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네티컷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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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5일 (목) 19:18 현재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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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How Does Jesus Come to New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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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Piper About Suffering

Translation by Desiring God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히브리서 4:15) 이 세상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대량 학살 사건들을 보면,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왜 2000년 전 이 세상에 오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오셨던 것인지 그 이유 중의 일부를 보게 됩니다. 잔혹한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찢어질 때, 우리는 어떤 구주를 필요로 할까요?

우리는 고난받으신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공포의 잔을 이미 맛보신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와 같은 구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코미디언이 아닙니다. 스포츠 스타도 아닙니다. 영화 배우도 아닙니다. 타고난 정치인도 아닙니다. 의사도 아니고, 심지어 목사도 아닙니다. 세상은 인간에 불과한 자로서는 될 수 없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은 고난받는 주권자의 모습을 갖는 구주를 필요로 합니다. 그저 고난받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이는 너무 약해서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단지 주권자로는 안됩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같은 그러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동정하는 왕으로 오셨고, 죽임당하신 정복자로 오셨고. 어린양 같은 사자. 고난받는 주권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코네티컷의 뉴타운에 오십니다.

코네티컷, 뉴타운에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은 고난받고 동정하는 신인(God-man),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누구도 그분이 느꼈던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그분이 사랑할 수 있는 것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그분이 구원하실 수 있는 것같이 구원할 수 없습니다.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 리틀턴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크나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을 어떻게 돌보면 좋을지에 대한 목회적인 조언을 구하는 분들을 위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에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졌을 때 이 전에 쓴글에 덧붙여 수정하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 글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 다음의 링크에서 그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고난받는 주권자의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특사들로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