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강한 교회의9가지 특성/영적인 양육과 성장이 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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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건강한 교회가 되기위한 마지막 대안으로 신자의 영적인 양육과 성장의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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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신자의 종교적인 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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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경건함이 있는 내적인 영적 성장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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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 멈춘 발육 부진의 상태를 본다. 개인적으로나 교회 적으로나 이러한 미숙한 성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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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일이다. 만약 나무나 동물들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는 죽은 것이며 생명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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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영적 성장이 멈추면, 결국 생명이 없는 죽은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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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믿음의 진보와 성장을 위해 애를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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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와 에베소의 교인들이 믿음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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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랄 것을 바랐다(고후 10:15, 엡 4:15, 골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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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후 1:3). 베드로도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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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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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성장을 권면하였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들의 영적인 상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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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보고, 자신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영적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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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고 성숙하지 못하면, 무엇이 복음인지 진리인지 분별을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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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맹인이 된다. 최근 한국의 교계에 대두되는 이단 문제도, 한국 교회가 가시적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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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교인들을 복음의 진리에 기초하여 양육하지 못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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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신자들을 영적으로 양육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개 교회에서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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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에 구체적인 목회적 배려와 교회의 예산 지출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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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자들의 믿음이 자라는 교육과 양육에 무관심하고, 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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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인 성장에만 신경을 쓴다면, 우리는 이러한 교회를 복음적인 건강한 교회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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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 교회의 가시적인 교회 성장의 모습은 교회가 예산을 지출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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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나 신자들의 양육 프로그램에 인색하여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교회 주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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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파송을 전시적으로 과시하는 면이나, 교회출석과 헌금등 교회의 통계를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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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않는 면을 말한다. 이는 교회 성장의 외적인 면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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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음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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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믿음이 자라는 양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먼저 말씀으로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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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경건한 신자의 모습을 보이는 믿음의 진보가 있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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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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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는 바른 영적 성장은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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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지식이 자라는 것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을 많이 갖고 봉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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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나,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이 강해지는 것을 스스로 영적 성장의 요인으로 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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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드는 진정으로 성숙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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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하는 영적인 거룩함이 자라는 삶이 라고 하였다. 신약과 구약 성경에서 거룩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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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다르다. 기본적으로 거룩한 삶이란 구약 성경에서 보여지듯이 하나님과 신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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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를 섬기며,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구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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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이고 도덕적인 면을 말한다. 그러나 신약의 거룩함이란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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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세속적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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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말하는 이 세상에 사는 우리 신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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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은 삶 가운데 주님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우리가 거룩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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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원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해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선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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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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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된 삶이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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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가 거룩해지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야 한다는 점을 명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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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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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 의하면,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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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 후반-7, 골 2:19)라고 하면서 성경적인 영적 성장의 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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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바른 성경적인 성장의 원리인지를 다시 한번 명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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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부흥되고 성장하기를 바랄 것이다. 교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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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데, 분명 유능한 교회 지도자와 헌신된 평신도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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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성경적인 원리는 교회의 성장은 사람의 지혜로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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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성장시키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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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이 삶 속에서 거룩하게 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하나님은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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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를 부흥시킬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주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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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심을 드러내는 성화의 삶을 살거나, 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목적이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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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는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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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우리의 성장이 우리 자신에게 영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베드로는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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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보았다. “너희가 이방인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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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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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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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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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기는 우리의 삶과 섬기는 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하여 믿음 안에서 강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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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한다. 그리고 교회가 내적으로 거룩하여 이 세속 사회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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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바란다. 만약 교회가 신자들을 훈련하는 양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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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하거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복음적인 건강한 교회가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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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2009년 10월 8일 (목) 15:11 현재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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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건강한 교회가 되기위한 마지막 대안으로 신자의 영적인 양육과 성장의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신자의 종교적인 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경건함이 있는 내적인 영적 성장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영적 성장이 멈춘 발육 부진의 상태를 본다. 개인적으로나 교회 적으로나 이러한 미숙한 성장은 불행한 일이다. 만약 나무나 동물들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는 죽은 것이며 생명이 없는 것이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영적 성장이 멈추면, 결국 생명이 없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믿음의 진보와 성장을 위해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와 에베소의 교인들이 믿음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이들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랄 것을 바랐다(고후 10:15, 엡 4:15, 골 1:10, 데살후 1:3). 베드로도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성장을 권면하였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들의 영적인 상태를 바로 보고, 자신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영적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고 성숙하지 못하면, 무엇이 복음인지 진리인지 분별을 못하는 영적 맹인이 된다. 최근 한국의 교계에 대두되는 이단 문제도, 한국 교회가 가시적인 교회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교인들을 복음의 진리에 기초하여 양육하지 못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교회는 신자들을 영적으로 양육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개 교회에서는 이 부분에 구체적인 목회적 배려와 교회의 예산 지출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자들의 믿음이 자라는 교육과 양육에 무관심하고, 교회의 가시적인 성장에만 신경을 쓴다면, 우리는 이러한 교회를 복음적인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 교회의 가시적인 교회 성장의 모습은 교회가 예산을 지출 할 때, 주일학교나 신자들의 양육 프로그램에 인색하여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교회 주보에 선교사 파송을 전시적으로 과시하는 면이나, 교회출석과 헌금등 교회의 통계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는 면을 말한다. 이는 교회 성장의 외적인 면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음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교회에서 자신들의 믿음이 자라는 양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먼저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고,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경건한 신자의 모습을 보이는 믿음의 진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는 바른 영적 성장은 단순하게 성경의 지식이 자라는 것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을 많이 갖고 봉사를 하거나,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이 강해지는 것을 스스로 영적 성장의 요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드는 진정으로 성숙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부인하는 영적인 거룩함이 자라는 삶이 라고 하였다. 신약과 구약 성경에서 거룩의 의미는 다소 다르다. 기본적으로 거룩한 삶이란 구약 성경에서 보여지듯이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를 섬기며,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구별하는 의식적이고 도덕적인 면을 말한다. 그러나 신약의 거룩함이란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세속적인 이 세상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말하는 이 세상에 사는 우리 신자의 거룩함은 삶 가운데 주님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해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선함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보다 더 축복된 삶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거룩해지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야 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바울에 의하면,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 후반-7, 골 2:19)라고 하면서 성경적인 영적 성장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바른 성경적인 성장의 원리인지를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부흥되고 성장하기를 바랄 것이다. 교회가 성장하는데, 분명 유능한 교회 지도자와 헌신된 평신도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성경적인 원리는 교회의 성장은 사람의 지혜로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직접 교회를 성장시키신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삶 속에서 거룩하게 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를 부흥시킬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성화의 삶을 살거나, 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목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성장이 우리 자신에게 영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베드로는 이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보았다. “너희가 이방인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바라기는 우리의 삶과 섬기는 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하여 믿음 안에서 강건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교회가 내적으로 거룩하여 이 세속 사회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바란다. 만약 교회가 신자들을 훈련하는 양육에 무관심하거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복음적인 건강한 교회가 아닐 것이다.