리고 관계적인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 지켜봅니다. &lt;br /&gt;
&lt;br /&gt;
====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14절은 말씀하기를, &amp;quot;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mp;quot;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은 죄 안에 있는 우리를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대신에 이는 &amp;quot;은혜와 진리로 충만&amp;quot;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됩니다. 그의 진실함, 신실함을 추호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매우, 매우 큽니다. 그래서 여기에 충만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입니다. 여기서 충만이라는 단어는 영광이라는 단어를 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은 하나님의 진리를 구부러뜨림 없이 우리 죄인을 향하여 은혜로움으로 충만합니다. &lt;br /&gt;
&lt;br /&gt;
==== 은혜의 충만 ====&lt;br /&gt;
&lt;br /&gt;
이것은 참으로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자와 처벌을 집행하는 자로서 육신을 입고 등장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그 앞에 죄인으로 서게 될 것이며 영원한 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신 말씀, 아들께서는 &amp;quot;은혜와 진리가 충만&amp;quot;한 신적 영광을 계시하기 위하여 육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은혜로우시기 위하여 육신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이 은혜로우심이 하나님의 진실되심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말씀은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적당주의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이것은 원칙이 확고하지 않은, 감상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의롭고,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고, 댓가를 지불하는, 그러한 은혜입니다. 이것은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으로 바로 이끌어 가는 은혜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가 육신이 되신 이유입니다. 그는 죽으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그는 우리 대신에 신인으로서 죽으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다(히브리서 2:14-15).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능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는 은혜의 충만한 것이 가장 밝게 비치는 곳입니다. 은혜는 거기서 행해졌고 거기서 값을 치르고 산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 그리고 진리 ====&lt;br /&gt;
&lt;br /&gt;
그리고 이것이 죽음을 통하여 일어난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우시고 자신에게 참되십시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께서 오실 때,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진실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로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벌을 받으셨고 우리가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amp;quot;말씀이 육신이 되어&amp;quot; 라는 구절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죄인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은혜의 충만과 진리의 충만으로.하나님의 영광이 역사상 그 어느 순간보다 더 크게 계시되어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영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것 ====&lt;br /&gt;
&lt;br /&gt;
여기서 여러분이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amp;quot;글쎄, 나는 그를 보기 위하여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영광은 내가 볼 수 없다. 너희들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에 대하여 원하는 대로 이것 저것 말하겠지만 그는 여기에 볼 수 있게 계시지 않는다.&amp;quot; 조심하십시오. 14절에 나오는 이 영광이 기껏해야 외적으로 드러나는 밝음이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는 뛰어나거나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amp;quot;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amp;quot; (이사야 53:2).&lt;br /&gt;
&lt;br /&gt;
그리고 14절의 이 영광이 단지 기적들의 나타남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였음에도 아름다운 것이나 영광스러운 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원했습니다(요 11:45-48)&lt;br /&gt;
&lt;br /&gt;
아닙니다, 그의 초림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계시된 &amp;quot;영광&amp;quot;, 말씀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주로 영적인 영광, 영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이는 여러분의 육체의 눈을 가지고 보는 무언가가 아니며,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업니다(에베소서 1:18). 우리는 그가 말하신 것, 행하신 것, 사랑하신 것, 죽으신 것 등을 보면서, 스스로 입증하는 신적인 영광 혹은 아름다움을 봅니다. 이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lt;br /&gt;
&lt;br /&gt;
==== 비할 데 없는 은혜와 진리의 혼재 ====&lt;br /&gt;
&lt;br /&gt;
바울은 고린도후서 4:4에서 이와 같이 표현합니다. &amp;quot;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amp;quot; &amp;quot;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amp;quot;은 요한복음 1:14이 &amp;quot;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mp;quot;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지상에 거하시던 예수님을 결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으며,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우리들처럼 지상에 거하시던 예수님을 결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4의 영광과 고린도후서 4:4의 영광은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영적으로 보게 되는 영광입니다. &lt;br /&gt;
&lt;br /&gt;
여러분은 예수님을 육체의 눈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0:29에서 말씀하시길, &amp;quot;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amp;quot; 여러분은 요한의 복음서와 성경 다른 곳들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여러부이 이 영감된 책에서 그의 말씀과 그의 행하신 것을 읽음으로써 예수님을 만날 때, 그의 영광은 이를 통해 빛납니다. 이는 은혜와 진리의 비할 데 없는 혼재의 자기 입증적인 아름다움입니다. &lt;br /&gt;
&lt;br /&gt;
==== 복음에 의하여 거듭난 ====&lt;br /&gt;
&lt;br /&gt;
12-13절이 거듭나는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고, 14절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는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2-14절을 보겠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4절을 기억하십시오: &amp;quot;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amp;quot; 새로운 영적 생명이 주어질 때, 새 빛이 발생합니다. 이 빛은 물리적 빛이 아닙니다. 이것은 14절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영적으로 빛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어떻게 그 새로운 영적 생명이 우리에게 생겨납니까? 13절은 말씀하기를 이는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날 때 이런 일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거듭남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나오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입니다(요한복음 1:12). &lt;br /&gt;
&lt;br /&gt;
복음에 의해서—예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와 말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영적 생명을 창조하십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베드로전서 1:23-25). 그리고 이 새로운 영적 생명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봅니다(요한복음 1:4). 이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는 요한복음 8:12이 이를 &amp;quot;생명의 빛&amp;quot;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생명을 얻게 될 때, 여러분은 영적인 영광을 보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 그 영광을 보라 ====&lt;br /&gt;
&lt;br /&gt;
다르게 표현하자면, 12절에 의하면, 이 새 생명과 새 시각은 빛을 믿으며 그 빛을 진리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영접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과 빛과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우는 권세를 얻는다고 12절은 말씀합니다. 즉, 이 생명과 빛과 믿음과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저는 여러분 앞에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아들을 제시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여전히 하나님으로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의 영광을 보십시오. 아버직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그를 보십시오. 그분의 인격과 그분이 삶 속에서 영광을 보십시오. 아멘.&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05 Jul 2018 20:46:36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A%B0%EB%A6%AC%EA%B0%80_%EA%B7%B8%EC%9D%98_%EC%98%81%EA%B4%91%EC%9D%84_%EB%B3%B4%EB%8B%88_%EC%9D%80%ED%98%9C%EC%99%80_%EC%A7%84%EB%A6%AC%EA%B0%80_%EC%B6%A9%EB%A7%8C%ED%95%98%EB%8D%94%EB%9D%BC</comments>		</item>
		<item>
			<title>고귀한 선물인 아기 말</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3%A0%EA%B7%80%ED%95%9C_%EC%84%A0%EB%AC%BC%EC%9D%B8_%EC%95%84%EA%B8%B0_%EB%A7%90</link>
			<description>&lt;p&gt;Pcain: ‘고귀한 선물인 아기 말’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Precious Gift of Baby Talk}} &lt;br /&gt;
&lt;br /&gt;
인간의 언어는 참 귀합니다. 우리를 동물로부터 구별시켜 줍니다. 우리의 수준 높은 과학적인 발견들과 우리 감정의 깊은 곳까지 교감하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성경에서 인간의 언어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리서 1:1-2). 그리고 그 아들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셨고 그의 영을 보내셔서 그의 사도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셔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인간의 언어로 전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된 아들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 아들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는 참 귀합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의 충만함을 다 표현하기에 부적합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현재와 주님의 재림 후의 시대를 네 가지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8-13)&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현재 시대(지금)와 장차 오게 될 시대(그때)의 비교에 주목하십시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지금: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amp;lt;br&amp;gt;그때: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9-10절).&lt;br /&gt;
&lt;br /&gt;
지금: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amp;lt;br&amp;gt;그때: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11절)&lt;br /&gt;
&lt;br /&gt;
지금: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amp;lt;br&amp;gt;그때: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12절).&lt;br /&gt;
&lt;br /&gt;
지금: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amp;lt;br&amp;gt;그때: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2절).&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이러한 문맥에서 볼 때, 우리는 바울이 &amp;quot;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amp;quot;고 말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앞으로 오게 될 시대와 비교할 때 지금 시대의 우리 인간의 언어와 생각과 추론이 아기의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이 하늘에 이끌려 가서 하늘의 실제를 보게 되었을 때, 그는 말하기를 &amp;quot;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amp;quot;(고린도후서 12:4)고 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하나님의 모든 위대하심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현세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무시하거나 경멸하거나 아무렇게나 취급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만약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진술들을 과소평가하여 이를 가치없고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혹은 거짓된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있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꼭 필요한 말씀을 업신여긴다면 이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lt;br /&gt;
&lt;br /&gt;
이것들이 어리석은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말하자면 우리의 유아실에 보내셔서 우리의 아기 말(baby talk)을 사용하여 말씀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처럼 어린 아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분 스스로 &amp;quot;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amp;quot;고 말씀하셨을 만한 때가 있었습니다. 즉, 성육신하여(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기 말의 수준에 자신을 맞추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의 유아실과 같은 인간의 삶 안에서 우리와 함께 말을 더듬으셨습니다. &lt;br /&gt;
&lt;br /&gt;
비유컨대, 주님은 아기 말을 하신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우리의 아기 말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인 기도는 아기 말입니다. &amp;quot;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amp;quot;도 아기 말입니다. 고귀하고도 참되며 영광스러운 옹아리입니다. &lt;br /&gt;
&lt;br /&gt;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아기 말로 되어 있는 성경 전체를 감동으로 기록하셨습니다. 참된 아기 말입니다.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의 아기 말입니다. 송이꿀보다 달고 정금보다도 귀한 아기 말입니다. 존 칼빈은 말하기를, &amp;quot;하나님께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 보모가 어린 아이와 이야기하듯 하신다&amp;quot; (기독교 강요, 1.13.1)고 했습니다. 오, 하나님의 아기 말은 얼마나 고귀합니까? 그것은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드는 것과 같지 않고 영원합니다(이사야 40:8). &lt;br /&gt;
&lt;br /&gt;
내세에는 지금과는 다른 언어와 생각과 추론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옹아리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인간 유아실에 보내셔서, 아기 말로 말씀하시고 그 유아들을 위해 죽게 하셨을 때, 그는 어린 아기들의 입으로 표현되는 진리와 아름다움을 멸시하는 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셨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기 말로 기록된 책을 감동으로 무오하게 자신에 대해 기록하게 하셨다면, 하나님을 아는 수단으로 아이들을 통해 만들어져 빛의 선물로 주어진 인간의 언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화 있을진저, 이 선물을 멸시하고 무시하며 악하게 이용하며 교묘히 조작하는 자들이여. 이는 유아실에 있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생명의 호흡입니다. &amp;quot;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amp;quot; (요한복음 6:63).&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03 Jul 2018 14:18:44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A%B3%A0%EA%B7%80%ED%95%9C_%EC%84%A0%EB%AC%BC%EC%9D%B8_%EC%95%84%EA%B8%B0_%EB%A7%90</comments>		</item>
		<item>
			<title>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3%9C%EC%B4%88%EC%97%90_%EB%A7%90%EC%94%80%EC%9D%B4_%EA%B3%84%EC%8B%9C%EB%8B%88%EB%9D%BC</link>
			<description>&lt;p&gt;Pcain: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lt;br /&gt;
&amp;lt;blockquote&amp;g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 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요 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사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삶의 마지막 3년에 그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촛점을 맞춥니다. 이 복음서가 이 렇게 기록된 목적은 요한복음 20:30-31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amp;quot;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 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amp;quot; 즉, 이 책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을 돕기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lt;br /&gt;
&lt;br /&gt;
==== 불신자를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록된 책  ====&lt;br /&gt;
&lt;br /&gt;
하지만 이 책이 오직 불신자만 을 위하여 쓰여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결국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을 계속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6 말씀과 같습니다. &amp;quot;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amp;quot; 요한복음 8:31입니다. &amp;quot;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amp;quot; 한번 믿고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거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요한이 &amp;quot;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amp;quot; 라고 기록한 것은, 불신자 안에 믿음을 일으킬 뿐 아니라 신자들의 믿음을 유지시키려고 이 복음서 를 썼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불신자든 신자든간에 믿음을 통해 영생으로 인도하려는 목적으로 쓰 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책들 중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믿고 그리스도를 그 무엇 보다 소중한 자신의 최고의 보물로 삼게 하는 데에 요한복음보다 더 도움이 되는 책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눈으로 직접 목격한 자의 증언  ====&lt;br /&gt;
&lt;br /&gt;
마치 예수님의 초상화와 같은 요한 복음은 이 무한히 중요한 사건에 직접 참여하였던 목격자에 의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이 복음서 안 에는 독특한 표현인 &amp;quot;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amp;quot;(13:23; 19:26; 20:2, 7, 21:20)라 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21:20: &amp;quot;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 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amp;quot; 그리고 네 절 후 요한복음 21:24: &amp;quot;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amp;quot; 이 구절들에 등장하는 &amp;quot;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amp;quot;—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던 제자(13:23)—는 사도 요한이며, 그는 예수님의 삶의 사건들과 그 의미에 대하여 신적으로 영감받은 증언으로서 이 책을 기록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 신적 영감  ====&lt;br /&gt;
&lt;br /&gt;
신적 영감에 대해 제가 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하나는 예수님 본인의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14:26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 습니다. &amp;quot;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amp;quot; 그리고 요한복음 16:13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 다. &amp;quot;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 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amp;quot; &lt;br /&gt;
&lt;br /&gt;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그의 사도들을 그의 대리인으로 선택하셨고,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들을 가르치셨고, 그들을 보내셨고, 그리고 나서 교회의 기초(에베소서 2:20)를 위하여 성경을 기록하는 일에 있어 성령을 통하여 영 감하셔서 지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이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임을 믿습니다. &lt;br /&gt;
&lt;br /&gt;
==== 요한복음의 첫 세 절  ====&lt;br /&gt;
&lt;br /&gt;
&amp;quot;말씀&amp;quot;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맨 첫 부분에 나옵니다. 요한 복음 1:1-3, &amp;quo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 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amp;quot; 이는 오늘 설교의 본문입니다. &lt;br /&gt;
&lt;br /&gt;
==== &amp;quot;말씀&amp;quot;: 예수 님  ====&lt;br /&gt;
&lt;br /&gt;
첫째, 말씀이라는 단어에 집중합시다. &amp;quo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amp;quot; 이 말씀에 대하여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14절에 나옵니다. &amp;quot;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mp;quot;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lt;br /&gt;
&lt;br /&gt;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 스도께서 무엇을 하셨고 또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사도 요한이 알고 보고 듣고 그의 손으로 만진(요한일서 1:1) 사람—의 삶과 사역에 대한 책입니 다. 그는 육신과 피를 가졌습니다. 그는 나타났다 사라지는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고 마셨으며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를 매우 가까이에서 보 고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노년에 요한과 함께 살았습니다(요한복음 19:26).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요한은 요한복음 1:1-3에서 예수님에 관한 가장 궁극적인 일들을 우리에게 말해주 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충만히 이해하는 데에는 삼 년 이상의 시간 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그렇게 오래 걸려 알게 된 것들을 그의 독자들이 첫 세 절에서 바로 발견하게 하고자 합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의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위엄과 신성 과 창조주로서의 권리에 우리 마음이 고정되고 이를 명확히 이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 예수님의 무한한 위엄  ====&lt;br /&gt;
&lt;br /&gt;
이것이 1-3절의 포인트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요한복음을 겸 손하게, 복종하는 자세로, 예배하는 자세로, 그리고 경외함 가운데 읽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혼인 잔치에 있었던 분, 우물가에 있었던 분, 산 위에 있었던 분은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여 러분은 이것을 보고 이것을 느끼십니까? 이것은 제가 고안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설교의 구조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 책의 구조입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쓰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라면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점점 더 얘기함으 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이 분은 누구신가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요한은 그 렇게 하지 않습니다. &amp;quot;첫 단어들부터 육신이 되사 우리 가운데 거하신 이 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것으로 놀라게 하겠다.&amp;quot; 요한은 우리가 이 복음서의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지식,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분이 우주를 창조하셨 다는 분명하고 견고하고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서 읽어 나가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 은 여러분이 이 위대하신 구주를 알게 되고 믿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어떤 다른 이유로 좋아하고 환영할 수도 있지만, 요한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무한한 위엄 안에서 예수님을 알고 그 안에서 예수님을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로 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 왜 &amp;quot;말씀&amp;quot;이라고 합니까?  ====&lt;br /&gt;
&lt;br /&gt;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왜 예 수님을 &amp;quot;말씀&amp;quot;이라고 하였을까요? &amp;quo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amp;quot; 이 질문에 저는 다음과 같이 답하겠 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은 그의 오심과 일하심과 가르치심과 죽 으심과 부활하심 안에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신다는 것을 요한이 깨달았기 때 문입니다. 결국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임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인격 자체가 하나님의 진리임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셔 야 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친히 하신 말씀들만이 아니고, 그것이 주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시고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하는 사실이 하나님의 주된 계시를 이룹니다. 예수님 의 말씀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을 더 분명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계셨던 주된 진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amp;quot;내가 곧 진리요&amp;quot;라고 말씀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6). &lt;br /&gt;
&lt;br /&gt;
그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러 오셨으며(요한복음 8:37) 그는 진리이셨습니다(요한복음 14:6). 그의 증거와 그의 인격은 진리의 말씀이셨습니다. 그가 말 씀하기를, &amp;quot;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너희는 참 내 제자가 되고&amp;quot;(요한복음 8:31), 그리고 말씀하 시기를 &amp;quot;내 안에 거하라&amp;quot;(요한복음 15:7). 우리가 그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그 말씀 안에 거하 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하시는 일들은 자신이 누구신가를 나타내시는 &amp;quot;증거&amp;quot;라 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5:36, 10:25). 다시 말하면, 그의 일하심 안에서 그는 말씀이셨습니다 . &lt;br /&gt;
&lt;br /&gt;
==== 예수님은 하나님의 결정적이고도 최종적인 메시지임  ====&lt;br /&gt;
&lt;br /&gt;
요한계시록 19:13에서 , 요한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묘사합니다. &amp;quot;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 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amp;quot;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립니다. 그로부터 두 절 후에 요한 사도는 말씀하길, &amp;quot;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amp;quot;(요한계시록 19:15).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그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열방을 치십니다. 에베소서에는 성령 의 검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에베소서 6:17). 하지만 이 말씀의 능력은 예수님 자신과 매우 긴 밀히 연합되어 있어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단지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가지고 계 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요한 사도는 그 의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죽으심과 부활하심 안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계시, 모든 진리, 모든 증거, 모든 영광, 모든 빛, 모든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는 이 모든 하나님의 계시를 통틀어서 예수님은 &amp;quot;말씀&amp;quot;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처음이며, 마지 막이며, 궁극적이며, 결정적이며, 절대적으로 참되며, 신뢰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2과 의미가 같습니다. &amp;quot;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amp;quot; 성육 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그리고 결정적인 말씀입니다. &lt;br /&gt;
&lt;br /&gt;
==== 예 수님에 대한 네 개의 관찰사항  ====&lt;br /&gt;
&lt;br /&gt;
이제 요한 사도는 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 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네 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1) 그는 언제부터 존재하였는지, 2) 그는 누구신지, 3) 그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4) 그는 이 세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lt;br /&gt;
&lt;br /&gt;
'''1) 그는 언제부터 존재하였는가''' &lt;br /&gt;
&lt;br /&gt;
1절입니다. &amp;quo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amp;quot; 태초에 계신 말씀은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헬라어 사본의 첫 두 단어와 동일합니다: &amp;quot;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 니라.&amp;quot;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요한 사도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첫번째로 진술하고 있는 것은 바로 창조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3절에서 그가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amp;quot;태초에&amp;quot; 계신 말씀이란 창조된 물질이 존재하기 전에 말씀이신 하나 님의 아들께서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lt;br /&gt;
&lt;br /&gt;
기억하십시오. &amp;quot;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amp;quot; (요한복음 20:31). 요한은 그리스도 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시간과 관련하여 태초부터 계신 분이라고 진술하면서 그의 복음서 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이러한 진리를 다음과 같은 위대한 송영에서 찬미하고 있습니다: &amp;quot;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 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 (유다서 1:25). 바울은 디모데후서 1:9에 서 하나님께서 &amp;quot;영원 전부터&amp;quot;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시간이나 물질이 있기 전에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복음서에서 만나뵙는 분입니다. &lt;br /&gt;
&lt;br /&gt;
'''2) 예수님은 누구신가''' &lt;br /&gt;
&lt;br /&gt;
1절 말미에 &amp;quot;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amp;quot; 라고 하였습니다. 이 복음서의 특징 중 하나는 가장 중대한 교리들이 종종 가장 간단한 말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간단할 수 없습 니다—그리고 더 이상 중대할 수 없습니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 도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이십니다. &lt;br /&gt;
&lt;br /&gt;
우리 베들레헴 교회에서 그리고 모든 참된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예배한다는 사실이 크고 명백하게 널리 알려지게 합시다. 요한복음 20:28에서 도마가 예수님 앞에서 경배하며 기쁨과 놀라움으로 &amp;quot;나의 주 나의 하나님&amp;quot;이라고 고백 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lt;br /&gt;
&lt;br /&gt;
유대 지도자들이 요한복음 10:33에서 &amp;quot;선한 일로 말 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 이라 함이로라&amp;quot;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우리는 소리지릅니다. &amp;quot;아니오, 이것은 신성모독이 아 니오. 그는 우리의 구주, 우리의 주, 우리의 하나님이오.&amp;quot; &lt;br /&gt;
&lt;br /&gt;
이것이 제가 전하고 있는 요 한복음 시리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감으로써, 매주 하나님을 더 알아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와 함께 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초 청하십시오. 와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십시오. &lt;br /&gt;
&lt;br /&gt;
여호와의 증인 이나 무슬림은 &amp;quot;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The Word was God)' 라고 읽으면 안된다. '이 말씀은 하나의 신이다(The Word was a god)'라고 읽어야 한다.&amp;quot; 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설혹 헬라어를 모르더라도 바로 여기 문맥만 보면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좀 있다가 마지막 포인트로 이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우선은 예수님과 하나 님의 관계에 대하여 보도록 합시다. &lt;br /&gt;
&lt;br /&gt;
'''3)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lt;br /&gt;
&lt;br /&gt;
1절 중간에는 &amp;quot;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amp;quot;라고 합니다. &amp;quot;태초 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amp;quot; 이것은 삼 위일체의 위대한 역사적 교리의 심장입니다. 언젠가 요한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성경의 다른 부분으 로부터 바로 이 교리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지금은 이 직설적 선언을 마음에 잘 새기도록 합시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는 하나님이십니 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그는 하나님의 형상 입니다. 하나님되심을 완벽하게 반사하고 계시고, 영원 전부터 별개의 위격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 으로서 서 계십니다. 한 신적 본질과 세 위격—무엇을 의식하는 의식 작용에 있어 구분된 세 의식 의 중심—이 있습니다. 이 중 두 위격이 여기 언급됩니다. 아버지와 아들. 우리는 이 책 안에서 나중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들을 배웁니다. 성령께서는 나중에 소개됩니다. &lt;br /&gt;
&lt;br /&gt;
거울로는 희 미하게 보고 부분적으로 알기 때문에(고린도전서 13:9, 12), 이런 것이 우리에게 신비로 남아 있다고 해서 놀라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 지식을 던져 버리지는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일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는 여러분의 구원을 달성하실 수 없을 것이며(히브리서 2:14-15), 그의 영광은 아름다움을 항상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는 여러분의 영원한 갈망을 만족시키기에 불충분할 것 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집어 던져 버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을 집어 던져 버리는 것이며 동시에 다가올 세대에서의 여러분의 모든 기쁨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여태까지 우리는 1) 예수님이 언제부터 존재하셨는지(시간이 있기 전에) 2) 예수님이 누구신지(&amp;quot;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amp;quot;), 3)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amp;quot;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 니&amp;quot;)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4) 예수님과 세상과의 관계''' &lt;br /&gt;
&lt;br /&gt;
2절과 3절입니다. &amp;quot;그가 태초 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amp;quot; 육신이 되사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를 꾸짖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말씀은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1절에 기록된 삼위일체의 신비를 잘 간직하고 기억하도록 하십시다. 3절에 도달하 자마자 바로 그 진리를 놓아 버리지 마십시오. 3절입니다. &amp;quot;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 니.&amp;quot; 그렇습니다,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의 위엄을 축소시키지 마십시오. 그는 만물의 창 조에 있어서 아버지의 대리인, 즉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는 것 안에서, 그는 하나님 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구주, 여러분의 주님, 여러분의 친구이신 예수님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십니다. &lt;br /&gt;
&lt;br /&gt;
====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무슬림이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아리우스주의(4세기의 이단으로서 그리스 도의 신성을 부인한 이단)의 어떤 분파에 속한 자들이 &amp;quot;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는 영원한 존 재가 아니고—영원히 낳으신 분이 아니고—창조된 피조물이다. 그는 피조물 중 첫째 가는 분이었다. 높은 천사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이었다.&amp;quot;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다. 혹은 아리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 &amp;quot;그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amp;quot; 라고 하는 주장을 생각해 봅시다. 요한 사도는 3절에서 정확하게 이들의 주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는 단지 3절 상반절인 &amp;quot;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amp;quot; 라고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면 충분할 것 같음에도 3절 하반절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는 피조물들을 창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상상컨대 어떤 이는 &amp;quot;그래, 하지만 '만물'은 그 자신을 포함하지 않아. 만물은 그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함할 뿐이지.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 의하여 창조되었 고, 그 후 그는 아버지와 함께 나머지 만물을 창조하였을 것이야.&amp;quot;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요한은 이런 주장이 성립할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기 위해 덧붙이고 있습니다. 즉, 3절 하반절, &amp;quot;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amp;quot;라고 덧붙였습니다. &amp;quot;지은 것이&amp;quot;라고 덧붙여진 어구는 &amp;quot;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amp;quot;라는 말의 의미에 무엇을 부가 하고 있습니까?&amp;quot;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amp;quot; 이 어구는 이런 뜻을 부가합니 다: 창조되었다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간에 그리스도께서 이를 만드셨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며 이를 확실히 강조하며 극히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즉, 피조물이라 일컬어질 수 있는 모든 피조물 중에서 그리스도의 창조를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존재하기 전에, 자신을 존재하게 만 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께서는 지은 바 된 것이 아닙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 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주께서 우리를 도와 그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그리고 그를 예배하게 하소서. 아멘.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03 Jul 2018 14:12:56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D%83%9C%EC%B4%88%EC%97%90_%EB%A7%90%EC%94%80%EC%9D%B4_%EA%B3%84%EC%8B%9C%EB%8B%88%EB%9D%BC</comments>		</item>
		<item>
			<title>벌거벗은 상태의 반역, 그리고 옷을 입게 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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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Pcain: ‘벌거벗은 상태의 반역, 그리고 옷을 입게 됨’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Rebellion of Nudity and the Meaning of Clothing}} &lt;br /&gt;
&lt;br /&gt;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자마자 그 범죄의 결과가 즉시 나타났습니다. 창세기 3:7을 보면, 그들이 죄를 범한 후 나타난 첫 번째 결과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amp;quot;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 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amp;quot;&lt;br /&gt;
&lt;br /&gt;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몸에 대하여 갑자기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 전에는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amp;quot;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amp;quot; (창 세기 2:25). 그런데, 범죄한 이후 부끄러움이 생겼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lt;br /&gt;
&lt;br /&gt;
그들이 갑자기 못생긴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타락 전을 묘사하는 창세기 2:25에서든 타락한 이후를 묘사하는 창세기 3:7에서든 , 그들의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못생긴 여부는 창세기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부끄러워하였 을까요? 그들은 타락 전에는 언약을 지키는 사랑(covenant-keeping love) 가운데 있었습니 다. 그런데, 타락과 동시에 언약을 지키는 사랑의 기초가 붕괴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결혼 관계 안에서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안도감이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혼인의 언약을 지키는 사랑의 기초는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을 위하여 그들을 다스리시고 그들은 그러한 안도감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의존하는 그런 언약 관계 말입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과의 언약은 깨어졌고 그들 사이의 언약을 지키는 것의 기초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들 사이의 언약적 사랑이 타락하자 그들은 즉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 로 일어났습니다. 둘 다 부끄러움의 경험과 관련됩니다. 첫째, 자신의 벌거벗음을 보는 상대방은 이제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에게 나를 완전히 노출시키는 것이 꺼려 집니다. 나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 걱정됩니다. 둘째, 이제는 내 자신이 더 이상 하나님과의 평 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대신에 이제 죄책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더러워진 것과 가치 없게 된 것을 느낍니다. 고로 나는 수치를 당해 마땅하다고 느껴집니다. &lt;br /&gt;
&lt;br /&gt;
이 두 가지 부끄러움의 원인에 대하여 좀 더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나는 내 몸에 대하여 의 식하는 동시에 하와가 하나님에 대한 독립 선언을 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언제라도 수치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녀는 하나님 대신에 자신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 놓았으며, 그녀는 이제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그녀는 자기 자신을 앞세울 것입 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안전한 대상이 아닙니다. 그녀 주위에 완전히 노출된 채로 있다가는 언제라도 나는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을 위하여 나를 언제라도 바닥에 패대기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벌거벗고 있는 것이 위태롭게 느껴집니다. 이제 그녀가 언약을 지키는 정결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 리라고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로부터 나의 부끄러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lt;br /&gt;
&lt;br /&gt;
한편,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 있습니다. 아담 자신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 린 것이 부끄러움을 불러 일으킵니다. 하와가 이제 반역적이고 이기적이고 그러므로 안전한 대상이 아닌 것처럼, 아담 본인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가 내 자신 안에서 이를 느끼기는, 내 자신이 더러워진 것과 죄책을 지고 있는 것을 느끼며, 내가 가치 없게 된 것을 느낍니다. 이는 거짓된 느 낌이 아닙니다. 참으로 나는 그렇게 된 것입니다. 타락 이전에는, 나의 됨됨이는 내가 마땅히 그 래야 하는 모습 말하자면 바람직한 인간의 됨됨이와 완벽히 일치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 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나는 겸손하게 기쁨으로 하나님께 복종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내가 마 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바람직한 사람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나를 둘러싼 모든 일들에 영향을 줍니다—나의 몸에 대한 나의 느낌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나의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 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나 이제는 내 자신의 죄책감과 무가치함 등의 느낌들 때문에 나는 상처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는 자기보호적 느낌이 작용합니다. 따라서 무죄 상태에 있었던 단순하고 개방된 벌거벗음이 이제는 나와 같이 죄책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벌거벗음으로 인한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 근원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근원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언약적 사랑의 토대가 붕괴된 것을 그 원인으로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중 하나는 하와가 나를 소중히 여겨줄 것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기 적 존재가 되었고 이제 그녀가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하여 나를 깔아뭉갤 것이 염려됩니다. 다른 하나는 나의 죄책감과 무가치한 느낌은 무죄 상태의 벌거벗음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나는 부끄러움 을 느낍니다. &lt;br /&gt;
&lt;br /&gt;
창세기 3:7은 말씀하길, 그들은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합니다. &amp;quot;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 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amp;quot; 아담과 하와가 옷을 만들어 입은 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숨기려는 죄악적 노력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으려고 하였 습니다(창세기 3:8). 벌거벗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은 자신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 아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옷으로 덮고자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현재의 됨됨이와 자신들이 마땅히 그래아 하는 바람직한 인간의 됨됨이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메우고자 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하나님께서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그들을 입히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들의 위선을 도와주시는 것인가요? 타락하기 전에 그들은 벌어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후에는 부끄러움 때문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 이 만들었던 옷보다 더 좋은 옷을 만들어 입혀 주신 사실은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여기서 부정적 메시지와 긍정적 메시지를 주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lt;br /&gt;
&lt;br /&gt;
부정적으로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이제 과거의 네가 아니며, 마땅 히 그래야 하는 너의 됨됨이를 잃어 버렸다. 너의 됨됨이와 마땅히 그래야 할 바람직한 됨됨이 사 이의 간극은 엄청나다. 너 자신을 옷으로 가리는 것은 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다—이 사실을 은폐 하고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고백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너는 옷을 입을 것이다. 네 가 인간의 바람직한 위치에서 타락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인정하고 고백하기 위해서 옷을 입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 점의 실제적 의미 중 하나는 오늘날의 공적 누드는 무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락 한 인류의 도덕적 현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을 거부하는 반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 리가 잃어버린 영광을 증거하기 위하여 옷을 입기를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옷을 집어 던져버리는 것은 기존의 반역에 추가적인 반역을 더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한편, 다른 방향으로 반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입고 있는 옷을 통하여 자신의 권력 , 위신을 과시하고 남들의 주목을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누드 상태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아 니라 단순성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디모데전서 2:9-10, 베드로전서 3:4-5). 의복은 사람들 이 그 의복을 입고 있는 자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의복 은 그 의복을 입고 있는 자가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말하자면, 그 리스도의 이름으로 남들을 섬기는 자비로운 손,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 본 얼굴의 밝음 등등이 결핍되어 있는 것을 증거하고 이를 생각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물의 가죽으로 된 옷을 주사 입히셨을 때, 하나님의 마음 에 있었던 더 긍정적인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증언이요 우리 가 마땅히 그러하여야 할 됨됨이에서 타락하여 떨어져 나왔다는 고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언젠 가는 우리를 인간이 마땅히 그래야 할 그러한 됨됨이, 그러한 존재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증언이 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은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 본인께서 그들의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습니다. 그는 더 나은 옷을 통하여 자비를 보이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전후 문맥에 등장하는 다른 회망적인 징표들(창세기 3:15절에 나오는 뱀의 패배 등)과 함께, 하나님의 자비는 그가 우리의 수치의 문제를 결정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해결하실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아들의 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동물 가죽을 위해 동물을 죽일 때 동물의 피가 흘렀던 것과 같이). 그리고 그는 의의 옷과 그의 영광의 빛남을 통하여 이를 하실 것입니다(갈라디아서 3:27, 빌립보서 3:21).&lt;br /&gt;
&lt;br /&gt;
우리의 옷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실패에 대한 증언인 동시에 우리의 미래의 영광에 대한 증 언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됨됨이와 우리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됨됨이 사이의 간극을 증언하고 있습 니다. 그리고 이 간극을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죄를 위한 그의 죽음을 통하여 메꾸어 주시고자 하 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의도에 대한 증언입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9 Jun 2018 20:23:16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B2%8C%EA%B1%B0%EB%B2%97%EC%9D%80_%EC%83%81%ED%83%9C%EC%9D%98_%EB%B0%98%EC%97%AD,_%EA%B7%B8%EB%A6%AC%EA%B3%A0_%EC%98%B7%EC%9D%84_%EC%9E%85%EA%B2%8C_%EB%90%A8</comments>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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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듭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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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Pcain: ‘거듭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What Happens in the New Birth? Part 1}}&amp;lt;br&amp;gt; &lt;br /&gt;
&lt;br /&gt;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lt;br /&gt;
&lt;br /&gt;
&amp;amp;lt;/blockquote&amp;amp;gt;&lt;br /&gt;
&lt;br /&gt;
우리는 거듭남에 대한 일련의 메시지 시리즈를 시작하였습니다. 거듭남은 중생, 새로 태어남, 신생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3에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amp;quot;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amp;quot;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니고데모에게만 국한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며,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lt;br /&gt;
&lt;br /&gt;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로서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마태복음 23:15과 33절에서 엄중히 꾸짖으셨습니다. &amp;quot;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amp;quot; 따라서 우리가 시작한 이 시리즈는 시시한 내용이 아닙니다. 극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거듭남에 대하여 말할 때 한쪽 저울에는 영원이라는 시간이 걸려 있습니다. &amp;quot;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amp;quot;&lt;br /&gt;
&lt;br /&gt;
==== 거듭남에 관한 진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함 ====&lt;br /&gt;
&lt;br /&gt;
지난 시간의 첫 번째 메시지에서 저는 이 시리즈를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고 앞으로 다루게 될 질문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이제 오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거듭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 메시지들을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저의 매우 진지한 생각들을 먼저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이 일련의 메시지들이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 이 말씀들이 우리를 거듭해서 불안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적어도 세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 1) 우리의 소망 없는 상태 때문에 ====&lt;br /&gt;
&lt;br /&gt;
거듭남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을 때, 우리는 아무런 소망 없는 우리 자신의 영적, 도덕적, 법적 상태에 직면하게 합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거듭남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이기적이고 반역적입니다.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과 진노 아래 유죄 상태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고 하신 것은,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것에 대하여 절망적으로 무반응이고, 부패하여 있고, 죄책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은혜 없이는,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2) 우리는 자신의 거듭남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lt;br /&gt;
&lt;br /&gt;
거듭남은 우리가 뭔가를 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인 아니고 우리에게 되어져야 하는 무언가이기 때문에,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1:13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amp;quot;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amp;quot;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동일한 것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amp;quot;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amp;quot; (베드로전서 1:3). 우리는 거듭남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듭남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하는 어떠한 선한 일은 거듭남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닙니다. 즉, 우리가 뭔가를 함으로써 거듭남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무력함과 우리의 절대적 의존성을 직면하게 됩니다. 거듭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여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데,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거듭나게 할 수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3)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유를 대하게 되므로  ====&lt;br /&gt;
&lt;br /&gt;
그리고 예수님께서 거듭남에 대하여 주신 가르침 때문에 우리가 불안하게 되는 세 번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거듭남의 진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유와 맞닥뜨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는 우리의 이기심과 반역 가운데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에베소서 2:3). 우리의 반역심은 심히 깊어서 복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감지하거나 사모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4:4). 따라서, 우리는 거듭나는 일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죽어 있는 우리를 살리실 것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결정은 영적인 시체에 불과한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아나게 하신 것에 대한 응답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적어도 처음에는, 이것은 불안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lt;br /&gt;
&lt;br /&gt;
==== 나의 소망: 단지 불안을 일으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안정되게 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 ====&lt;br /&gt;
&lt;br /&gt;
따라서, 저는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거듭남에 관한 이 가르침이 여러분을 동요시키며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참으로 조심스럽게 다루기를 원합니다. 저는 여린 영혼들에게 어떤 불필요한 고뇌를 일으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적 생명에 대하여 미혹되고 혼동된 도덕적 혹은 종교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짓된 소망을 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최근 들어 제 손 안에 영원한 영혼들을 쥐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는 그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에베소서 2:4-5에서 &amp;quot;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amp;quot; 와 같이 말씀하신 것을 행하실 것을 참으로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진리 안에서 높이 들려 올려지는 곳에서 그의 생명을 주시는 은혜의 풍성함을 크게 드러내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이 시리즈가 단지 불안하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안정시키고 구원을 가져다 주게 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lt;br /&gt;
&lt;br /&gt;
==== 거듭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lt;br /&gt;
&lt;br /&gt;
자 이제 다음의 질문으로 넘어가 봅시다: 거듭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세 개의 문장으로 답하겠습니다. 그 중 두 개는 오늘 다룰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주의 뜻이면) 다음 주에 다루겠습니다. 1) 거듭남 안에서 영혼에 생기는 변화는 새로운 종교를 갖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을 갖는 것입니다. 2) 거듭남 안에서 영혼에 생기는 변화는 단지 예수님에 관한 초자연적인 것을 사실로 믿고 이를 확언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자신 안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3) 거듭남 안에서 영혼에 생기는 변화는 여러분의 옛 인간성이 개조되고 개선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인간성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 새 인간성은 참으로 여러분 자신이면서, 용서받고 깨끗하게 되었고, 참으로 새로운 본성이고,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lt;br /&gt;
&lt;br /&gt;
==== 1) 새로운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명 ====&lt;br /&gt;
&lt;br /&gt;
거듭남은 새로운 종교를 갖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갖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의 첫 세 절을 읽어봅시다. &amp;quot;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amp;quot;&lt;br /&gt;
&lt;br /&gt;
여기서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고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확실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3절). &amp;quot;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amp;quot; 그리고 7절에서는 아예 대놓고 너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모든 종교, 그의 놀라운 바리새적 연구와 훈련과 율법 준수 등 그 어떤 것도 거듭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런 생명 없는 종교 형식들은 거듭남의 필요성을 오히려 더 명백하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니고데모나 여러분이 그리고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고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굳이 거듭남, 즉 새로 태어난다고 표현하심으로써, 인간이 태어나는 이미지를 채용하신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태어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가져옵니다. 어떤 의미에서 니고데모는 살아 있지만 그는 죽어 있습니다. 그는 숨을 쉬고 있고, 생각하고 있고, 느끼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어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니고데모 안에는 영적인 생명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그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명이 필요하며, 더 많은 종교 행위나 더 많은 종교적 열심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런 것들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아버지를 장사하고 나서 예수님을 따라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9:60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amp;quot;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amp;quot; 장사될 필요가 있는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있는 동시에 그들을 묻을 수 있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명백한 육체적 생명을 가지고 돌아다니고 있지만 실제로는 죽어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신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amp;quot; (누가복음 15:24). &lt;br /&gt;
&lt;br /&gt;
니고데모는 종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생명 즉 영적 생명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전에는 없었던 생명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거듭날 때 새 생명이 생겨납니다. 이것은 종교 행사나 종교 훈련 혹은 결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첫째 가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2) 초자연적인 것을 믿고 확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임 ====&lt;br /&gt;
&lt;br /&gt;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수님 안의 초자연적인 것을 믿고 이를 확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자기 자신 안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 니고데모는 말합니다. &amp;quot;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amp;quot; 다시 말하면, 니고데모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신적 역사를 목격하고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amp;quot;나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네가 나에 대하여 본 것을 보기를 원한다&amp;quot;고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그는 말씀하시기를, &amp;quot;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amp;quot; 라고 하십니다. &lt;br /&gt;
&lt;br /&gt;
표적과 기사를 보고 이에 놀라며, 기적을 행한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는 표적과 기사의 큰 위험들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표적과 기사에 놀라기 위해서 새 마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새 마음 없이도 표적과 기사에 놀랄 수 있습니다. 타락한 옛 인간성으로도 충분히 표적과 기사에 놀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타락한 옛 인간성은 기적을 행한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기꺼이 말합니다. 심지어 마귀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마가복음 1:24). 아니다, 니고데모야, 나를 하나님께로부터 보냄받은 기적을 행하는 자로 보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가 아니다. &amp;quot;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다시 말하면, 예수님 안에 있는 초자연적인 것을 확실히 믿고 확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 자신 안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듭남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기적입니다. 거듭남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6절은 이 거듭남의 초자연적인 성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amp;quot;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amp;quot; 육은 무엇이냐면 자연적인 우리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거듭남을 불러 일으키시는 초자연적인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8절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amp;quot;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amp;quot; 성령은 자연적 세상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는 자연 위에 계십니다. 성령은 초자연적이십니다. 실로,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거듭남을 일으키시는 직접적 원인이 되십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야, 거듭남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지 내 안에 있는 초자연적인 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것 정도가 아니다. 오히려 네 안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너는 거듭나야 한다. 어떤 은유적 자연적 방법으로 나는 거듭났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거듭나야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네 위에 오셔서 새 생명을 주셔야 한다. &lt;br /&gt;
&lt;br /&gt;
다음 번에는 5절을 살펴보겠습니다. &amp;quot;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amp;quot; 여기서 물과 성령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고 이 말들은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이 됩니까?&lt;br /&gt;
&lt;br /&gt;
==== 예수님은 생명이심 ====&lt;br /&gt;
&lt;br /&gt;
오늘 저는 성령에 의해 거듭나는 것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소유하는 것 사이의 결정적인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태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성령에 의하여 영적 생명이 없는 곳에 영적 생명을 가져다 주시는 초자연적인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요한복음 6:63에 다시 말씀하십니다. &amp;quot;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amp;quot;&lt;br /&gt;
&lt;br /&gt;
그러나 요한복음은 다른 것도 명확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주시는 생명이십니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 생명은 오직 예수님과 관련해서 주십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은 우리가 초자연적인, 영적 생명을 경험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에서 말씀하셨습니다. &amp;quot;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amp;quot; 요한복음 6:3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amp;quot;나는 생명의 떡이니.&amp;quot; 20:31에서 요한 사도는 말합니다. &amp;quot;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amp;quot;&lt;br /&gt;
&lt;br /&gt;
==== 예수님과 떨어져 있는 생명은 없음 ====&lt;br /&gt;
&lt;br /&gt;
따라서 예수님과 분리되어서는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분리되어서는 아무런 영적 생명—영생—은 없습니다. 거듭남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많습니다만, 지금은 이 정도로 해 둡시다: 거듭남 안에서, 성령께서는 우리를 생명의 연합 안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연합시키십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이 흘러나오는 포도나무이십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요한복음 15:1).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새로운 영적 생명의 초자연적 창조입니다. 이러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창조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생명의 연결로 연결되게 하십니다. 이런 신비한 생명의 연합은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객관적 현실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즉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면에서 볼 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 마음 속에 생겨납니다. 영적 생명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함께 생겨납니다. 새로운 생명은 믿음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영적 생명은 항상 믿음을 일깨우고 믿음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 없는 생명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분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거듭남 안에서 그리스도께로 연합됩니다. 이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한편,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이 연합을 예수님께 대한 믿음에 의해 경험합니다. &lt;br /&gt;
&lt;br /&gt;
==== 거듭남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결코 분리시키지 말라 ====&lt;br /&gt;
&lt;br /&gt;
요한 사도가 요한일서 5:4에서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들어보십시오. &amp;quot;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amp;quot;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은 승리의 열쇠입니다. 한편, 믿음도 승리의 열쇠라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요한 사도가 요한일서 5:11-12에서 말씀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amp;quot;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amp;quot;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amp;quot;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amp;quot;(요한복음 6:63)라고 말씀하실 때, 그리고 &amp;quot;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amp;quot; 라고 말씀하실 때, 이는 다음과 같은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 안에서, 성령께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예수님과 연결시키심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생명을 초자연적으로 주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amp;quot;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amp;quot;(3절)라는 말씀과, &amp;quot;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amp;quot;(36절)라는 말씀을 결코 분리시키지 마십시오.&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07 Jun 2018 20:24:43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A%B1%B0%EB%93%AD%EB%82%A8_%EC%95%88%EC%97%90%EC%84%9C_%EB%AC%B4%EC%8A%A8_%EC%9D%BC%EC%9D%B4_%EC%9D%BC%EC%96%B4%EB%82%98%EB%8A%94%EA%B0%80</comments>		</item>
		<item>
			<title>어떻게 하나님은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까?</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6%B4%EB%96%BB%EA%B2%8C_%ED%95%98%EB%82%98%EB%8B%98%EC%9D%80_%EC%9A%B0%EB%A6%AC%EB%A5%BC_%EC%A4%91%EC%9A%94%ED%95%98%EA%B2%8C_%EC%97%AC%EA%B8%B0%EC%85%A8%EC%8A%B5%EB%8B%88%EA%B9%8C%3F</link>
			<description>&lt;p&gt;Pcain: ‘어떻게 하나님은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까?’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How Has God Made Much of Us?}} &lt;br /&gt;
&lt;br /&gt;
(이 글은 '''God Is the Gospel(하나님이 복음이다)''', 영문판 155-162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창조물 중 우리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또한 이러한 창조를 &amp;quot;매우 좋았더라&amp;quot;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매우 중요한 피조물로 여기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그 타락한 형상의 회복을 추구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한 형상이 단지 이전 상태로 회복되는 차원을 넘어서는 더 나은 것을 계획하시고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닮는 데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amp;quot;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amp;quot; (고린도전서 15:49).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꾸준하게 계속되는 과정이며, 몸의 부활시에 완전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수여하신 이같은 놀라운 존엄성에 대해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amp;quot;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amp;quot; (창세기 1:27, 31).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께 돌이키는 회심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amp;quot;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amp;quot; (고린도후서 5:17). &amp;quot;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amp;quot; (에베소서 2:10). &amp;quot;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amp;quot; (골로새서 3:10).&lt;br /&gt;
&lt;br /&gt;
그의 백성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사역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amp;quot;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amp;quot; (로마서 8:29). &amp;quot;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amp;quot; (고린도후서 3:18).&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다 함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것—영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몸까지 포함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는 &amp;quot;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amp;quot; (빌립보서 3:21)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amp;quot;영화(glorification)&amp;quo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amp;quot;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amp;quot; (로마서 8:30). 그 영광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밝을 것이며, 우리는 기쁨으로 서로를 보기 위한 새로운 눈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amp;quot;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amp;quot;(마태복음 13:43) 것이기 때문입니다.&lt;br /&gt;
&lt;br /&gt;
우리는 흠 없는 남편을 위해 준비된 신부와 같을 것입니다: &amp;quot;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깨끗하게 하사...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amp;quot; (에베소서 5:25-27). 이러한 그리스도의 신부—하나님의 자녀들—의 영화는 새로운 창조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씀하길 나머지 피조물들은 우리의 변화로부터 변화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amp;quot;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amp;quot; (로마서 8:21).&lt;br /&gt;
&lt;br /&gt;
이처럼 놀라운 변화의 최종 결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쁨과 칭찬으로 바라보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amp;quot;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amp;quot; (스바냐 3:17). 베드로는 시험과 연단을 겪은 신자들의 믿음은 &amp;quot;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amp;quot; (베드로전서 1:7)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진실된 그리스도인에게는 &amp;quot;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amp;quot; (로마서 2:29) 고 말합니다. 또한 심판의 날에 &amp;quot;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amp;quot; (고린도전서 4:5)고 덧붙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amp;quot;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신다&amp;quot; (로마서 2:7)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을 통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에 하신 일들로 인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 바울 자신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9). &lt;br /&gt;
&lt;br /&gt;
==== 우리는 영광을 볼 것이며 우리는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위와 같은 결말을 살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구속된 우리는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반사할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영광을 '''볼''' 것이고 우리는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러한 면에 있어 영원히 진보하는 그러한 사랑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그 안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발견된다. 그리고 점점 더 사랑스러움도 더해간다. 또한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이 아름다움에 있어 영원히 더해갈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사랑의 아름다운 표현들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고 그러한 표현을 점점 더 많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용량을 더해가게 됨에 따라, 우리의 연합은 더 긴밀해지고 우리의 교통은 더 친밀해질 것이다. &amp;lt;sup&amp;gt;1&amp;lt;/sup&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과 또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영원토록 더해 갈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amp;quot;새로운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발견되고&amp;quot;, &amp;quot;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름다움에 있어 영원히 증가될 것이다.&amp;quot; 유한한 마음은 무한한 마음을 완전히 다 파악할 수 없다. 우리는 기쁨에 대하여 유한한 용량을 갖고 있으므로 무한한 샘에서 솟아나는 모든 기쁨을 한번에 완전히 다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다가올 앞날에는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영원한 증가가 있을 것이다. &amp;lt;sup&amp;gt;2&amp;lt;/sup&amp;gt; 이는 고린도후서 3:18의 진리가 한번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멈추지 않고 갈수록 증가해 나갈 것을 의미합니다. &amp;quot;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amp;quot; 우리가 그를 더 잘 볼수록 우리는 더욱 그를 잘 반사할 것입니다—영원까지. &lt;br /&gt;
&lt;br /&gt;
==== 그의 영광의 충만함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 안에 약속되어 있고 복음 안에서 얻게 되는 최고의 것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까? 즉, 로마서 8:29(&amp;quot;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amp;quot;)은 요한복음 17:24(&amp;quot;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amp;quot;)에 어떻게 연관되는 것입니까?&lt;br /&gt;
&lt;br /&gt;
이 질문에 대한 힌트는 로마서 8:29 안에 있으며 또한 이 구절과 골로새서 1:18과의 관련성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mp;quot;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amp;quot;(로마서 8:29). 바울이 &amp;quot;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amp;quot; 와 같이 말한 그 중대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여기서 &amp;quot;맏아들&amp;quot;(prwto, tokon)이라는 의미심장한 단어는 중요합니다. 이 단어는 골로새서 1:18에서도 사용됩니다, &amp;quot;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prwto, tokoj)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amp;quot; 여기에서 바울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많은 형제들 중에서 먼저 나신 이로서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심으로써, 이러한 주님의 탁월하시고 뛰어나시며 영광스럽게 위대하신 모습을 우리가 보고 즐거워하게 하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우리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뛰어나심의 영광을 보고 맛보는 것이 가능하도록 준비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보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사모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지녀야 하며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바울은 &amp;quot;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amp;quot;의 구절을 덧붙임으로써 그리스도는 언제나 그리고 항상 그의 형제들보다 뛰어나신 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의 형제들이 되기 위해—이 또한 맞는 말이며 놀라운 사실이지만—그와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amp;quot;만물의 으뜸이 되신&amp;quot; 그분을 온전히 경외할 수 있는 본성을 지니기 위해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lt;br /&gt;
&lt;br /&gt;
로마서 8:29의 마지막 부분과 골로새서 1:18과 같은 말씀들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변화에 대한 인간중심적 관점에 쉽게 미끄러지곤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을 복음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복음의 목표 맞습니다. 영광스러운 목표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을 보고 맛보고 나타내는 그것이 바로 궁극적이 목표입니다.&lt;br /&gt;
&lt;br /&gt;
==== 우리 마음 안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개인적 테스트 ====&lt;br /&gt;
&lt;br /&gt;
우리는 몇 가지 질문들로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 할까요? 우리의 동기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놓여 있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성품 몇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십시오:&lt;br /&gt;
&lt;br /&gt;
*내가 그리스도처럼 '''강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나의 강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우주에서 가장 강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높이는 즐거움보다 열등한 다른 즐거움에 빠지게끔 나를 유혹하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강해지려고 하는가? &lt;br /&gt;
*내가 그리스도처럼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가장 지혜로운 이를 분별하고 높이기 위해서인가? &lt;br /&gt;
*내가 그리스도처럼 '''거룩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거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보고 음미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방해들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인가? &lt;br /&gt;
*내가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는''' 자가 되고 싶은 것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고통 중에도 충만한 만족을 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을 기뻐해서인가? &lt;br /&gt;
&lt;br /&gt;
여기서 묻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이 모든 영광스러운 성품을 우리가 소유하게 될 것이냐가 아닙니다. 우리는 갖게 될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묻고자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하여서이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9-30에 나오는 모든 것들—택하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최종 영광의 상태로 데려가시는 이 모든 하나님의 사역—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기 위한 의도에서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셔서 우리가 영원토록 그리스도를 보고 그를 중요히 여기는 것에 우리를 적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lt;br /&gt;
&lt;br /&gt;
==== 최종적으로는 되고 보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나타내는 것 ====&lt;br /&gt;
&lt;br /&gt;
아마도 우리는 질문을 최고의 방식으로 제기하기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이나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복음이 가져다 주는 최고의 진수인가 질문해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보고 그분처럼 되어야 하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까지 나아가지 않고 바로 앞에서 멈춰버렸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둘 중에 그 어떤 것도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좋은 소식으로 만드는 복음의 궁극적인 복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도 그분을 보는 것도 아닌 그분을 '''기뻐하고''' 그분을 '''나타내는'''것이라고—즉, &amp;quot;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amp;quot; (고린도후서 4:6)을 기뻐하고 나타내는 것이라고—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다시 말하면, 결국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고''' 그럼으로써 그와 같이 '''되는''' 것(고린도후서 3:18; 요한1서 3:2)이나 우리가 그와 같이 '''되고''' 그럼으로써 그분을 '''보는'''(마태복음 5:8; 고린도후서 4:6)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나타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lt;br /&gt;
&lt;br /&gt;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를 마무리하시면서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십니다. 24절에서 예수님은 그분이 어디에 계시던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기 위하여 그분과 함께 있도록 기도하십니다. 신적인 영광을 보는 위대한 복음의 선물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26절에서 예수님의 기도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한 영광을 볼 때 우리가 얻을 기쁨을 강조하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amp;quot;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amp;quot; &lt;br /&gt;
&lt;br /&gt;
이는 너무나 놀라운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서 더 위대한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amp;quot;'''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amp;quot; 이것은 최고의 기쁨으로 이루어진 사랑입니다. 성부께서는 성자 예수님의 영광을 한없이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그 기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여기서 받고 있습니다. 이는 그를 보는 것과 그와 같이 되는 것 그 자체가 복음의 궁극적인 복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영광을 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를 더욱 '''음미하게''' 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전혀 좋은 소식이 아니겠지요.&lt;br /&gt;
&lt;br /&gt;
====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 물체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음미하고 즐거워하면,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주위에 '''드러내고 반사하고 나타내는 일'''이 수반되게 됩니다. 이는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일어납니다. 내적으로는 우리의 기쁨의 감정을 통해 우리의 최고의 보물로서의 하나님의 존귀하신 가치를 극대화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만족할 때 우리 안에서 영광받으십니다. 한편, 외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행위'''들이 있게 됩니다. 그런 행위들이 그리스도를 즐거워하는 마음으로부터 흘러 나오게 됩니다. 앞에서 물질 세계의 창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모든 것이 이 지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대두됩니다. 모든 창조 세계는 눈에 보이게 물리적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투영하고 나타낼 것이며, 특히 구속받은 인간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는 영적일 뿐 아니라 물리적, 육체적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리스도를 높이는 기쁨과 부활한 우리 육체의 그리스도를 높이는 행위는 모두 하나님을 영광을 드러내고 알리게 할 것입니다.&amp;lt;sup&amp;gt;3&amp;lt;/sup&amp;gt;&lt;br /&gt;
&lt;br /&gt;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과 그분을 '''보게 되는 것'''이 복음의 궁극적인 선물이 아니라면, 우리가 장차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되고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하여야 할까요? 즉, &amp;quot;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amp;quot;(베드로후서 1:4)과 &amp;quot;그의 아들과 같이&amp;quot; 되는 것(로마서 8:29), 그분의 영광을 보는 것(요한복음 17:24)에 대해 무엇을 말하여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신 것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무엇을 말하여야 할까요?&lt;br /&gt;
&lt;br /&gt;
==== 신적 영광을 증가하는 계시의 끝없는 물결 ====&lt;br /&gt;
&lt;br /&gt;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존재, 또는 우리의 실재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존재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율과 경외로움으로 가득한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하여 존재하며, 하나님을 통해 존재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합니다(로마서 11:36). 복음의 궁극적인 최고의 선은 자기에게 감탄하는 것이나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지 않은 죄인이 붕괴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고, 아버지께서 아들을 기뻐하시는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뻐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기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행위를 눈에 보이는 행위들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그분을 보는 것의 바탕이 되며, 이처럼 그분을 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 을 음미하고 기뻐하는 것의 바탕이 되며, 이러한 충만한 기쁨은 이제 넘쳐흐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눈에 보이게 나타내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님의 복음은 우주적이고 공적인 차원에서 그 최종적 목표에 도달하게 됩니다. 단지 개개의 개인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성도들과 피조물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적인 영광의 계시의 물결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며, 영원히 더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성령에 의해 중재되어 아버지의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할 때, 장차 올 새 땅은 우리의 사랑과 창조성의 눈에 보이는 행위들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의 생명, 서로의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의 새로운 차원은 매일 우리의 새로운 기쁨들과 새로운 행위들로 찬란히 빛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보는 새로운 방법들이 됨으로써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행위들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계시하는 물결은 영원히 증가하며 영원히 그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물결은 복음의 크고도 최종적인 복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명백하게 할 것입니다. &amp;lt;sup&amp;gt;4&amp;lt;/sup&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up&amp;gt;1&amp;lt;/sup&amp;gt; 조나단 에드워즈, '''The “Miscellanies”'''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13권'''(뉴헤이븐: 예일 대학교 출판사, 1994, 영문판 pp.336-337) (Miscellany #198)&lt;br /&gt;
&lt;br /&gt;
&amp;lt;sup&amp;gt;2&amp;lt;/sup&amp;gt; &amp;quot;만약 어떠한 변화가 생긴다면, 이는 하나님과 신적인 것들에 대한 더 나은 지적인 인식과 지식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끊임없고 점점 더 사랑스러운 교통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그릇이 증가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주님께 대한 예배 안에서 영적인 나라를 더 크게 찬양하기 때문일 것이다.&amp;quot; 제임스 페티크루 보이스(James Petigru Boyce), '''조직신학 요약 (Abstract of Systematic Theology)''' (Escondido, CA: Dulk Christian Foundation, nd, orig. 1887), pp. 475-476.&lt;br /&gt;
&lt;br /&gt;
&amp;lt;sup&amp;gt;3&amp;lt;/sup&amp;gt; 조나단 에드워즈는 우리가 부활한 육체를 가진 이후의 다가올 세대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의 육체적인 오감과 기쁨들과 영적인 기쁨들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amp;quot;이처럼 외적인 감각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은,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외적인 영광을 보는 것 안에서 즐거움을 취할 것이며, 그 정도와 처한 상황 안에서 신적인 영적 영광을 보는 영적인 시각에 전적으로 완전하게 복종할 것이며, 외부적 표현으로서 이 영적 시각의 외관을 형성할 것이며, 성도들이 지닌 우월한 영적인 기쁨에 복종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육체가 모든 면에서 영적인 육체가 되는 것이며 영적인 행복감에 복종하고, 거기에는 무질서나 과도함 혹은 외적 감각이 전체를 지배하려는 위험이나 경향성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영광은 영적인 영광의 감각에 복종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이 거룩한 감정과 마음의 기쁨에 복종하는 것과 같으며, 훨씬 더 즉각적으로 일어나는데, 왜냐하면 음악은 하나님의 조화를 그렇게 즉각적으로 나타내지는 않지만 우리의 육신의 눈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게될 것이기 때문이다.&amp;quot;'''The “Miscellanies”'''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18권''' (뉴헤이븐: 예일 대학교 출판사, 2000, 영문판 p.351)&lt;br /&gt;
&lt;br /&gt;
&amp;lt;sup&amp;gt;4&amp;lt;/sup&amp;gt; 이러한 최종적 생각들은 '우리 모두를 위한 싸움'(Contending for Our All, Wheaton:Crossway Books, 2005)이라는 책 속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루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들을 고무시켜 준 성 아타나시우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amp;quot;그리스도를 위한 싸움 '''콘트라 문둠''': 아타나시우스의 삶 속의 망명과 성육신&amp;quot;(“Contending for Christ '''Contra Mundum''': Exile and Incarnation in the Life of Athanasius.”) 이라는 장 안에서 그 빚을 갚으려 하고 있습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8 21:08:28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6%B4%EB%96%BB%EA%B2%8C_%ED%95%98%EB%82%98%EB%8B%98%EC%9D%80_%EC%9A%B0%EB%A6%AC%EB%A5%BC_%EC%A4%91%EC%9A%94%ED%95%98%EA%B2%8C_%EC%97%AC%EA%B8%B0%EC%85%A8%EC%8A%B5%EB%8B%88%EA%B9%8C%3F</comments>		</item>
		<item>
			<title>양, 이리, 뱀, 그리고 비둘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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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Pcain: 새 문서: {{info|Sheep, Wolves, Snakes, and Doves}}   ==== '''마태복음 10:16에 대한 묵상''' ==== &amp;lt;blockquote&amp;gt; &amp;quot;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lt;/p&gt;
&lt;hr /&gt;
&lt;div&gt;{{info|Sheep, Wolves, Snakes, and Doves}} &lt;br /&gt;
&lt;br /&gt;
==== '''마태복음 10:16에 대한 묵상'''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quot;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amp;quot;&amp;lt;br&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증인으로 보내실 때 그는 우리를 강하고 지배하는 자로 보내시기보다는 연약하고 겉보기에 무방비인 자들로 보내십니다. 물론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무방비가 아닙니다. 하늘과 땅의 &amp;quot;모든 권세&amp;quot;가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개입하셔서 이리들의 입을 봉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치 다니엘을 둘러싸고 있던 사자들의 입을 봉하신 것처럼요. &lt;br /&gt;
&lt;br /&gt;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본문을 보면, &amp;quot;이리&amp;quot;들이 &amp;quot;양&amp;quot;들을 법정에 넘기고, 채찍질을 하고, 집권자들 앞에 끌고 가고, 부모와 자식들이 죽게 하며, 미워하게 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까지 박해하며, 헐뜯으며, 죽일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복음 10:17-31). 따라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실제로 우리가 이리가 양을 대하는 것과 같은 취급을 당하리라는 말씀입니다. &lt;br /&gt;
&lt;br /&gt;
양들은 속담—이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리 쪽으로 걸어간다는 속담—도 있듯이 어리석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양이라고 부르신 것은 양처럼 어리석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양처럼 세상의 악질적인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양처럼 어리석지 말고, 지혜에 있어서는 양이 아니라 뱀이 되어야 합니다. 왜 뱀을 인용하셨을까요. 아마 뱀이 위험을 잘 빠져나가기 때문에 뱀의 지혜를 인용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뱀은 위험이 닥치면 돌 아래로 들어가 버리죠.&lt;br /&gt;
&lt;br /&gt;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공격에 노출된 상태로 이리에게 가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여러분에게 달려들거든 피하십시오. 그들이 입을 벌릴 때 그 안으로 무작정 뛰어들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또한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즉, 그들에게 여러분의 불법과 부도덕함으로 인해 고소할 여지를 주면 안됩니다. 가능한 한 여러분의 평판을 정결하게 지켜야 합니다.&lt;br /&gt;
&lt;br /&gt;
이렇게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함은 양을 어려움에 빠지지 않게 지키는 도구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 자처해 모든 어려움들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공격에 노출되고, 싸우지 않고, 양같고, 용감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리스크를 피하지 않기를 원하시지만, 불필요한 핍박을 초래하지 않는 방식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방법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lt;br /&gt;
&lt;br /&gt;
언제 위험에서 도망해야 하며, 언제 충성된 증인으로서 위험을 감수하여야 하는가? 이 문제는 많은 신실한 증인들이 직면하였던 딜레마입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Seasonable Counsels, or Advice to Sufferers'(고난에 대한 적절한 상담과 조언) 라는 제목의 책을 1684년에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위의 문제를 다룹니다. 언제 고난 혹은 위험에서 도망치고 언제 그것에 맞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번연은 자신을 위한 답을 알았습니다. 그는 부양해야 할 4명의 자녀들이 있었고, 더군다나 그 중의 하나는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대신에 12년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말할까요? 도망가도 될까요? 여기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당신은 이 문제에 있어 당신의 마음에 있는 데로 해야 합니다. 만일 도망가는 것이 당신의 마음에 있다면, 도망가십시오. 만일 핍박을 당하며 서 있는 것이 당신의 마음에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결코 진리를 부인하지는 마십시오. 도망가는 자는 그렇게 할 마땅한 근거가 있습니다. 핍박을 당하는 자도 그렇게 할 마땅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사람이 도망갈 수도 있고 핍박을 받으며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부름과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라 어느 쪽도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도망가기도 했으며(출 2:15); 머무르기도 했습니다(히 11:27). 다윗은 도망가기도 했으며(삼상 19:12); 견디며 참기도 했습니다(삼상 24:8). 예레미야는 도망가기도 했으며(렘 37:11-12); 견디며 참기도 했습니다(렘 38:17). 그리스도는 물러나시기도 하셨으며(눅 19:10); 견디며 참기도 하셨습니다(요 18:1-8). 바울은 도망가기도 했으며(고후 11:33); 견디며 참기도 했습니다(행 20:22-23)....&lt;br /&gt;
&lt;br /&gt;
여기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핍박을 견디며 서 있어야 할지 아니면 도망가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람은 본인 자신입니다. 그 사람 본인만이 자신의 현재의 힘을 고려하고 그 밖에 여러 사안들과 제반 여건들을 고려하여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찮은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지는 마십시오. 도망가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도망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도망갈 문을 열어주시고, 그러한 열린 문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말씀(마 10:23)이 그런 도망을 지지하므로, 도망가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판단되는 경우 도망가십시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당신이 도망을 가든 붙잡힘을 당하든 하나님이나 사람에 대해서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서운하지 말라 함은 당신은 그의 종이기 때문에 당신의 목숨과 당신의 모든 것이 다 그분의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서운하지 말라 함은 그는 하나님의 막대기이며 이를 통해 당신에게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도망쳤습니까? 기뻐하십시오. 혹 붙잡혔습니까? 기뻐하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상황이 어떻게 되든 기뻐하십시오.(p. 726)&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도망보다 죽음을 선택한 선교사에 대한 판단을 더디하도록 합시다. 생명을 선택한 선교사에 대한 판단을 더디하도록 합시다. 그보다는 차라리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는 규칙적 말씀 훈련과 순종에 매일 헌신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에 우리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로마서 12:2)&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주님과의 긴밀한 동행을 추구하는 &amp;lt;br&amp;gt;&amp;lt;br&amp;gt;존 파이퍼 목사&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5 May 2018 20:06:14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6%91,_%EC%9D%B4%EB%A6%AC,_%EB%B1%80,_%EA%B7%B8%EB%A6%AC%EA%B3%A0_%EB%B9%84%EB%91%98%EA%B8%B0</comments>		</item>
		<item>
			<title>이스라엘 왕 제도의 죄악된 기원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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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Pcain: ‘이스라엘 왕 제도의 죄악된 기원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Sinful Origin of the Son of David}} &lt;br /&gt;
&lt;br /&gt;
이 설교는 두드러진 죄악들의 목적과 그리스 도의 영광이라는 설교 시리즈를 이루는 일곱 개의 메시지 중 여섯 번째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는 &amp;quot;이스라엘 왕 제도의 죄악된 기 원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amp;quot;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본 메시지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제도는 죄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께 &amp;quot;우리는 주변 이방 나라들과 같은 제도를 원합니 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 왕을 원합니다&amp;quot;라고 말한 것은 두드러진 극악한 죄였습니 다. 그것은 두드러진 죄입니다. 사무엘은 17절에서 이를 큰 사악함이라고 부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이스라엘에 왕 제도 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자손, 왕 중의 왕으로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전 세계 에 대한 그리스도의 왕위는 하나님께서 사후대책으로 생각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죄가 벌어지자 사후대책으로 마련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처음부터 그의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lt;br /&gt;
&lt;br /&gt;
==== 왜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가? ====&lt;br /&gt;
&lt;br /&gt;
만일 하나님께서 이 두드러진 죄가 벌어질 것을 내다보셨음에도 이를 허락하시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 제도를 그리스도께서 왕의 왕의 영광을 얻는 그의 계획의 일부로 삼으셨다면, 왜 처음부터 왕 제도를 이스라엘에 도입하지 않으셨나요? 왜 모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 다음에 여호수아가 왕이 되게 하는 식으로 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왜 처음부터 더 직접적으로 왕 제도를 창설 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반역과 죄가 발생된 이후에 비로소 이스라엘 역사에 왕 제도가 도입되게 하신 것일까요?&lt;br /&gt;
&lt;br /&gt;
==== 아브라함 과 장차 올 왕 제도 ====&lt;br /&gt;
&lt;br /&gt;
아브람의 이야기로 시작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을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 로 선택하셨고 그에게 약속하시길 그의 자손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창세기 12:1-3). 메시야 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계통을 통해 오실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아브람은 창세기 14:18에서 멜기세덱이라 하는 정체를 쉽게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은 &amp;quot;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amp;quot;이라고 불리우며, &amp;quot;살렘 왕&amp;quot;이라고 불립니다. 그의 이름은 &amp;quot;의의 왕&amp;quot;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의 모형 혹은 예시(미리 보여주는 것)로 보고 있습 니다. 왜냐하면, 시편 110:4에서 말씀하길, 장차 오실 메시야적 왕은 또한 &amp;quot;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amp;quot;이실 것이라 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amp;quot;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amp;quot; (히브리서 7:1-3)&lt;br /&gt;
&lt;br /&gt;
==== 한나와 장차 세워질 왕 제도 ====&lt;br /&gt;
&lt;br /&gt;
따라서 이미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는 제 사장인 동시에 왕이실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되시기로 하는 결정은 나중에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의 탄생과 헌정 이야기에서 도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엘리는 그녀가 아이를 가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사무엘은 태어났고 한나는 그를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주께 바칩니다. 한나는 놀라운 것들을 말하는데, 그 중 사무엘상 2:10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나가 말하는 시점은 이스라엘에 왕이 생기기 수십 년 전입니다. 사무엘이 나이 많아 늙었을 때 백성들이 왕을 세워 달라고 조른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amp;quot;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amp;quot;&lt;br /&gt;
&lt;br /&gt;
==== 모세와 장차 세워질 왕 제도 ====&lt;br /&gt;
&lt;br /&gt;
신명기 17:14-20로 되돌아 가보면, 여기서 모세는 마치 왕이 세워진 것처럼 왕 제 도에 대하여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28:36은 여호와께 반역하면 백성들과 그들의 왕이 먼 나라로 유배될 것을 예언 합니다. 따라서 사무엘상 12장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깜짝 놀랄 일이 아니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드러진 죄(왕을 구하는 것)가 일어날 것을 아셨고, 그 제도를 허락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허락하시 려고 의도하실 때, 그는 매우 지혜롭게 하시지 어리석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극적인 죄는 하나님의 대단히 중요한 계획(그의 아들의 영광을 위하시는 계획)의 일부입니다. &lt;br /&gt;
&lt;br /&gt;
==== 어떻게 왕 제도가 도입되었나 ====&lt;br /&gt;
&lt;br /&gt;
왜 하나님께서 일을 그 런 식으로 되게 하셨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 전에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봅시다. 왕에 대한 요구는 사무엘상 8장에 시작됩니다 . 하지만 여기 12장에서 발췌해 보겠습니다. 8절: &amp;quot;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곳에 살게 하셨으나.&amp;quot; 9절: &amp;quot;그들이 그들의 하나 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니 그들이 저 희를 치매.&amp;quot; 10절: &amp;quot;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 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amp;quot; 11절: &amp;quot;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 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amp;quot;&lt;br /&gt;
&lt;br /&gt;
==== 백성들이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함 ====&lt;br /&gt;
&lt;br /&gt;
8-11절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으로서 신실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부르 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전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왕이 있는 목적입니다—백성에게 평 화를 주는 것. 그런데 그 백성들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12절: &amp;quot;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사무엘]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 도다.&amp;quot;&lt;br /&gt;
&lt;br /&gt;
여러분은 사무엘의 음성에서 불신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우리 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사무엘은 이런 백성들의 요구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까요? 사무엘상 8:7-9에 의 하면, 여호와께서는 이미 사무엘에게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amp;quot;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amp;quot;&lt;br /&gt;
&lt;br /&gt;
==== 두드러진 죄악: &amp;quot;죄악이 큼&amp;quot; ====&lt;br /&gt;
&lt;br /&gt;
따라서 사무엘상 12:13에서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amp;quot; 그리고 나서, 그는 우레와 비로 백성들에게 징조를 주시기를 여호와께 구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크다고 선포합니다. 17절: &amp;quot;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 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amp;quot;&lt;br /&gt;
&lt;br /&gt;
이제 백성들의 사악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3:20-22에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첫 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음을 명백하게 진술합니다. &amp;quot;그 후 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amp;quot; 이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역사상 두드러진 죄들 속에서 이런 일들을 반복하여 보고 있 습니다. 사람은 악을 꾀하나, 하나님은 선을 이루십니다. &lt;br /&gt;
&lt;br /&gt;
==== 우리는 이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는 이 두드러진 죄가 행해질 것을 미리 보셨습니다. 그리고, 왕 제도를 허락하실 것과 왕 제도가 행해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왕 제도를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는 계획의 일부로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 다.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에 왕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모세가 초대 왕이 되게 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 다 음에 여호수아가 왕이 되게 하는 식으로 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왜 처음부터 더 직접적으로 왕 제도를 창설하시지 않으시고, 인간의 반역과 죄에 의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왕 제도가 도입되게 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이스라엘의 반역을 통하여 비로소 왕 제도가 도입 되게 하신 이 모든 역사적 과정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lt;br /&gt;
&lt;br /&gt;
적어도 여섯 가지를 배워야 함&lt;br /&gt;
&lt;br /&gt;
'''1)우 리는 목이 곧고, 반역적이고, 감사하지 않는 자들이다.'''&lt;br /&gt;
&lt;br /&gt;
우리는 이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목이 곧고 반역적이고 감사하지 않는 자들인지 배워야 합니다. 사무엘상 12장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고 그들을 주변의 악한 왕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신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시작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매번 하나님 을 잊어버리고 다른 것들을 추구합니다. 이는 단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이야 기이기도 하며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애정에 있어서 항 상 동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날에는 감사하다가도 어떤 날에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날들에도 마땅히 감사해 야 할 만큼 감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과 그의 수많은 선물들에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경탄과 감사로 반 응하려면, 여러분은 얼마나 감사가 많아야 하고 얼마나 기쁨이 많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처럼 우리의 그릇된 모습을 알려 주 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마치 우리 모습의 사진같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이 이같이 감사하지 않고 우상숭배적인 방향으로 흘러떠내려가게 허락하신 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하심입니다(로마서 3:19).&lt;br /&gt;
&lt;br /&gt;
'''2.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에 신실하시다.'''&lt;br /&gt;
&lt;br /&gt;
우리는 이로부터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에 얼마나 신실하신지 배워야 합니다. 22절: &amp;quot;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amp;quot;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가장 깊은 기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의 이름에 대한 충성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한 질투와 열심입 니다. 다음 구절을 천천히 그리고 철저하게 읽어 보십시오: &amp;quot;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 실 것이요.&amp;quot; 여기 &amp;quot;그들의 큰 이름을 위하여&amp;quot;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amp;quot;그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amp;quot;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이름의 가치와 진리와 의를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되어 계십니다. 이같은 이야기들이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는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의 이름의 무한한 가치에 의하여 가이드되는 무한한 지혜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3)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에 지극히 성실하심으로 인해 은혜가 죄인에게 흘러간다.'''&lt;br /&gt;
&lt;br /&gt;
우리는 이 로부터 우리같은 죄인들을 위한 은혜가 하나님의 자기 자신의 이름에 대한 지극한 성실하심에서 흘러나옴을 알 수 있습니다. 19- 22절에 기록된 놀라운 기술을 읽어 보십시오. 19절에서 백성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범한 엄청난 죄로 인해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말하길, &amp;quot;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amp;quot; 이에 대한 사무엘의 대답은 죄인에게 향한 값없는 복음의 은혜의 그림과 같습니다. 사무엘이 말하길(20절), &amp;quot;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amp;quot;&lt;br /&gt;
&lt;br /&gt;
이 부분에서 멈추어 경탄하십시오. &amp;quot;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amp;quot; 아니, 인쇄에 실수가 있는 것 아닌가요? &amp;quot;두려워하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amp;quot; 아 닌가요? 그러나 말씀하기를, &amp;quot;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amp;quot;라고 합니다. 이는 순전한 은혜입니다. 하나 님의 은혜는 우리가 받아 마땅한 방법대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십니다. 즉, &amp;quot;두려워하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amp;quot; 라 고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보다 더 낫게 대하십니다: &amp;quot;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amp;quot;&lt;br /&gt;
&lt;br /&gt;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이 은혜의 기초에는 무엇이 있나요?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악을 행하였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22절: &amp;quot;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amp;quot;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에 성실하신 것이 여러분에 대한 그의 신실하심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 대한 그의 지대한 충실하심을 저버리시면, 우리를 위한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그의 친절하심을 우리 의 가치 위에 기초하게 하셨다면, 우리를 향한 친절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목이 곧은 자요, 반역적인 자요, 감사하지 않는 배 은망덕한 자들입니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오직 값없는, 공로 없는 은혜가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러한 은혜의 기초는 우리 이름의 가 치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의 무한한 가치입니다. 디모데후서 2:13을 상기하십시오: &amp;quot;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 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amp;quot; 하나님은 우리가 이 두드러진 죄악에서 우리 구원의 은혜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가치에 기초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시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4) 왕권은 오 직 하나님께만 속한다.'''&lt;br /&gt;
&lt;br /&gt;
우리는 이스라엘에 왕 제도를 도입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부터 왕권은 오직 하나님께 만 속하여 있다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셔야 함을 극히 명확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 왕을 두시지 않고 친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리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였을 때, 그들은 이 진리를 거부하고 배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상 8:7에서 이를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amp;quot;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amp;quot; 하나님이 모세와 여호수아 등이 왕이 되게 하여 왕 제도를 세우셨다면,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수 있다는 것은 좀 불분명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경쟁자들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lt;br /&gt;
&lt;br /&gt;
'''5) 신인(God-Man)께서 왕이 되셔야 한다.'''&lt;br /&gt;
&lt;br /&gt;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 왕을 세우신 것으로 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단지 인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기도 한 신인이신 왕께서 오시기까지 전부 실패로 점철될 인간 왕의 라인을 설립하시려는 것이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수 있으니까요. 이스라엘에게 인간 왕을 주 실 때,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되실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 이십니다. 그리고 다른 왕들처럼 실패하지 않을 왕, 다윗의 자손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는 또 하나의 죄악된 인간 왕이 아니십니다 . 그는 신인이십니다. &lt;br /&gt;
&lt;br /&gt;
바리새인들을 잠잠케 했던 예수님의 마지막 질문은 시편 110:1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말 하길, &amp;quot;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amp;quot; 예수님은 이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그의 대적들에게 질문하십니다. &amp;quot;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amp;quot; 다시 말하면, 들을 귀가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단지 다윗의 자손 이상이십니다. 그는 인간 왕에 불과한 자들 이상입니 다. &amp;quo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 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amp;quot; (요한복음 1:1. 14). 오직 하 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정당한 왕이 되실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러하였고, 마지막에도 그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신인이신 왕이십니다. &lt;br /&gt;
&lt;br /&gt;
'''6)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는 왕'''&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하나님 께서 이스라엘에 인간 왕을 주신 방법으로부터 인간 왕이 있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되실 수 있는데, 왜 인간 왕이 필요했을까요? 하나님의 통치의 대상이 되고 그의 사랑을 받을 백성—그들의 죄 때문에 지옥에 있지 않은 —이 있으려면, 왕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그의 백성들 대신에 죽어야만 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왕은 신인이심으로써 하나님이 왕이 되시면서 동시에 왕이 죽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무엘이 &amp;quot;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amp;quot; (사무엘상 12:20)라고 하였을 때, 이 은혜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가치입니다. &amp;quot;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amp;quot; (22절).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지지하시고 변호하시는 것이 은혜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호가 가장 결정적이고도 최종적으로 나타난 곳은 어디입니까 ?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3:25: &amp;quot;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 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amp;quot; &lt;br /&gt;
&lt;br /&gt;
==== 십자가에서, 그의 이 름을 위하여 ====&lt;br /&gt;
&lt;br /&gt;
백성들이 왕을 구하는 죄를 범하였기에 멸망당해 마땅한 바로 그 날에,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바닥 깔개 아래 덮어버리면서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 님으로 그 이름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죄는 처리되어야만 합니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실 때, 실제 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 같은 부패한 사람들이 죄 때문에 멸망하는 대신에 예수님 같이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능력 있으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지혜로운 왕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 왕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 활하실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기 바로 전에 &amp;quot;네가 유대인의 왕이냐?&amp;quot;라는 질문을 받은 것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에 대해 대답하시길, &amp;quot;네가 말하였도다&amp;quot;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7:11, 마가복음 15:2, 누가복음 13:3, 요한복음 18:33). &lt;br /&gt;
&lt;br /&gt;
==== 모든 사람의 왕이 오신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왕입니다. 특히 그는 그를 믿는 자의 왕이십니다. 그는 오늘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그의 모 든 원수가 그의 발판이 되고 모든 택한 자들이 이 땅의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모일 때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 후 마지막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amp;quot;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amp;quot; (히브리서 9:28). 그리고 &amp;quot;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amp;quot;(요한계시록 19:16).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3 Apr 2018 19:56:47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D%B4%EC%8A%A4%EB%9D%BC%EC%97%98_%EC%99%95_%EC%A0%9C%EB%8F%84%EC%9D%98_%EC%A3%84%EC%95%85%EB%90%9C_%EA%B8%B0%EC%9B%90%EA%B3%BC_%EB%8B%A4%EC%9C%97%EC%9D%98_%EC%9E%90%EC%86%90%EC%9C%BC%EB%A1%9C_%EC%98%A4%EC%8B%A0_%EC%98%88%EC%88%98%EB%8B%98</comments>		</item>
		<item>
			<title>아담의 치명적인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승리의 순종</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5%84%EB%8B%B4%EC%9D%98_%EC%B9%98%EB%AA%85%EC%A0%81%EC%9D%B8_%EB%B6%88%EC%88%9C%EC%A2%85%EA%B3%BC_%EA%B7%B8%EB%A6%AC%EC%8A%A4%EB%8F%84%EC%9D%98_%EC%8A%B9%EB%A6%AC%EC%9D%98_%EC%88%9C%EC%A2%85</link>
			<description>&lt;p&gt;Pcain: ‘아담의 치명적인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승리의 순종’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Fatal Disobedience of Adam and the Triumphant Obedience of Chris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 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 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 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 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 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 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 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 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 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 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 예 수님은 으뜸되십니다.  ====&lt;br /&gt;
&lt;br /&gt;
이 시리즈의 목적 중 하나는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라는 사실에 대한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것입니다. 물론 성부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 은 아닙니다. 그분들과 그리스도는 가치와 아름다움과 지혜와 의와 사랑과 능력에 있어 동등되십니다. 그러나 그는 그 밖의 다른 모든 자들보다 더 중요하십니다. 천사나 마귀나 왕이나 사령관이나 과학자나 예술가나 철학자 나 운동선수나 음악가나 배우 등 현재 살고 있는 자, 과거 살았던 자, 장 래에 살아 갈 자 누구보다도 더 중요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으뜸되십니 다. &lt;br /&gt;
&lt;br /&gt;
==== 모든 것이 예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심지어 악마저도 그 렇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시리즈를 통해 또한 보이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악을 포함하여—무한히 거룩하고 완전히 지혜로우신 하나 님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 밝게 빛나게 하도록 섭리된다는 것을 보 이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의 성경 읽기 계획표에 따라 이번 주에 잠언 16:4을 읽은 분들이 상당히 있을 것입니다. &amp;quot;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amp;quot; 하나 님은 악인이 악을 행하는 것도 섭리하십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신비한 방법 을 따라서 악인의 책임이 없어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죄에 대한 책 임없으심이 유지되게 하시면서 이를 행하십니다. 두 주 전 설교를 통해 우 리는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았습니다(골로새서 1:16). 여기서 말하는 만물에는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패배당한 &amp;quot;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amp;quot; 이 포함되어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들은 고난의 날을 위하여 만들어졌 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그리스도의 능력과 의와 진노와 사랑이 나타날 것 입니다. 조만간, 그를 반역하는 모든 반역은 파멸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거기 계신 하나님  ====&lt;br /&gt;
&lt;br /&gt;
이 시리즈는 또한 기독교는 단지 우리의 심리적 웰빙을 위하여 고안된—하나님께서 고안하셨든 사람이 고안하였든—일 련의 아이디어와 관행과 느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견고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 리 바깥에 존재하시는 객관적인 실재라는 확신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 님께 대해 어떤 방식을 공상함으로 그가 어떤 분이라는 이론을 만들 수 없 습니다. 프란시스 쉐퍼가 말했듯, 하나님은 거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 리는 그를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시라고 우리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고 따라서 우주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주에 의 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주에 제 맘대로 하나님의 뜻과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는 우매한 일이며 우리의 삶은 결국 비극이 될 것입 니다. 기독교는 게임이 아닙니다. 일종의 치료법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모 든 교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가 역사 안에서 무엇을 행하시 는지에 대한 객관적 사실로부터 흘러 나옵니다. 이 교리들은 엄격한 사실에 부합합니다. 기독교는 사실 이상의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습니 다. 그러나 이것들은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반 석에서 거대한 향나무처럼 자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을 이 시리즈를 통해 제가 달성하려는 목표로 삼는 이유는 여러분의 영원 한 기쁨과 힘과 거룩은 이 세계관의 견고함이 여러분의 믿음의 척추 안에 강한 섬유를 넣어 주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으로부터 깊이 확신 하기 때문입니다. 유약한 세계관은 유약한 그리스도인을 만듭니다. 그리고 유약한 그리스도인은 다가올 날들에 생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를 마 치 치료용 선택 옵션처럼 생각하는 뿌리 없는 감정주의는 마지막 날에 말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것의 기원이요 중심이요 목적으로 보는 거대한 객관적 진리의 반석 위에 자신의 집을 건설한 사람들만이 선 채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아담의 죄 안에 계획된 예수님의 영광  ====&lt;br /&gt;
&lt;br /&gt;
오늘의 촛점은 첫 사람 아담의 두드러진 죄에 관한 것이며 이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더 극적인 반격의 무대를 제공하였는지에 관 한 것입니다. 로마서 5:12-21로 돌아갑시다. 2000년 여름에 우리는 5 주 동안 이 구절들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그 때 보았던 것과는 촛점이 사뭇 다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와 그와 함께 한 모든 인류 의 타락에 대해 계획하시고 허락하실 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주된 목 적으로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촛점을 맞추기 원합니다. 지난 주에 제가 말했 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을 허락하시든, 그는 이유를 가지고 이를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유는 항상 무한히 지혜롭고 목적적입 니다. 하나님은 타락이 일어나도록 해야만 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를 막으실 수 있었습니다. 사탄의 타락을 막으실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 지입니다(지난 주에 우리는 이에 대해 다루었지요). 하나님께서 이를 막지 않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에 대해 이유와 목적이 있으셨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일들을 겪어 가면서 계획을 세우시지 않습니다. 아담의 죄와 함께 한 인류의 죄와 비참으로의 타락은 하나님을 당황하게 만 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충만을 나타내시려는 하나 님의 무엇보다 소중한 계획의 일부분이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성경은 이러한 계획에 대해 명확히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마음 속 에 그리스도의 죄를 이기는 희생이 있었음을 성경에서—여기서 자세히 보지는 않겠습니다만—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13:8에서 요한 사 도는 기록합니다. &amp;quot;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amp;quot; 따라 서 &amp;quot;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amp;quot;이라고 불리는 책이 창세 이전에 있었 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아들이 그 책 안에 기록된 자 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양같이 죽임을 당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아담의 죄 이후가 아닌 그 이전에 계획된 것이라 는 성경적 관점은 다른 여러 본문(에베소서 1:4-5, 디모데후서 1:9, 디도서 1:1-2, 베드로전서 1:20)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 담의 죄가 발생했을 때 하나님은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그의 계획—즉 , 구속사 안에서 그의 놀라운 인내와 은혜와 의와 진노를 나타내시고 그 클라이맥스로 모든 면에서 첫째 아담보다 뛰어나신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의 아들의 위대함을 계시하시려는 계획—안에 아담의 범죄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 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이번에는 아담의 극적인 죄가 하나님의 목적, 그리스 도를 높이시려는 목적을 좌절시킨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면서 로마서 5:12-21을 봅니다. 여기 이 구절들을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다섯 개의 명시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울이 그리스도 와 아담을 생각하는 방법을 설정해 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리스도가 아 담보다 얼마나 더 위대한가를 보여줍니다. 그 중 두 개는 매우 유사하여서 우리는 이것들을 함께 묶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의 으뜸됨에 대 한 세 가지 측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예수님, &amp;quot;오실 자&amp;quot;  ====&lt;br /&gt;
&lt;br /&gt;
따라서, 우선 그리스도가 14절에서 언급되는 방식을 살펴봅 니다. 그리고 12-13절을 문맥을 위해서 읽겠습니다. &amp;quot;그러므로 한 사람 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 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amp;quot; &lt;br /&gt;
&lt;br /&gt;
14절은 본문의 나머지 부분에서 바울이 생각하는 방식을 설정 합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amp;quot;모형&amp;quot;으로 불립니다. 즉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불립니다. 우선 가장 명백한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리스도는 &amp;quot;오실 자&amp;quot;이 십니다. 창세로부터, 그리스도는 &amp;quot;오실 자&amp;quot;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 도의 오심은 일이 벌어진 후 생각해낸 대처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아담의 복사판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말하 길,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영광스 럽게 하기 위하여 계획한 방법대로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게 다루셨습 니다. 모형이란 무엇인가요? 모형은 그 모형과 유사한 점을 갖으면서 더 위대하고 그리고 나중에 올 어떤 것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게 하는 방식으로 다루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바울이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하는 바로 그 곳을 더 자세히 주목해 봅시다. 14절입니다: &amp;quot;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 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amp;quot; 바울 사도는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아담이 부담하는 벌을 부담한다고 말한 바로 직후에 아담이 그리 스도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왜 바울은 바로 이 시점에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lt;br /&gt;
&lt;br /&gt;
==== 예수님, 우리의 대표적 머리  ====&lt;br /&gt;
&lt;br /&gt;
그가 방금 말한 것이 그리스도와 아담의 유사하면서도 상이 한 점에 관한 본질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모종의 유사점이 있습니다 .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이 아담처럼 죽었습니다. 왜 그럴까 요? 그들은 아담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그들의 인류의 대 표적 머리였으며, 아담의 죄는 그들의 죄로 계산됩니다. 바로 아담과의 연 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불리는 이유의 정수입니다—우리의 순종이 그리스도의 순종과 같지 않으나 우리는 그리스도 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갖습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는 그리스도와 믿음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새로운 인류의 대표적 머리이시며 그의 의는 우리와 그의 연결 때문에 우리의 의로 계산됩니다(로마서 6:5). &lt;br /&gt;
&lt;br /&gt;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불리는 것에 함축된 유사점이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아담 → 아담의 죄 → 그 안에서 정죄되는 인류 → 영원한 죽음&amp;lt;br&amp;gt;그리스도 → 그리스도의 의 → 그 안에서 의롭게 여겨지는 새로운 인류 → 영원한 생명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본문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하시는 사역이 아담과 그의 멸망시키는 사역보다 얼마나 더 위대한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처음에 제 가 말한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기 나와 있는 사실은 이 지구 상의 모 든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은 이 본문에 포함됩니다. 아담이 모든 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미국 혹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이는 본문 말씀이 아담 안에서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세계적인 스케일의 구절입 니다. 이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여러분이 만나게 될 모든 사람의 현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약한 세계관은 유약한 그리스도인을 낳습니다. 이것은 유약한 세계관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역사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전 지구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과 인터넷 상의 모든 헤드라인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 그리스도의 우월함을 기리며  ====&lt;br /&gt;
&lt;br /&gt;
이제 바울이 아담과 그의 사역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의 우월성을 기리는 세 가지 방법을 살펴 보도록 하십시다. 세 개의 문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1) 은 혜의 풍성함, 2) 순종의 완벽함, 3) 생명의 왕 노릇 &lt;br /&gt;
&lt;br /&gt;
==== 1) 은혜 의 풍성  ====&lt;br /&gt;
&lt;br /&gt;
첫째, 15절과 은혜의 풍성함을 봅니다. &amp;quot;그러나 이 은 사[즉, 값없는 의의 선물, 17절]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 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 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amp;quot; 여기서의 포인트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담의 범죄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입니 다. 사람의 범죄가 죽음을 가져왔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더 생명을 가져올 것인지요. &lt;br /&gt;
&lt;br /&gt;
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 혜는 특정적으로 &amp;quot;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amp;quot;입니다. &amp;quot;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 게 넘쳤느니라.&amp;quot; 이것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은혜가 아닙니다. &amp;quot;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amp;quot;는 하나님의 은혜가 성육신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이 것이 바울이 말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디도서 2:11에서: &amp;quot;모든 사 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즉, 예수님 안에서] 나타나....&amp;quot; 그리고 디모데후서 1:9에서 &amp;quot;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 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amp;quot; 따라서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lt;br /&gt;
&lt;br /&gt;
이 은혜는 주권적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정복합니다. 우리는 머지 않아 이 은혜가 우주의 왕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볼 것입니다. 이것은 왕 노릇하는 은혜입니다. 이 풍성한 은혜는 아담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첫 번째 기념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만날 때, 아담과 그 의 범죄는 패배합니다. 그리스도와 은혜가 이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을 위한 복된 소식입니다. &lt;br /&gt;
&lt;br /&gt;
==== 2) 순종의 완벽함  ====&lt;br /&gt;
&lt;br /&gt;
둘째,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담의 범죄와 죽음을 정복하는 방법 을 기립니다. 즉, 그리스도의 순종의 완벽함입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amp;quot;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즉, 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즉, 그리스도가 순종하심 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amp;quot; 그러므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 혜가 그를 범죄하지 않게 하여서—죽기까지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 하도록 (빌립보서 2:8) 하여서—믿음에 의하여 그와 연결된 자들을 대신하 여 흠없고 완벽한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게 합니다. 아담은 순종에 실패하였 습니다. 그리스도는 완벽하게 성공하셨습니다. 아담은 죄와 사망의 근원이었 습니다. 그리스도는 순종과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리스도는 아담과 유사합니다. 즉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리스도와 아담은 모두 옛 인류와 새 인류의 대표적 머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실패를 그 의 인류에게 전가하시며 그리스도의 성공을 그의 인류에게 전가하십니다. 이 들 두 인류들은 그들 각각의 머리에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완벽하게 순종하는 데 성공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순종 때문에 수많은 사 람들이 의롭게 여겨지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그의 위대한 우월성이 있습니다 . 당신은 아담에게만 연결되었습니까? 당신은 죽음을 향하여 가는 첫 번째 인류의 일부에 불과합니까? 혹은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영생을 향하여 가는 새 인류의 일부가 되었습니까? &lt;br /&gt;
&lt;br /&gt;
==== 3) 생명의 왕 노릇  ====&lt;br /&gt;
&lt;br /&gt;
세 번째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와 그리스도의 완벽한 순종을 기 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결론적으로 생명의 왕 노릇, 생명의 다스림을 기 리고 있습니다. 은혜는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승리로 인도합 니다. 21절입니다: &amp;quot;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 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amp;quot; 은혜는 의로 말미암아 (즉, 그리스도의 완벽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영생의 위대한 절정에 이르게 합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amp;quot;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amp;quot; 되어집니다. &lt;br /&gt;
&lt;br /&gt;
혹은 , 17절에 한 번 더 동일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amp;quot;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 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 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amp;quot; 동일한 패턴입니다: 의의 값없는 선물을 통한 은혜는 생 명의 승리에 이르게 하고,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lt;br /&gt;
&lt;br /&gt;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바울 사도가 이 구절들에서 언급하는 그리 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주권적 은혜입니다. 여기 왕 노릇이라는 단어 안에서 보게 되는 것이 이것입니다. 죽음은 사람 위에 일종의 주권을 가지고 있고 모든 자 위에 왕 노릇합니다. 모든 이는 죽습니다. 그러나 은 혜는 죄와 죽음을 정복합니다. 은혜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합니다. 심지어 한 번 죽었던 자들 위에서 왕 노릇합니다. 이것은 주권적 은혜입니다. &lt;br /&gt;
&lt;br /&gt;
==== 예수님의 극적인 순종  ====&lt;br /&gt;
&lt;br /&gt;
이것이 그리스도의 위대한 영광 입니다—그는 첫 사람 아담을 크게 뛰어 넘고 있습니다. 아담의 극적인 죄 는 그리스도의 극적인 은혜와 순종과 영생의 선물만큼 위대하지 않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완벽한 의 안에 있는 태초부터의 하나님의 계획은 인류의 대표적 머리로서의 아담이 새 인류의 대표적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계획은 이러한 비교와 대조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이 더욱 더 찬란히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lt;br /&gt;
&lt;br /&gt;
17절은 여러분 앞 에 이 문제를 개인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긴박하게 제시하 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amp;quot;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 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amp;quot; 사용된 단어 하나하나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개인적 의미를 가지고 주목하기 바랍니다: &amp;quot;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amp;quot; &lt;br /&gt;
&lt;br /&gt;
==== 죄인을 위한 소중한 말씀  ====&lt;br /&gt;
&lt;br /&gt;
이 말씀들은 죄인을 위한 소중한 말씀입니다: 은혜는 값없습니다, 선물은 값없습니다, 그리스도 의 의는 값없습니다. 이를 여러분의 삶의 소망과 삶의 보화로 받으시겠습니 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 지금 받으십시오. 세례를 받음으로 이를 증거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 중의 살아 있는 일부분이 되십시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22 Mar 2018 19:37:55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5%84%EB%8B%B4%EC%9D%98_%EC%B9%98%EB%AA%85%EC%A0%81%EC%9D%B8_%EB%B6%88%EC%88%9C%EC%A2%85%EA%B3%BC_%EA%B7%B8%EB%A6%AC%EC%8A%A4%EB%8F%84%EC%9D%98_%EC%8A%B9%EB%A6%AC%EC%9D%98_%EC%88%9C%EC%A2%85</comments>		</item>
		<item>
			<title>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복음의 승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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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Pcain: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복음의 승리’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Triumph of the Gospel in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lt;br /&gt;
&lt;br /&gt;
''디어필드, 일리노이주'' &lt;br /&gt;
&lt;br /&gt;
성경의 첫 장 첫 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amp;quot;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amp;quot; 27절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31절에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최고의 지혜와 최고의 아름다움과 최고로 사모할 분이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과 그들의 후손과 창조 세계 전체에 떨어지게 합니다. &amp;quot;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amp;quot; (창세기 3:17)&lt;br /&gt;
&lt;br /&gt;
창세기 3:15은 이 저주가 창조 세계에 대한 마지막 말씀이 아니라는 소망을 갖게 해 줍니다. 영혼파괴자인 동시에 창조세계파괴자인 뱀에게 말씀하십니다. &amp;quot;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amp;quot; 바울 사도는 이 저주 가운데서 소망을 봅니다. 그리고 로마서 8:20-21에서 이 소망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amp;quot;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amp;quot;&lt;br /&gt;
&lt;br /&gt;
==== 견딜 수 없는 고난의 광경 ====&lt;br /&gt;
&lt;br /&gt;
따라서 큰 그림으로 본 개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바대로는 모두 심히 좋았습니다. 아무런 흠도 없고, 고난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고, 악도 없었습니다. 그 때 아담과 하와가 엄청나게 악한 무언가를 그들의 마음 속에서 행했습니다. 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보다 나무의 열매를 더 좋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죽음의 형벌을 선고하셨을 뿐만 아니라(창세기 2:17), 전 창조 세계가 바울이 말하는 바 &amp;quot;허무한 데&amp;quot; 굴복하게 되었고, &amp;quot;썩어짐의 종 노릇&amp;quot;하는 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다시 말하면, 원래는 고난이나 고통이나 죽음이 없었으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제 모든 사람이 죽고, 모든 사람이 고난을 당하고, 동물들이 고난을 당하고, 강이 갑자기 범람하여 마을을 휩쓸고, 눈사태가 스키타는 사람을 파묻고, 화산이 전 도시를 멸망시키고, 쓰나미로 하루밤 사이에 250,000명이 죽고, 태풍이 800명이 승선하고 있던 필리핀 여객선을 침몰시키고, AIDS와 말라리아와 암과 심장병이 수백만의 남녀노소를 죽게 하고, 강력한 토네이도가 중서부 타운 하나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가뭄과 기근이 수백만명을 기아선상에 빠뜨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아주 기이한 사고가 일어나고, 친구의 아들이 양곡기 속으로 떨어져서 죽습니다. 어떤 이는 눈을 잃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기는 얼굴이 없이 태어납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주어진 순간에 있어서 그 순간 발생하는 세계의 고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무서움으로 인해 붕괴되어 버릴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광경을 견디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죄의 참상를 보여줌 ====&lt;br /&gt;
&lt;br /&gt;
왜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이유로 자연 질서가 그러한 허무함에 굴복하게 하셨나요? 자연 질서가 죄를 범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amp;quot;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amp;quot; 피조물은 &amp;quot;썩어짐의 종 노릇&amp;quot;에 처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amp;quot;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amp;quot; (창세기 3:17).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나요? 왜 인간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응답으로 창조 세계에 자연 재해가 있게 된 걸까요? 왜 아담의 죄있는 자손들만 죽게 되지 않고 그런 일이 벌어졌나요? 왜 끔찍한 고난의 피비린내 나는 만화경이 매 세기마다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불쌍하게도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lt;br /&gt;
&lt;br /&gt;
저의 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연 세상을 저주 아래 두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각종 질병이라든가 재해에서 목격하는 신체적 공포가 죄의 끔찍함에 대한 생생한 사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악은 인간의 도덕적 악이 말할 수 없게 끔찍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일종의 표지판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은 도덕적 영적 세상의 무질서 때문에—즉, 죄 때문에— 자연 세상을 무질서 아래 처해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타락 상태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죄의 넘치는 악에 대하여 극도로 눈멀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얼마나 극악한가를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속의 어떠한 사람도 우리의 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악인지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하고 경시하는 풍조에 대하여 제대로 분개하고 역겨워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약간의 고통이라도 느껴지면, 하나님께 그에 대한 해명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달려듭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은 무덤덤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새끼 손가락이라도 다치게 허락하시면, 우리의 모든 도덕적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왕권을 거부하는 자들인지 보여 줍니다. &lt;br /&gt;
&lt;br /&gt;
==== 육체적 고통의 나팔이 울릴 때 ====&lt;br /&gt;
&lt;br /&gt;
육체적 고통은, 무언가가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엄청나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나팔을 불어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질병과 기형은 사탄의 자랑거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들은 영적 영역의 죄가 무엇과 같은지를 보여 주는 그림과 같습니다. 가장 경건한 사람들 중 몇몇도 그러한 기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형이나 질병이 죄에 대하여 그림처럼 보여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재앙은 죄가 받아 마땅한 형벌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심판의 날에는 이보다 천 배나 더한 것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고입니다. &lt;br /&gt;
&lt;br /&gt;
오! 우리의 창조주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 좋아하는 것, 예를 들면, 거실에 있는 양탄자에 쏟는 마음보다 더 적은 마음을 그에게 쏟고, 그를 무시하고, 신뢰하지 않고, 비하하는 것 같은 죄악들이 얼마나 혐오스럽고, 얼마나 거슬리며, 얼마나 끔찍한 죄인지 우리 모두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로부터 구원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돌아서지 않을 것이며, 천국을 형벌 면제 외의 다른 어떤 이유로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형벌 면제를 위하여 천국을 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깨어라! 죄는 이와 같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비롭게도 우리의 병과 고통과 재앙 중에 우리에게 소리치십니다. 깨어라! 죄는 이와 같다! 죄는 이같은 것들로 인도한다. (요한계시록 9:20, 16:9, 11 등을 보십시오.) 하나님과의 교제보다 텔레비전을 좋아하는 것은 이와 같다. 천국에서의 형벌 면제를 갈망하지만, 구속주를 갈망하지 않는 것은 이와 같다. 자연 세계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꿈나라에서 우리를 깨우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공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저는 911 테러의 4주년 기념일에 베들레헴 교회에서 이 진리를 설교하였습니다. 그 설교를 할 당시 우리 교회 안에도 끔찍한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후 두 주 내지 삼 주 정도 지난 후에, 저는 예배전 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심한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의 젊은 엄마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amp;quot;사랑하는 주님, 저의 아들의 장애가 끔찍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과 같이 죄의 끔찍함을 느낄 수 있게 저를 도우소서.&amp;quot; 형제들이여, 저는 목사—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보냄받은 떨리는 직무를 갖고 있는 자—인 것을 사랑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다시 큰 그림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바대로는 모두 심히 좋았습니다. 아무런 흠도 없고, 고난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고, 악도 없었습니다. 그 때 아담과 하와가 엄청나게 악한 무언가를 그들의 마음 속에서 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죽음의 형벌을 선고하셨을 뿐만 아니라(창세기 2:17), 전 창조 세계가 바울이 말하는 바 &amp;quot;허무한 데&amp;quot;, &amp;quot;썩어짐의 종 노릇&amp;quot;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피조물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이 지상에서 6개월 짜리 아기 이상의 지적 능력을 결코 갖지 못할 지적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여러분은 무슨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여기 그들에게 적합한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눈물로 그리고 소망의 기쁨으로(&amp;quot;슬퍼하나 항상 기뻐하는&amp;quot;), 로마서 8:18-25의 다음 구절들을 그들에게 읽어 줄 수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더 명확한 이해를 얻기 위해 더 중요한 몇몇 본문이 있습니다. 젊은 목회자들은 이를 참고하면 좋을 것입니다. 27년 전 제가 베들레헴 교회에 부임한 후 했던 초창기 설교들 중 하나로 &amp;quot;Christ and Cancer(그리스도와 암)&amp;quot; 라는 설교가 있습니다. 저는 제 회중이 질병과 고난에 관한 저의 신학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제가 병문안 갈 때,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가는지 병상에 누워 있는 우리 성도들이 잘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면서 위의 설교를 전했습니다. 저는 병문안 갈 때, &amp;quot;이 사람이 충분한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이 고쳐주실텐데&amp;quot; 등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그들이 23절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amp;quot;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amp;quot;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그들의 몸의 구속을 기다리면서 신음합니다. 이 전체 구절은 성경 중에서 우주적으로 가장 의미심장한 동시에 목회적으로 매우 소중한 구절들 중 하나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를 새 몸을 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이 세대에서 이제 우리가 신음하고 있는 참으로 현실적인 그림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소망으로 우리를 지탱하여 줍니다. 우리는 그 소망으로 구원받았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이제 네 개의 대지를 가지고 이 구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 1. 하나님은 약속하시길, 피조물들이 그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과 썩어짐의 종 노릇 하는 데서 해방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lt;br /&gt;
&lt;br /&gt;
21절: &amp;quot;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amp;quot; 자연 세계—물질적, 육체적 세계—는 저주에서 해방될 것이며, 허무함과 썩어짐에 종 노릇 하는 데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이 땅, 이 하늘은 해방될 것입니다. 이 땅은 새 땅이 될 것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사야 65:17 &amp;quot;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amp;quot;&lt;br /&gt;
&lt;br /&gt;
이사야 66:22 &amp;quot;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amp;quot;&lt;br /&gt;
&lt;br /&gt;
베드로후서 3:13 &amp;quot;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amp;quot;&lt;br /&gt;
&lt;br /&gt;
요한계시록 21:1, 4 &amp;quot;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amp;quot;&lt;br /&gt;
&lt;br /&gt;
사도행전 3:19-21 &amp;quot;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amp;quot;&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로마서 8:21에서 바울은 옛 땅과 새 땅의 연속성에 대하여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amp;quot;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amp;quot; 따라서 바울이 여기서 &amp;quot;새롭다&amp;quot;고 한 것은 &amp;quot;새롭게 되었다&amp;quot;라는 의미이지, &amp;quot;대체되었다&amp;quot;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새 차를 샀다고 할 때의 새롭다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무언가가 해방되었다는 것은 그 존재가 사라졌다거나 버려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거기 있으며 이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장애 아동을 둔 어머니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아들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이 땅에서는 한 평생 내내 전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 땅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이 새 땅은 병이나 장애가 없는 곳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아들은 그 곳에서는 한 평생이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걷고 뛸 수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2.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참여하는 것임 ====&lt;br /&gt;
&lt;br /&gt;
21절: &amp;quot;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amp;quot; 여기 나오는 순서는 의미심장합니다. 피조물은 타락한 인간을 뒤따라 썩어짐으로 들어갔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구속된 인간을 뒤따라 영광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장애 아동의 부모 등 현재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이는 정확하지 않은 잘못된 얘기입니다: &amp;quot;성경은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될 것이라고 하고 있지요? 그리고 당신의 몸이나 당신의 아들의 몸은 피조물의 일부이지요? 그러니 당신이나 당신의 아들은 이 영광스러운 해방을 경험할 것이고 새 부활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해방될 피조물의 일부이니까요.&amp;quot; 왜 이 말이 잘못된 것일까요?&lt;br /&gt;
&lt;br /&gt;
그것은 바울이 바라보는 관점과 다릅니다. 우리 몸이 새로운 질서에 따라 구속되리라는 것은 맞습니다.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amp;quot;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amp;quot; 하지만 우리 몸은 피조물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새로움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피조물이 &amp;quot;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amp;quot;로 이끌리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amp;quot;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가 먼저 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롭고 영화된 몸으로 영화되고—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말씀하신 바처럼 되고(마태복음 13:43)— 그 후에야 이제 전 피조물은 영화된 자들이 그 안에서 살기에 적합한 장소로서 새롭게 단장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장애아동의 부모에게 &amp;quot;당신의 아이가 새로운 영화된 우주에 맞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새 우주가 당신의 영화된 아이에 맞게 변화될 것입니다&amp;quot; 라고 말해야 합당합니다. 21절의 핵심은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공급하실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amp;quot;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amp;quot;라는 구절에 주목하십시오. 성도의 영광의 자유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광의 자유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구속된 자들의 영광의 자유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들 표현 또한 맞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여기에서 바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다섯 절 앞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로마서 8:16-17입니다. &amp;quot;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amp;quot; 21절의 핵심은 새 하늘과 새 땅은 자녀들의 상속물이라는 것입니다. 우주는 그 자체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운동장으로서—그리고 회당과 농장과 공예품 상점 등으로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위하여 그의 자녀들을 고안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그의 자녀들을 위해 고안하십니다. 태초부터 그러하며 마지막에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특히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아들,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러합니다. 만물은 그를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당신의 장애를 가진 자녀는 더이상 적응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의 몸은 완전히 구속될 것이고 새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 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적응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3. 새롭고, 해방된 피조물의 도래는 탄생에 비유되며, 따라서 이 세상과의 연속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불연속성도 있다.  ====&lt;br /&gt;
&lt;br /&gt;
22절: &amp;quot;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sunōdivei, 역자주: 산고의 고통)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amp;quot; 아이가 태어날 때, 그 아이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갑자기 말로 바뀌어 태어나지 않습니다. 즉, 연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 아이와 태어난 후의 아이는 무언가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 은유—새 땅의 도래와 아이의 탄생—의 뜻에 대하여, 새 땅과 옛 땅의 관계를 정확히 아이와 엄마의 관계로 보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해석하면, 그 은유적 표현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그 말씀에 부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말씀은 불연속성이 있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과연 어떠한 불연속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본문들을 찾아보게 합니다. 물론 현 문맥에 의하면, 몸은 허무함과 썩어짐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사실,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관하여 매우 명확한 구절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35절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제기합니다. &amp;quot;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amp;quot; 그리고 37-51에서 이에 대하여 대답합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불연속성]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단지 구속주로서 행하실 뿐 아니라 창조주로서 행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실은 위로를 가져다 줍니다. 왜냐하면, 선조들의 몸은 이미 분해되어서 그들의 몸을 구성하였던 원자들이 이미 수많은 다른 사람, 동물, 식물 등의 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거듭하여 바울은 말하길, 심어진 것이 있고 살아난 것이 있는데, 심어진 그것이 살아났다고 표현합니다. 즉, 연속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따라서 몸이라는 단어는 연속성을 의미하며 '육의' '영의' 등의 단어는 불연속성을 의미합니다] .....중략....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상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불연속성과 연속성이 공존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참으로, 비밀입니다.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 사도가 말한 것처럼, &amp;quot;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amp;quot;습니다(요한1서 3:2). 에수님이 말씀하시길, &amp;quot;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amp;quot; (마태복음 22:30).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 현 세상의 단순한 회복 혹은 개선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7입니다: &amp;quot;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amp;quot; 요한계시록 말씀입니다. &amp;quot;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amp;quot;(요한계시록 21:1). &amp;quot;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amp;quot; (요한계시록 21:23). &amp;quot;다시 밤이 없겠고&amp;quot; (요한계시록 22:5).&lt;br /&gt;
&lt;br /&gt;
밤도 없고, 해도 없고, 달도 없고, 바다도 없고, 결혼하는 일도 없습니다. 불을 통해 되어진 세상 속에 영적 몸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연속성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3:21입니다: &amp;quot;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amp;quot; 우리의 부활체는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은 형태일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체는 어떠한 몸이었나요?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었고, 공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고, 기이한 방식으로 오시고 사라지셨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놀랍고도 중요한 말씀을 보도록 합시다. 누가복음 24:39-43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예수님은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따라서 이로부터 세 번째 핵심이 발견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 세상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amp;quot;비밀&amp;quot;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을 줄을 압니다. 따라서 장애 아동의 부모가 &amp;quot;우리 아들은 어른으로 성장할까요? 그는 스스로 먹게 될까요? 그가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게 될까요?&amp;quot; 등의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낭비되게 하도록 이 세상을 만들고 보존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아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아들의 가장 큰 기쁨과 하나님의 가장 큰 영광을 위하여 그에게 어떤 수준의 발전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것은 비밀입니다. 우리는 유리를 통해서 희미하게 볼 뿐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비밀로 남겨져 있는 상태에서, 장애 아동의 부모 입장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아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을 위한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일까요? 이는 마침내 네 번째 대지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lt;br /&gt;
&lt;br /&gt;
==== 4. 새 창조 안에서 구속된 몸을 가질 소망은 복음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받은 바 우리의 구원에 의하여 안전하게 확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망은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특히 로마서 8:23-24을 주목하십시오: &amp;quot;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amp;quot;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일종의 간접목적어로 보입니다(tē gar elpidi esōthēmen). 즉, 이 소망에 관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는 말로 보입니다. 틀림없이, 이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을 때 이 소망이 안전하게 확보되었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고린도전서 15:1-3)는 복음을 의지함으로써 구원받기 때문에, 이 소망은 복음에 의하여 안전하게 확보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승리하고, 우리를 이 소망으로 데려갑니다(로마서 6:5, 8:11).&lt;br /&gt;
&lt;br /&gt;
하지만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구속된 몸을 입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단단한 반석과 같은 확신입니다. 우리 대신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죄의 용서를 공급하고, 우리의 의를 공급하였습니다. 그리고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두려움과 죄책에 직면하여 단단한 반석을 찾고 있는 이 부모들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복음의 궁극적인 선물: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 ====&lt;br /&gt;
&lt;br /&gt;
하지만 복음의 궁극적 선물은 새 하늘과 새 땅 그 자체가 아닙니다. 복음의 궁극적 선은 구속된 몸도 아닙니다. 복음의 궁극적 선은 용서도 아니고, 구속도 아니고, 화해(propitiation, 진노를 달램)도 아니고 칭의도 아닙니다. 이들은 다 궁극적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복음을 참으로 좋은 소식으로 만드는 복음의 궁극적 선, 이것이 없으면 다른 모든 선물들은 좋은 소식이 될 수 없는 복음의 궁극적 선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특히 십자가에 못박히고 다시 살아나신 아들의 영광 안에서 보는 하나님, 그의 무한한 아름다움 때문에 즐거움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 그의 무한한 가치 때문에 최고의 보물로 소중히 여김을 받는 하나님, 우리가 그의 아들의 형상을 닮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반영하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복음의 궁극적 선입니다. &lt;br /&gt;
&lt;br /&gt;
==== 복음: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한 계시 ====&lt;br /&gt;
&lt;br /&gt;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궁극적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결코 그의 인간의 몸을 벗지 아니하고 이를 갈보리의 영원한 엠블럼으로 보유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물질적 우주는 일단 창조되었고, 그 후 새로운 형태로 변화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으로 성육신하시고, 육체 가운데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신인으로서 다스리시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충만하게 반영되는 방식으로 노래하고 말하고 일하고 놀고 사랑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구속된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이는 것을 위해서입니다. 그 때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영적인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충만하게 볼 수 있게 반사할 것입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09 Mar 2018 21:19:57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83%88_%ED%95%98%EB%8A%98%EA%B3%BC_%EC%83%88_%EB%95%85%EC%97%90%EC%84%9C%EC%9D%98_%EB%B3%B5%EC%9D%8C%EC%9D%98_%EC%8A%B9%EB%A6%AC</comments>		</item>
		<item>
			<title>복음으로 우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B3%B5%EC%9D%8C%EC%9C%BC%EB%A1%9C_%EC%9A%B0%EB%A6%AC%EB%A5%BC_%EB%8A%A5%ED%9E%88_%EA%B2%AC%EA%B3%A0%ED%95%98%EA%B2%8C_%ED%95%98%EC%8B%9C%EB%8A%94_%ED%95%98%EB%82%98%EB%8B%98</link>
			<description>&lt;p&gt;Pcain: ‘복음으로 우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God Strengthens Us by the Gospel}} &lt;br /&gt;
&lt;br /&gt;
'''로마서 16:25–27'''&lt;br /&gt;
&amp;lt;blockquote&amp;gt;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오늘은 역사상 최고의 위대한 편지인 로마서의 마지막 단락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적어도 몇몇 분들은 이렇게 질문하실 것 같습니다: 이제 로마서를 거의 다 끝마쳤는가? 여러분 중 대부분의 분들은 로마서 강해를 1998년 4월 26일에 시작하였을 때 여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7년 반 전입니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로마서 강해가 진행되는 도중에 저희 베들레헴 교회에 오셨습니다. 이제 끝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모든 긴장감을 제거하고 다른 본문에 대한 설교로의 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lt;br /&gt;
&lt;br /&gt;
==== 천천히 점차적으로 끝마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마지막 단락 (로마서 16:25-27)은 이 편지의 수많은 중요한 주제들을 한 군데 모아서, 느릿느릿한 점차적 결말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7년간의 싸움은 급경사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거대한 제트기와 같아서 수직으로 착륙하지 않습니다. 저의 계획은 오늘 본문의 3개 절에 대해 5주 동안 설교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로마서 강해를 마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잘 들어맞는 클라이맥스처럼 보입니다.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5주 동안의 대강절 주일을 그리스도를 높이는 데에 있어 가장 강력한 시기가 되게 해 주시도록, 그리고 사람들이 회심하여 믿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하게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lt;br /&gt;
&lt;br /&gt;
==== 송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리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로마서의 마지막 세 개의 절은 통상 송영(doxology)이라고 불립니다. doxology라는 단어는 영광이라는 뜻의 희랍어 doxa와 말씀이라는 뜻의 희랍어 logos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송영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신약에 등장하는 송영들 뒤에는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주의를 돌리기 위하여 존재하며,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주의를 돌리기 위하여 발생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송영이 항상 설교나 편지의 절정의 순간에 그리고 최종의 순간에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바울과 같이 제가 여태까지 말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모든 주의를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바울은 25절에서 그의 마치는 송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가 송영을 써내려갈 때,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관한 송영의 마지막 말들을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그는 단지 &amp;quot;이제 그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amp;quot;와 같이 간단히 끝마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그분에 대하여 즉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그리고 여태까지 열여섯 개의 장에 걸쳐 기록한 그의 복음에 대하여 각종의 어구를 삽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로마서 전체의 마지막인 27절에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으로 돌아갑니다. &amp;quot;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lt;br /&gt;
&lt;br /&gt;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송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36에서는 첫 열한 장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 송영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그가 가르친 것의 더 즉각적인 의미에 대해 펼쳐보이기 시작하기 전에 송영을 하고 있습니다: &amp;quot;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 (빌립보서 4:20과 에베소서 3:20-21도 보십시오).&lt;br /&gt;
&lt;br /&gt;
그리고 바울 외에도 송영을 사랑한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1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amp;quot; 요한 사도는 요한계시록 1:5-6에서 말했습니다. &amp;quot;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amp;quot; 그리고 주님의 형제 유다는 가장 유명한 송영을 썼습니다(유다서 1:24-25), &amp;quot;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lt;br /&gt;
&lt;br /&gt;
따라서 송영은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주의를 돌리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접할 만한 진리에 근거하고 있는 성경적이고, 사도적인 형태의 글과 말입니다. &lt;br /&gt;
&lt;br /&gt;
로마서의 마지막 다섯 주 동안 우리가 다룰 것이 바로 이 송영입니다. 송영치고는 상당히 길고 하나님과 복음에 대한 매우 밀도 높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의 가장 길고 가장 위대한 편지를 마치면서 몇 마디 말을 무심코 던지는 것이 아님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모든 단어들이 중요합니다. 이 말들은 로마서의 마지막 말들입니다. 이 말들은 그의 마지막 단어들일 수 있습니다. 주의해서 이 말들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이 송영에서 말하고 있는 다섯 가지 측면을 다 잘 보게 되길 바랍니다. &lt;br /&gt;
&lt;br /&gt;
====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을 견고하게 하시기 위하여 복음을 사용하십니다 ====&lt;br /&gt;
&lt;br /&gt;
오늘 저는 주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그의 백성들을 견고하게 하신다는 점에 촛점을 맞추어 전하려고 합니다. 26-27절: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amp;quot; 바울은 26절과 27절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신자들을 견고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견고하게 하는 이 복음은 &amp;quot;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amp;quot;(25절)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중심이 되십니다. 이 복음은 &amp;quot;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amp;quot; 된 것입니다(25절). 이방인들 그러니까 모든 민족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하여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완전한 동료 시민이 되는 것은 복음의 신비입니다(에베소서 3:6). 이 좋은 소식이 &amp;quot;이제는 나타내신 바&amp;quot; 되었습니다(26절). 그리고 과거 시대에는 감추어졌었지만, 바울 사도가 &amp;quot;모든 민족&amp;quot;(26절)에게 이 신비를 계시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 구약 성경의 &amp;quot;선지자들의 글&amp;quot;(26절)입니다. 그리고 민족들을 위한 이 좋은 소식 전부는 &amp;quot;영원하신 하나님의 명&amp;quot;이었으며 믿어 순종하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26절). &lt;br /&gt;
&lt;br /&gt;
신자들이 믿음의 순종을 지속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견고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사용하십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오늘 이 놀라운 사실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바울 사도가 그의 입술로 마지막 송영의 말들을 할 때, 그가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복음으로 견고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모든 주의를 돌리기를 요청하면서 로마서를 끝낼 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그의 복음을 믿는 그의 백성들을 견고하게 하시는 것 안에서 더욱 밝게 빛난다. &lt;br /&gt;
&lt;br /&gt;
==== 그의 영광을 위하여 신자를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 ====&lt;br /&gt;
&lt;br /&gt;
여기 아주 놀라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지 않도록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확실한 것을 한번 더 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이끌고 하나님의 영광에 주의를 돌리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역사하시는 일이나 이미 역사하신 일에 대해 바울은 여러 가지 것을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행하신 수많은 위대한 역사들이라든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들 등에 대해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수많은 것들 중에서 한 가지를 강조하려고 선택합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amp;quot; 바울은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감추시었다가 드디어 민족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계시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그의 영원한 명령에 의해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 송영을 마련한 것은 전부 이 한 가지 주된 주제를 지지하고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견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amp;quot;&lt;br /&gt;
&lt;br /&gt;
역사상 많은 왕들이나 오늘날의 독재자들은 영광을 얻기 원합니다. 그들은 강하고 부유하고 지혜롭다고 알려지는 것을 원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그들의 백성들을 약하고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렇게 됩니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독재자에게 위협이 됩니다. 중산층의 확산은 독재자에게 위협이 됩니다. 강한 사람들은 독재자의 강함에 위협이 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백성들을 약한 상태에 방치함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안전하게 합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등골이 휘게 함으로써 영광을 확보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롬 카리모프 정권을 보십시오. 그밖에도 많은 왕들의 경우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이를 보는 신자들을 견고하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이제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에 주의를 돌리는 방법을 보십시오. 왕들이나 독재자들이 영광을 얻는 방법과 뚜렷한 대조가 됩니다. 반역하는 사람들을 짓밟음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나타낼 권리가 있는 왕이 있다면, 그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나요?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견고하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amp;quot;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그의 복음으로 견고하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드높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힘이 있다고 해서 아무런 위협을 느끼시지 않습니다. 사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더 강해질수록, 하나님은 더 위대해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약한 상태에 내버려 두심으로써 자신의 강함을 확보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강하고 견고하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능력의 영광을 더 크게 드러내십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amp;quot;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모든 편지들 중 가장 위대한 편지인 로마서를 끝맺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우월한 가치에 대하여 주의를 돌리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복음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나쁜 소식이 아니고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그 영광을 소유하려고 하지만 않는다면요. 하나님께서는 자격 없는 백성들을 강하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영광에 주의를 돌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클수록, 우리의 강함을 위한 자원이 더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더 다면적이고 놀라울수록, 우리의 강함의 근원도 다면적이고 놀라운 것입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amp;quot;&lt;br /&gt;
&lt;br /&gt;
==== 복음 안에 있는 힘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 어떤 유형의 힘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유형의 힘이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amp;quot;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amp;quot; (시편 18:29). 하지만 여기서 바울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로마서 1:11-12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유형의 견고하게 하는 힘입니다. &amp;quot;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stērikthēnai, 16:26에서 쓰인 것과 같은 단어임)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amp;quot; 이 힘을 형성하는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lt;br /&gt;
&lt;br /&gt;
==== 복음 안에는 여성들을 위한 힘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줄 수도 없는 힘입니다. 여성들이며, 십대의 여학생들이여, 여러분은 강한 여성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혹은 어린 소녀들이여, 강한 여성으로 자라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무엇을 꿈꾸고 있나요? 이것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강하게 되는 것을 원하시며, 동시에 성경과 우리들의 경험은 여러분 여성들이 어떤 면에서 연약한 그릇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3:7). 말하자면 성인 남성의 95%가 육체적 힘에 있어서 95%의 성인 여성보다 강합니다. 강한 여성이 되는 것을 원할 때, 과연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해야 할까요?&lt;br /&gt;
&lt;br /&gt;
세상은 여러분 여성들에게 힘을 갖추기 위하여 세 가지를 추구하라고 말해 줄 것입니다. 첫째, 섹시하게 되고, 섹시하게 입고, 섹시하게 행동하라고 합니다. 남성들은 그것을 추종하는 존재이므로, 여러분은 섹시하게 됨으로써 남성들 위에 서는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고, 단호한 사람이 되고, 공격적이 되고, 자신감으로 충만하게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똑똑해지고 권력을 얻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잘 살펴서 그러한 자리를 확보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들 중 어느 것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힘과 견고함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베드로전서 3:6에서 말하였던 여성의 내면적인 강함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전서 3:6에서 바울은 여성들이 사라처럼 되어야 한다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amp;quot;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amp;quot; 잠언 31:25도 여성들의 내면적 강함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amp;quot;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amp;quot;&lt;br /&gt;
&lt;br /&gt;
다시 말하면, 위의 성경 구절들은 여성들, 그리고 여학생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으로 인한 자신감이 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우주의 왕의 딸로 인식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해주신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하시기로 약속하신 것들을 생각하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럼으로써 후일을 웃습니다. 어떤 일이 닥쳐 오든지 후일을 웃고 승리합니다. 반면에, 섹시함—앞으로 잃게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을 통해 얻은 남자는 여러분이 원하는 유형의 남자가 아닙니다. 강한 자기 주장과 단호함을 통해 여러분이 여러분 주위에 있어 주길 원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여러분을 멀리 하게 할 것입니다. 권력의 획득 같은 것은 풀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말라 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주시는 힘은 영원히 거합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amp;quot;&lt;br /&gt;
&lt;br /&gt;
==== 복음 안에는 남성들을 위한 힘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남성들, 그리고 소년들이여,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강해지기를 꿈꿀 때 무엇을 생각합니까? 얼토당토 않을 정도로 강하게 보이는 것을 생각합니까? 아니면 운동 경기에서 최고가 되는 것을 생각합니까? 아니면 가장 기민한 주식 브로커가 되어서 돈의 힘을 소유하는 것을 생각합니까? 아니면 교육을 잘 받아서 남들이 어려워서 읽지 않는 고상한 잡지를 읽고 남들이 어려워하는 방송을 듣고 어렵고 모호한 개념들을 얘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합니까?&lt;br /&gt;
&lt;br /&gt;
아닙니다. 미련한 자만이 덧없는 권력을 추구합니다. 미련한 자는 가장 필요로 할 때는 소진하고 마는 권력을 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주실 수 있는 그러한 능력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정 예배 가운데서 여러분의 아내와 여러분의 가정을 이끄는 능력이요, 고등 교육을 받은 세속의 엘리트들이 온통 여러분 주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단순한 진리의 말씀을 말하는 능력이요, 다른 사람들이 온통 여러분을 약하다고 부를 때에도 죄악된 행위에 대하여 아니라고 말하는 능력이요,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긍휼과 진리의 대의 안에서 밀고 나가는 능력입니다. &lt;br /&gt;
&lt;br /&gt;
==== 복음 안에는 우리 모두를 위한 힘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남자이든 여자이든—를 견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한 영혼의 내면적 강함으로 견고하게 하심으로써 휠체어를 타고 있어도 현대 문화의 조류에 빠져 표류하고 있는 사지멀쩡한 만 명의 도덕적 해파리보다 더 강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장애를 가지게 되고 심지어 눈꺼풀만 가지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도 그 때에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을 그러한 강함을 원합니다. 이러한 강함은 어디서 오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amp;quot;&lt;br /&gt;
&lt;br /&gt;
==== 우리가 아무리 성장하였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복음을 필요로 합니다 ====&lt;br /&gt;
&lt;br /&gt;
로마서에 대한 7년간의 강해를 마치면서 이제 이 설교를 포함하여 앞으로 네 개의 설교를 통해 보게 될 아주 중요한 최종적 관찰 포인트이면서 동시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저의 모든 설교마다 기도하는 포인트는 이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amp;quot; &lt;br /&gt;
&lt;br /&gt;
복음의 핵심 정수는 예수 그리스도, 의로우신 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모든 원수를 영원히 이기셨고, 이로써 그를 믿는 자에게는 정죄가 없으며 영원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이 복음이 필요 없어질 정도로 성장해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였다가 이를 뒤로 제쳐버리고 다른 것으로 강하고 견고하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우리를 복음으로 견고하게 하십니다. &lt;br /&gt;
&lt;br /&gt;
==== 암을 이기는 복음의 힘 ====&lt;br /&gt;
&lt;br /&gt;
예를 하나 들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다수는 저보다 더 대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지난 2월에 제게 행하신 일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때 저는 암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으로 저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5:9-10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amp;quot;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amp;quot;&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최종 진단이 나올 때, 제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이 복음으로 나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amp;quot;&lt;br /&gt;
&lt;br /&gt;
우리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죄와 사탄과 지옥과 죽음을 멸하기 위하여 역사하셨습니다. 그는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당신의 삶의 가장 큰 보물로 영접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견고하게 하시는 것 안에서 그의 영광을 드높이실 것입니다.&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6 Feb 2018 20:56:59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B3%B5%EC%9D%8C%EC%9C%BC%EB%A1%9C_%EC%9A%B0%EB%A6%AC%EB%A5%BC_%EB%8A%A5%ED%9E%88_%EA%B2%AC%EA%B3%A0%ED%95%98%EA%B2%8C_%ED%95%98%EC%8B%9C%EB%8A%94_%ED%95%98%EB%82%98%EB%8B%98</comments>		</item>
		<item>
			<title>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7%B8%EA%B2%83%EC%9D%B4_%EB%84%A4%EA%B2%8C_%EB%AC%B4%EC%8A%A8_%EC%83%81%EA%B4%80%EC%9D%B4%EB%83%90_%EB%84%88%EB%8A%94_%EB%82%98%EB%A5%BC_%EB%94%B0%EB%A5%B4%EB%9D%BC</link>
			<description>&lt;p&gt;Pcain: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What Is That to You? You Follow Me!}} &lt;br /&gt;
&lt;br /&gt;
==== '''직설적인 말씀에 의해 비교에서 자유하게 되다''' ====&lt;br /&gt;
&lt;br /&gt;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냐고 세번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네라고 세번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요한의 죽음은 어떨지 궁금해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amp;quot;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amp;quot; 예수님은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amp;quot;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amp;quot; 여기 그 전체 대화가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amp;quot;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amp;quot;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amp;quot;나를 따르라&amp;quot;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amp;quot;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amp;quot; 묻던 자더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amp;quot;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amp;quot; 예수께서 이르시되 &amp;quot;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amp;quot; (요한복음 21:18-22)&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예수님의 직설적인 말씀—“네가 상관할 바 아니다 나를 따르라”—은 저의 귀에 달콤하게 들립니다. 그 말씀은 치명적인 비교의 침울하게 하는 속박에서 저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가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지에 실린 광고(만 개 모두)를 훑어보면 낙심하게 됩니다. 25년 전만큼은 아닙니다. 그러나 물밀 듯이 밀려오는 수많은 목회 제안들은 여전히 저를 압박합니다.&lt;br /&gt;
&lt;br /&gt;
수많은 책들, 수많은 컨퍼런스, 수많은 DVD가 어떻게 하면 목회에 성공할 수 있는지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제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설교는 더 나아질 수 있다. 복음 전도는 더 나아질 수 있다. 목양적 돌봄은 더 나아질 수 있다. 청소년 사역은 더 나아질 수 있다. 선교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잘 작동하여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사라.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이런 방식으로 해라 등등.... 나아가 더 부담스러운 것은 이 책들과 컨퍼런스 중 일부는 저의 것이라는 것입니다.&lt;br /&gt;
&lt;br /&gt;
그래서 저는 저에게(그리고 당신에게) 하신 예수님의 직설적인 말씀에 의해 재충전이 되었습니다: &amp;quot;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나를 따르라!&amp;quot; 베드로는 방금 매우 힘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는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다른 제자와의 비교였습니다. 요한은 어찌될 것인가? 만약 내가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그도 고통을 당해야 할 것 아닌가? 나의 목회가 그렇게 끝난다면 그의 목회도 그렇게 끝날 것인가? 만약 내가 열매 맺는 목회의 긴 삶을 살 수 없다면, 그는 어찌 될 것인가?&lt;br /&gt;
&lt;br /&gt;
이것이 우리 죄인들이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비교. 비교. 비교.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덜 효율적인 사람을 찾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우쭐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이날까지도 저는 휘튼 대학교 4학년 시절 엘리엇 홀의 기숙사 사감이 게시한 짧은 경구를 기억합니다: &amp;quot;사랑하는 것은 비교를 멈추는 것이다.&amp;quot; 파이퍼,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나를 따르라.&lt;br /&gt;
&lt;br /&gt;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 목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만연한 영향에 대해 너무나도 종합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lt;br /&gt;
*보디 바우컴(Voddie Baucham) 목사가 원고도 없이 복음을 그렇게 능력있게 전하는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lt;br /&gt;
*팀 켈러(Tim Keller) 목사가 복음과 직업 생활 간의 관계를 너무도 명확하게 본다는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lt;br /&gt;
*마크 드리스콜(Mark Driscoll) 목사가 대중문화의 언어와 그 어리석음에 대해 정통하다는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lt;br /&gt;
*돈 카슨(Don Carson) 목사가 일년에 500권의 책을 읽고 목회자의 통찰력과 학자의 깊이와 포괄을 겸비한다는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lt;br /&gt;
&lt;br /&gt;
그 말씀은 제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저를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가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사역도 아니고. 이것들은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해야 할 일을(그리고 당신을 위한 다른 일을) 주십니다. 다른 누구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함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 은혜를 위하여 그를 신뢰하고 그가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할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 예수님이 단호하게 대하실 때, 얼마나 많은 자유가 오는지요.&lt;br /&gt;
&lt;br /&gt;
오늘 당신의 초조한 비교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격려와 자유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amp;quot;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amp;quot;&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자유 속에 걷는 것을 배우고 있는,&amp;lt;br&amp;gt;&amp;lt;br&amp;gt;존 파이퍼 목사&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13 Feb 2018 21:10:31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A%B7%B8%EA%B2%83%EC%9D%B4_%EB%84%A4%EA%B2%8C_%EB%AC%B4%EC%8A%A8_%EC%83%81%EA%B4%80%EC%9D%B4%EB%83%90_%EB%84%88%EB%8A%94_%EB%82%98%EB%A5%BC_%EB%94%B0%EB%A5%B4%EB%9D%BC</comments>		</item>
		<item>
			<title>성경 암송을 해야 하는 이유</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84%B1%EA%B2%BD_%EC%95%94%EC%86%A1%EC%9D%84_%ED%95%B4%EC%95%BC_%ED%95%98%EB%8A%94_%EC%9D%B4%EC%9C%A0</link>
			<description>&lt;p&gt;Pcain: ‘성경 암송을 해야 하는 이유’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Why Memorize Scripture?}} &lt;br /&gt;
&lt;br /&gt;
우선, 몇 사람의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간접적으로 들은 얘기입니 다만, 달라스 신학교의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는 자신에게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달라스 신학교를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천 개의 암송구절을 완벽하게 외우게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lt;br /&gt;
&lt;br /&gt;
남가주대학 철학과 교수인 달라스 윌라드는 이렇게 썼습니다. &amp;quot;성경암송 은 영적 성장의 절대적 기초다. 영적인 삶의 모든 훈련들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성경암송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암송은 우리의 마음 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는 기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율법책은 바로 입에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율법책이 당신의 입에 있게 할 수 있는가? 암송하면 된다.&amp;quot; (&amp;quot;온전한 삶과 인격을 위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성 형성&amp;quot; Vocatio, Vol. 12, no. 2, Spring, 2001, p. 7).&lt;br /&gt;
&lt;br /&gt;
척 스윈돌은 이렇게 썼습니다. “사실상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경암송보 다 더 도움이 되는 훈련을 알지 못한다. 다른 어떤 훈련보다 더 영적으로 도 움이 된다. 기도 생활은 강화될 것이다. 증거는 더 날카롭고 효과적이 될 것 이다. 태도와 세계관이 바뀌게 될 것이다. 생각은 깨어 있고 주의하게 될 것 이다. 담대함과 확신은 높아질 것이며 믿음은 견고해질 것이다.” (Growing Strong in the Seasons of Life [Grand Rapids: Zondervan, 1994], p. 61)&lt;br /&gt;
&lt;br /&gt;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마틴 루터의 위대한 발견이 가능했던 이 유 중의 하나는 그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있던 초기에 요한 스타우피츠에 의해 말씀을 사랑하도록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도 않은 채 신학 박사학위를 받을 때 루터는 하루 만에 성경을 완독했습니다. 동료교수인 안드레아스 칼슈타트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 그리고 그 이후 수 년간 성경책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았다고 루터는 말했습니다. (Richard Bucher, &amp;quot;마틴 루터의 성경사랑&amp;quot;) 루터는 수많은 성경 구 절을 암송했고 주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로마서 1:17의 이신칭의의 진리를 보게 하셨을 때 그는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확증하기 위해서 “나는 그 즉시 로 기억 속의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았다”라고 했습니다.&lt;br /&gt;
&lt;br /&gt;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성경 암송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적이라고 보 았던 이유 몇 가지를 들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 1.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다 ...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 서 영광에 이르니“(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려 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는 말씀을 통해 가능해집니 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 (사무엘상 3:21) 성경 암송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지속적이고 분명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lt;br /&gt;
&lt;br /&gt;
==== 2. 죄와의 싸움에서의 승리 ====&lt;br /&gt;
&lt;br /&gt;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 이니이다. . . .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9,11). 바울은 우리가 “영으로써 몸의 [악한 ]행실을 죽여야”한다고 말합니다(로마서 8:13). 그 죽이는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17). 죄는 몸을 악한 행실로 유 혹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고 죄가 주는 것에 비해 더 나은 그리스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갖고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 다. &lt;br /&gt;
&lt;br /&gt;
==== 3.사탄과의 싸움에서의 승리 ====&lt;br /&gt;
&lt;br /&gt;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암송하고 있는 말씀을 사 용해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마태복음 4:1-11).&lt;br /&gt;
&lt;br /&gt;
==== 4.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권고 ====&lt;br /&gt;
&lt;br /&gt;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위로와 권고를 기대할 때 여러분의 손에 성경책이 들려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암송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잠언 25:11은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 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 속에 말씀이 가득 차 있을 때, 경우에 합당한 축복의 말이 입에서 흘러나옵니다.&lt;br /&gt;
&lt;br /&gt;
==== 5.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복음을 전할 기회는 성경을 갖고 있지 않을 때에도 찾아옵니다. 실제 성 경 구절들은 그 자체로 예리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암송되어 말 해질 때 그 말씀들은 암송할 만큼 충분히 귀중하다는 증거가 주어지게 됩니다 . 우리는 복음을 네 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거룩함/법/영광, 2) 사람의 죄/반역/불순종, 3)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 4) 믿음으로 인해 거저 주어지는 생명의 선물.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한두 구절을 암송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것들을 나눌 준비를 하십시 오.&lt;br /&gt;
&lt;br /&gt;
==== 6.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길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lt;br /&gt;
&lt;br /&gt;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존 경과 사랑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속성의 가치를 반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성경 말씀을 우리 의 마음에 저장하는 것은 그분의 진정한 모습과 관계하도록 도와 줍니다. 예 를 들어, 하루 종일 아래의 내용을 마음에 상기시킬 수 있다고 상상해 보십 시오:&lt;br /&gt;
&amp;lt;blockquote&amp;gt;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 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 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 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 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 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편 103:8-14)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길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저는 “즐거워하면서”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감정적으로 불구 상태입니다. 전부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단계까지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한가지 방법은 성경에 있는 감 정적 표현들을 암송하고 그 감정들이 우리의 일부가 될 때까지 주님께 그리고 서로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103:1에서 우리는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라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과 성경의 다른 감정적인 표현들을 암송하고 자주 말하여 주님께 그 감정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 실제가 되도록 구하면서 말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그런 감정과 표현으로 자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덜 무능하게 되며 적절한 찬 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lt;br /&gt;
&lt;br /&gt;
이상 설명한 것들 외에도 말씀 암송을 해야 할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이유들을 여러분이 실제 삶 속에서 발견하길 바랍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13 Feb 2018 21:02:18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84%B1%EA%B2%BD_%EC%95%94%EC%86%A1%EC%9D%84_%ED%95%B4%EC%95%BC_%ED%95%98%EB%8A%94_%EC%9D%B4%EC%9C%A0</comments>		</item>
		<item>
			<title>제10과: 교회 권징</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A0%9C10%EA%B3%BC:_%EA%B5%90%ED%9A%8C_%EA%B6%8C%EC%A7%95</link>
			<description>&lt;p&gt;Kathyyee: 새 문서: {{info|Class IX: Church Discipline}}이 과정 전반에 걸쳐 흐르는 중심 테마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큰 목적과 우리 자신의 죄 사이의 긴장입니다. 하...&lt;/p&gt;
&lt;hr /&gt;
&lt;div&gt;{{info|Class IX: Church Discipline}}이 과정 전반에 걸쳐 흐르는 중심 테마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큰 목적과 우리 자신의 죄 사이의 긴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이 땅에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시지만, 우리는 죄 많고 이기적인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토론한 많은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랑과 연합 속에 함께 살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교회 구성원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기를 거절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교회의 연합은 큰 위험에 직면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순결을 위협하는 죄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 의에서 나온 분노로 가혹하게 행동하여, 우리가 부름받은 연합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경건한 반응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회개하지 않은 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lt;br /&gt;
&lt;br /&gt;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한 지혜를 주고 있는데, 이는 &amp;quot;교회 권징&amp;quot;이라는 주제로서, 회개하지 않은 죄에 대한 성경적인 응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권징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명하여진 권징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교회 권징의 핵심''''' &lt;br /&gt;
&lt;br /&gt;
교회의 권징을 위한 모델은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행하시는 권징입니다. 히브리서는 &amp;quot;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권징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amp;quot;(히 12:6)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권징의 목적은 의로움입니다. &amp;quot;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amp;quot;(히 12:11) &lt;br /&gt;
&lt;br /&gt;
권징의 중심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서로를 돌보는 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사랑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심각하고 회개하지 않은 죄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lt;br /&gt;
&lt;br /&gt;
'''I. 두 종류의 권징''' &lt;br /&gt;
&lt;br /&gt;
교회 안에서 두 가지 종류의 권징이 있습니다. 형성적(formative) 권징과 견책적(corrective) 권징입니다. &lt;br /&gt;
&lt;br /&gt;
'''''형성적 권징''''' &lt;br /&gt;
&lt;br /&gt;
&amp;quot;형성적 권징&amp;quot;이 훨씬 더 자주 시행됩니다. 사실 형성적 권징은 모든 교인에게 항상 행해집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지도와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형성(formaiton)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성숙하게 양육해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설교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게 될 때, 또는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격려할 때, 이것이 형성적인 권징입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4:11~12, 히브리서 10:24~25, 골로새서 3:16 참조) 이러한 권징은 하나님께서 견책적 권징이 필요한 죄를 막기 위해 사용하시므로 중요합니다. 교회가 형성적 훈련에 의해 더욱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수록, 견책적 권징이 덜 필요합니다. &lt;br /&gt;
&lt;br /&gt;
'''''견책적 권징''''' &lt;br /&gt;
&lt;br /&gt;
&amp;quot;견책적 권징&amp;quot;은 특정 교인의 죄에 대한 구체적인 훈계 또는 견책입니다. &lt;br /&gt;
&lt;br /&gt;
때로는 견책적 권징은 비공식적입니다. 한 교인이 다른 교인에게 &amp;quot;이봐, 톰, 그건 잘못된 거 같아.&amp;quot;라고 하는 식입니다. 때로는 공식적입니다. 전체 성도들이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메리, 우리는 당신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므로 당신을 비기독교인처럼 대해야 합니다 &amp;quot; &lt;br /&gt;
&lt;br /&gt;
&amp;quot;신중한 교회(Deliberate Church)&amp;quot;에서 마크 디버(Mark Dever)와 폴 알렉산더(Paul Alexander)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유형의 권징 사이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amp;quot;우리가 육체의 훈련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에서 권징을 비교한다면 형성적 권징은 제대로 먹고 운동을 하는 것이라면, 견책적 권징은 마치 수술과 같은 것입니다.&amp;quot; &lt;br /&gt;
&lt;br /&gt;
'''II. 견책적 권징의 이점''' &lt;br /&gt;
&lt;br /&gt;
오늘 우리는 이 두 종류의 권징 중 견책적 권징에 집중할 것입니다. 견책적 권징의 이점은 무엇입니까? 몇 가지가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첫째, 견책적 권징은 권징받는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권징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사실 권징은 죄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회개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lt;br /&gt;
*둘째, 견책적 권징은 다른 크리스천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교회가 죄에 대항하여 말하고 행동할 때 전체 회중은 죄의 심각한 성격과 그 결과를 알게 됩니다. &lt;br /&gt;
*셋째, 견책적 권징은 교회 전체에 도움이 됩니다. 교회 권징은 도덕적 붕괴로부터 개교회를 보호함으로써 순결을 유지해 줍니다. 또한 교회에 다툼과 갈등을 가져오는 죄를 해결합니다. &lt;br /&gt;
*넷째, 견책적 권징은 교회의 공동체적 증거(corporate witness)에 유익하며, 따라서 비 기독교인들에게도 유익합니다 .견책적 권징은 전도 시 공동체적 증거를 강력하게 보호합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신자들의 온전한 공동체가 있을 때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사람들의 공동체, 즉 비 기독인들에게 사람들이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lt;br /&gt;
*마지막으로,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유익은 견책적 권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높아지시게 하려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눈에서 볼 때 빛나시기를 원합니다. 그중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그분의 위대한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될 죄를 교회에서 다루어야 할 책임입니다.&lt;br /&gt;
&lt;br /&gt;
교회 권징이 필요할 때, 어떻게 실행해야 합니까? 또한 어떻게 그리스도를 높이면서 동시에 연합을 증진하는 방법으로 권징을 할 수 있습니까? 성서는 여러 상황에서 권징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지침을 줍니다. &lt;br /&gt;
&lt;br /&gt;
'''III.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lt;br /&gt;
&lt;br /&gt;
첫째, 누군가가 당신에게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거리낌 없이 상대에게 말한 다음, 더 이상 상대와 말하지 않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원한을 품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방식은 성경에서 주어진 옵션이 아닙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서 이 질문에 답하고 계십니다. &lt;br /&gt;
&lt;br /&gt;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lt;br /&gt;
&lt;br /&gt;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최소한의 세 단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첫째, 가서 죄를 범한 형제와 이야기하십시오. 둘째, 형제가 듣지 않을 경우, 한 두 명의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다시 이야기하십시오. 셋째, 그가 여전히 듣기를 거부한다면 교회에 말하십시오. 그가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교회는 결국 그를 내쫓을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1단계: 가서 형제에게 잘못을 보여주십시오.''' &lt;br /&gt;
&lt;br /&gt;
첫 단계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의 경우, 죄를 범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분쟁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형제를 얻기 위해 우리가 희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상대와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준비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마음 준비하기 &lt;br /&gt;
&lt;br /&gt;
켄 산드(Ken Sande)는 자신의 저서 '피스메이커(The Peacemaker')에 이렇게 하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lt;br /&gt;
&lt;br /&gt;
*먼저 대면할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적으로 성장시키시도록, 그가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도록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이야기를 준비할 때 그 사람을 향한 당신의 마음이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lt;br /&gt;
*둘째, 죄를 범한 사람에게 가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은 매우 기만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형제나 자매에게 갈 성경적 근거가 있는지를 신중하게 기도하고 생각하십시오.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분쟁에서 당신이 이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잘못이 있는지 생각하십시오. 마태복음 7장 5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amp;quot;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amp;quot; &lt;br /&gt;
*셋째,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보십시오. 당신의 동기가 적절한지, 그리고 분노, 복수, 교만 또는 다른 죄가 되는 태도에서 죄를 범한 사람에게 가려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십시오(로마서 12:19). 대신, 당신의 목표가 그 형제와 자신 모두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화해인지 확인하십시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불편함을 없애고 싶은 것입니까, 아니면 형제가 죄에서 벗어나도록 섬기고 돕기 위한 것입니까? &lt;br /&gt;
*넷째, 단순히 자기 기분이 좋아지려고, 또는 공감하고 들어줄 사람을 만들려고 형제의 죄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죄를 범한 형제에게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거나 실제로 죄를 저지른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분출하려고 대화를 사용하는 것은 수군거림입니다. 그것은 화합을 약화시키고 마태복음 18장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구할 때조차도, 죄를 범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lt;br /&gt;
*다섯째, 가해자와 대면할 때 온유와 겸손, 사랑의 정신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amp;quot;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amp;quot; (잠 15:1).&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8장에 설명된 과정의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두 가지만 더 짚어 보겠습니다. &lt;br /&gt;
&lt;br /&gt;
''모든 허물을 다루어야 합니까?'' &lt;br /&gt;
&lt;br /&gt;
먼저, 자신에게 이렇게 자문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amp;quot;모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형제에게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아닙니다. 잠언은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인내와 참을성을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잠 19:11). 베드로는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알려줍니다(벧전 4:8). &lt;br /&gt;
&lt;br /&gt;
허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불화의 상태가 생긴 경우 또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위험이 될 때만 형제 또는 자매에게 가야 합니다. 날마다 그 허물이 생각납니까? 그 사람을 용서하기가 어렵습니까? 그 죄가 얼마나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 삶이 그리스도를 주변 세계에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릅니까? 그 죄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는 사인이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amp;quot;예&amp;quot;라면 형제나 자매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화해는 당신이 죄를 지은 것이든 아니든 간에 당신의 책임입니다.'' &lt;br /&gt;
&lt;br /&gt;
둘째로, 마태복음 18장은 잘못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죄를 지은 사람과 화해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마태복음 5장 23~24절은 죄지은 사람이 화해를 구하도록 요구합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그리스도인 사이의 좋은 관계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를 범한 사람에게 예배의 행위를 중단하고라도 화해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구절이 함께 제시하는 그림은 얼마나 놀라운가요! 두 명의 기독교 형제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둘 다 화해를 시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화해를 위해 서로 달려 가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2단계: 한두 명을 증참케 하라''''' &lt;br /&gt;
&lt;br /&gt;
죄를 범한 사람이 듣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두 명의 다른 사람을 데려가서 그와 이야기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 죄를 범한 사람은 자신이 죄를 범한 대상보다 제삼자의 말을 들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둘째, 권징 과정이 다음 단계로 진행될 경우 추가적인 인원이 회중의 증인 역할을 합니다. &lt;br /&gt;
&lt;br /&gt;
이 단계에서 자신이 잘못을 당한 사람인 경우, 두 가지를 명심하십시오. &lt;br /&gt;
&lt;br /&gt;
*첫째, 죄가 얼마나 객관적인지를 고려하십시오. 결국 의견이나 관점의 문제인 것으로 형제와 마주하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그 형제가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너무 교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마주하고 있습니까? 그것들은 정당한 우려일 수도 있지만, 교회 앞에서 입증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우려에 대해 당신이 그 사람과 이야기했고 그들과 당신이 의견이 맞지 않았다면, 그 문제를 내려놓고 성령의 깨닫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역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교회 권징의 과정은 구체적이고 쉽게 입증되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lt;br /&gt;
*둘째, 당신이 데려가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고, 신중하고, 공평하며, 훌륭한 판단력을 가졌는지 확인하십시오. 죄를 범한 사람은 그런 이들의 말을 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lt;br /&gt;
*셋째, 죄를 범한 사람에게 하기 전에 당신이 하려고 하는 바를 알리십시오. 교회 권징에 대한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는 바로 그 인식 때문에 그 사람이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바꾸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마지막으로, 증인이 자신의 편을 들도록 로비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수군거림 또는 중상모략일 수 있습니다.&lt;br /&gt;
&lt;br /&gt;
'''3단계: 교회에 알리기''' &lt;br /&gt;
&lt;br /&gt;
죄를 범한 사람이 여전히 듣기를 거부한다면, 이 문제는 교회로 가져가고, 그가 회개를 거부하면 교인 자격이 취소됩니다. &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8장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최대치의 표준이 아니라 최소치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지 덜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전체 교회에 문제를 맡기기 전에 장로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형적으로 취하는 적절한 단계입니다. &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8장의 패턴을 아셨습니까? 단계마다 더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기 위해 참여합니다. 최종 단계에 이르러 그 사람이 교회에서 나가 세상에 던져진다고 하더라도, 말하자면, 세상조차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회개케 하기 위해 섭리적으로 사용됩니다. &lt;br /&gt;
&lt;br /&gt;
'''IV. 만약 당신이 한 교인이 다른 교인에게 죄를 짓는 것을 보게 된다면?''' &lt;br /&gt;
&lt;br /&gt;
마태복음 18장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죄를 짓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나 형제나 자매가 죄를 지은 것을 알았지만, 그 죄가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다른 기독교인을 상대로 죄를 지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죄가 전혀 어떤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과 그 죄에 대해 이야기 할 성경적 의무가 있습니까? &lt;br /&gt;
&lt;br /&gt;
대답은 '예'이지만, 자격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lt;br /&gt;
&lt;br /&gt;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amp;quot;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amp;quot; 그리고 누가복음 17장 3절에는 &amp;quot;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amp;quot;고 말합니다. &lt;br /&gt;
&lt;br /&gt;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할 기회를 찾는 일만 만드는 자(busybodies)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1에 '일만 만드는 자들'이 되는 것에 대한 경고와 베드로전서 4:15에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meddlers)'에 대한 경고 참조)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격한 모든 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비생산적입니다. 우리가 형제나 자매에게 죄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적절한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lt;br /&gt;
&lt;br /&gt;
여기에는 어떤 엄격하고 확고한 규칙이 없으며, 하나님이 각 상황에서 주시는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첫째, 이 죄가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것입니까? 외인들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죄가 하나님에 관한 거짓을 말해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외인들의 인식에 영향을 줍니까? &lt;br /&gt;
*둘째, 다른 사람을 해치는 죄입니까?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을 받게 하거나 나쁜 예를 만들고 있습니까? &lt;br /&gt;
*셋째, 죄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불화와 분열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lt;br /&gt;
*또는 마지막으로 죄가 심각하게 죄를 지은 사람을 해치고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해를 끼치고 있습니까?&lt;br /&gt;
&lt;br /&gt;
그러한 질문에 &amp;quot;예&amp;quot;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 죄에 대해 죄를 범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V. 누군가가 교회 전체에 대해 공개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lt;br /&gt;
&lt;br /&gt;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적인 죄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단지 극소수의 사람들만 죄에 대해 알고 있거나 죄의 영향을 받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교인의 죄가 공개적이고 중대한 경우, 교회 회중 내에서 또는 심지어 공동체 밖에서조차 공개적으로 알게 된 문제일 경우 어떻게 됩니까? &lt;br /&gt;
&lt;br /&gt;
우리는 고린도전서 5장 1~11절에서 바울이 아버지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심각한 범죄에 대해 해당하는 사람을 추방하라고 회중에게 권고하는 상황을 봅니다. &lt;br /&gt;
&lt;br /&gt;
그런 공개적인 죄로 인해 바울은 마태복음 18장의 처음 두 단계를 따르도록 교회에 권고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죄를 범한 사람을 추방하라고 권고합니다. (고린도전서 5:4~5, 11, 23, 데살로니가후서 3:6, 로마서 16:17 참조) 사실 교회가 이러한 상황에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교회는 직무 태만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교회가 이 사람을 파문시키기를 바랐습니다. &lt;br /&gt;
&lt;br /&gt;
*첫째, 그것은 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를 교회에서 추방하는 것은 그의 신앙 고백이 거룩하지 못한 삶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것을 그에게 분명하게 해줍니다. &lt;br /&gt;
*둘째, 교회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심각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죄에 대해 대중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되며, 그리스도께서 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명성이 보존될 수 있도록 행동할 것을 교회에 권고합니다.&lt;br /&gt;
&lt;br /&gt;
'''VI. 교회 지도자가 죄를 짓는다면?'''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의 죄에 대해 성경이 말한 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위한 지도 구절은 디모데전서 5:19~20절입니다. &lt;br /&gt;
&lt;br /&gt;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lt;br /&gt;
&lt;br /&gt;
여기서 바울의 목표는 거짓 공격과 비난으로부터 장로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장로를 상대로 어떤 권징 조치가 취해지기 전에는 그 죄에 대한 두세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구절이 지혜롭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근거 없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자주 연관되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구절을 염두에 두고 두 가지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이 장로를 비난하는 소문이 듣게 된다면? 그리고 당신이 개인적으로 죄 가운데 있는 장로를 만나게 된다면? &lt;br /&gt;
&lt;br /&gt;
''당신이 장로의 죄에 대한 소문을 들을 경우'' &lt;br /&gt;
&lt;br /&gt;
어떤 사람이 장로에게 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은 간단한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수군거림 및 중상모략의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소문을 얘기한 사람에게 그 장로와 이야기하고, 당신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적극적으로 그 장로에 대한 비방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하고, 대신 상황을 성경적인 방식으로 다루십시오. &lt;br /&gt;
&lt;br /&gt;
''당신이 죄를 짓는 장로를 목격하는 경우'' &lt;br /&gt;
&lt;br /&gt;
장로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짓거나 아니면 장로가 죄를 짓는 것을 목격한다면 어떨까요? 그다음은 어떻게 하나요? 다음은 몇 가지 지침입니다. &lt;br /&gt;
&lt;br /&gt;
먼저 그분에게 이야기하십시오. 물론, 실제 상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겸손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분이 교회에서 책망할 것이 없다고 인정받아서 장로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장로에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십시오. &lt;br /&gt;
&lt;br /&gt;
둘째, 혼자 상황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다른 개인(또 더 좋은 방법은 다른 장로)에게 당신의 우려에 대해 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이 문제를 조용하고 신중하게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디모데후서 5:19의 의도를 위반하지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이 본문의 특정 단어가 여기서 유익합니다. &amp;quot;장로에 대한 송사를 받지 않는다&amp;quot;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거나 당신의 말은 듣지 못하도록 금지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송사를 받는다(그리스어 paradechomai)'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을 듣거나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amp;quot;사실로 받아들이는 것&amp;quot;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amp;quot;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 것이요.&amp;quot;라고 이 구절을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장로가 당신에게 죄를 지었고 그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른 교인이나 장로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거나 또는 그들이 도움 주는 것이 금지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이 당신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조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고발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판단되면, 그는 디모데후서 5:19에서 요구되는 '증인' 중 하나가 됩니다. &lt;br /&gt;
&lt;br /&gt;
셋째, 교회 지도자가 당신과 만났을 때 회개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문제를 계속할지를 신중히 결정하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해당 사안이 객관적인 문제인지 또는 의견이나 관점의 문제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후자의 경우 사안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문제, 예를 들어 횡령이나 간통 같은 경우,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딤전 5:19을 수행하는 것이 당신의 책임입니다. 죄를 목격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당신과 함께 장로와 대면하도록 요청하십시오. 필요한 경우 다른 장로들에게 이 일을 말하십시오. 디모데후서 5장 19절에 언급된 증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넷째, 권징 절차가 시작되면, 잘못을 당한 사람은 그와 함께 공동 기소자가 될 한 명 이상의 개인을 데려 와야 합니다.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문제를 신중하게 조사했다면 디모데전서 5:19의 증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장로가 범한 죄는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에 죄를 지은 장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하도록 명령합니다. 즉, 죄악의 성격에 관한 어떤 진술이 교회에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신뢰를 깨뜨린 지도자는 적절한 공개적 대응이 있을 때만 복귀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리더십은 더 큰 짐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로의 죄가 교회에 더 큰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VII. 결론''' &lt;br /&gt;
&lt;br /&gt;
교회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순결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성을 지키도록 힘써야 하며,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 권징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의 죄로 인해 교회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어떤 권징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이런 종류의 열정의 살아있는 예를 19세기 버지니아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교회의 원로이며 탁월한 교인이 알코올 중독이 되었습니다. . . . 그는 자신을 교회에 신고하고 자신의 죄를 후회하며 홍수 같은 눈물로 회개를 표시했지만, 교회가 그 의무를 이행하여 자신의 비행으로 인해 교회가 받을 비난으로부터 보호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 남자의 깊은 고통은 모든 이의 가슴 속에서 동정을 일으켰고, 교회 전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인들의 마음이 모여서 그 죄를 사하고 해당 사건을 마무리하자는 제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 의견에 즉시 동조했습니다. 단 하나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바로 죄를 지은 사람 자신의 목소리였습니다. 드디어 지식과 인정받은 경건함을 갖춘 목사님이 일어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매우 걱정된 눈으로 목사님을 응시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형제의 불행에 대한 자신의 유감을 표했으며,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 . 그러나 목사님은 죄를 지은 형제가 교회의 명예를 위해서 교회는 가장 단호한 방식으로 그가 지은 죄의 행동에 대해 허가하지 않음을 표현해야 하고 죄를 지은 사람을 출교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 . 교회는. 마지 못해서 목사와 죄를 지은 사람의 일치한 견해에 순종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출교되었지만, 1~ 2개월 후 복귀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아는 한 그 이후로는 구주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Joseph S. Baker, &amp;quot;교회 권징&amp;quot;, Polity , Mark Dever 편, 266쪽)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우리 모두는 개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이런 열정을 갖기를 바랍니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26 Sep 2017 20:48:05 GMT</pubDate>			<dc:creator>Kathyyee</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A0%9C10%EA%B3%BC:_%EA%B5%90%ED%9A%8C_%EA%B6%8C%EC%A7%95</comments>		</item>
		<item>
			<title>기다림 끝에 주님이 주신 귀한 친구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A%B8%B0%EB%8B%A4%EB%A6%BC_%EB%81%9D%EC%97%90_%EC%A3%BC%EB%8B%98%EC%9D%B4_%EC%A3%BC%EC%8B%A0_%EA%B7%80%ED%95%9C_%EC%B9%9C%EA%B5%AC%EB%93%A4</link>
			<description>&lt;p&gt;Kathyyee: 새 문서: {{info|The Friends You Need Are Worth the Wait}}지금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도시, 새로운 교회로 보내시려는 주님의 계획을 감지 하면서 이 일은 시작 ...&lt;/p&gt;
&lt;hr /&gt;
&lt;div&gt;{{info|The Friends You Need Are Worth the Wait}}지금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도시, 새로운 교회로 보내시려는 주님의 계획을 감지 하면서 이 일은 시작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흥분의 매력이 잘 모르는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우게 했고 우리는 우리 가정에 주님이 준비하신 앞날을 들뜬 맘으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간혹 확신이 없는것 같을때는 마가복음 10:29-30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29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이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을 생각나게 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친구들은?''' &lt;br /&gt;
&lt;br /&gt;
어느날, 집을 팔고 짐을 싸고, 새 집을 구하고 하며 들뜬 가운데 나의 친구들은? 이삿짐 상자에 넣어 가져갈수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이때 다른 생각이 스쳐간것은 사실입니다. 이 자매 들은 나의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했고, 공원서 몇시간동안 함께앉아 아이들이 뛰노는것을 즐겨 보기도 했고, 커피를 마시며 스크래블 게임도 한 친구들 입니다. 나의 친구 자매들! 마가복음10장의 말씀은 친구들에게도 해당이 될까요? 무엇보다도 나역시 자매의 하나로 좋은 자매들과의 교제와 친구 관계를 늘 원합니다. 하나님은 자매들과 좋은 우정을 나누고자 하는 나의 맘을 아실까요? &lt;br /&gt;
&lt;br /&gt;
지금 나는 진정으로 그렇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또한 자매들간의 교제가 얼마나 내게 필요한지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들을 바로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사를 하고 오랫동안 외로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출장이 잦았고 새 교회의 자매들은 모두 바빠 보였습니다. 친한 친구들을 다시 만들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단 한명이라도 가끔 같이 커피를 마실수 있는 자매를 주십사 기도한 기억이 납니다. 그 응답은 “아직 아니다” 였습니다. &lt;br /&gt;
&lt;br /&gt;
기다림은 참 어려웠습니다-- 허나 가치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전화 온 날''' &lt;br /&gt;
&lt;br /&gt;
아마 평생을 기다린듯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사전 동네의 한친구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나를 찿았습니다. 친구가 같이 같은 장소에만 있을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을 상기시켜준 생명줄 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도로 소통하며, 같이 기뻐하기도하고 슬퍼 하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스크래블 게임도 합니다. 내게 많은 도움이 됐지만 앞날을 생각할때 기도의 확실한 답은 아니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생일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는데 함께 하실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생일때 만나 서로를 축하하는 모임입니다 혹 오실수 있는지 전화했습니다.” &lt;br /&gt;
&lt;br /&gt;
함께 할수 있을까요? 나는 전화를 하며 눈물이 나의 뺨위로 흐르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 통화로 지금 까지 한달에 두번 커피모임을 갖는 자매들의 모임이 될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달콤한 준비! &lt;br /&gt;
&lt;br /&gt;
이 모든것을 겪으며 내가 친구와 교제에 대해 무었을 배웠을 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나에게 힘을 주셨을 까요? 내가 좋은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얻은 누구나 적용할수 있는 다섯가지의 평범한 지혜를 나누겠습니다. &lt;br /&gt;
&lt;br /&gt;
'''1. 모험을 시도 하십시요.''' &lt;br /&gt;
&lt;br /&gt;
내가 커피숍 앞에서 들어 가야할까 말까를 생각한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나올때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람을 가장 잘 맞는 시간에 우리의 삶속에 보내주십니다. 새로운 깊이를 발견할수 있는 인생의 친구일수도 있고 그냥 한번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든 하나님은 삶에 자매친구들로 인히여 풍요하게도 하시고 도전도 주시고 새힘도 주십니다. 시도하지 않고는 좋은 교제를 놓칠수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2. 나이를 상관치 마십시요.''' &lt;br /&gt;
&lt;br /&gt;
여러 세대에 다른 나이 친구들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나는 나이가 많으나 어리나 이런 여러 자매친구들로 인해 늘 감사합니다. 많은 경험이 있는 나이가 지극한 자매들뿐 아니라 젊은 자매들로 부터도 삶을 깊이를 나눌 필요가 있다 생각하기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3. 틀에 벗어난 생각을 하십시요.''' &lt;br /&gt;
&lt;br /&gt;
우리모두는 어디에서만 새로운 친구를 만날수 있다는 통상적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음과 눈을 크게 열고 보기를 권합니다.. 도서관, 학교, 교회, 가정 학교 그룹 야채 가게나 동네 공원은 어떠신가요?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나의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하신 몇가지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도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하시기위해 어떤 장소를 준비하셨을 까요? &lt;br /&gt;
&lt;br /&gt;
'''4. 먼저 친구가 되십시요.''' &lt;br /&gt;
&lt;br /&gt;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친구들이 있는것은 참 힘들어요” 라고 했습니다. 맞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 가치있는 것입니다. 나이든 한 상담자는 친구를 찾으려면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종종 우리는 다른사람이 친구처럼 해주기 전에 먼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오는 기쁨은 값으로 따질수 없이 큽니다. &lt;br /&gt;
&lt;br /&gt;
'''5.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요.''' &lt;br /&gt;
&lt;br /&gt;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친구관계를 위해서도 좋고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는 것이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서로 교제하며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좋은 자매들과 교제하며 친구되는 우리의 바람을 만족시키도록 준비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나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방법과는 다르더라도 말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원하는 그 친구도 좋은 친구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수 있습니다. 실망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맞는 사람, 친구들을 완벽한 시간에 주시기 위하여 나의 삶속에서 일하고계심을 믿으십시요.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Sat, 26 Aug 2017 23:56:59 GMT</pubDate>			<dc:creator>Kathyyee</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A%B8%B0%EB%8B%A4%EB%A6%BC_%EB%81%9D%EC%97%90_%EC%A3%BC%EB%8B%98%EC%9D%B4_%EC%A3%BC%EC%8B%A0_%EA%B7%80%ED%95%9C_%EC%B9%9C%EA%B5%AC%EB%93%A4</comments>		</item>
		<item>
			<title>우리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이유와 기념하는 방법에 대하여</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A%B0%EB%A6%AC%EA%B0%80_%EC%A3%BC%EC%9D%98_%EB%A7%8C%EC%B0%AC%EC%9D%84_%EA%B8%B0%EB%85%90%ED%95%98%EB%8A%94_%EC%9D%B4%EC%9C%A0%EC%99%80_%EA%B8%B0%EB%85%90%ED%95%98%EB%8A%94_%EB%B0%A9%EB%B2%95%EC%97%90_%EB%8C%80%ED%95%98%EC%97%AC</link>
			<description>&lt;p&gt;Pcain: ‘우리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이유와 기념하는 방법에 대하여’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Why and How We Celebrate the Lord's Supper}}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주의 뜻이라면) 우리가 다음 주에 다시 로마서로 돌아가기 전에, 주의 만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문맥을 살피면서 주께서 명하신 이 성스런 예식을 왜 기념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념하여야 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메시지를 먼저 전하고 나서 주의 만찬으로 넘어가겠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의 삶과 교회에 관한 완전무결한 기초가 되는 성경 다음으로, 우리 교회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베들레헴 침례교회 장로 신앙 확언서'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 문서를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교회 홈페이지나 디자이어링갓 웹사이트에서 그 문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서 중 단락 12.4는 주의 만찬에 대하여 우리가 고백하는 교리의 요약입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우리는 주의 만찬이 주님의 명령이라고 믿는다. 신자들이 모여서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신다. 떡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며, 주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 안의 새 언약을 의미한다. 이처럼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심으로써 주를 기념하여 주의 만찬을 행한다. 그럼으로써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합당한 방식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데, 이는 물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믿음에 의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을 통하여 획득하신 유익들의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주의 만찬에 대한 이러한 이해의 성경적 기초를 여섯 대지로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적 기원, 2) 믿는 자만 성찬에 참여함, 3) 물질적 행동, 4) 정신적 행동, 5) 영적 행동, 6) 신성한 심각성.&lt;br /&gt;
&lt;br /&gt;
==== 1. 주의 만찬의 역사적 기원 ====&lt;br /&gt;
&lt;br /&gt;
마태복음(26:26), 마가복음(14:22), 누가복음(22:14)은 모두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 그의 제자들과 가지신 마지막 만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복음서의 기록들은 각각 예수님께서 감사하시고 떡과 잔을 축복하시고, 이를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떡은 그의 몸이고 잔은 언약의 피라고 혹은 그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22:19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amp;quot;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amp;quot;&lt;br /&gt;
&lt;br /&gt;
초대 교회 시대 기록을 보면 교회는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주의 만찬을 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의 죽음을 기념하여 그 만찬을 재연하였습니다. 바울의 서신은 가장 초기의 증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1:20에서 그는 교회 생활에 있어서 &amp;quot;주의 만찬&amp;quot;이라고 불리는 어떤 의식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이는 &amp;quot;주의 만찬&amp;quot;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필시 주 예수님이 그 예식을 제정하시고 명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그 중심적 의미가 바로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2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amp;quot;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amp;quot; 여기서 &amp;quot;주께 받은 것이니...&amp;quot;라는 구절은 필시 의미하기를 주님이 바울(다른 사도들과 달리 최후의 만찬 자리에 있지 않았음)에게 직접 주의 만찬의 시행에 대하여 확인하여 주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주의 만찬의 역사적 기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만찬입니다. 주의 만찬의 시행이라든가 주의 만찬이 갖는 의미는 마지막 만찬 중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주의 만찬의 기원이십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의 만찬의 촛점이자 그 내용이십니다. &lt;br /&gt;
&lt;br /&gt;
==== 2. 믿는 자들이 참여함 ====&lt;br /&gt;
&lt;br /&gt;
주의 만찬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 즉 교회의 행위입니다. 이는 불신자들의 행위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지켜 볼 수 있습니다. 실로, 불신자들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지켜 보는 것을 저는 환영합니다. 주의 만찬과 관련하여 비밀스럽게 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공적으로 시행됩니다. 그리고 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비밀스레 시행되는, 사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이는 한 자리에 모인 교회에 의해 시행되는 공적인 행위입니다. 사실 고린도전서 11:26에서 바울은 말하길, &amp;quot;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amp;quot; 라고 합니다. 따라서 주의 만찬에는 전하고 선포하는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선포하는 것으로서 주의 만찬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 독특한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요양원이나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주의 만찬 받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종류의 개별적인 기념 행위는 예외적인 것이며, 성경적 표준은 아닙니다. 성경적 표준은 교회의 모임 중에 행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을 보면, 바울은 다섯 번이나 교회의 모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모였을 때 주의 만찬을 먹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17절 하반절입니다: &amp;quot;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amp;quot; 18절: &amp;quot;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amp;quot; 20절: &amp;quot;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amp;quot; 33절: &amp;quot;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amp;quot; 34절: &amp;quot;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amp;quot;&lt;br /&gt;
&lt;br /&gt;
다시 말하면, 고린도인들은 주의 만찬을 그들의 일반적 저녁 식사와 너무 긴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주의 만찬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을 것이 많았고 다른 이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말하기를, 식사는 집에서 먹고 교회가 함께 모여서는 주의 만찬을 먹으라고 합니다. &lt;br /&gt;
&lt;br /&gt;
한편, &amp;quot;교회&amp;quot;라는 단어가 18절에 사용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amp;quot;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amp;quot;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우상에서 돌이켜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삶의 소망을 위하여, 그리고 영혼의 만족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위해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한 자들 말입니다. 따라서 주의 만찬에는 예수님을 믿은 신자들이 참여합니다.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3. 주의 만찬의 물질적 행동 ====&lt;br /&gt;
&lt;br /&gt;
주의 만찬의 물질적 행동은 풀 코스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23-25절, &amp;quot;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amp;quot;&lt;br /&gt;
&lt;br /&gt;
떡의 종류나 떡을 떼는 방법 등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특정되지 않습니다. 잔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말해주는 유일한 기록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각각에 있어서 한 절 안에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amp;quot;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amp;quot; (마태복음 26:29, 참조 마가복음 14:25, 누가복음 22:18). 따라서 &amp;quot;포도나무에서 난 것&amp;quot;이라고 지칭됩니다. 단순한 포도 주스를 사용하든지 아니면 포도주를 사용하든지 이는 결코 큰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본문 안에는 둘 중 어느 하나는 명하고 나머지는 금지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재미로 하는 대체물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베이글이라든가 콜라 등을 사용하는 것 말입니다. 주의 만찬은 놀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심중함을 가지고 이를 기념하여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얘기하겠습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넘어가면서 신약에는 주의 만찬의 빈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을 언급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기를 매주 행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분기별로 행합니다. 우리는 그 중간 정도 지점에 있으며 일반적으로 매달 첫 주일에 주의 만찬을 기념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되어 고려할 사항은 이렇습니다. 1) 어느 정도 빈도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사역과 관련하여 그 합당한 중요성에 부합하는가? 2) 어느 정도 빈도로 행하는 것이 우리가 이에 무심해지지 않고 그 중요한 가치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러한 고려 사항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각 교회들은 서로 다른 빈도로 주의 만찬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 4. 주의 만찬의 정신적 행동 ====&lt;br /&gt;
&lt;br /&gt;
주의 만찬 참석자들의 정신적 행동은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역사적으로 죽으신 것에 대하여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24절과 25절입니다: &amp;quot;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amp;quot;&lt;br /&gt;
&lt;br /&gt;
주의 만찬은 매번 기독교가 뉴 에이지 영성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거듭 상기시킵니다. 주의 만찬은 여러분의 내적 존재와 접촉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셨습니다. 그는 몸을 가지고 계셨으며 피를 내뿜는 심장을 가지고 계셨으며 피를 흘리는 피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는 죄인의 자리에서 로마 제국의 십자가 상에서 공적으로 죽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역사상 영 단번에 일어났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주의 만찬의 정신적 행동은 기초적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상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꿈꾸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과거에 있었던 일에 의식적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에 대하여 성경에서 배운 것에 우리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기울이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매번 우리를 역사의 핵심에 뿌리내리게 합니다. 떡과 잔. 몸과 피. 사형집행과 죽음. &lt;br /&gt;
&lt;br /&gt;
==== 5. 주의 만찬의 영적 행동 ====&lt;br /&gt;
&lt;br /&gt;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태까지 제가 기술한 것들은 불신자들도 할 수 있습니다. 마귀도 육신만 있다면, 이를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기억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들에는 그 자체로서 고유한 신령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의 만찬이 예수님께서 의미하신 바대로 제대로 행해지려면, 먹고 마시고 기억하는 것 외에 무엇인가가 더 벌어져야 합니다. 즉, 불신자들이나 마귀들은 할 수 없는 무언가 말입니다. &lt;br /&gt;
&lt;br /&gt;
한 번 더 장로 신앙 확언서에서 핵심 문장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내용이 성경 중 어느 부분에서 비롯된 것인지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amp;quot;합당한 방식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데, 이는 물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믿음에 의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을 통하여 획득하신 유익들의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amp;quot;&lt;br /&gt;
&lt;br /&gt;
&amp;quot;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데......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믿음에 의하여....&amp;quot; 라는 부분은 성경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0:16-18입니다. 제가 그 구절들을 읽을 때, 참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koinōnia estin tou haimatos tou Christou)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ouchi koinōnia tou sōmatos tou Christou estin)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koinōnia tou thusiastēriou) 자들이 아니냐&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여기 기억하는 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기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도를 보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하길,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그의 몸과 피 안의 코이노니아 혹은 교제 혹은 교통(koinōnia)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의 죽음에 동참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 믿음에 의하여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기 ====&lt;br /&gt;
&lt;br /&gt;
이 참여/함께 나눔/동참 등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8절이 그 힌트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18절은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유대 희생 제사 가운데 일어나는 것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amp;quot;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일종의 같은 단어임] 자들이 아니냐?&amp;quot; 제단에 참여/함께 나눔/동참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이는 그들이 제단에서 벌어지는 일을 함께 나누고 공유한다는 것 혹은 제단에서 벌어지는 일로부터 유익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죄 용서와 하나님과의 회복된 교제 등을 즐기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16절과 17절은 의미하길, 신자들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그들은 영적으로 또 다른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 상에서 일어났던 것을 먹고 마시는 —즉 우리 생명 안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믿음에 의하여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하시는 그 모든 것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를 위하여 획득하신 유익으로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매달 주의 만찬 앞에서 여러분의 촛점을 여러 가지 사항들로 이끌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과의 화평, 그리스도 안의 기쁨, 장래의 소망,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역경 속에서의 안전,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인도하시고 지도하심, 병으로부터의 치유, 유혹에서의 승리 등등.) 그렇게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우리를 위하여 제공된 그의 흘린 피와 그의 상한 몸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하길, &amp;quot;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amp;quot;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모든 선물, 그리고 하나님과의 모든 즐거운 교제 등은 예수님의 피로 획득되었습니다. 바울이 &amp;quot;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amp;quot; 라고 하였을 때, 이는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믿음으로 영적으로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사신 모든 영적 축복을 먹는 것이 아니냐?' 불신자는 아무도 이를 행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이를 행할 수 없습니다. 이는 주께 속한 가족을 위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기념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을 영적으로 마음껏 먹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6. 주의 만찬의 신성한 심중함 ====&lt;br /&gt;
&lt;br /&gt;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한 것처럼 끝마치고자 합니다. 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일어난 일의 심각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주의 만찬을 우습게 보고, 경하게 여기고, 부주의하게,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면, 여러분이 신자라 하더라도 여러분은 목숨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이는 진노 때문이 아닙니다. 아버지로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7-32을 천천히 읽을 터이니, 이제 우리 모두 주의 만찬의 식탁으로 기쁘게 그리고 심중한 마음으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즉, 그리스도의 소중한 선물을 믿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자신이 충분히 선한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데서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데로 기꺼이 돌이키고자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즉, 이 떡은 단순히 생선 샌드위치처럼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마치 고린도 교회의 누군가처럼]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다음 구절이 설명하듯, 지옥에 가기 위해서 죽은 것은 아님]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즉,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않음[]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즉, 지옥에 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주의 만찬을 경히 여기지 마십시오.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들 중 하나입니다. 이제 함께 주의 만찬을 먹도록 합시다.&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03 Aug 2017 20:15:45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A%B0%EB%A6%AC%EA%B0%80_%EC%A3%BC%EC%9D%98_%EB%A7%8C%EC%B0%AC%EC%9D%84_%EA%B8%B0%EB%85%90%ED%95%98%EB%8A%94_%EC%9D%B4%EC%9C%A0%EC%99%80_%EA%B8%B0%EB%85%90%ED%95%98%EB%8A%94_%EB%B0%A9%EB%B2%95%EC%97%90_%EB%8C%80%ED%95%98%EC%97%AC</comments>		</item>
		<item>
			<title>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합시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82%AC%EB%9E%8C%EB%93%A4%EC%97%90_%EB%8C%80%ED%95%98%EC%97%AC_%EB%A7%90%ED%95%98%EA%B8%B0%EB%B3%B4%EB%8B%A4%EB%8A%94_%EA%B7%B8_%EC%82%AC%EB%9E%8C%EC%97%90%EA%B2%8C_%EC%A7%81%EC%A0%91_%EB%A7%90%ED%95%A9%EC%8B%9C%EB%8B%A4</link>
			<description>&lt;p&gt;Pcain: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합시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alking to People Rather Than About Them}} &lt;br /&gt;
&lt;br /&gt;
===== 지난 8월 6일자 설교에서 발췌함 =====&lt;br /&gt;
&lt;br /&gt;
5개월간의 공백 이후에 한 첫 번째 설교에서, 저는 설교 원고 중 특정 부분을 설교 도중 말하지 않고 남겨 놓았습니다. 설교 원고에는 있었지만, 설교의 주요 주제의 흐름에 꼭 들어맞는 것 같지 않아서 일단 그 부분을 빼 놓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부분에 대해 교우들에게 정말로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그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누가복음 18:9에서 누가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의 첫 부분을 다음과 같이 도입합니다: &amp;quot;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amp;quot; 이러한 도입부는 일견 대수롭지 않게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예수님이 누구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지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에 대해서 이 비유를 말씀했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고 그들에게 말씀했다고 기록합니다. 즉,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눈을 보면서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자기 의에 빠져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는 그들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lt;br /&gt;
&lt;br /&gt;
이는 그리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큰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교훈을 따릅시다.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맙시다.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그들에게 직접 말합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것은 죄악된 영혼의 혀에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며—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직접 말하는 것은—이것은 종종 맛이 쓰며—어렵습니다. 당신이 그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그들은 당신이 혹 오해하고 있는 것을 정정할 수도 없으며 문제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직접 말해 주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직접 말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당신이 어떤 문제에 대해 그 당사자에게 직접 말한다면,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편안한 선택만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사랑하는 선택을 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짧게 보면, 당사자에게 직접 말해 주는 사랑의 행동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자기보호적인 갈등 회피의 길은 이보다 쉽습니다. 그러나 멀리 내다 보면, 우리가 사랑의 길을 저버리고 갈등 회피의 쉬운 길을 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우리의 양심은 우리를 정죄합니다. 그러니,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수군거리지 말고,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하십시오. 그럼으로써, 예수님의 본보기를 닮아 가도록 하십시오. 그 사람의 삶에서 은혜의 증거가 목격되는 것으로 인하여 격려해 주며, 동시에 주의, 경고, 교정, 혹은 심지어 비난의 말도 해 주면서 그 사람에게 직접 얘기하도록 합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형제들의 전 범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전 범위의 말들을 사용하라고 강하게 촉구합니다: &amp;quot;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amp;quot; (데살로니가전서 5:14)&lt;br /&gt;
&lt;br /&gt;
이는 당신이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고는 그를 비판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 설교에 대해서 저에게 먼저 말하지 않고는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제 설교에 대해 토론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공인은 노출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리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제 말씀은 어떤 형제나 자매가 어떤 죄악된 태도나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고 그들에게 가서 겸손한 신앙상담으로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아마 그들에게 비유로 말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8:9-14에서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왕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이는 죄를 범한 후에 나단 선지자도 그렇게 했습니다(사무엘하 12:1-4). 그러나 그렇게까지 창의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창의력보다 더 중요합니다. &lt;br /&gt;
&lt;br /&gt;
저는 우리 교회가 남에 대해 수군거리는 죄에서 자유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솔직담백하고 정직하고 용감하고 겸손해집시다. 예수님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직설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때때로 그런 소리가 납니다. 그는 냉혈하고 매정하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이 지구상에 살았던 그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은 분이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서 우리도 그분을 따라갑시다. 그분이 죽으심으로 우리 눈에 있던 들보와 티끌들이 모두 용서받았습니다. 이 용서의 사실은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줍니다. 특히 우리가 우리 형제와 자매의 잘못도 예수님에 의해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서로간의 인간관계에 있어 얼마나 놀라운 위치에 서 있습니까.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은혜 안에서 자라가기를 사모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러한 공동체에 있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해 수군거리기보다는 서로에게 직접 말해 주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를 소원하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lt;br /&gt;
&lt;br /&gt;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03 Aug 2017 19:28:22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82%AC%EB%9E%8C%EB%93%A4%EC%97%90_%EB%8C%80%ED%95%98%EC%97%AC_%EB%A7%90%ED%95%98%EA%B8%B0%EB%B3%B4%EB%8B%A4%EB%8A%94_%EA%B7%B8_%EC%82%AC%EB%9E%8C%EC%97%90%EA%B2%8C_%EC%A7%81%EC%A0%91_%EB%A7%90%ED%95%A9%EC%8B%9C%EB%8B%A4</comments>		</item>
		<item>
			<title>자녀를 위한 가장 두려운 기도</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9E%90%EB%85%80%EB%A5%BC_%EC%9C%84%ED%95%9C_%EA%B0%80%EC%9E%A5_%EB%91%90%EB%A0%A4%EC%9A%B4_%EA%B8%B0%EB%8F%84</link>
			<description>&lt;p&gt;Kathyyee: &lt;/p&gt;
&lt;hr /&gt;
&lt;div&gt;{{info|The Most Frightening Prayer I Could Pray for My Children}}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꼭 해야할 기도 하나는 아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어려운 기도 일것 입니다. &lt;br /&gt;
&lt;br /&gt;
늘 우리는 자녀들의 좋은 모습을 위해, 건강, 학교 성적과 친구 관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또 자녀들의 앞날과 진로 직장을 위해 기도 합니다. 나는 또한 나의 아들들이 좋은 믿음의 자매와 만나 결혼하기를 기도합니다. 솔직히 우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할때 순조롭고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자녀들이 평안하고 쉽고 고통과 고난이 없는 삶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lt;br /&gt;
&lt;br /&gt;
'''기도가 어려워질 때''' &lt;br /&gt;
&lt;br /&gt;
헌데 나의삶과 믿음의 항로를 돌아보면 모든 고난과 시험의 도전속에서 나와 함께 하신 주님을 볼수 있습니다. 내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마음의 고통이 나로 하여금 주님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또 내가 고민하고 싸워야했던 죄와 우상들을 나의 손에서 은혜로 다 벗겨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의 험산준령들과 고통스러웠던 환경들을 통하여 내가 주께 더 가까이 갈수 있게 하셨고 나를 새로이 다듬으시며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들은 나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들이지만 이런일들이 나의 자녀들에게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들어내어주셔서 구세주 주님이 필요함을 알게되고 자신들의 타락한 모습에서 깨어나와 복음에만 온전히 매어 사는것을 배우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기도는 참어렵습니다 . &lt;br /&gt;
&lt;br /&gt;
'''주께로 더 가까이 가는 길''' &lt;br /&gt;
&lt;br /&gt;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자녀들도 우리가 겪었던것 같은 험산길을 파해쳐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죄에서 돌아서 회계하고 빈손으로 주님께 나아오는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되고 그들만의 간증을 만들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엄마로서 정말 두려운 것은 만약 그들이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 무었인지를 깊이 깨닳지 못한다면 나의 자녀들이 순탄하지도, 안정되지도 안전 하지도 않은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나의 자녀들은 고난도 견뎌봐야하고 어둠의 계곡도 걸어봐야하고 심한 슬픔도 겪어봐야 할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로 주께 가까이 오게하는 길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나는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을 자판기나 화제 보험처럼 생각하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길 원합니다. 그 열정은 살아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위대하심 앞에 머리 숙이며 복음에 기쁘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도 말씀을 꼭 붙잡는 사람들이길 원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려주길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가장 중요한 것''' &lt;br /&gt;
&lt;br /&gt;
이것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십자가 희생의 은혜로만 죄를 용서 받을수 있음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2)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깊은 죄성에 대해 바로 알아야하고 주님이 없이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만이 소망이시고 의로운 구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그 용서가 얼마나 필요함을 자녀들이 깨닫게 될때 내가 가장 바라던 주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이 자라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그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것은 정말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없습니다. 아버지, 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더 알게 하옵소서.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02 Aug 2017 02:38:48 GMT</pubDate>			<dc:creator>Kathyyee</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9E%90%EB%85%80%EB%A5%BC_%EC%9C%84%ED%95%9C_%EA%B0%80%EC%9E%A5_%EB%91%90%EB%A0%A4%EC%9A%B4_%EA%B8%B0%EB%8F%84</comments>		</item>
		<item>
			<title>떨며 즐거워하라</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96%A8%EB%A9%B0_%EC%A6%90%EA%B1%B0%EC%9B%8C%ED%95%98%EB%9D%BC</link>
			<description>&lt;p&gt;Pcain: ‘떨며 즐거워하라’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Rejoice with Trembling}}&amp;lt;br&amp;gt; &lt;br /&gt;
&lt;br /&gt;
===== 시편 2:11-12에 대한 묵상 =====&lt;br /&gt;
&lt;br /&gt;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lt;br /&gt;
&lt;br /&gt;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 . .'''&lt;br /&gt;
&lt;br /&gt;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라는 명령은 시편 100편 2절에 나오는 &amp;quot;여호와를기쁨으로 섬기며&amp;quot; 라는 명령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두 명령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시편 2편 11절의 &amp;quot;떨며 즐거워할지어다&amp;quot;라는 구절에는 이 두 감정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기 진정한 두려움과 진정한 기쁨이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기쁨이 있는 신자들에게 동시에 진정한 두려움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진정한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히 12:29). 선택된 자들은 안전한 것이 아니냐구요? 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였습니다. &amp;quot;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amp;quot; (고후 13:5). &amp;quot;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amp;quot; (고전 10:12). 그리스도 안에서의 확신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부주의하면서 우리가 과거에 믿기로 했던 결정 등에 의존하는 주제넘은 자신감이 아닙니다. 우리의 안전은 우리가 과거에 내린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매일 보존하고 지켜주시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amp;quot;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amp;quot; (유다서 1:24). 그가 우리를 보호하시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안식하려고 하는 우리의 경각심 내지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고 일깨우시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 . 떨며 즐거워하라.'''&lt;br /&gt;
&lt;br /&gt;
두려움은 우리의 즐거움을 빼앗아가지 않습니다. 이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두려움은 우리를 안전함이 있는 그리스도에게로 이끕니다. 둘째, 심지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도달했을 때에도, 그리스도는 모든 두려움을 다 없애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여러 두려움 중에서 소망을 파괴하는 두려움만 제거하여 주시며 나머지 다른 부분들은 그냥 남겨두십니다—두려움 중에는 우리가 영원토록 이를 느끼기를 원하는 그러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위대한 광경에 직면하면 우리는 일종의 경외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경외감, 놀라움, 혹은 떨림들 중에는 우리의 기쁨의 일부분이 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러한 떨림은 기쁨과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쁨의 일부분이며 우리는 이러한 떨림을 느끼기 원합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 보면,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보러 갑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괴물이 극장 안에 실제로 들어올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전을 파괴하지 않는 한 그들은 공포를 느끼면서 무서운 느낌을 즐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전하고자 하는 만큼 무서운 느낌을 즐깁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무서운 느낌은 그들에게 있어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진리의 메아리입니다. 우리가 다치지 않는 한 무서운 공포 체험에는 우리를 깊이 만족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떨림이 시시한 영화의 공포 정도가 아니라 거룩함의 장엄함에서 비롯될 때 우리에게는 가장 큰 만족이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 . .'''&lt;br /&gt;
&lt;br /&gt;
하나님은 그의 아들에 대해서 질투하십니다. &amp;quot;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amp;quot; (출애굽기 34:14). 하나님께 돌려야 마땅한 우리의 애정을 다른 곳에 돌릴 때 하나님의 분노는 촉발됩니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지 않을 때 하나님의 진노는 촉발됩니다. 물론 가롯 유다 같은 위선적 입맞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입맞춤은 시편 2편에서 말하는 입맞춤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입맞춤은 경배과 순종의 입맞춤입니다—아마 우리가 그의 앞에 절하며 그의 발에 입맞추는 것과 같은 그런 입맞춤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적당히 타협하며 노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더 사랑할 때, 우리는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최고의 보물이 되시거나, 혹은 하나님이 우리의 적이 되실 뿐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우리 하나님과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보물 때문에 그에게 등을 돌린다면, 그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 .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lt;br /&gt;
&lt;br /&gt;
'급하심이라'란 단어로 번역되었지만, 이는 여기서의 최상의 단어 선택은 아닙니다. 이 단어는 '갑자기'란 의미에서 그렇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성경이 끊임 없이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amp;quot;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amp;quot;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34:6). &amp;quot;노하기를 빨리 하지&amp;quot; 않고 &amp;quot;노하기를 더디&amp;quot;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시편 2:12절은 &amp;quot;그의 진노가 갑자기 발하여질 수 있다&amp;quot;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내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의 인내가 갑자기 소진되고 이내 당신은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지 않고 계속 고집하다가는, 언젠가 갑자기 당신은 당신의 입술 안에서 독사가 쏘는 듯한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며, 갑작스런 파멸의 공포와 고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무한정 계속 되리라고 마음대로 상상하지 마십시오. &lt;br /&gt;
&lt;br /&gt;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lt;br /&gt;
&lt;br /&gt;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살핌의 영역 밖의 모든 곳은 위험합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숨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이 두려워서 도망쳐 숨으려 한다면, 당신은 숨을 곳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살핌 밖에는 오직 진노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유일한 피난처가 있는데 그곳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가장 안전한 곳—유일하게 안전한 곳—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하나님 안에 피하십시오. 그의 날개 안에 숨으십시오. 이곳이 우리가 터잡고 살아갈 곳이며 우리가 떨며 즐거워하며 섬기는 곳입니다. 이곳은 마치 태풍의 눈과 같이 조용하고 평안합니다—주위에는 진노의 공포가 가득하지만 여기는 너무나 아름답고 조용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달콤한 교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요함과 사랑 가운데 이루어지는 교통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분은 우리의 가장 깊은 필요를 채우십니다. 저는 당신을 이곳으로 초대합니다. &lt;br /&gt;
&lt;br /&gt;
당신과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01 Aug 2017 19:14:30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96%A8%EB%A9%B0_%EC%A6%90%EA%B1%B0%EC%9B%8C%ED%95%98%EB%9D%BC</comments>		</item>
		<item>
			<title>모든 보물들을 배설물로 만드는 보배</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AA%A8%EB%93%A0_%EB%B3%B4%EB%AC%BC%EB%93%A4%EC%9D%84_%EB%B0%B0%EC%84%A4%EB%AC%BC%EB%A1%9C_%EB%A7%8C%EB%93%9C%EB%8A%94_%EB%B3%B4%EB%B0%B0</link>
			<description>&lt;p&gt;Pcain: ‘모든 보물들을 배설물로 만드는 보배’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Treasure That Turns Treasures to Garbage}} &lt;br /&gt;
&lt;br /&gt;
===== 설교하지 않은 원고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바울은 종종 상대방이 소중히 여기는 헛된 가치를 기준으로 겨루어 보고, 이에 이긴 다음에, 그러한 대결은 헛된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11:21–12:11에서 바울은 자신의 “우월한” 업적을 자랑하고 나서,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고린도후서 12:11)라고 말합니다. 즉, 너희 기준으로 내 자신을 측정해볼 수 있고, 이길 수 있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무의미하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바울은 여기 빌립보서 3장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행악하는 개들(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삼가라고 교회에 경고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육체를 신뢰한다는 것”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 행위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2-3절, 9절 참고).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amp;quot;좋다. 너희가 육체를 신뢰하고 율법의 행위를 의지한다니 그럼 대결을 해 보자.&amp;quot; 그리고 나서 자신의 육체의 행위를 열거하여, 그가 이룬 율법적인 성취로써 상대방을 링 밖으로 밀어냅니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이 말은 사실입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나서, 성경 전체에서 최고의 구절들 중 세 구절이 나옵니다. 핵심은: 내가 지금 막 육체를 겨루어 승리한 것은 배설물 더미(헬라어 스쿠발라(skubala), 8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처럼 강한 단어(배설물!)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에 대한 대안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비하면, 동시대의 가장 위대한 바리새인이 되는 것도 더러운 배설물이었습니다.&lt;br /&gt;
&lt;br /&gt;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 모호합니다. 바울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단지 그리스도에 비하면 율법적인 성취가 배설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입니다. 도덕적, 종교적 성취보다 더 뛰어난 것은 1) 그리스도를 아는 것, 2) 그리스도를 얻는 것, 3)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lt;br /&gt;
&lt;br /&gt;
1. '''그리스도를 아는 것'''.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8절). 여기서 “아는 지식”이란 단지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의 주님”이라는 고백이 나오도록 아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우주의 최고의 주를(2:9-11 참조) 나의 주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 바울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가진 두 가지 측면의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온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분에 대한 이성적이고 관계적인 지식입니다. 바울의 생각과 마음은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완전히 다스리시며 완전히 보호하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그가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 위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lt;br /&gt;
&lt;br /&gt;
2. '''그리스도를 얻는 것'''.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8절). “얻는다”는 것은 단지 이 땅에서뿐 아니라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를 얻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이미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1:23)이기 때문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21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3:12)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성취를 배설물로 여기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머지않아 (곧!) 그가 왕을 만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 이 땅에서 알았던 어떤 것보다 훨씬 완전하고, 친밀하고, 놀랍고,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인간의 성취는 이에 비해 배설물이라는 판단이 내려지게 된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3.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9절).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즉,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에서—그의 모든 율법적 성취보다 한없이 더 좋은 의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압도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용납되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모든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의로운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그런 의를 소유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주어진 의의 선물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선물을 바울에게 주셨습니다.&lt;br /&gt;
&lt;br /&gt;
따라서, 그리스도는 바울이 귀하게 여기는 보배인 동시에 그 보배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분이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얻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베들레헴 교회에서 얘기하는 함께 그리스도를 귀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용납되는 기초이며 우리 마음이 갈망하는 것의 목적입니다. 그가 우리의 의이며 우리의 보상입니다. 그리스도(그를 아는 것, 그를 얻는 것,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에 비하면 나머지 모두는 배설물입니다.&lt;br /&gt;
&lt;br /&gt;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를 귀중히 여기는&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br /&gt;
&lt;br /&gt;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25 Jul 2017 18:58:27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AA%A8%EB%93%A0_%EB%B3%B4%EB%AC%BC%EB%93%A4%EC%9D%84_%EB%B0%B0%EC%84%A4%EB%AC%BC%EB%A1%9C_%EB%A7%8C%EB%93%9C%EB%8A%94_%EB%B3%B4%EB%B0%B0</comments>		</item>
		<item>
			<title>행복하게 되는 길이 있습니다</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96%89%EB%B3%B5%ED%95%98%EA%B2%8C_%EB%90%98%EB%8A%94_%EA%B8%B8%EC%9D%B4_%EC%9E%88%EC%8A%B5%EB%8B%88%EB%8B%A4</link>
			<description>&lt;p&gt;Pcain: ‘행복하게 되는 길이 있습니다’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re is a Way to Be Happy, Even in Sadness}} &lt;br /&gt;
&lt;br /&gt;
===== 경건한 슬픔&amp;amp;nbsp;: 예수님의 것 그리고 우리의 것  =====&lt;br /&gt;
&lt;br /&gt;
기독교 희락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슬픔이 필요할 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환영하여야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을 추구하는 것에 언제나 전적으로 헌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우리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기쁨 이외의 다른 감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쁨만이 유일한 선한 감정인 것은 아닙니다. 그밖에 다른 선한 감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이 없다면, 어떤 감정도 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건한 감정들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은 다른 경건한 감정의 일 요소로서 혹은 그감정에 동반하여 발생하는 감정으로 작용하면서, 다른 경건한 감정들을 선하게 만듭니다. &lt;br /&gt;
&lt;br /&gt;
슬픔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도 성령님도 죄를 지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분 모두가 슬퍼 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슬픔은 가능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뿐 아니라, 경건한 슬픔은 또한 죄인들에게 가능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죄로 인해 가능합니다. 슬픔의 한 형태는 잘못된 일을 하였다는 슬픔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썼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7:8~10)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슬픔을 선하게 만드는 적어도 두 가지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슬픔의 원인이고, 다른 하나는 슬픔의 결과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의 원인은 죄의 도덕적 추악함에 대한 영적인 지각입니다. 죄가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들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합니다. 이처럼 죄를 혐오스럽고 가증하게 인식하게 된 배경에는 진리의 풍미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영적인 사랑과 선호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우리의 슬픔은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음미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향하는 잔치 자리에 있어서 비위에 거슬리는 역겨운 냄새를 풍깁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슬픔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표징입니다. 이 점이 슬픔을 선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한편, 죄로 인한 선한 슬픔의 결과는 회개와 거룩함입니다. 사실 회개는 죄를 향한 슬픔을 포함하고 거룩한 삶의 더욱 견고한 경험으로 나가가게 합니다. 이 거룩한 삶은 모든 죄보다 하나님을 더 즐거워하는 마음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은 슬픔과 회개를 선하게 만듭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자신의 죄로 인한 슬픔 외에 타인이 우리에게 악하게 대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슬픔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기타 재난 등으로 인한 상실의 슬픔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할까요? 예수님은 이런 것으로 인해 슬퍼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고 비난하던 바리새인들을 보고 탄식하셨습니다. &amp;quot;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amp;quot;(마가복음 3:5).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amp;quot;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amp;quot;(마가복음 14:34). &lt;br /&gt;
&lt;br /&gt;
예수님의 슬픔은 그분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성령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우리 삶에서 죄를 제거하라고 말합니다. &amp;quot;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amp;quot;(에베소서 4:29-30) &lt;br /&gt;
&lt;br /&gt;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신자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상실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고통에 대해서도 경건한 슬픔을 느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amp;quot;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amp;quot;(베드로전서 1:6). 바울은 사랑하는 자들을 잃었을 때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amp;quot;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amp;quot;(데살로니가전서 4:13). 그리고 바울은 그의 동족이 잃어버려진 바 된 것에 대한 슬픔을 언급합니다. &amp;quot;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amp;quot;(로마서 9:1-2) &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후서 6:10에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의 삶의 표징이며 그리고 신자의 삶의 표징이 되어야 한다는 놀라운 진술을 합니다. 이러한 기쁨이 바로 우리의 슬픔을 경건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슬픔의 경험이 단순하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심지어 이러한 경험—슬픔 혹은 근심 가운데 기뻐하는 것—은 말로 이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미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나오는 흐느낌은 기쁨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실로 그것은 충만하게 만개한 기쁨이 아닐 것인데, 우리는 다음의 말씀이 성취될 때에 이를 알게 될 것입니다. &amp;quot;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amp;quot;(요한계시록 21:4) &lt;br /&gt;
&lt;br /&gt;
슬픔을 통과하면서도 꺼지지 않는 기쁨은 오히려 우리가 장래에 소망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미래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신 그 때 예수님은 &amp;quot;그 앞에 있는 기쁨&amp;quot;(히브리서 12:2)으로 견디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이나 십자가 상에서 그가 부활하실 때 느꼈던 것을 모든 것을 느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예수님이 그러한 기쁨을 소망하셨으며 그 소망은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경험이었음을 의미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몸의 속량과 우리의 모든 죄가 없어질 것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신음합니다(로마서 8:23). 그런데, 이러한 신음과 슬픔은 오직 영광의 소망 안에 있는 우리의 기쁨에 의해 그 슬픔의 형태와 모양이 형성될 때에만 경건한 것입니다.(로마서 5:2-3). 이러한 기쁨은 고통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은 씨앗의 형태로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희석되지 않은 온전한 원액의 순전한 농도를 가진 기쁨의 포도주를 낳는 위대한 포도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하신 어떤 슬픔이라도 맞아들입시다. 이제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이제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는 약속(시편 30:5)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으로 우리의 슬픔을 지탱하고 그 모양을 형성하도록 합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24 Jul 2017 19:40:55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D%96%89%EB%B3%B5%ED%95%98%EA%B2%8C_%EB%90%98%EB%8A%94_%EA%B8%B8%EC%9D%B4_%EC%9E%88%EC%8A%B5%EB%8B%88%EB%8B%A4</comments>		</item>
		<item>
			<title>성경의 충족성에 관한 생각</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84%B1%EA%B2%BD%EC%9D%98_%EC%B6%A9%EC%A1%B1%EC%84%B1%EC%97%90_%EA%B4%80%ED%95%9C_%EC%83%9D%EA%B0%81</link>
			<description>&lt;p&gt;Pcain: ‘성경의 충족성에 관한 생각’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oughts on the Sufficiency of Scripture}} &lt;br /&gt;
&lt;br /&gt;
'''성경의 충족성이 뜻하는 바와 뜻하지 않는 바''' &lt;br /&gt;
&lt;br /&gt;
올해의 목회자 컨프런스는 주후 298년에 태어난 아타나시우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4세기의 교리 논쟁을 공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당시의 주된 논쟁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리우스(그리고 아리우스주의자들)는 하나님의 아들은 피조물이며 항상 존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들의 영원한 신성을 지지하고 다음과 같은 니케아 공의회의 표현을 통해 그 싸움에서의 승리에 기여하였습니다: &amp;quot;우리는,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essence)을 갖고 계시며, 하나님 중 하나님이시며, 빛 중의 빛이시며, 참 하나님 중 참 하나님이시며, 나시고(begotten), 만들어지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와 한 실체(substance)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습니다&amp;quot;&amp;amp;lt;/a&amp;amp;gt; &lt;br /&gt;
&lt;br /&gt;
내가 예기치 않게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단들은 정통 교리 중 성경에 나오지 않는 용어에 대해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amp;quot;아버지와 한 본질(essence)&amp;quot;, &amp;quot;아버지와 한 본질(substance)&amp;quot; 등의 용어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면서 반대하였습니다. 이단들은 &amp;quot;신조가 아닌 성경&amp;quot;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용어의 뜻을 왜곡하고 성경적 진리를 회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amp;quot;하나님의 아들&amp;quot;이라고 기꺼이 부른 뒤, 세상의 모든 아들들처럼 그리스도도 시작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놀랍게도 일종의 &amp;quot;성경의 충족성&amp;quot; 교리를 사용하여 성경의 진리를 파괴하고자 하였습니다. &lt;br /&gt;
&lt;br /&gt;
성경에 나오는 용어만 인정함으로써 성경의 진리를 회피하려는 전략은 교회 역사상 여러 번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1719년에 100명이 넘는 장로교, 회중교회, 침례교 등 각종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들이 런던에 모여서, 당시의 몇몇 목사들이 사무엘 클락이라는 사람의 글을 읽고 나서 자기 교단의 삼위일체 교리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 몇몇 목사들은 실질적으로 아리우스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이 모임에서 다룬 주된 이슈는 무엇이었을까요? &amp;quot;전문적인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목사들이 성경만 따르기로 약속하는 것으로 충분한가?&amp;quot; (마크 놀, '''The Rise of Evangelicalism'''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Press, 2003], p. 43). 여기서 아리우스주의자가 된 자들은 &amp;quot;신조가 아니라 성경&amp;quot;, 또는 &amp;quot;오직 성경에 나오는 용어만&amp;quot; 사용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회합에 모인 110명 가량의 목회자들이 투표한 결과 57-53으로 전통적 삼위일체를 따르는 의견이 투표에서 패배하였습니다. 다시금 일종의 &amp;quot;성경의 충족성&amp;quot; 논리가 성경의 진리를 갉아먹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오늘날에도 아리우스주의자들이 과거에 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amp;quot;교리가 아닌 성경&amp;quot;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용어가 성경의 언어의 의미를 방어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R. P. C. 한손은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amp;quot;기독 교회의 신학자들은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깊은 질문들에 대한 답은 성경에 나오는 용어만 사용해서는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들은 성경에 나오는 용어 그 자체의 의미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amp;quot; (R. P. C. Hanson, '''The Search for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The Arian Controversy''' [Edinburgh: T. and T. Clark, 1988], p. xxi). &lt;br /&gt;
&lt;br /&gt;
이 사실은 성경의 충족성 교리에 대해 무슨 의미를 갖습니까? 성경의 충족성이라는 교리는 주로 디모데후서 3:15-17과 유다서 1:3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 .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amp;lt;/blockquote&amp;gt; &lt;br /&gt;
즉, 성경은 구원의 길(&amp;quot;'''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amp;quot;)과 순종의 길(&amp;quot;'''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을 알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유일한(&amp;quot;'''단번에 주신'''&amp;quot;) 하나님의 말씀—영감받고 (그러므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에서 충분합니다. &lt;br /&gt;
&lt;br /&gt;
성경의 충족성은 우리가 순종의 삶을 사는 데 있어 성경만이 필요한 전부라는 뜻은 아닙니다. 과학의 영역에 있어 순종하기 위하여 우리는 과학에 대해 읽고 자연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경제에 있어 순종하기 위해 우리는 경제에 대해 읽고 비지니스의 세계를 관찰해야 합니다. 운동에 있어 순종하기 위해 경기의 규칙을 알아야 합니다. 결혼에 있어 순종하기 위해 배우자의 성격을 알아야 합니다. 비행기 조종사로서 순종하기 위해 비행기를 조종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즉,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순종하는 청지기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lt;br /&gt;
&lt;br /&gt;
성경의 충족성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특별 계시가 필요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경 외에 더 이상의 영감되고 무오한 말씀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에서, 우리는 다른 모든 지식을 판단하기 위한 완벽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지식은 성경에 도움이 될 때라도 성경의 판단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는 영어를 읽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이용하기 쉽게 하므로 성경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영어가 이런 일을 할 때라도 성경 아래 있으며 성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따라서 헬라어 &amp;quot;아니오&amp;quot;를 영어의 &amp;quot;예&amp;quot;로 번역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영어의 잘못된 사용을 막기에 충분합니다. &lt;br /&gt;
&lt;br /&gt;
이런 식으로 성경 외적 지식은 성경을 아는 데 여러 방식으로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amp;quot;개미&amp;quot;라는 단어는 성경에 두번 나옵니다(잠언 6:6; 30:25). 이 단어는 성경 안에서 한번도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개미가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일 개미의 교훈에 대해 이상하게 해석한다면, 즉 우리 모두 게을러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면, 이 때 성경은 오류를 방지하기에 충분합니다. &lt;br /&gt;
&lt;br /&gt;
교리 논쟁의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용어라도 성경적 진리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amp;quot;삼위일체&amp;quot;라는 단어와 &amp;quot;아버지와 같은 실체&amp;quot;라는 어구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성경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amp;quot;세 위격 한 본질이시다&amp;quot;(=삼위일체) 그리고 아들은 &amp;quot;아버지와 한 실체이다&amp;quot; 등과 같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 용어를 사용하여 확언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언어들만을 사용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성경적입니다. 성경의 충족성은 우리가 성경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용어를 지시하고 좌우하는 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의 충족성은 그 언어로 표현하는 의미를 다스리는 원리입니다. 이를 위해서 성경은 전적으로 충분합니다. &lt;br /&gt;
&lt;br /&gt;
당신과 함께 성경에 완전히 복종하며, &lt;br /&gt;
&lt;br /&gt;
존 파이퍼 목사&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24 Jul 2017 19:10:00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84%B1%EA%B2%BD%EC%9D%98_%EC%B6%A9%EC%A1%B1%EC%84%B1%EC%97%90_%EA%B4%80%ED%95%9C_%EC%83%9D%EA%B0%81</comments>		</item>
		<item>
			<title>선택 교리에 대한 목회적 생각</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84%A0%ED%83%9D_%EA%B5%90%EB%A6%AC%EC%97%90_%EB%8C%80%ED%95%9C_%EB%AA%A9%ED%9A%8C%EC%A0%81_%EC%83%9D%EA%B0%81</link>
			<description>&lt;p&gt;Pcain: ‘선택 교리에 대한 목회적 생각’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Pastoral Thoughts on the Doctrine of Election}}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それと同じように、今も、恵みの選びによって残された者がいます。6もし恵みによるのであれば、もはや行ないによるのではありません。もしそうでなかったら、恵みが恵みでなくなります。7では、どうなるのでしょう。イスラエルは追い求めていたものを獲得できませんでした。選ばれた者は獲得しましたが、他の者は、かたくなにされたのです。 &amp;lt;sup&amp;gt;1&amp;lt;/sup&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ローマ11章のような教理的に大変重い箇所を一通り説教することの、牧会的意味をあれこれ考えているうちに、解釈の流れの中で何週かごとに立ち止まって、一歩下がり、私たちがそれまで見てきたことの実用的意義を話すのがいいように思えました。ローマ11:1―10から再度、この数週間で見てきたのは(ローマ8:29―33とローマ9:10―24にも見ましたが)、無条件の選びという聖書的教理です。&lt;br /&gt;
&lt;br /&gt;
これは、世界の基の置かれる前から(エペソ1:4)、誰が信じ、その罪にも関わらず救いという受けるに値しないものを受け、そして誰が反逆の罪を犯し続け、その罪のゆえに滅びという受けるに値するものを受けるかを、神がお選びになっているという教えです。言い換えれば、神のみむねである知恵と義と恵みは、この世で起こることすべての根本的解釈なのです。人間は神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は何もないところから種を引き起こすことはできません。私たちベツレヘム教会のリーダーたちは、一方で神は主権者であられ、そしてもう一方で私たち全ての者は責任を負っており、罪を犯したのであり、み怒りを受けるべき者たちであるという聖書の逆説(矛盾ではありません)を堅持しています。もし私たちが信仰を持って、この罪過から救われるよう神がお選びになったのであるならば、私たちが受けるべき恩恵は一切ありません。それがローマ8、9章で、私たちが見てきたことで、11:1―10で今再度見ていることです。それが無条件の選びと私が言っている意味です。&lt;br /&gt;
&lt;br /&gt;
では今日はこの選びの教理に関する牧会的見解を見ていきます。&lt;br /&gt;
&lt;br /&gt;
==== 1. ''全部が全部私たちが知るべきことではないので、神には私たちに現されていない事がらがおありになり、また中には十分に説明できなくとも、私たちが知っておくと良いことがおありになる'' ====&lt;br /&gt;
&lt;br /&gt;
これは部分的に、申命記29:29でモーセが、「隠されていることは、私たちの神、主のものである。しかし、現されたことは、永遠に、私たちと私たちの子孫のものであり、私たちがこのみおしえのすべてのことばを行うためである」と言うところに基としています。神には私たちが知らないよう意図していることがおありになります。それは私たちにとって良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例えば、使徒1:7でイエス様が、「いつとか、どんなときとかいうことは、あなたがたは知らなくてもよいのです。それは、父がご自分の権威をもってお定めになっています」と言われます。未来を事細かに知ることは私たちにとって良くないのです。実際私たちは明日何が起こるかさえほとんど分かりません。ヤコブ4:14では、「あなたがたには、あすのことはわからないのです」と言います。他にも詩篇131篇でダビデは、「私の心は誇らず、私の目は高ぶりません。及びもつかない大きなことや、奇しいことに、私は深入りしません」と言います。私たちの手の届かないものがあるのです。&lt;br /&gt;
&lt;br /&gt;
神が私たちに現されているので私たちが知っている事は、私たちは部分的に知っています。ですからそれらは私たちが知るべきことです。しかしパウロが1コリント13:12で、「今、私たちは鏡にぼんやり映るものを見ていますが、その時には顔と顔とを合わせて見ることになります。今、私は一部分しか知りませんが、その時には、私が完全に知られているのと同じように、私も完全に知ることになります」と言うように、私たちは部分的にのみ知っていることに満足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は特に、選びの教理において本当です。私たちは神がお答えになる以上のことを質問しがちです。私たちの質問が質問を通り越して非難に変わる危険性があります。&lt;br /&gt;
&lt;br /&gt;
ここまでで読み取れる意味は、聖書のある特定の教理が私たちにとっていいかどうか、私たちはそれを絶えず知ることはない、と言うことです。私たちアメリカ人は特に物事を割り切って考えがちで、要求が多いです。もし教理の見返りが即座に見えなかったら、それを無視する傾向があります。そのようなことをするとき、私たちは愚かな子どものようです。すべての親が、子どもはいつかそれがどのように役に立つか分からなくとも、物事を学ぶように造られていると言うことを知っています。例えば、子どもが幼いうちにテーブルマナーを教えます。そうすれば彼らがあらゆる社交場で礼儀正しく行動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からです。子どもたちはなぜ親がスプーンを一定の方法で持ち、肘をテーブルにのせてはいけないと言うのか、全くワケが分かりません。太陽は静止しているんだとか、地球は丸いんだとか、緑色野菜は体にいいんだとか、少量の殺鼠剤は人を死に追いやることができるとか、あなたが言うことすべてを受け止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もし子どもがなぜとかどうしてかを理解する前にこれらの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れば、私たち自身と神について私たちが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と、またそれがどのように私たちの助けとなるかを理解せずに、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いかに多いかということの距離を想像して見てください。&lt;br /&gt;
&lt;br /&gt;
私たちが知っていることが与える私たちの人生への影響は、絶えず私たちが知っている以上、あるいは説明できる以上です。時として私たちは神がそれは本当だと言われるので、単純に学ば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あります。後々、知識によっていかに私たちが守られ、力づけられ、へりくだらされ、清められ、導かれ、あるいは物事が事実であると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変えられるかということを、理解することがあるかも知れません。詰まるところ、問題は信頼なのです。''私たちは神が私たちが知ると良いと現されている事がらを、信じるでしょうか?''&lt;br /&gt;
&lt;br /&gt;
選びの教理が、私たちにとって良いことであるかどうか、全部理解してい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理解していることもあります。それが次の、選びの教理を知ることの影響に関する牧会的見解になります。&lt;br /&gt;
&lt;br /&gt;
==== 2. ''選びの教理は、真理とみことばに関して教会を厳格にさせる傾向があり、それゆえ教理の間違った解釈に陥り、文化に適合してしまうことから教会を守ってくれる。'' ====&lt;br /&gt;
&lt;br /&gt;
選びの教理は、たるんだ頭を引き締め、頑丈にする傾向があります。健康で、トレンディーな、人間中心のアイディアに流されない、思いやりのあるクリスチャンを生み出す傾向があります。他の教理が薄められ失われていかないよう保存するという、驚くべき力が備わっています。一般的に選びの教理は、本当の客観的事実に基づいた、神中心の世界観を私たちの頭の中にめり込ませる傾向があります。&lt;br /&gt;
&lt;br /&gt;
なぜそれが重要なのか、以下はその実例です。一番最近の『クリスチャニティー・トゥデー[''Christianity Today''] 』 &amp;lt;sup&amp;gt;2&amp;lt;/sup&amp;gt; で、チャック・コールソンが、「超越した真理などないと主張する哲学」である「ポストモダニズム」を議論しています。その中で、ポストモダニズムはその力を失っており、恐らくすぐに色あせていくであろう文化の、4つか５つの兆候を彼は述べていますが、彼が教会に語るその呼びかけを聞いてください。&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牧師、神学者、教会員たちが聖書的世界観にしっかりと立ち、真理を飢え渇いて求めている人々にそれを明確に弁護する重要なときは、今以外に考えられない。&lt;br /&gt;
&lt;br /&gt;
でも私たちはそのようなチャレンジを受ける用意ができているだろうか?最近ジョージ･バーナはアメリカ全土の教会を巡るツアーを終え、その世論調査によると90パーセントのほとんどの教会のリーダーと信徒伝道者たちに、理解観がまったくない、という悲観的な報告を出した。もし我々が自分の真理のシステムに根を下ろしていないのであれば、競合する哲学とどのようにして競い合って行くことができるであろうか?&lt;br /&gt;
&lt;br /&gt;
皮肉なことに、この文化で励まされる兆候があるように思われる中、教会の知的レベルの低下と、御言葉に動かされるメッセージからイメージや感情に動かされるメッセージへと移行している兆候も見受けられる(いかに多くのクリスチャンのラジオ番組が、トークと説教から、最近はすべて音楽に変わっていることに注意)。&lt;br /&gt;
&lt;br /&gt;
より広い文化がその行き止まりに来たと気づいた丁度そのときに、もし私たちがポストモダニズムに紛れ込んでいる自分たちを見つけたなら、それは最高の皮肉、またとんでもない悲劇である。」(『クリスチャニティー・トゥデー』より、「ポストモダニズムの墜落」2003年12月発行、47刊第12号、72ページより)&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選びの教理には、受け継いできた思い込みの川で漂流し、考えることを一切しない頭を持った人々を目覚めさせる、驚くべき効果があります。彼らは、聖書が徹底的に神中心であることと、自分の心がゾッとするほど人間中心であることに、突然衝撃を受けるのです。そして神を聖書的に考える方法を身につけるよう、またコールソンが警告する悲劇の世界、つまり、教会が、文化的関連性の名のもとに、教理は重要ではないと決断した丁度その時に、世界が真理は重要であるということを発見するようになることを、回避するような探求に、彼らは出かけるのです。選びの教理は、私たちが未だ想像できないような形で、私たちと私たちの子孫にとって良いものです。&lt;br /&gt;
&lt;br /&gt;
==== 3. 選びの教理に関する第３の牧会的見解は、''選びの教理は、神と自分の役割を置き換えているかどうかを試す、最も良い方法の一つである。'' ====&lt;br /&gt;
&lt;br /&gt;
これは時代を越える問題ですが、特に人間の自治権を当然と思い込み、権威に対し疑問を抱き、神が存在するかどうかさえ決めることのできる判事席に人間が座る現代では、もっと深刻です。&lt;br /&gt;
&lt;br /&gt;
パウロはこの問題を、ローマ9:6―23で最も力強く語っています。語りながら、彼は「それなのになぜ、神は人を責められるのですか。だれが神のご計画に逆らうことができましょう」という、古代のそして現代の異論を耳にします。それに対し彼は、「しかし、人よ。神に言い逆らうあなたは、いったい何ですか。形造られた者が形造った者に対して、『あなたはなぜ、私をこのようなものにしたのですか』と言えるでしょうか」(ローマ9:19―20)と反論します。言い換えれば、神の役割を自分の役割と置き換えるのは、あなたにふさわしくありません。私たちが神を裁いているのか神が私たちを裁いているのかをこれだけはっきりと分析する教理が、他にあるでしょうか。&lt;br /&gt;
&lt;br /&gt;
ヨブ記の最後でヨブが自分の弁護をし尽くし、人を惑わすような相談役であるエリファズとビルダデとツォファルがいなくなったときの、重要な部分を要約すると、以下のようになります。「ヨブは主に答えて言った。『あなたには、すべてができること、あなたは、どんな計画も成し遂げられることを、私は知りました。･･･まことに、私は、自分で悟りえないことを告げました。』」神は、「さあ聞け。わたしが語る。わたしがあなたに尋ねる。わたしに示せ」とお答えになります。言い換えると、「ヨブよ、しっかりと腰を据えて聞きなさい。わたしに教えようとするのではなく、わたしから学びなさい。わたしを責めるのではなく、信頼しなさい」と神は言っておられ、それに対してヨブは、「私はあなたのうわさを耳で聞いていました。しかし、今、この目であなたを見ました。それで私は自分をさげすみ、ちりと灰の中で悔い改めます」と最終的に応答します(ヨブ42:1―6)。選びの教理は、私たちの中にはそれを見た人達がすでにいますが、私たちが、非難するヨブの視点に立っているのか、あるいは信じるようになった、砕かれへりくだったヨブの視点に立っているのかを、私たちに吟味させます。&lt;br /&gt;
&lt;br /&gt;
魚は自分が濡れていることを理解していません。魚にとっては、濡れることがすべてなのです。それを考えもしません。それと同じように、現代人、つまり、この過去200年以内に生きてきた人たちにとって、自分が神に対しいかに傲慢であるかということを理解するのは、至難の業です。現代の世の中は、神に対する傲慢さがすべてです。それが私たちの泳いでいる海であり、吸っている空気です。織物という私たちの頭のなかに、それがしっかり編みこまれているのです。私たちはそれがそこにあることを分かっていません。傲慢さを通して他のすべてのものを見るので、私たちにはそれが見えないのです。&lt;br /&gt;
&lt;br /&gt;
C. S. ルイスは次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古代人は、被告が裁判官に近づくように、神に近づいた。ところが現代人はその役割を置き換えてしまっている。人が裁判官で、神が被告席に着いておられるのである。人はとても親切な裁判官で、もし神に、戦争や貧困や疫病をお許しになる神であることの納得のいく答弁がおありになれば、聞く用意ができている。裁判は神の無罪判決で終了するかも知れない。しかし重要なのは、人が判事席に着いており、神が被告人席に着いておられることである。(『''エッセイ集とその他短編''』より、「被告人席に着いておられる神」、レズリー・ウォルムスレー編集、C.S.ルイス著、[ロンドン、ハーパーコリン出版社、2000年出版]、36ページ)&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ほとんど感じられない感情、それが事実上、現代という意味です。神に質問し神を裁いてさえいいと思うその感情を、自分が持っていることさえ分かっていない、思い込みなのです。選びの教理は、この現代世界の傲慢という土着の海から自分が解放されつつあるか、あるいは未だに骨まで浸かりきっているかを、とても効果的に試します。神の主権のうちにある試練にあって試されるのは、私たちにとって良いことです。そうすればヨブと共に、「私はあなたのうわさを耳で聞いていました。しかし、今、この目であなたを見ました。それで私は自分をさげすみ、ちりと灰の中で悔いています」と言えるかも知れないからです。&lt;br /&gt;
&lt;br /&gt;
==== 4. 選びの教理に関する第４の牧会的見解は、''尊い選びの真理と主権の恵みの議論ではなく、知的信仰でもなく、へりくだってそれを受け入れるその受け入れは、究極の、愛のある、リスクを負った奉仕と宣教を、生み出す''ということである。 ====&lt;br /&gt;
&lt;br /&gt;
一例ですが(ウィリアム･キャレーやアドニラム･ジャドソン、ディビッド･リビングストン、ジョン･パットン、ジョージ･ミューラー、チャールズ･スポルジョン、ジョナサン･エドワーズやその他もっと沢山の人から得ることができると思いますが)、クリスティン･カールソンはアクション･インターナショナルという団体(彼らを知ってください。ディレクターの名前を挙げることができると思いますが、ダグ･二コールズは、過激なクリスチャンの一人で、選びの真理をへりくだって受け入れるがゆえ、結腸癌でルワンダに渡った人です)を通してザンビアで、ストリート･チルドレンのために約一年働いています。以下はクリスティンさんが感謝祭の朝にメールしてきたものです。&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まず何よりも、私をお選びくださった、神のはかり知れない恵みに感謝しています。私にはこれを受けるに値するものが何もなく、それにも関わらず、み父が私に良きことをなしてくださることに、驚かされ続けています。選ばれたことを私が感謝するその理由は、私が何のために選ばれたかを理解しているからです。神が卓越したお方であることを告げるために選ばれ、イエス様を通して神に永遠に満足するために選ばれ、暗闇ではなく光に生きるために選ばれ、主が良いお方であることを見て味わうために選ばれたということです。」&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これを見逃さないでください。皆さんの中には、選びの教理が真実でないか、何の役にも立たないと教えられてきたため、クリスティンさんが言っていることがさっぱり分からない人がいると思います。絶えず外観者で、疑わしい目で見、批判してきています。このメールで、無条件の選びを受け入れ、それに受け入れられることがどのようなことであるかを知っている人の、内側の話をあなたは今聞いています。その効果は、あなたが教えられてきた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の効果に耳を傾けてください。彼女は続けます。&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私は神が、心が頑なで、無関心で、反抗的なストリート･チャイルドのヴァスコを、暗闇から主の素晴らしい光へとお選びになったことに、感謝しています。そしてヴァスコの人生にすでに見られる実は、彼がぶどうの木であられるイエス様にとどまっていることの、証しです。&lt;br /&gt;
&lt;br /&gt;
この一年の神の溢れるばかりの慈愛に感謝します。･･･ストリート･チルドレンと友達になり、永遠に続く希望を彼らに分かち合うことができる働きの一部に携われるとは、何と素晴らしいことでしょう。挿入ですが、神が私にこの子供たちに対する思いをお与えくださったことに感謝しています。客観的に言って、汚れた臭い子供達と一緒にゴミの山を踏み歩き、ハイカラなソファ(ダンボール一枚がのった金属製の物)に座るのを好むのは、「普通」ではないと分かっていますが、それが事実で、私はそれを愛おしく思います。」&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無条件の選びから始まる主権の恵みの教理を受け入れることと、それに受け入れられることは、そのような過激な、リスクをいとわない、犠牲の愛をまず生み出します。それからこの美しさは自分たちで作り上げたのではなく、神が私たちのうちに創出されたという事実に喜んでへりくだるようになるのです。そして私たちは神に栄光をおかえしします。&lt;br /&gt;
&lt;br /&gt;
「これは聖書的な考え方ですか?」「聖書では実際に選びの真理はこれらの効果をあらわすよう、神によって意図さ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とあなたがお尋ねになるなら、その答えは、その通り、です。コロサイ3:12―13の言葉遣いをまず考えて見てください。「それゆえ、''神に選ばれた者''、聖なる、愛されている者として、あなたがたは深い同情心、慈愛、謙遜、柔和、寛容を身に付けなさい。互いに忍び合い、だれか他の人に不満を抱くことがあっても、互いに赦し合いなさい。主が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そうしなさい。」関係があります。パウロの頭の中ではそれは明白で、はっきりしているのです。恵みによってあなたは選ばれており、神のために聖別されており、愛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の理解は、あなたを、虐待を耐え忍び、いつでも許す用意ができている、この世でもっともへりくだった者に作り上げるはずです。ザンビアや他のどの場所であれ、愛せないような人を愛するのです。&lt;br /&gt;
&lt;br /&gt;
他にもこれがどのように作用するのか、手がかりのある箇所があります。ローマ8:33でパウロは、「''神に選ばれた人''々を訴えるのはだれですか。神が義と認めてくださるのです」と言います。その答えは、もしあなたが神に選ばれた者であるならば、あなたを訴えることができる者はいない、です。神はあなたの永遠の味方です。パウロがこう言うのは、その実践的効果が私たちに起こることが当然であると予期しているからだというのは、非常に明瞭です。彼は私たちが確信と喜びを感じ、そして勇敢で恐れ知らずになるよう期待しています。今日あなたが正しくて愛があるように思える行為を前に、決断しなければならない立場に立たされており、それが危険を伴うことだと分かっているところで、「神に選ばれた人々を訴えるのはだれですか」という質問の効果を感じますか?「選ばれた」という言葉に確信を生み出す福音の力を感じますか?&lt;br /&gt;
&lt;br /&gt;
これは主として議論されるべき教理ではなく、楽しむべき教理です。それは論争されるものとして意図されていません。宣教のためのものとして意図されています。人々の間で分裂引き起こすものではありません(分裂を引き起こしますが)。人々を思いやりのある、親切で、へりくだっており、柔和で、寛容な者にさせるものです。&lt;br /&gt;
&lt;br /&gt;
==== 5.最後の牧会的見解で終わりにします。''イエス･キリストから離れて選びを考えてはいけません。'' ====&lt;br /&gt;
&lt;br /&gt;
エペソ1:4で、「神は私たちを世界の基の置かれる前から彼[キリスト]にあって選び」と言います。言い換えれば、私たちを罪の束縛から救い出すことを永遠からご計画になられた際、神にはキリストがそれを成す方法の念頭におありになりました。神はキリストの死とよみがえりを通して私たちを救おうと、世界の基が置く前に、ご計画になったのです。&lt;br /&gt;
&lt;br /&gt;
それゆえ、私たちを救い、ご自身に召されるように成されたのは、私たちが選ばれた者であるかどうかを、私たちに事前に教えないことです。神はイエス･キリストとの関係を通して以外にこれを表示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それはキリストが私たちの選びの中心となられるためです。私たちが選ばれた者であるかどうかを教える代わりに、神が成されたのは、ご自分の御子をお遣わしになり、「御子を信じる者は永遠のいのちを持つ」(ヨハネ3:36)、「神の御子を信じる者は、このあかしを自分の心の中に持っています」と言われたのです。その人は自分が選ばれた者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lt;br /&gt;
&lt;br /&gt;
ですからキリストの御名によって、あなたをお招きします。来て、主をあなたの救い主、あなたの主、あなたの人生の宝として受け入れてください。主は信仰を持って主のみもとに来る者を追い払われません。罪をお赦しになり、義をまとわせてくださいます。聖霊をお与えくださいます。あなたを守ってくださいます。「わたしの羊はわたしの声を聞き分けます。またわたしは彼らを知っています。そして彼らはわたしについて来ます。」(ヨハネ10:27)良い羊飼いの声を聞いて、み前に進み出てくださ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up&amp;gt;1&amp;lt;/sup&amp;gt; 新改訳聖書、日本聖書刊行会出版、1970年版引用。以下脚注がない限り同訳引用。&lt;br /&gt;
&lt;br /&gt;
&amp;lt;sup&amp;gt;2&amp;lt;/sup&amp;gt; キリスト教月刊誌&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11 Jul 2017 20:09:25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84%A0%ED%83%9D_%EA%B5%90%EB%A6%AC%EC%97%90_%EB%8C%80%ED%95%9C_%EB%AA%A9%ED%9A%8C%EC%A0%81_%EC%83%9D%EA%B0%81</comments>		</item>
		<item>
			<title>세상에 의해 교회가 무기력해진것은 아닌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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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Kathyyee: 새 문서: {{info|Has the Church Been Disarmed by the World?}}오늘 아침 사무엘상 13장 19-23 읽으며 세상에의해 교회가 무기력해진것은 아닌가 교회가 세상에 너무 ...&lt;/p&gt;
&lt;hr /&gt;
&lt;div&gt;{{info|Has the Church Been Disarmed by the World?}}오늘 아침 사무엘상 13장 19-23 읽으며 세상에의해 교회가 무기력해진것은 아닌가 교회가 세상에 너무 의존되어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19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23 블레셋 사람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말씀에서 보다시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철공을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잃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연장의 날을 갈려하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의존하는것에 익숙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평화의 시기에 이것은 그리 문제되지가 않는듯 해보입니다. 모든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전쟁시에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기의 날을 세우려면 블레셋을 의지하게 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수 있었습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이 세상의 여러면을 의존하고 사는 현대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어떤 부분은 세상에 의존하는것이 당여한 일입니다-- 하수도 상수도나 전기등은 세상과 공유 하지 않으면 안되는 서비스 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와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우리의 마음과 영적 날을 세우는데 많이 세상에 의존적이 된것은 아닐까요? 사실 그것도 우리 삶을 평화시라 볼때, 아무일이 없을 때에만 날을 세울수 있게 되어있는것이라 볼수 있을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허나 우리의 삶을 인간의 마음과 혼의 영적 전쟁시기라 볼때 사실 날은 무뎌있고 무기력해진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교육, 취미, 연예, 등을 대부분 세상에 의존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뉴스나 세상사에 관한 해석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기가 남아 있는지 의심됩니다. &lt;br /&gt;
&lt;br /&gt;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에 대해서도 제게 의문을 자아냅니다. &amp;amp;nbsp;수많은 다방면의 정보와 견해, 예능과 광고들이 우리의 생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철공을 다 가져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의지하지 않고는 무기의 날을 세울수 없게금 하였을때 우리는 어떻게 우리자신를 잘 무장하여 싸음을 이길수 있을 까요?&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27 Jun 2017 00:39:06 GMT</pubDate>			<dc:creator>Kathyyee</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84%B8%EC%83%81%EC%97%90_%EC%9D%98%ED%95%B4_%EA%B5%90%ED%9A%8C%EA%B0%80_%EB%AC%B4%EA%B8%B0%EB%A0%A5%ED%95%B4%EC%A7%84%EA%B2%83%EC%9D%80_%EC%95%84%EB%8B%8C%EA%B0%80_%3F</comments>		</item>
		<item>
			<title>주님의 소리가 나의 음성을 통하여 전하여지길</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C%A3%BC%EB%8B%98%EC%9D%98_%EC%86%8C%EB%A6%AC%EA%B0%80_%EB%82%98%EC%9D%98_%EC%9D%8C%EC%84%B1%EC%9D%84_%ED%86%B5%ED%95%98%EC%97%AC_%EC%A0%84%ED%95%98%EC%97%AC%EC%A7%80%EA%B8%B8</link>
			<description>&lt;p&gt;Kathyyee: &lt;/p&gt;
&lt;hr /&gt;
&lt;div&gt;{{info|Let Christ’s Voice Be Heard in Yours}}성경을 보면 주님의 지상 대 명령을 완성 하고자 한 헌신의 맘에 자신감과 확신을 더하기 위한 복음의 깊은 뜻이 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양 우리안의 그들은 나를 따르고 믿는다고 말씀 하신 말씀을 기억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나를 믿지 않는것은 나의 양 무리가 아니기 떄문이다” 라는 말씀도 믿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말씀하시기를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떼들도 있는데 내가 꼭---”, &lt;br /&gt;
&lt;br /&gt;
이말은 천지 만물의 왕으로서 정말 큰 감격적 말입니다--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여기서 요 10:16의 영어 원문을 보면 신학적으로 중요한 단어 두가지가 있습니다. Must 와 Will 인데 “내가 꼭 데려오고 그들은 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나는 결코 포기 하지 않는다” 라는 결코 라는 의지의 의미입니다. &lt;br /&gt;
&lt;br /&gt;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제데로 배운 사람이라 생각듭니다. 그렇지요? 고린도에서 그는 좀 두렵고 위험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사실 요즘도 그런 상황이 선교를 바로 할수 있는 경우이긴 합니다. 꿈에 주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고 계속 하라고 하셨습니다. 멈추지 말아라 .계속 복음을 선포하라고.. 왜그러셨을 까요? 사도행전 18장 10절 에서 주님은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lt;br /&gt;
&lt;br /&gt;
그들은 나의 백성이다, 내가 데려왔고, 내가 선택하였다. 가서 전해라! 내 양이 나의 소리를 듣고 나를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가서 전하라. 주님이 우리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입을 열어 나의 이름과 복음을 소리내어 보아라. 나의 소리가 너의 음성을 통하여 들리게 하여라..나의 양들이 음성을 듣고 따를 것이다. &lt;br /&gt;
&lt;br /&gt;
너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땅의 가장 험한곳까지 전하라. 사람들이 개종하는 것이 너의 목표가 아니다. 너를 통하여 나의 음성을 듣게 하라 . 네가 감당 할 수 있으리라..&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3 Jun 2017 01:36:38 GMT</pubDate>			<dc:creator>Kathyyee</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C%A3%BC%EB%8B%98%EC%9D%98_%EC%86%8C%EB%A6%AC%EA%B0%80_%EB%82%98%EC%9D%98_%EC%9D%8C%EC%84%B1%EC%9D%84_%ED%86%B5%ED%95%98%EC%97%AC_%EC%A0%84%ED%95%98%EC%97%AC%EC%A7%80%EA%B8%B8</comments>		</item>
		<item>
			<title>로마서 1-8장의 강력하고 자비로운 메시지</title>
			<link>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B%A1%9C%EB%A7%88%EC%84%9C_1-8%EC%9E%A5%EC%9D%98_%EA%B0%95%EB%A0%A5%ED%95%98%EA%B3%A0_%EC%9E%90%EB%B9%84%EB%A1%9C%EC%9A%B4_%EB%A9%94%EC%8B%9C%EC%A7%80</link>
			<description>&lt;p&gt;Pcain: ‘로마서 1-8장의 강력하고 자비로운 메시지’ 문서를 보호함 ([edit=sysop] (무기한) [move=sysop] (무기한))&lt;/p&gt;
&lt;hr /&gt;
&lt;div&gt;{{info|The Mighty and Merciful Message of Romans 1-8}} &lt;br /&gt;
&lt;br /&gt;
바울은 스페인 선교 사역에 대한 교회의 지원을 체계화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로마 교회에 쓰고 있습니다. 로마서 15:24에서 그는 말합니다. &amp;quot;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amp;quot; 그는 로마에 가 본 적이 없으며 그곳의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전하는 복음을 이 편지에 담아 보낸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전 세계의 모든 선교사들이 이 로마서의 내용을 잘 알고 이를 잘 설교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한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사람들이 이 로마서의 내용을 잘 알고 그 말씀의 내용대로 살아감으로써 바울이 로마에서 스페인으로 파송받고 지원받고자 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책에 나오는 강력하고도 자비로운 메시지는 부유한 미국식 생활방식을 전시 상태의 생활방식으로 바꾸게 하여 그들의 자원들을 복음의 대의를 위하여 쏟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강력하고도 자비로운 메시지는 고난받는 선교사들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어둠의 권세를 파하고 가장 완고한 지역들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 이 편지의 다문화적이고 범세계적인 면  ====&lt;br /&gt;
&lt;br /&gt;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편지를 읽기 시작할 때 이 편지에 다문화적이고 범세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1:5에서 바울은 그의 사도직의 목적을 말합니다. &amp;quot;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amp;quot;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스페인으로 가서 거기서도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고자 하였던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그가 이 편지 로마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로부터 나오는 순종을 &amp;quot;모든 이방인 중에서&amp;quot;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 이방인들에 관한 책입니다.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민족들에 관한 책입니다. 복음이 앞으로 그들에게 전파되지 않으면, 의롭다 함을 받지도 성화되지도 그리고 영화되지도 못할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14절에서 그의 사도적 의무를 다시 진술합니다. &amp;quot;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amp;quot; 그리고 유대인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16절에서 &amp;quot;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amp;quot;라고 말합니다. 유대인,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 다시 말하면, 로마서의 강력하고도 자비로운 메시지는 국가적 구분이나 문화적 구분이나 교육수준의 구분을 돌파해 버립니다. &lt;br /&gt;
&lt;br /&gt;
다원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알다시피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던 1세기의 상황과 매우 비슷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부족 종교가 아니며,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과 나라에서 믿음과 충성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많은 신들 중 하나가 아닙니다. 그는 주 가운데 주시요, 왕 가운데 왕이시며,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로마서의 이 강력하고 자비로운 메시지는 많은 구원의 길들 중의 하나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이러한 주장은 항상 반대에 부닥쳐 왔습니다. 오늘날 미국 내에서도 많은 반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 가운데도 많은 반대자들이 있습니다. 무슬림이나 유대인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엊그제 금요일에 발행된 스타 트리뷴지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또 하나의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카톨릭 사제들과 미국의 유대 랍비들의 연합 단체가 &amp;quot;언약과 선교에 대한 회고&amp;quot;라는 문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저자가 말하는 주요 요지는 이렇습니다: &amp;quot;유대인들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은 '더 이상 신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왜냐하면 유대 민족은 이미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amp;quot;(2002년 9월 20일 A23쪽).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으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lt;br /&gt;
&lt;br /&gt;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amp;quot;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amp;quot; (요한복음 3:36) 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 기독교 사제의 주장은 거짓되고 참담한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방인들과 자신을 거부한 유대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amp;quot;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amp;quot; (마태복음 8:11-12). &lt;br /&gt;
&lt;br /&gt;
따라서, 거짓되고 참담한 주장들이 범람하는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로마서의 강력하고도 자비로운 메시지의 보편적인 주장들을 살펴보는 것은 극도로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amp;lt;span class=&amp;quot;excerpt&amp;quot;&amp;gt; 로마서를 통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인간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철학이나 자기 개선적 프로그램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부족 종교나 기타 어떤 한 지방에 국한되거나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유일하신 한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죄인을 위하여 죽고 부활하게 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 안에서 독특한 일을 하셨다는 진실된 뉴스입니다. &amp;lt;/span&amp;gt; &lt;br /&gt;
&lt;br /&gt;
==== 편지의 논지: 로마서 1:16-17  ====&lt;br /&gt;
&lt;br /&gt;
바울은 로마서 1:16-17에서 그의 논지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편지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에 대해 설명하고 적용합니다. 로마서 1:16-17입니다. &amp;quot;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amp;quot; 여기서 바울은 첫째 그의 메시지 즉 그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강력하고 자비로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믿음을 통한 것입니다.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의 영혼을 관통합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서 17절에는 복음이 왜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amp;quot;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amp;quot; 복음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계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슨 뜻일까요? &lt;br /&gt;
&lt;br /&gt;
==== 로마서 1:18-3:20: 구원받을 필요  ====&lt;br /&gt;
&lt;br /&gt;
바울은 로마서 1:18-3:19에 걸쳐서 우리가 구원 받아야 하는 필요에 대해 먼저 설명합니다. 로마서 3:9에는 그 요약이 나와 있습니다, &amp;quot;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amp;quot; 그리고 19절: &amp;quot;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amp;quot; 따라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 아래(1:18) 있습니다. 우리는 내세울 수 있는 의가 없습니다. 그리고 3:20은 우리가 결코 자신을 구원하거나 의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진술합니다. &amp;quot;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amp;quot;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진노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행위에 의하여 자신을 구원하거나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 &lt;br /&gt;
&lt;br /&gt;
==== 로마서 3:21-31: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lt;br /&gt;
&lt;br /&gt;
이제 바울은 다시 로마서 1:16-17에서 제시한 주된 핵심으로 돌아가서, 복음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는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21-22절에서 말씀합니다, &amp;quot;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그러면, 여기서 복음에 능력을 부여하고 믿는 이들을 구원하게 하는 &amp;quot;하나님의 의의 나타남&amp;quot;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는 &amp;quot;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amp;quot;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통하여 선물로 계시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는 신학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24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amp;quot;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amp;quot;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남으로써 복음은 이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 주고 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lt;br /&gt;
&lt;br /&gt;
로마서 3:25은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되지 않고 어떻게 죄인을 의롭다고 하실 수 있는지 설명해 줍니다: &amp;quot;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amp;quot;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써, 아버지의 진노와 저주가 믿는 자들 대신에 그 아들에게 쏟아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죄에 대한 그의 증오와 죄에 대한 그의 의로운 처리를 보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26절이 말씀하듯이, 하나님께서는 &amp;quot;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amp;quot; 하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 칭의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십니다. 우리는 의로운 것처럼 보여지고 그렇게 대우받습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그리고 28절에서 이처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고 믿음에 의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amp;quot;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amp;quot; &lt;br /&gt;
&lt;br /&gt;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이 사실의 범세계적이고, 선교적이고, 다문화적인 의미를 놓치지 말도록 합시다. 바울은 이를 29-30절에서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amp;quot;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amp;quot; 그리스도를 믿음에 의한 칭의는 강력하고 자비로운 범세계적인 메시지입니다. 이는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서기 위한 한 구주, 한 십자가, 한 부활, 한 길이 있습니다. 즉,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에 의해서 그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길입니다. &lt;br /&gt;
&lt;br /&gt;
==== 로마서 4장: 행위와 관련 없이 믿음에 의한 아브라함의 칭의  ====&lt;br /&gt;
&lt;br /&gt;
4장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서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닌 믿음에 의한 의롭다 하심의 실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amp;quot;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amp;quot; (3절). 로마서에 나오는 가장 소중한 구절 중 하나는 여기 아브라함의 예에 대하여 기록된 것입니다(5절): &amp;quot;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amp;quot; 즉,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자가 아니라 경건하지 아니한 자가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 기쁜 소식입니다. 이것은 로마서의 강력하고도 자비로운 메시지입니다. &lt;br /&gt;
&lt;br /&gt;
==== 로마서 5장: 고난과 죽음 앞에서의 소망과 안전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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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amp;quot;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amp;quot; 그 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의 고난과 죽음의 실재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렇게 고난에 대하여 5장에서 말함으로써 8장에 등장하는 고난에 대한 거대한 강조를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 5장 3절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환난은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서 이러한 환난과 관련하여 5장은 8장과 정확히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려운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다면, 그는 쉬운 일도 하실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32에서 말한 것을 다시 상기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amp;quot;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어려운 일]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쉬운 일] 아니하겠느냐.&amp;quot; 로마서 5:9에서 바울은 바로 이와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amp;quot;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이것은 쉬운 일입니다] 것이니.&amp;quot; 10절에서도 비슷한 논증을 하고 있습니다. &amp;quot;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이것은 쉬운 일입니다] 것이니라.&amp;quot; &lt;br /&gt;
&lt;br /&gt;
여기서의 핵심은 고난과 죽음 앞에서의 우리의 소망과 안전입니다. 로마서 8장의 핵심과 같습니다. 정상적인 기독교는 환난입니다. &amp;quot;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amp;quot; (사도행전 14:22). 로마서의 강력하고도 자비로운 메시지는 장래의 고난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주어지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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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모든 문화에 있어서 거대한 실재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죽음을 직면하고도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5:12-21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써 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죄를 가져 왔고 그리스도의 순종이 의와 생명을 가져 왔습니다. 19절은 더 날카롭게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amp;quot;한 사람[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그리스도]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amp;quot; 아담의 죄와 정죄는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우리가 출생에 의하여 아담에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순종과 면죄는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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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바울은 21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의 승리에 대하여 이렇게 요약합니다. &amp;quot;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amp;quo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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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6장: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죄에 대한 죽음과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이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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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과 같은 문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고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더 풍성하다면, 그렇다면 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짓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이에 대해 6장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실제적으로 연합시키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는 죽음을 겪게 되며 죄의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을 겪게 됩니다(6:6, 17-18). 모든 의롭게 된 사람들은 성화되고 있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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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7장: 다른 이에게 가서 속하기 위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은  ====&lt;br /&gt;
&lt;br /&gt;
그리고 나서 7장에서 바울은 논증하기를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우리가 예수님을 닮게 하는 것–은 율법준수에 대한 철저한 태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amp;quot;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amp;quot; (7:4, 6). &lt;br /&gt;
&lt;br /&gt;
그리스도인의 삶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관계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amp;quot;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amp;quot; (7:4).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힘이요 자비요 모범이요 지상명령입니다. &lt;br /&gt;
&lt;br /&gt;
==== 로마서 8장: 아무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lt;br /&gt;
&lt;br /&gt;
이제 위대한 8장을 보겠습니다. &amp;quot;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35절). 이 구절과 로마서 7:4절의 깊은 관계를 살펴 보십시오.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는데 이는 다른 이에게 속하기 위함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서 열매맺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과 죽음의 열쇠요 비결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분리시키겠습니까? 아무 것도 그럴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분리시키겠습니까? 아무 것도 그럴 수 없습니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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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quot;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amp;quot; (로마서 14:8-9). 주의 것으로서 살고 주의 것으로서 죽으십시오.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불굴의 사랑을 찬송하십시오.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항상 찬송하십시오.&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6 Jun 2017 19:38:31 GMT</pubDate>			<dc:creator>Pcain</dc:creator>			<comments>http://ko.gospeltranslations.org/wiki/%ED%86%A0%EB%A1%A0:%EB%A1%9C%EB%A7%88%EC%84%9C_1-8%EC%9E%A5%EC%9D%98_%EA%B0%95%EB%A0%A5%ED%95%98%EA%B3%A0_%EC%9E%90%EB%B9%84%EB%A1%9C%EC%9A%B4_%EB%A9%94%EC%8B%9C%EC%A7%80</comments>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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